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마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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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 본 지마왕릉(祗摩王陵) 전경 |
신라 지마왕(112∼134)의 무덤으로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성은 박씨로서 파사왕의 아들이다. 무덤의 모양은 비교적 규모가 큰 둥근무덤으로 남산에 뻗은 경사면의 높은 곳에 만들었으며 별다른 특징은 없다. 무덤의 위치와 규모 및 형태로 보아 신라 초기에 만든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무덤 앞에 최근에 설치한 작은 석상이 놓여있다.
※(지마왕릉 → 경주 지마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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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처음 지정될 당시 사적 제22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문화유산에 번호를 매기는 것이 유산의 중요도로 오인될 수 있음을 고려해 따로 번호를 매기지 않고 있다.[4] 강인구(1986), 현곡면 오류리에 진덕여왕릉이 있지만 체계적인 학문이 도입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비정으로, 현대 학자들은 이 고분을 실제 진덕여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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