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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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
慶州 鷄林 | Gyerim Forest, Gyeongju
소재지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구비전승지
수량/면적
23,023㎡
지정일
시대
소유단체
관리단체

경주역사유적지구
Gyeongju Historic Areas
Zones historiques de Gyeongju
국가·위치
등재유형
지정번호
등재연도
등재기준
(ⅱ)[1], (ⅲ)[2]
경주 계림
경주 계림비각
 
 
 
 
1. 개요2. 사적 (舊 제19호)
2.1. 안내판 설명
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경주시에 위치한 작은 숲. 김알지가 태어났다고 알려진 장소다. 원래 이름은 시림(始林)이었지만 김알지가 태어난 이후 계림으로 바꿨다고 한다. 김알지 탄생 설화에 대해서는 김알지 문서 참조.

첨성대경주 월성, 한옥마을인 교동마을 사이 지나가는 길에 있어서 근처를 다니면 저절로 지나가게 된다.

현재 알려진 계림은 사실은 경주 향교의 홍수 방지용 숲이고 실제 계림은 다른 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2. 사적 (舊 제19호)[편집]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始林)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雞林)이라 하였다.

탈해왕 4년(60)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하여, 날이 밝은 후 신하를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울고 있어 돌아와 고하니, 왕이 즉시 시림으로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았다.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알지는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계림은 신성한 곳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김알지 탄생에 대한 비(碑)가 남아있다.


 
 
 
 

2.1. 안내판 설명[편집]

 
 
 
 
경주 계림
慶州 鷄林
사적

계림은 신라의 옛 나라 이름 가운데 하나이자 신라 김씨(金氏)의 시조인 알지(閼智)의 탄강 설화가 전해오는 숲 이름이다. 면적은 7,300㎡로 원래 시림(始林) 혹은 구림(鳩林)이라 하였으나, 알지가 태어난 뒤로 닭이 울어 알지가 태어난 것을 알렸다고 해서 닭 계(雞)자를 써 계림이라 불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왕 9년(65)에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의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은 후에 신하인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호공이 시림에 이르러 살펴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왕에게 보고하자 왕이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다 열어 보게 하니, 그 안에 자태가 빼어난 사내아이가 있었다.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거두어 길렀더니 그 아이는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그리하여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알지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우리말로 `아이'를 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탈해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알지는 파사(婆娑)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렸다.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전하는 계림은 지금까지도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김알지 탄생기록비가 있다.

 
 
 
 

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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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적 史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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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00호]⠀

[9]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7호로 재지정[10]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8호로 재지정[11]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75호로 재지정[12] 울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제8호로 재지정[13]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76호로 재지정[B] 14.1 14.2 사적 제510호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로 통합, 재지정[C] 16.1 16.2 16.3 사적 제513호 나주 반남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D] 19.1 19.2 사적 제514호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E] 21.1 21.2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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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9일부로 번호 지정제 폐지
2021.11.19 - 2026.05.14
[37] 내동리 쌍무덤. 옥야리 장동 방대형 고분 4기 총 5기
⠀[번호없음-2]⠀
2026.05.14 -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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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소선은 고사 등의 사유로 사라진 나무다.
  • 이탤릭체는 당숲이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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