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대산사고
최근 수정 시각:
⠀[1~50호]⠀⠀[51~100호]⠀
⠀[101~150호]⠀⠀[151~200호]⠀⠀[201~250호]⠀⠀[251~300호]⠀⠀[301~350호]⠀⠀[351~400호]⠀⠀[401~450호]⠀⠀[451~500호]⠀⠀[501호~550호]⠀⠀[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1)]⠀⠀[번호없음-2]⠀
|
평창 오대산사고 平昌 五臺山史庫 Odaesansago National History Archives, Pyeongchang | |
소재지 | |
소유자 | |
관리자 | |
시대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사고 |
수량/면적 | 8,053㎡ |
지정연도 | 1963-01-21 |
![]() |
임진왜란 이후에 설치된 네 곳의 외사고(外史庫)[1] 중 하나로,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보략 등의 국가 중요 기록물을 보관하던 시설이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들이 모두 불타버리자, 조선 조정은 국가 기록들을 안전한 곳에 나눠 보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기존에는 효율성을 중시하여 접근성이 좋은 곳에 사고를 설치했으나, 이후로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벽지나 도서지역에 설치하게 되었고, 오대산사고도 그러한 사고 중 하나다.
오대산사고는 월정사 북쪽 상왕봉 방면 깊은 산중에 설치되었고, 수호사찰은 월정사였다. 다만 월정사와 오대산사고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실질적인 수호는 월정사의 암자 중 하나인 영감사(靈鑑寺)에서 행했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들이 모두 불타버리자, 조선 조정은 국가 기록들을 안전한 곳에 나눠 보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기존에는 효율성을 중시하여 접근성이 좋은 곳에 사고를 설치했으나, 이후로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벽지나 도서지역에 설치하게 되었고, 오대산사고도 그러한 사고 중 하나다.
오대산사고는 월정사 북쪽 상왕봉 방면 깊은 산중에 설치되었고, 수호사찰은 월정사였다. 다만 월정사와 오대산사고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실질적인 수호는 월정사의 암자 중 하나인 영감사(靈鑑寺)에서 행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오대산사고의 기록들은 이왕직도서관에서 관리하다 1913년에 일제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그러나 1923년에 발생한 관동 대지진에 의해 대부분의 기록이 유실되고 당시 대출 중이던 45책만이 화를 면해 궁내청이 관리하게 된다. 광복 이후에 오대산사고의 기록들에 대한 반환 운동이 전개되었고, 2006년 오대산사고본 실록 중 47책이 대한민국으로 영구대출 형식으로 반환된다. 2018년에 1책이 추가로 반환되었고, 반환된 실록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등에 보관되고 있다.
오대산사고 건물 또한 6.25 전쟁 과정에서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92년에 사각과 선원보각을 복원한 것이며, 석축 정도만이 예전의 것이다.
오대산사고 건물 또한 6.25 전쟁 과정에서 대부분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92년에 사각과 선원보각을 복원한 것이며, 석축 정도만이 예전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략(璿遠譜略)』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하나이다. 『실록』은 조선 전기에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하여 충주·전주·성주에 나누어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1592)으로 전주사고에 보관하고 있던 것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불타 없어졌다. 선조 39년(1606)에 다시 만들어 춘추관·태백산·묘향산·강화 마니산·오대산에 사고를 짓고 보관하였다. 그러나 인조 때 이괄의 난(1624)과 병자호란(1636)으로 『춘추관본』이 불타 없어졌고, 그 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보관하게 하였다.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현재 서울대학교에 보관되어 있고, 『적상산본』은 한국전쟁 중 없어졌으며, 『오대산본』은 일본에서 거의 불타 없어졌다. 오대산 사고가 있던 곳은 원래 물·불·바람이 침입하지 못한다는 상서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사고를 지을 당시에는 실록각·선원각·별관, 그리고 사고를 지키던 수호사찰로 영감사가 있었으며, 참봉 2명과 군인 60명, 승려 20명이 사고를 관리하고 지켰다.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에 탔으나 1992년에 사각과 선원보각으로 이루어진 사고의 건물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대산사고지 → 평창 오대산사고)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