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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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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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 에리트레아)
Ϯⲉⲕ̀ⲕⲗⲏⲥⲓⲁ ̀ⲛⲣⲉⲙ̀ⲛⲭⲏⲙⲓ ⲛⲟⲣⲑⲟⲇⲟⲝⲟⲥ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Հայ Առաքելական Եկեղեցի

시리아 정교회
ܥܺܕܬܳܐ ܣܽܘ̣ܪܝܳܝܬܳܐ ܬܪܺܝܨܰܬ ܫܽܘ̣ܒ̥ܚܳܐ‎

아시리아 동방교회
ܥܕܬܐ ܕܡܕܢܚܐ ܕܐܬܘܖ̈ܝܐ

알렉산드리아 전례

아르메니아 전례

서시리아 전례

동시리아 전례


파일:traditional-mass1.jpg[1]

규모

12억 8,500만여 명[2]

교황

초대 교황

사도 성 베드로

현직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청

바티칸 시국

언어별
명칭

한국어

가톨릭 교회, 천주교(天主敎)

라틴어

Ecclesia Catholica

영어

Catholic Church[3][4]

프랑스어

Église Catholique

스페인어

Iglesia Católica

이탈리아어

Chiesa Cattolica

중국어

天主敎會[5], 天主教会[6]

일본어

カトリック, てんしゅきょう(天主教)

에스페란토

Katolika Eklezio


1. 개요2. 상세3. 동방 가톨릭 교회4. 어원5. 특징
5.1. 베드로좌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제5.2. 성직자의 독신제도
6. 가톨릭의 4대 교리7. 가톨릭 신자의 6대 의무8. 생명윤리에 관한 강한 보수성9. 개신교와의 교리적 차이
9.1. 의화에 관하여
10. 오해11. 신학12. 문화13. 역사14. 아시아에서의 가톨릭15. 창작물에서의 가톨릭
15.1. 구마(엑소시즘)에 대한 오해와 진실
16. 비판17. 트리비아18. 관련 용어 및 관련 문서19. 인물

1. 개요[편집]

가톨릭은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기독교의 종파이다. 천주교라고도 하며[7], 가장 큰 규모의 단일 종파이고 정교회와 함께 기독교 사상 최고(最古)의 종파이다. 두 교회는 서로만을 유이한 초대 교회의 직계 후손으로 공인한다.[8]

2. 상세[편집]

파일:external/i1.wp.com/12_07_09_4_Marks.jpg

네 모퉁이의 글귀는 각각 가톨릭 교회의 4대 속성인 하나인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된 교회,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의미한다.


이름은 '보편적'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신자 수는 2015년 교황청 연감 기준 12억 8,500만여 명으로 전체 기독교 인구의 절반을 초과하며, 이는 세계 인구의 17.8%로 1/7이 넘는 규모이다.(70억 인구)#

여타 종교, 종파들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체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교리 문제 등으로 갈라져 나간 경우에는 명칭부터가 가톨릭이 아니게 된다.[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과거만큼 엄격하게 통제하지는 않게 되면서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이견을 보이기도 하지만, 덩치가 커져도 여전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해서 믿음 공동체가 상당히 잘 뭉쳐 있다. 따라서 가톨릭은 바티칸부터 명동성당은 물론 아프리카 오지 사막까지 원론적으로는 핵심 교리가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10]

그러나 어디까지나 '교리'가 같다는 이야기이지, 그 교리를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 모든 신자들이 똑같은 해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11][12] 이를테면 성직자수도자들이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라서 심지어는 같은 교구수도회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또한 후술될 우스타샤의 문제만 보아도 교리의 구체적 적용 방식은 차이가 난다. 물론 교리라도 같은 게 어디겠냐만은.

