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물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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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물왕릉(奈勿王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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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교동 119호분[4] |
내물왕의 생존 기간을 고려하면 당시의 유행하였던 묘제는 돌무지덧널무덤으로써 대릉원 황남대총처럼 여느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연접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바 첨성대의 남쪽에 자리하였다는 기록에 말미암아 적석목곽묘 중에서도 당시 왕릉급을 갖춘 무덤이 인교동 119호분이기 때문에 보다 가능성이 있는 무덤은 바로 인교동 119호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인교동 119호분의 상부를 보면 함몰된 양상이 드러나는데 내부 목재들이 썩은 경우에 내려앉아서 무덤 정상부분이 평평해지는 현상이 있다. 반면에 전 내물왕릉은 무덤이 작고 무덤 호석부분에 돌 일부가 노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서악동 고분군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서악동 고분군 정도의 노출에서 점차 내부 호석렬이 신라 후대로 갈수록 무덤 밖으로 노출되어 아예 괘릉처럼 외부 장식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고려한다면 전 내물왕릉은 실제로 내물 마립간의 무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발굴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인교동 119호분의 상부를 보면 함몰된 양상이 드러나는데 내부 목재들이 썩은 경우에 내려앉아서 무덤 정상부분이 평평해지는 현상이 있다. 반면에 전 내물왕릉은 무덤이 작고 무덤 호석부분에 돌 일부가 노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서악동 고분군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서악동 고분군 정도의 노출에서 점차 내부 호석렬이 신라 후대로 갈수록 무덤 밖으로 노출되어 아예 괘릉처럼 외부 장식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고려한다면 전 내물왕릉은 실제로 내물 마립간의 무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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