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황성동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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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성동 고분 慶州 隍城洞 古墳 Ancient Tomb in Hwangseong-dong, Gyeongju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
면적 | 1,440㎡ |
지정연도 | 2007.01.02 |
시대 | 7세기 중반 |
소유단체 | |
관리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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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성동 고분 내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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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성동 고분 |
경주 황성동 고분은 인근에 위치한 경주 용강동고분(사적)과 함께 평지에 위치한 경주의 대표적인 굴식돌방무덤이다. 발굴조사 결과, 고분은 이미 오래 전 도굴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도굴로 인해 봉분과 돌방의 일부가 무너지고 돌방 안에 부장(附葬)된 유물도 대부분 사라졌다. 다만 발굴을 통해 봉분과 호석(護石) 그리고 돌방 내부의 구조를 알 수 있었고, 일부 남아 있는 유물을 통해 이 고분에서 장례가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봉분은 모래흙과 자갈 그리고 질흙 등을 다져서 쌓았으며,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자리에는 호석을 쌓아 마감하였다. 돌방의 평면 형태는 남북방향으로 긴 네모꼴이며, 천정은 돌방의 모를 줄이면서 쌓았고, 널길은 돌방 남쪽 벽의 왼편으로 치우쳐 연결되는 구조이다. 고분의 구조와 일부 남아 있는 유물을 통해 볼 때, 7세기 중반에 고분이 처음 만들어졌다가 9세기 즈음 다시 한 번 시신을 매장하는 장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돌방 : 남북 2.4m, 동서 1.75m/ 봉분 : 지름 9.75m, 높이 2.0m) ※(경주황성동석실분 → 경주 황성동 고분)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
경주 황성동 고분 慶州 隍城洞 古墳 사적 경주 황성동 고분은 인근에는 있는 용강동 고분사적과 함께 경주의 북천 너머 평지에 위치한 대표적인 굴식돌방무덤이다. 도굴된 채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가 발굴, 조사하였다. 무덤의 돌방은 긴 네모꼴로 남쪽 왼편에 출입하는 널길을 설치하였다. 천장 구조는 모서리를 줄여가며 쌓는 모줄임 양식으로 추정되나 대부분 허물어져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다. 7세기 무렵의 신라 토기와 함께 널길에서 출토된 중국제 해무리굽* 청자 조각을 참고하면 고분은 7세기 중반에 처음 만들어진 후 9세기 무렵에 다시 한 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덤의 크기로 보아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짐작된다. * 해무리굽: 도자기의 바닥이 해무리처럼 둥글고 두툼한 띠 모양의 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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