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고루
최근 수정 시각:
⠀[1~50호]⠀⠀[51~100호]⠀
⠀[101~150호]⠀⠀[151~200호]⠀⠀[201~250호]⠀⠀[251~300호]⠀⠀[301~350호]⠀⠀[351~400호]⠀⠀[401~450호]⠀⠀[451~500호]⠀⠀[501호~550호]⠀⠀[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1)]⠀⠀[번호없음-2]⠀
|
![]() |
경주 대릉원의 남쪽 입구에서부터 동쪽으로 황오동 고분군을 둘러싸면서 다시 북쪽으로 북천에 이르는 방어용 시설물인 토루(土壘)이다. 경주시의 개발로 대부분 파손되고 지금은 일부에 흔적만 남아있다. 1936년 조사당시 밑넓이 9.5m, 외벽높이 3.5m, 내벽높이 2m로 확인되었으며, 신라의 고분군 또는 반월성(半月城)과 연관성이 없는 점, <고려사>의 1012년 경주에 축성했다는 기록과 <동경잡기(東京雜記)>의 고려 현종 때 전라·충청·경상 3도의 군졸을 동원하여 북천의 석축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 그리고 현재의 위치·두께 등으로 미루어보아 고려 때 읍성의 수재를 막기 위해 쌓은 제방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93년 부분적인 조사를 통해 성벽의 기초 석축과 인공적으로 물이 흐르도록 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확인되어, 고려시대 읍성의 외성일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
경주 남고루 慶州 南古壘 사적 남고루는 대릉원의 남쪽 입구에서 동쪽의 황오동 고분군, 북쪽의 북천까지 이어진 토루*이다. 시가지가 확대되면서 대부분 파괴되었고, 지금은 경주고등학교 서쪽에 일부만이 남아 있다. 남고루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와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전한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고려 현종 3년(1012) 8월에 남고루를 쌓았다고 하고,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현종 때 전라 · 충청 · 경상 3도의 군졸을 동원하여 북천에 돌을 쌓아 제방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93년에 남고루의 일부를 발굴 조사한 결과, 토루 아래층에서 통일 신라 시대의 도로 유적과 함께 성벽의 기초 석축과 해자** 등이 확인되어 이곳이 고려 시대에 쌓은 읍성의 외성일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토루(土壘) :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으로 쌓은 제방이나 둑 **해자(垓子) :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 |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