워낙 신자 수가 많고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크다. 실제로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유럽[13] 종교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은 가톨릭과 관련된 내용이다. 근현대에 들어선 개신교 등등의 가시적인 라이벌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은 종교로서가 아닌 정치단체로서도 발휘되곤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였는데, 가장 비근한 예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정신적 일체감을 가진 세계 최대의 초국가적 단일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 인구로 보면 이슬람보다는 적지만, 이슬람도 따지고 보면 기독교 못지 않게 종파가 갈라져 복잡하기 때문에 단일한 조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체계가 잘 갖춰진 세계 최대의 초국가적 단일 조직으로는 UN이 있지 않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UN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가입하는 조직이고[14], 허구헌날 으르렁거리는 회원국 사이에 정신적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Catholic의 사전적 의미는 옛날에는 '공번(共繙)'이란 한자로, 현대에는 '보편적'으로 통용된다.[15] 즉 Catholic Church는 세계 보편 교회라는 뜻이다. 영어 발음은 캐썰릭. 한편 정교회는 Orthodox란 명칭도 쓰지만 Ecumenical Church(세계적 교회)란 명칭도 자주 쓰며, 뜻은 가톨릭교회(보편적 교회)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에큐메니컬(세계적)이라는 용어와 가톨릭(보편적)이라는 용어 모두 굉장히 풍부한 뜻을 가진 어휘이지만, 둘 다 '모든 민족, 모든 국가, 모든 지역이 믿을 수 있는 보편적(세계적) 교회'라는 엄청난 자부심이 묻어나는 간판이다. 둘 다 내부에서 스스로를 공식적으로 호칭할 때는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교회라고만 말하는 것도 동일하다. 예를 들어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말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교회는 이것을 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등등. 따지고 보면 이것도 여타 잡다한 수식어 없이 교회라고만 칭해도 자신들을 완전히 나타낼 수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16]

한자문화권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천주교라 불린다. 천주(天主)는 '하느님'을 한문으로 적은 것으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서 유래되었다. 조금 더 고풍스러운 표현으로는 '성교회'라는 표현도 있다. 편의상 ○○동 성당이라고 부르는데 각 본당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XX교구 XX 교회'식이다. 또한 가톨릭교회 내에서도 천주교가톨릭이라는 명칭이 혼용되곤 한다. '카톨릭'이라는 말도 쓰이지만 한국 천주교의 공식적인 표기는 '가톨릭'으로, 국어사전에서도 '카톨릭'이 아닌 '가톨릭'만이 올라가 있다. 이는 이 단어가 19세기 후반 개화기에 들어와 정착되었기 때문인데, 조선 후기 사람들이 catholic을 '가톨릭'으로 인식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천주교 선교사(신부)들이 라틴어를 공부하고 이탈리아어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17] 이들은 처음 외래어를 한국어로 표기할 때 당연히 자신들의 언어를 기준으로 사용했다.

동방 정교회와 대비하여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라는 취지에서 로마 가톨릭(Ecclesia Catholica Romana)으로 불리기도 하나,[18] '로마 가톨릭'이라는 명칭은 정확히는 아래에 설명하는 '동방 가톨릭 교회'를 배제하는 명칭이므로 굳이 동방 가톨릭교회를 제외한 로마 전례를 따르는 교회만을 일컫기 위함이 아니라면 적절한 호칭이 아니다.[19] 천주교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자기 종파를 그냥 교회라고만 부르며, 굳이 다른 종파하고 구분하고 싶을때는 가톨릭 교회라고만 부른다. 즉 '로마 가톨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기독교 종파가 '보편적인(Catholic)' 교회를 표방하고 있으나,[20] 엄밀히 말해 기독교에서 '보편적인' 교회는 칼케돈 신조를 따르는 정통 종파인 가톨릭과 정교회 두 종파만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교회'와 '가톨릭'(천주교)는 서로를 단 둘뿐인 양대 정통 보편교회로 인정하는 것이다.

