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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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비각 |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始林)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雞林)이라 하였다. 탈해왕 4년(60)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하여, 날이 밝은 후 신하를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울고 있어 돌아와 고하니, 왕이 즉시 시림으로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았다.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후에 알지는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계림은 신성한 곳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김알지 탄생에 대한 비(碑)가 남아있다. |
경주 계림 慶州 鷄林 사적 계림은 신라의 옛 나라 이름 가운데 하나이자 신라 김씨(金氏)의 시조인 알지(閼智)의 탄강 설화가 전해오는 숲 이름이다. 면적은 7,300㎡로 원래 시림(始林) 혹은 구림(鳩林)이라 하였으나, 알지가 태어난 뒤로 닭이 울어 알지가 태어난 것을 알렸다고 해서 닭 계(雞)자를 써 계림이라 불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왕 9년(65)에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의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은 후에 신하인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호공이 시림에 이르러 살펴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왕에게 보고하자 왕이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다 열어 보게 하니, 그 안에 자태가 빼어난 사내아이가 있었다.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거두어 길렀더니 그 아이는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그리하여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알지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우리말로 `아이'를 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탈해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알지는 파사(婆娑)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렸다.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전하는 계림은 지금까지도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곳에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김알지 탄생기록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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