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 대성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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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대성동 고분군의 전경 |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에 위치한 금관국/금관가야의 고분군이다. 김해시의 중심지에 위치한 구릉에 고분군이 형성되었고, 주변으로 구지봉과 김해 회현리 패총, 분산성, 그리고 금관국의 궁성인 봉황토성 및 생활유적이 자리잡았다.
대성동 고분군이 있는 언덕의 옛 명칭이자 별칭인 애구지는 작은 구지봉 내지는 제2의 구지봉이라는 뜻이다. 문헌 기록에서 금관국의 성지로 나타나는 구지봉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과거부터 이 언덕이 신성시되었고 그 전승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구지봉과는 약 600m 정도 떨어져 있다.
1991년 1월 9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2] 또한 2023년 9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된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3]에서 경상남도·경상북도·전북특별자치도 등에 소재한 여러 가야계 고대 국가의 고분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성동 고분군이 있는 언덕의 옛 명칭이자 별칭인 애구지는 작은 구지봉 내지는 제2의 구지봉이라는 뜻이다. 문헌 기록에서 금관국의 성지로 나타나는 구지봉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과거부터 이 언덕이 신성시되었고 그 전승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구지봉과는 약 600m 정도 떨어져 있다.
1991년 1월 9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2] 또한 2023년 9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개최된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3]에서 경상남도·경상북도·전북특별자치도 등에 소재한 여러 가야계 고대 국가의 고분군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성동 고분군은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총 10차례 발굴조사가 있었다. 확인된 무덤은 총 304기로 고인돌, 독무덤,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여러 시대 형식이 동시에 나왔다. 가야권 고분군치고도 초창기 무덤이 아주 잘 보존된 경우이다.
다소 독특한 것은 봉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지금의 애꼬지(=애구지)라고 불리는 능선에만 중첩되어서 왕릉급 무덤이 연속적으로 축조되었다. 능선의 중심으로는 왕릉급 대형묘들이 있고 그 주변으로 능선의 사면 옆으로 위계가 낮은 고분들이 분포한다.
주로 구덩식 덧널무덤 같은 대형 무덤은 구릉 능선부의 좋은 자리에 위치한 반면 중소형 무덤들은 구릉의 사면과 주변 평지에 있어 지배계층의 묘역과 피지배계층의 묘역이 분리되고 있다. 지배계층의 초대형 덧널무덤은 모두 순장이 확인되는데, 고령 지산동 고분군처럼 수십 명씩 묻은 대규모는 아니고 몇 명을 같이 묻은 정도. 보통 도굴꾼은 값진 부장품을 노리므로 메인 덧널만 털고 가느라 현대 발굴로는 오히려 순장자 덧널에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순장 유골들을 조사해 본 결과 평균 키는 남성 155.7 cm, 여성 150.8 cm였다고 한다.
광개토대왕이 남정한 서기 400년으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시점부터 초대형급 무덤과 별도의 딸린 덧널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최대 규모가 줄어든다. 부장품도 전성기의 금동제장식마구와 왜계 위세품이 더이상 부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무렵부터 금관국이 쇠퇴했다고 추정한다. 부산대 학파는 광개토대왕의 남정이 직접적 계기가 되어 금관국이 쇠퇴한 게 아니며 전성기가 조금 더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다소 독특한 것은 봉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지금의 애꼬지(=애구지)라고 불리는 능선에만 중첩되어서 왕릉급 무덤이 연속적으로 축조되었다. 능선의 중심으로는 왕릉급 대형묘들이 있고 그 주변으로 능선의 사면 옆으로 위계가 낮은 고분들이 분포한다.
주로 구덩식 덧널무덤 같은 대형 무덤은 구릉 능선부의 좋은 자리에 위치한 반면 중소형 무덤들은 구릉의 사면과 주변 평지에 있어 지배계층의 묘역과 피지배계층의 묘역이 분리되고 있다. 지배계층의 초대형 덧널무덤은 모두 순장이 확인되는데, 고령 지산동 고분군처럼 수십 명씩 묻은 대규모는 아니고 몇 명을 같이 묻은 정도. 보통 도굴꾼은 값진 부장품을 노리므로 메인 덧널만 털고 가느라 현대 발굴로는 오히려 순장자 덧널에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순장 유골들을 조사해 본 결과 평균 키는 남성 155.7 cm, 여성 150.8 cm였다고 한다.
광개토대왕이 남정한 서기 400년으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시점부터 초대형급 무덤과 별도의 딸린 덧널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최대 규모가 줄어든다. 부장품도 전성기의 금동제장식마구와 왜계 위세품이 더이상 부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무렵부터 금관국이 쇠퇴했다고 추정한다. 부산대 학파는 광개토대왕의 남정이 직접적 계기가 되어 금관국이 쇠퇴한 게 아니며 전성기가 조금 더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국립김해박물관과 김해 수로왕릉 사이의 동서로 뻗은 구릉지대에 있는 가야의 무덤들이다. 길이 약 300m, 높이 20m 정도의 구릉 지대로, 경사가 완만해 무덤이 있기에 매우 적합하다. 고분군에 인접하여 고분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1∼5세기에 걸친 지배집단의 무덤 자리로 고인돌을 비롯하여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토광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가야의 여러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구릉 주변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고, 구릉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어, 삼한시대 구야국 단계에서 금관가야 시기까지의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덧널무덤은 나무판을 조립하여 널(관)을 만든 것으로, 이전에 통나무관을 이용하던 것에서 나무판널을 사용하는 시기로의 전환이 1세기경임을 보여준다. 유물로는 토기류와 철기류, 목류,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우리나라 고대무덤 형식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며, 중국제 거울이나 토기류에서 한·중·일의 문화교류 상황을 밝혀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2025년 3월 11일 김해시는 고분군 보존과 안전 확보를 위해 정부에 긴급보수사업비를 요청해 최근 2억 8,800만원을 국비로 확보했고 이달 붕괴 사면 정비를 시작해 장마철 전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붕괴부 토층 조사로 김해 고읍성의 축조 기법을 파악하고, 하부에 남았을 수 있는 고분 분포 여부를 조사하게 된다. 조사가 끝나면 실시설계용역에 반영->국가유산청 설계 승인->매장유산협의 등 행정절차를 거쳐 정비 공사를 추진, 6월 전 마칠 계획이다. 대성동고분박물관장은 “수습, 정비중 얻어지는 자료들은 전시·학술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며 김해 역사와 문화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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