3. 동방 가톨릭 교회[편집]


총대주교좌를 보유한 동방 가톨릭 교회들

모교회

칼케돈 정교회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동방
가톨릭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كنيسة الروم الملكيين الكاثوليك

콥트 가톨릭
الكنيسة القبطية الكاثوليكية‎‎

아르메니아 가톨릭
Հայ Կաթողիկէ Եկեղեցի

전례

비잔티움

알렉산드리아

아르메니아

모교회

(모교회 없음)

시리아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

동방
가톨릭

마론파
ܥܕܬܐ ܣܘܪܝܝܬܐ ܡܪܘܢܝܬܐ

시리아 가톨릭
ܥܕܬܐ ܣܘܪܝܝܬܐ ܩܬܘܠܝܩܝܬܐ

칼데아 가톨릭
ܥܕܬܐ ܟܠܕܝܬܐ ܩܬܘܠܝܩܝܬܐ

전례

서시리아

동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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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lu8jPD.jpg

마론전례 가톨릭 교회에서 쓰는 십자가[22]

다른 동방 가톨릭 교회에서 쓰는 십자가


가톨릭 교회에는 라틴 예법이 아닌 고유의 예법(동방 예법, Eastern Rite)을 따르고 있는 동방 가톨릭 교회들이 존재한다. 동방 가톨릭 교회들은 지역별 전례와 교회법, 그리고 전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어 외관상으로는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교리는 가톨릭의 교리를 따르며, 교황의 수위권 역시 인정하고 따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가톨릭 소속 동방 교회는,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알렉산드리아(콥트와 에티오피아 교회로부터 유래), 시리아,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유래한 가톨릭 교회들까지 있다. 그 기원은 상당히 다양한데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일부가 가톨릭으로 귀일[23]하여 생성된 교회가 많고, 심지어 이단인 네스토리우스파에서 나와 교황 수위권과 가톨릭 교리를 온전히 받아들인 칼데아 가톨릭 교회도 있다. 반면, 오래 전부터 교황 수위권을 받아들인 뒤 로마와의 일치가 끊어진 적 없이 독자적인 전통을 인정받았던 마론파와 같은 교회도 있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종종 가톨릭 십자가와 정교회 십자가가 합쳐진 형태의 십자가를 가톨릭에서 볼 수 있다. 가톨릭은 물론, 정교회, 오리엔탈 정교회, 개신교 신자들 모두가 쉽게 놓치는 부분인데, 이 십자가는 동서 교회의 하나됨을 의미하기에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로마 가톨릭 교회 소속 평신도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규범을 존중하는 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례에 아무 제한 없이 참례할 수 있고, 그 반대도 당연히 가능하다. 예법이 다를 뿐 같은 가톨릭 교회이고 다른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의 가톨릭 신자가 동방 가톨릭 교회에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고 거기서도 고해성사, 견진성사 등 다 받을 수 있다.

상세는 항목 참조

4. 어원[편집]

파일:external/catholictradition.org/tg-7.jpg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보편)교회가 존재하듯,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가 존재한다."


―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35 - 107?)

830. ‘가톨릭’이라는 말에는 ‘전체성’ 또는 ‘온전성’, ‘보편성’이라는 뜻이 있다. 교회는 다음 2가지 뜻에서 보편적(가톨릭)이다.

교회는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므로 보편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다.” 교회 안에는 머리와 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 완전하게 존재한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구원의 완전하고 충만한 방법을” 그분에게서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 방법들은 올바르고 완전한 신앙 고백, 온전한 성사 생활 그리고 사도적 계승을 통하여 서품된 직무 등이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성령 강림 날부터 보편된 것(가톨릭)이었으며, 그리스도 재림의 날까지 항상 보편될 것이다.

