
성북동 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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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별서 서울 城北洞 別墅 Garden in Seongbuk-dong, Seoul | |
소재지 | |
분류 | 자연유산 / 명승 / 역사문화경관 |
수량/면적 | 14,407㎡ |
시대 | |
소유자 | ㈜*** |
관리자 | 성*** |
지정연도 | 2020-09-02 |
성북동 별서는 '성락원(城樂園)'이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378호로 등재됐다. 2008년에는 명승 제35호로 지정변경되었고[1], 2020년에 지정 사유와 명칭에 오류가 있음이 밝혀져 정보를 정정하면서 명승 제118호로 재지정되었다.
2008년 지정변경 당시엔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라고 알려졌으나, 2019년 일반 개방 후, 심상응은 허구의 인물이며 그 명칭 역시 20세기에 들어서야 지어진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문화재청은 문화재적 가치를 재조사했다.
조사 결과, 고종 때의 내시 황윤명의 별서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조성 시기는 1884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특히,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 등이 이곳으로 피신했다는 기록이 나와 그 가치를 주목받았다.[2] 관련기사
2008년 지정변경 당시엔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라고 알려졌으나, 2019년 일반 개방 후, 심상응은 허구의 인물이며 그 명칭 역시 20세기에 들어서야 지어진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문화재청은 문화재적 가치를 재조사했다.
조사 결과, 고종 때의 내시 황윤명의 별서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었다. 조성 시기는 1884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특히,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 등이 이곳으로 피신했다는 기록이 나와 그 가치를 주목받았다.[2] 관련기사
- 2025년 6월 30일, 별서 본관 건물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목조건물인 송석정이 반소된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해 소방차 15대와 인력 66명을 동원해 현장 대응에 나서 신고 약 45분 만에 큰 불길을 잡았고 목조 건물 특성상 잔불이 남아 추가 진화 작업을 벌였다. #
1) 지정가치 (역사성·학술성) 별서 조성 이전에도 경승지로 널리 이용되었으며, 고종 대의 내관인 황윤명이 조성하여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가 피난처로 사용된 곳임. 또한 얼마 남지 않은 조선시대 민가정원으로서 보존ㆍ연구의 가치가 있음 (경관성) 자연 계류와 지형, 암석 등이 잘 어우러져 공간구성 및 경관연출 등의 측면에서 한국전통 정원으로서의 미학이 살아있음 2) 현황 서울 지역에 드물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정원으로서, 전통 정원 요소의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고 경관적으로도 보존할 가치가 있는 명승이다. 시냇물을 따라 앞뜰, 안뜰, 바깥뜰로 나눌 수 있는데, 앞뜰에는 두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하나로 모이는 쌍류동천(雙流洞天)이 있다. 안뜰을 감싸주는 용두가산(龍頭假山)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안뜰의 영벽지(影碧池) 주위에는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 장외가(檣外家), 청산일조(靑山壹條) 등의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고 바깥뜰의 고엽약수 등과 함께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경관을 보이고 있다. 별서를 만들기 전부터 오랫동안 경승지로 이용되어왔던 곳이며, 조선 고종 때 내관이자 문인인 춘파(春波) 황윤명(黃允明, 1844∼1916)이 조성한 별서이다.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의 피난처가 되었고,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 1877~1955)이 별궁으로 사용한 역사적 가치도 있다. |
성락원 城樂園 지정번호 : 명승 시대 : 조선 말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번지 등 성락원은 고종의 아들 의왕(義王)이 살던 별궁의 정원으로, 자연과 인공이 독특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이곳은 원래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沈相應)의 별장이었는데, 의왕 이강(李堈)이 이곳을 별궁으로 사용하다가 그의 아들 이건(李鍵)이 이곳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전원(前苑), 내원(內苑), 후원(後苑)의 세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영역마다 성격이 뚜렷하게 만들었다. 전원은 쌍류동천(雙流洞天)과 용두가산(龍頭假山)으로 이루어져 있다. 쌍류동천은 두 갈래의 개울물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곳으로 이곳에는 ‘雙流洞天(쌍류동천)’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암벽이 놓여 있다. 용두가산은 인공적으로 만든 작은 동산으로서 깊숙한 내원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했다. 내원에는 영벽지(影碧池)가 있고 그 옆에 한옥이 있다. 영벽지는 인공을 가미한 자연 연못으로서, 연못 서쪽 암벽에는 ‘겨울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집’이라는 뜻의 ‘장빙가(檣氷家)’라고 쓴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있다. 한편 후원에는 또 하나의 큰 연못이 있고, 그 옆의 경사진 곳에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송석정(松石亭)이라는 누각형 정자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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