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마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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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산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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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 월명산에 있는 백제 산성으로 당시 수도였던 사비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 성의 둘레는 약 5~6㎞이고, 흙과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이 많이 무너진 상태이나 서쪽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계곡의 물이 흐르는 서쪽 성벽에 물이 빠져나가는 수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성이라 적이 쉽게 침입할 수 있는 남문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성안에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높이 쌓은 망대와 각시우물이라 전하는 우물터, 경룡사터, 의열사터 등 건물터가 남아있다. 백제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으로, 석성산성·성흥산성·증산성과 함께 도읍을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시설로서 의미가 크다. |
부여 청마산성 扶餘 靑馬山城 사적 부여 청마산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는 형태로 쌓은 백제시대의 최대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9km에 이르며, 성벽은 흙과 돌로 쌓았다. 성벽 곳곳에는 치*와 문 터, 배수구 터를 비롯하여 백제 사비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터와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높게 쌓은 장대 터, 그리고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경룡사 등의 절터가 남아 있다. 청마산성은 백제 사비도성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하는데 남서쪽의 가림성과 북서쪽의 증산성, 남쪽의 석성산성 등과 함께 사비도성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방어시설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치(雉): 적이 성벽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성벽 밖으로 내밀어 쌓은 돌출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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