831 교회가 보편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전 인류에게 파견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루도록 불린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이고 유일한 이 백성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온 세상에 퍼져 나가, 처음에 인간 본성을 하나로 만드시고 흩어진 당신 자녀들을 마침내 하나로 모으고자 하신 하느님 뜻의 계획을 성취해야 한다.하느님의 백성을 돋보이게 꾸며 주는 이 보편성은 바로 주님의 선물이다. 이로써 가톨릭 교회는 온 인류가 그 모든 부요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 성령의 일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고 힘껏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 가톨릭 교리서 830~831항


가톨릭의 어원은 그리스어 catholic 의 옥스포드 영어사전의 해석은 위와 같다. 형용사로서 해석해 보면 "폭 넓은 다양한 것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이라는 뜻이다. 의역을 하면 "보편적인"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기독교의 용어로 쓰이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가톨릭(Catholic)은 하나의 보편적 교회(또는 공교회)로 하나의 신앙 조직체, 보편적 기독교 신앙의 구성요소, 신학과 교리, 전례와 윤리, 사상적, 실천적인 특징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용어이다.

어떤 교회가 위와 같은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보편교회, 즉 가톨릭교회라고 불리울 수 있다. 여러 종파와 정교회는 각자 자신들이 보편교회임을 주장함과 동시에 상대 종파의 보편성을 인정하고 있다. 개신교(특히 성공회)도 가톨릭주의를 주창하나,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종파는 가톨릭 교회와의 갈등 때문에 '가톨릭'이라는 말 대신 다른 대체 용어(universal 등)를 사용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외래어 표기법은 가톨릭은 어원이 그리스어 καθολικός 로 추정한다. # '카'로 쓸지 '가'로 쓸 지 갑론을박이 많은데, 한국어의 ㄱ/ㅋ은 어두에 올 때 양쪽 다 무성 연구개파열음 /k/으로 소리나며, 차이는 무성음이냐 유기음이냐에 있다. 하지만 유럽어에서의 k는 대개 유기음보다는 무성음에 가깝다.[24] 아래에 적힌 ㅂ/ㅍ나, ㄷ/ㅌ도 마찬가지. 성경/한국어 표기 문제를 참고토록 하자. 비슷한 예는 성경만 펼쳐보아도 수도 없이 나오는 페트로스(베드로), 파울로스(바오로, 바울). 옛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에도 키리에 엘레이손이 아니라 기리에 엘레이손이라고 적혀 있다.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카톨릭이 맞지만, 1995년 제8차 정부언론외래어 심의공동위원회에서 전문 분야에서 쓰이는 관용을 존중하여, 가톨릭이 표준어로 확정이 되었다. #1 #2 세계사 교육의 영향으로 '구교'(舊敎)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국에서 '(로마)카톨릭'이라고 격하게 발음하는 건 개신교에서 비하하는 뉘앙스가 연상된다 하여 가톨릭 신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5. 특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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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교황 사도 성 베드로.

5.1. 베드로좌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제[편집]

예수12사도 중 하나인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여겨지는 교황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교황은 프란치스코. 초기 교회 시대의 교부들은 로마에 근거한 베드로좌와의 친교가 사도들로부터 이어져온 정통교회인지 이단인지를 구분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25]

파일:external/image.shutterstock.com/stock-photo-old-engravings-depicts-the-catholic-hierarchy-the-book-history-of-the-church-circa-87201736.jpg

같은 기독교 계열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연맹왕국인 정교회군웅할거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은 철저하게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가톨릭에서 특정 교구나 성당이 비대해지거나 몰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전체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은 어느 교구나 성당이든 다 똑같은 교리와 다 똑같은 방식의 미사, 성사, 전례를 진행한다. 다만 성당 내의 인간관계 등 때문에 집에서 조금 떨어진 성당에 오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을 괜히 억지로 다른 성당으로 보내 버리면 냉담자가 되어버리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점점 터치를 안 하는 분위기가 있긴 하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Estructura+de+la+Iglesia+en+la+Edad+Media.jpg
성직자는 주교>신부>부제 순으로 품계가 나뉘어져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주교 안에서도 교황, 추기경, 일반 주교들이 있고, 신부 안에서도 각 본당의 주임신부와 보좌신부들(교구사제), 수도회의 수도사제[26]들이 있다.[27] 또한 성직자들과는 완전히 별개로[28] 수도자들 역시도 계급이 있다. 수도자는 각 수도회의 장상에게 순명할 의무가 있다. 또한 평신도들은 성직자의 교도권에 대해 무조건 절대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게다가 가톨릭은 여타의 종교에 비해 보고 체계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으며, 그래서 사건이 발생하면 일반 신부에서부터 교황에게까지 순차적으로 보고가 들어간다. 그러면 사소한 사항은 주교 선에서 해결하고, 중대한 사항은 교황이 판단한다.

