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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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헌덕왕의 왕릉
헌덕왕릉

憲德王陵
경주헌덕왕릉
매장지
조성형태
굴식 돌방무덤
매장자
헌덕왕 (826년 10월 사망)
진평왕 (추정)
조성시기
홈페이지
홈페이지 아이콘

국가유산 정보[ 펼치기 · 접기 ]

경주 헌덕왕릉
慶州 憲德王陵
Tomb of King Heondeok, Gyeongju
소재지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수량/면적
18,007㎡
지정일
시대
소유단체
관리단체
경주 헌덕왕릉 전경1 (촬영년...
헌덕왕릉(憲德王陵)
 

1. 개요2. 상세3. 사적 (舊 사적 제29호)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경주 헌덕왕릉 항공사진 (고도...
헌덕왕릉(憲德王陵) 전경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위치한 신라 제41대 국왕 헌덕왕왕릉이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1]
 

2. 상세[편집]

 
B001711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헌덕왕릉(憲德王陵)[2]
많은 신라왕릉이 능주의 비정이 잘못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헌덕왕릉은 이근직 교수를 비롯해 현대 학계에서도 실제 헌덕왕의 왕릉이 확실하다고 대체로 인정받는 신라왕릉들 중 하나다. 신라 왕릉의 묘제를 연구한 이근직에 따르면 신라 왕릉으로 전해지는 무덤으로써 그 위치 비정이 전승과 실제가 동일한 여덟 기[3]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사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장지가 정확히 일치(천림사泉林寺 북쪽)하고 조선 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경주부 능묘조에도 헌덕왕릉이 부의 동쪽인 천림리(泉林里)에 있다고 기록되어 교차검증이 된다.[4]

다만 이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며, 바로 뒤에 조성되었을 흥덕왕릉에 비해서는 상당히 진위에 대해 의심을 받는다.

일단 헌덕왕릉은 북천 강변에 위치해 있어서 대부분 남향인 동시기 하대 왕릉들처럼 남향이었다면 북천이 가로막아 사찰이 위치할 여견이 되기 힘들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에 더해 전헌덕왕릉은 소금강산을 끼고 그 앞 평지에 조성되어 다른 하대 왕릉들이 좌북조남의 방향에 입지한 것과는 다르게 월성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전헌덕왕릉의 연대를 법흥~진덕 시기의 중고기 후반까지 올려잡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한지(漢只)에 장사를 지냈다는 진평왕의 왕릉으로 비정하는 가설이 대표적이다.

다만 헌덕왕릉 자체는 대놓고 하대 스타일의 왕릉이라 이 경우 먼 훗날 하대 시기에 왕릉을 개축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데, 원성왕계로 진지왕계와는 원성왕이 무열왕의 외현손인 정도로 연관이 있으며, 진평왕계와는 별 유의미한 관계가 없었을 하대 왕실이 굳이 진평왕의 무덤을 하대 양식으로 고쳐줄 이유가 별로 없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후대 북천 범람으로 인해 수몰 피해를 입은 왕릉을 보수하면서 하대 스타일로 무덤을 고쳤지만, 이후로도 계속 수몰 피해를 당했다는 설을 내놓기도 한다. 마침 진평왕 본인도 신라의 위기를 극복하고 삼국통일의 기반에 올려놓은 명군이며, 천사옥대나 기타 여러 설화 등으로 후대 왕실의 존경을 받았고, 민간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을 왕으로 추정되곤 하니 명분이 아예 전무한 것은 아니다.[출처]

장황하게 적어 두었지만 요약하자면 대체로 헌덕왕의 왕릉이 맞다고 보나 그 비정에 여러 이견이 있어서 무열왕릉이나 선덕여왕릉처럼 거의 반쯤 기정사실로 여겨지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상술한 진평왕릉설도 결국 가설에 불과하니 왕릉을 직접 발굴해보지 않는 이상 여기서 더 진도를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주 헌덕왕릉 난간석 (촬영년...
경주 헌덕왕릉 병풍석 (촬영년...
헌덕왕릉(憲德王陵)의 난간석과 병풍석
헌덕왕릉은 지금의 경주시 북천 강변에 위치해 있는데, 북천이라는 강이 워낙 자주 범람하던 강이다 보니(...) 석물이 남아난 게 별로 없다. 윤경렬이 쓴 신라 이야기에 보면 북천 강물의 흐름을 두고 분황사 부처님과 신통력으로 싸움을 벌이는 통에 원래 있던 석물들이 죄다 씻겨 내려갔다고... 일제강점기에 찍은 사진을 봐도 다른 신라왕릉보다 유독 훼손이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강 건너편 경주고등학교 교정에는 헌덕왕릉의 호인상으로 전해지는 거대한 석상의 '상반신 일부'가 남아있다. 북천의 범람에 하도 시달렸는지 마모가 많이 되어서 얼핏 보면 그냥 커다란 돌하르방 상반신 같이 생기긴 했지만, 원성왕릉석상을 본 뒤에 이걸 보면 비슷하게 생겼다는 걸 느낄 수 있다.
 

3. 사적 (舊 사적 제29호)[편집]

 
경주 북천가에 있는 신라 제41대 헌덕왕(재위 809∼826)의 무덤이다.

헌덕왕의 본명은 김언승이며,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재위기간 동안에 농사를 권장하고 당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김헌창의 난과 김범문의 난이 일어나는 등 국내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6년에 왕이 죽자 천림사의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천림사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왕릉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이곳을 천림사 터로 본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6m, 높이 6m이다.

봉분 밑의 둘레를 따라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둥 역할을 하는 돌을 한단 깔고, 그 위에 넙적한 돌(면석)을 세웠다. 면석사이에는 기둥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고정시켰다. 탱석에는 무덤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로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이 무덤에는 현재는 12지신상 중 돼지(해)·쥐(자)·소(축)·호랑이(인)·토끼(묘) 등 5개상만이 남아있다. 둘레돌 밖으로는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설치하고, 둘레돌과 난간 사이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지금의 모습은 1970년대에 정비된 것으로, 둘레돌의 일부와 돌난간석을 새로 만들었다.

※(신라헌덕왕릉 → 경주 헌덕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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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舊 사적 제29호[2] 출처: 조선고적도보 五[3] 나머지 일곱 기는 선덕여왕릉, 태종무열왕릉, 문무대왕릉(대왕암), 성덕왕릉, 원성왕릉(괘릉), 흥덕왕릉, 경순왕릉.[4] 경주 헌덕왕릉의 진평왕릉설 비판[출처] 김용성 • 강제현, 2012 <신라 왕릉의 새로운 비정> <야외고고학> 15.
CC-white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56 판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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