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북동 토성

최근 수정 시각:
편집
IP 우회 수단(프록시 서버, VPN, Tor 등)이나 IDC 대역 IP로 접속하셨습니다. (#30172495)
(VPN이나 iCloud의 비공개 릴레이를 사용 중인 경우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잘못된 IDC 대역 차단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 게시판에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토론역사
정북동토성에서 넘어옴
정부상징
대한민국
사적 史蹟
⠀[1~50호]⠀
⠀[51~100호]⠀

[9]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7호로 재지정[10]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8호로 재지정[11]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75호로 재지정[12] 울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제8호로 재지정[13]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76호로 재지정[B] 14.1 14.2 사적 제510호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로 통합, 재지정[C] 16.1 16.2 16.3 사적 제513호 나주 반남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D] 19.1 19.2 사적 제514호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E] 21.1 21.2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
⠀[101~150호]⠀
⠀[151~200호]⠀
⠀[201~250호]⠀
⠀[251~300호]⠀
⠀[301~350호]⠀
⠀[351~400호]⠀
⠀[401~450호]⠀
⠀[451~500호]⠀
⠀[501호~550호]⠀
⠀[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1)]⠀
2021년 11월 19일부로 번호 지정제 폐지
2021.11.19 - 2026.05.14
[37] 내동리 쌍무덤. 옥야리 장동 방대형 고분 4기 총 5기
⠀[번호없음-2]⠀
2026.05.14 -
[ 펼치기 · 접기 ]
청남대대청호 • 수암골 • 상당산성용두사지 철당간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 옛청주역사전시관 • 국립청주박물관흥덕사지 • 청주고인쇄박물관 • 국제기록유산센터 • 우암어린이회관 • 옥화자연휴양림(옥화구곡관광길) • 미동산수목원 • 문의문화재단지 • 청주육거리시장초정행궁정북동 토성청주동물원청주예술의전당오창호수공원 • 오송호수공원 • 청주중앙공원 • 운보의집 • 신채호 사당 및 묘소 • 충북대학교박물관 • 백제유물전시관 • 신항서원 • 손병희선생유허지 • 소로리볍씨 박물관 • 덕촌리 독립운동가 마을 • 두꺼비생태공원(원흥이방죽) • 국립청주해양과학관(준공, '26 예정)
청주시 CI 국영문
청주 정북동 토성
淸州 井北洞 土城
[ 펼치기 · 접기 ]
소재지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91,936㎡
지정연도
1999년 10월 28일
제작시기
위치
 

1. 개요2. 세부내용3. 사적 제415호4. 기타

 
청주 정북동 토성
 

1. 개요[편집]

 
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한 삼국시대 백제의 네모꼴로 축조된 토성이다. 1999년 사적 제415호로 지정되었다.
 

2. 세부내용[편집]

 
미호천(美湖川)과 무심천(無心川)이 합류하는 까치내 주변의 평야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성 안에는 토성마을이 위치하며 주변은 모두 논이다.

성벽은 부식된 화강암을 부순 마사토와 붉은흙을 섞어 두께 7∼15㎝씩 판축(版築)하여 쌓았다. 둘레는 655m인데, 동쪽벽 180m, 남쪽벽 155m, 서쪽벽 160m, 북쪽벽 160m는 대체로 직선을 이루고 있어 성곽의 평면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편이다. 성벽의 높이는 약 4m 정도인데, 윗부분에는 성벽을 한바퀴 돌 수 있는 너비 2m 가량되는 길이 나 있다.

성벽의 중간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성문 앞을 가려 쌓은 옹성(甕城)처럼 성벽을 자르거나 어긋나게 한 문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벽 모서리는 곡성(曲城)처럼 높이를 높여 바깥쪽으로 둥글게 쌓았는데, 다락집과 같은 각루(角樓)를 설치한 듯하다. 성벽의 바깥쪽에는 성벽을 둘러 판 해자(垓字)의 흔적도 있다. 1939년에 성 안에서 돌화살촉·돌칼·돌창이 출토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삼국시대 그릇 조각과 고려 시대 이후의 자기 조각도 발견되고 있다.

이 산성과 관련하여 조선 영조 때 작성된「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가 최근에 발견되었다. 그에 따르면, 후백제견훤(甄萱)이 토성을 축조하였고, 창고를 지어 곡식을 저장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평지에 네모꼴로 쌓은 이러한 토성은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드문 중국식 성터이므로, 견훤축성설은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오히려 3세기경에 취락성(聚落城)으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1]
 

3. 사적 제415호[편집]

 
미호천변 평야의 중심에 있는 평지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만든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궁예가 상당산성을 쌓아 도읍을 삼았는데, 견훤이 산성을 빼앗아 정북동 토성으로 짐작되는 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후삼국 쟁란기인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출토된 유물과 성의 위치, 주변 여건이 초기 성곽시설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의 길이는 675m이고 높이 3.5m, 폭은 8∼13m 정도 된다. 성안에서는 주거지, 기둥구멍, 길, 돌무더기 등이 확인되었고, 성 밖에서는 성을 둘러싸 보호하는 물길인 해자를 확인했다.

토성의 구조와 출토 유물들로 우리나라 초기의 토성 축조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토성이다.
 

4. 기타[편집]

 
무료 주차장(전기차 충전기 5개 포함)이 설치되어 있으며, 안전상의 이유로 골프 및 연날리기가 금지되어 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