심지어 교구 신부들의 경우, 흡사 군대에서 장교들을 뺑뺑이 돌리듯 한쪽 성당에 눌러앉지 못하게 주기적으로 다른 성당에 발령난다. 왜냐하면 한 성당에서 신부가 오래 눌러 앉으면, 해당 본당의 평신도들과 결탁해서 횡령 등의 영 좋지 못한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가톨릭은 사제를 출신 연고지 본당으로 발령보내지 않는 암묵의 룰이 있다. 그래서 서품을 받은 뒤에 첫 미사만 출신 연고지 본당에서 집전하고 다른 동네를 떠돌게 된다.[29][30]

성경 스터디도 교구나 본당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가 교구나 본당의 인준, 관리를 받지 않은 개인 성경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가톨릭 교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것을 모르는 일부 신자들이 모 사이비 종교의 성경 스터디에 가입해서 해당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단이나 사이비가 아닌 정상적인 개신교에서 개설한 성경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성경 번역본에 대해서는 전례용(미사)은 반드시 교회가 전례용으로 승인한 것만을 사용하며, 신자 개개인의 통독용 성경도 가톨릭 교회의 검열을 통과한(imprimatur) 번역본만 보는 것이 권장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개신교 성경을 개인 차원에서 보는 것을 막지는 않으나 주위에서는 가톨릭용 내지는 교회의 검열을 통과한 공동번역(에큐메니컬) 번역본을 보라고 적극 권면할 것이다.

교회법을 봐도 가톨릭의 중앙집권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주교제 교파인 정교회성공회만 해도 각 지역 관구별(총대주교구)로 독자적인 교회법을 제정, 개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한성공회 교회법은 영국 성공회 교회법과 별개로 존재한다. 반면에 가톨릭에서는 교회법의 제정, 개정 권한은 오로지 교황청(바티칸)에만 있다. 각 지역 가톨릭 관구들은 독자적인 교회법을 제정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지역에 맞는 지침이나 세칙만 만들 수 있다. 단, 교회법에 대한 지역 보충 규정은 만들 수 있는데 이것도 교황청의 인준이 필요하다. 이는 전례 개정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가톨릭에서는 한국어 미사통상문 표현 하나 수정하는 것도 교황청의 인준이 필요하다.

