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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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헌강왕릉 慶州 憲康王陵 Tomb of King Heongang, Gyeongju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면적 | 773㎡ |
지정연도 | |
시대 | |
소유단체 | |
관리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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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강왕릉(憲康王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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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상공에서 본 헌강왕릉(憲康王陵) 전경 |
경주 시내 동남쪽에 있으며, 삼국사기에서는 보리사(菩提寺)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고 하는데 현재 경주 남산동 산55에 있는 이 능을 헌강왕릉으로 비정하고 있다. 경주시 시내버스가 많이 다니고 남산(경주) 등산할 때도 기점으로 많이 가는 통일전[2] 옆 300m 거리에 있어서 찾아가려고 하면 가기는 쉬운데, 가는 길에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거쳐야 한다. 300m 거리에 동생이자 후대 왕인 정강왕릉도 있고 약 300m 거리로 가벼운 산책로 정도로 이어져있다. 양식이나 크기는 거의 똑같지만 정강왕릉이 비교적 초라한 편이다. 능 자체는 일찍이 도굴되었고, 1993년에 왕릉 내부가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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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 본 헌강왕릉(憲康王陵) |
다만 이 고분의 능주가 헌강왕릉으로 비정된 건 체계적인 학문이 도입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비정으로,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고분이 실제 헌강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이 이근직 교수 등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무덤의 양식은 9세기 말엽에 재위한 헌강왕 때보다 좀 더 이전 시기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근직 교수는 이 무덤이 제46대 국왕 문성왕의 능일 것으로 비정했다. 그러면 실제 헌강왕이 묻힌 무덤은 어디냐고 한다면, 현재로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진덕여왕릉(으로 알려진 고분) 뒤에 있는 대형 봉토분을 왕릉으로 본다면 헌강왕과 정강왕의 능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이다.
헌강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높이 4.2m, 지름 15.3m의 둥근형태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밑둘레에 돌을 4단으로 쌓았다. 일찍이 도굴되었으며 비에 의한 피해로 긴급조사를 하였다. 관이 놓여 있는 방은 네모 형태로 천장은 둥글게 모아져 있는 활천장(궁륭상천장)이고, 이 방과 연결된 통로인 널길(연도)은 동쪽에 있어 전체적으로 ‘ㄱ’자형이다. 여기서 꽃무늬 토기도 나왔다.
무덤 보호를 위해 다듬은 돌을 4단으로 쌓은 형태는 신라 왕릉에서는 특이한 형식으로 정강왕(886∼887)릉에서도 보인다. 그러나 내부구조나 출토된 토기는 8세기 이후로는 내려오지 않는 형식이어서 헌강왕의 재위기간이었던 9세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신라헌강왕릉 → 경주 헌강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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