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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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원원사는 밀교의 후계자들인 안혜·낭융 들과 김유신·김의원·김술종 들이 뜻을 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절터에는 금당이 있던 자리와 2기의 3층석탑과 석등 그리고 부도가 남아 있다. 탑은 동쪽과 서쪽에 있는데 규모와 형태가 거의 같으며 일제시대에 복원된 것이다. 탑에는 12지신상과 사천왕상을 새겨놓았는데, 그 수준이 매우 높아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우수성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두 석탑 사이에는 석등이 있고 4기의 부도가 동쪽과 서쪽 계곡에 나누어져 있으며 모두 고려시대 이후 것으로 보인다. 원원사는 명랑법사가 세운 사천왕사·금광사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전기까지 밀교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고 조선 후기까지 명맥이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탑의 조각수준으로 보아 당시 품격있는 절이었음을 알게 한다. |
경주 원원사지 慶州 遠願寺址 사적 경주 원원사지는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절터이다. 원원사는 안혜(安惠), 낭융(朗融) 등 명랑법사(明朗法師)를 따르던 신인종* 승려들과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 등이 뜻을 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명랑법사가 세운 금광사(金光寺)와 더불어 통일 신라 시대 문두루비법**의 중심 도량이었다. 절터에는 금당 터와 2기의 삼층석탑, 석등, 그리고 부도가 남아 있다. 2기의 삼층석탑은 1931년에 복원한 것으로 규모와 형태가 동일하다. 석탑 사이에 석등이 있고, 4기의 부도가 절터의 동쪽과 서쪽 계곡에 나뉘어져 있는데, 부도는 모두 고려 시대 이후의 것으로 보인다. * 신인종(神印宗): 신라 선덕여왕 때 명랑법사가 개종한 종파 **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 신라와 고려 시대에 행했던 밀교 의식의 하나. 불단을 설치하고 다라니 등을 독송하면 국가의 재난을 물리칠 수 있다는 비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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