교파가 갈리는 개신교[31]에 비해 시간적으로도 공간상으로도 수직구조와 질서, 종횡의 짜임이 매우 치밀하다. 그만큼 덩치가 커지는 바람에 보수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평도 있지만, 단일 조직으로서는 매우 철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계서제를 통해서 하부 조직에 대해 상당한 통제력을 보이지만 이것도 완벽하진 못한 듯,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집단 파문사태까지 이를 만한 일이 하나 생겼다. 물론 모든 종교든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단점과 추태가 나타나기 마련인 법이며, 수십~수백 개 교파/교단의 통제가 아예 안 되는 개신교에 비해 아주 잘 관리된다고 할 수 있다. 개신교도 성공회와 같이 일부 체계가 잘 잡혀있는 교파/교단은 제외되지만 그것도 '교파/교단 내'에서의 통제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이러한 중앙집권제는 교회 조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서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목사의 성향에 따라 예배가 크게 달라지는 개신교와는 큰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가톨릭은 전 세계 모든 미사의 말씀 전례에서 선포되는 성경의 구절이 같다. 몇월 며칠 미사에 성경 몇 장 몇 절을 읽는다면 아프리카의 옛 프랑스포르투갈의 식민지 출신 국가든, 교황청이든, 미국 보스턴아일랜드계 미국인 중심의 성당이든, 남부 독일 바이에른이든, 멕시코, 브라질 같은 중남미든, 서울특별시이든 대구광역시이든 전부 같은 내용을 다룬다. 목사의 성향에 따라 예배형식과 성경본문, 설교내용이 크게 달라지는 개신교와는 큰 차이점이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전례력 통일은 로마 또는 라틴 예법을 사용하는 교회 한정이므로 동방 가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전례 양식이 다르다. 또한 주일이나 주요 축일, 사순/대림시기를 제외한 날에는 주례 사제에게 미사의 목적에 맞는 일부 기도문과 독서 목록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나 지역, 수도회마다 특별히 고유하게 기념하는 기념일이나 축일 등이 있기 때문에 그 날의 전례가 달라질 수 있다. 어쨌든 같은 예법을 사용하는 교회라면 통일된 전례 양태를 보인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중세 시절 정해진 미사 양식에 따른 것으로, 초기 카타콤에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 시절에도 신부들끼리 해당 일의 성경 구절을 짜맞추어 날짜에 맞게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이게 경신성사성에서 생각보다 잘 짜놨기 때문에 주일 미사에 3년 동안, 그리고 평일 미사에 2년 동안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 주요 성경 구절을 모두 통독할 수 있다. 1970년대 초에 이 독서 목록(라틴어: Ordo Lectionum Missae)이 나오자 개신교에서 참고하여 성서정과라고 부르는 비슷한 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성무일도까지 1년 동안 하면 거의 완벽하다. 이렇게 1970년 이후로 가톨릭은 공식적인 전례에서 가장 성경을 많이 읽는 종파라고 할 수 있다.

5.2. 성직자의 독신제도[편집]

잘 알려진 메이저 기독교 중에서 대표적이고 유일하게 성직자결혼완전히 금지되어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원래 유대교에 기반을 둔 만큼 성직자의 결혼이 원래는 허용되어 있던 만큼 성직자의 결혼도 권장했으며, 12사도 중에서도 일부는 결혼했다고도 하니, 원래부터 성직자의 결혼에 딴지를 건 것이 아니다.

이런 규칙이 만들어진 원인은 나중에 교세가 퍼지고 나서 성직의 부자 세습 등 부작용이 많이 보고되어 일부러 금지시켜 버린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성경에서 예수가 하늘나라를 위해 불구가 된 사람에 관한 칭찬(마태오 복음서 19장 12절), 그리고 바오로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여 오롯이 하느님께 바치기 위한 독신이었던 것을 들기도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는 성직자가 결혼하여 그 자식이 성직에 종사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교회의 재산이 외부로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의견도 있다.

사실 모든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들이 독신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동방 가톨릭 교회의 탁덕 이하의 성직자들은 그들의 전통이 인정되어 결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성직에 있을 때 배우자와 사별하면 재혼할 수 없다. 주교는 기혼자 중에서 서임될 수 없으며, 수도회 소속의 성직자는 결혼할 수 없다. 한편 정교회는 기혼자도 사제가 될 수 있지만 사제가 된 이후 결혼이나 재혼은 불가능하며, 주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만 임명된다. 성공회는 주교를 포함한 모든 사제의 결혼이 허락된다. 하지만 가톨릭의 경우에도 다른 종파(특히 성공회와 정교회)의 성직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톨릭 신부가 되었을 경우, 그 이전에 결혼한 것은 인정하여 계속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하기도 한다. 가톨릭에서는 결혼의 불가해소성을 교리로 삼으므로 이혼도 원칙적으로 죄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의 예를 보면, 성공회 등 다른 종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처자식이 있는 신부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주교 등의 고위 성직자가 될 수는 없고 평신부에 머물러야 한다.

