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대도호부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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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대도호부 관아 江陵大都護府 官衙 Gangneung-daedohobu Government Office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관아 |
면적 | 18,951㎡ |
지정연도 | 1994년 7월 11일 |
제작시기 | 고려 태조 19년(936) |
소유단체 | 강릉시 등 |
관리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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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 임영관 | 강릉대도호부 관아 안내도 |
- 객사 임영관
- 서헌-전대청-동대청
- 중대청
- 동헌: 기묘하게도, 동헌인 칠사당이 잘 남아있음에도 2010년에 정체불명의 동헌을 복원했다. "어 강릉에 '동헌'이 둘이네"
- 문루: 동헌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고증 없이 복원되었다.
- 칠사당: 동헌. 도호부사의 집무실이었다. 이름은 수령이 힘써야 할 7가지 업무, 즉 '수령칠사'를 의미한다. 처음 지어진 때는 확실하지 않으며, 1632년과 1726년에 중건 공사가 있었고, 1867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객사문(국보)만 남아 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공민왕이 쓴 ‘임영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1993년에 강릉 시청 건물을 지을 계획으로 실시한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영지』의 기록을 통해 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릉임영관 → 강릉대도호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4.11.27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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