정교회도 결혼을 허용하기는 하지만 이는 마찬가지여서, 결혼한 자는 주교에 거의 못 오른다고 한다. 그래서 교구 신부들은 거의 다 결혼을 하고, 주교는 원래 결혼이 금지되는 수도 신부들만 되는 점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황추기경 중에는 성직자가 되기 전이나 후에 공공연히 여인과 관계를 맺어 자녀를 두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알렉산데르 6세. 특히 르네상스 시절이 가장 심했는데, 그 경우에는 무조건 사생아로 취급되는 게 안습. 그러나 체자레 보르지아의 사례도 있거니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적자든 사생아든 별 차이 안 두고 살았다.

6. 가톨릭의 4대 교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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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의 교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4가지 교리를 교회의 4대 교리라고 하며[32], 이 교리는 환자의 경우 대세를 주기 위해서 가르쳐야 할 핵심교리이다. 평신도도 위급한 경우에 한해 4대 교리만을 가르치고, 대세(代洗), 즉 정식 세례를 받기에는 위급한 병자에게 베풀 수 있는 약식 세례성사를 베풀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위급한 경우라고 해도 4대 교리는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천주교 군종교구에서 주는 세례성사에서도 4대 교리는 반드시 주지시킨다. 문제는 이것만 가르친다는 것[33]

4대 교리는 4자로 된 한자(漢字)성어 형태로 말하는데, 다음의 4가지이다. 이는 가톨릭이 처음 전파될 당시 가톨릭 교리문답을 크게 4가지로 정리해서 한자어로 번역한 것이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1. 천주존재 (天主存在) : 하느님은 만물이 있기 전부터 항상 계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분이시다.
1. 상선벌악 (賞善罰惡) : 하느님은 죽은 후 선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신다.
1. 삼위일체 (三位一體) : 하느님은 다만 한 분이 계시지만 위(位)로서는 세 위를 포함하여 계시니, 즉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1. 강생구속 (降生救贖) : 인류의 조상인 아담하와가 범죄한 후 모든 사람은 원죄로 인하여,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나, 하느님의 제2위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 사람이 되사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써 구속사업을 완성했으므로 누구든지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 구속 공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됨.

7. 가톨릭 신자의 6대 의무[편집]

가톨릭은 신자가 되는 것도 꽤 번거롭고, 신자가 되어도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종교다. 가톨릭 신자의 의무가 몇 가지 정해져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주일과 의무축일 미사에 빠지면 안 된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의무축일을 4번으로 정해놓았는데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예수 부활 대축일(춘분이 지나고 첫 맞이하는 만월(滿月)이 지난 주일(일요일)),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 4번이다.

  2. 금육과 단식을 지켜야 한다. 금육은 매주 금요일이고, 단식은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금육은 날개 달린 동물 또는 4발 달린 동물의 고기나 국물을 먹지 않는 것이고, 단식은 하루 1끼는 먹고, 1끼는 간단히 요기만 하고, 1끼는 완전히 굶는 것이다. 그리고 금육과 단식의 목적은 신자들을 괴롭히려는게 아니라.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으로 수난당하고 죽음당하신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자는 의미, 그리고 육고기나 식사를 절제함으로 인해 아낀 돈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선하는 뜻으로 행하는 것이다.
    2-1) 다만 금육은 만 14세 이상부터 죽을 때까지, 단식은 만 21세부터 만 61세까지가 그 대상이며, 그 외에 환자, 허약체질, 육체노동자, 여행자, 수험생 등은 사전 관면을 받으면 걸러도 된다.[34] 하지만 사순절이나 성 금요일을 제외한 금요일의 금육의 경우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의무적인 것이 아닌, 신자들이 자율적으로 행하도록[35] 변경되었다. 또한 금요일이 의무 대축일 등 교회의 큰 축일 등 과 겹치면 그날 금육 의무는 자동으로 면제된다.
    2-2) 그리고 금육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기억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값비싼 고기를 먹지 않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따라서 금육일이라고 비싼 회를 먹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금육이라는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그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2-3) 전국의 가톨릭계 대학 학생식당 및 가톨릭계 유치원 급식까지, 금요일 메뉴에서 육고기를 보는 건 쉽지 않다. 이 때는 생선이나 오징어 등 다른 단백질원이 제공되곤 한다.

  3. 교회법에 의해 1년에 1번 이상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는데, 한국 가톨릭에서는 1년에 1~2회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보도록[37] 하고 있고, 이 때 신자 수를 집계하여 서류상 신자인 사람들은 따로 냉담자로 분류해서 신자 수에 집계하지 않는다. 신자들은 판공성사를 본 뒤 성사표[38] 를 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다 신앙심도 깊고 성당도 매주 꼬박꼬박 나가는 사람이 판공성사를 못 봐서 냉담자로 처리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3-1) 판공성사를 3년 이상 거른 신자를 냉담자로 분류하여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발표하는 신자 통계에서 제외시킨다는 주장이 오류임은 아래 문단 '12. 대한민국에서의 가톨릭'의 교세 통계에 대한 이해에서 설명된다.
    3-2)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승인된 ‘주일 미사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은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90조 2항 “부활 판공성사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위의 시기에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 때나 다른 때에라도 받아야 한다.”라는 규정에 대한 적극적 해석을 통해 ‘부활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이나 1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따로 성사표를 받아서 고해성사 하고 고해실 안에 있는 별도의 바구니[39]에 성사표를 제출해야 한다.

  4. 1년에 1번 이상, 웬만하면 부활절 때 (판공성사를 보아 깨끗해진 양심과 마음으로)성체를 모셔야 한다.[40]

  5. 교무금을 내는 것도 신자의 의무이자 양심이다. 천주교회에서 도움을 받는, 다시 말해 찢어지게 가난한 경우가 아닌 이상 수입의 1/60에서 1/10까지 자발적으로 액수를 정해서 무조건 내야 한다. "모든 교우들이 천원을 내서 천주교"라고 신부님이 자조하실 정도로 거의 천원을 많이 냈다. 수입에서 정해진 액수도 없다. 그냥 본인이 내는 대로 내면 된다. 1,000원을 내더라도 좋은 마음으로 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를 위해 대다수 성당 사무실에는 통장 리딩기와 결제장비들이 갖추어져있다.[41]

  6. 교회 혼인법을 준수하여야 한다.(혼인성사)


이것이 가톨릭 신자가 지켜야 할 가장 큰 6대 의무이며, 이 외에도 전교하는 것 등 많은 의무가 교회법에 깨알같이 적혀 있다.

종교 중에서는 신자 관리가 대단히 명확한 편이다. 인구조사에서 집계되는 신자 수가 자체적으로 조사하여 발표하는 신자 수보다 많은 유일한 종교. 이는 매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판공성사를 받지 않는 영세자를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 냉담자로 간주하여 신자 집계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업체의 ERP시스템에 비견되는 통합된 전산 시스템인 양업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냉담자 처리를 확실하게 한다.

한국 천주교는 1년에 2차례(사순시기와 대림시기) 실시하는 판공성사를 3년 동안 하지 않거나 성사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를 쉬는 교우(냉담자)로 분류하여 교적을 본당에서 교구청으로 이관하고, 판공성사표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적은 교구청에 보관하며, 당연히 신자 통계에 포함시킨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신자 수가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가 발표하는 교세 통계 상의 신자 수보다 더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 가운데 다음 2개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 신랑과 신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비신자일 경우 일정한 조건 하에 관면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게 된다. 혼배 당시 비신자였던 배우자가 여전히 세례성사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신자인 배우자와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도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천주교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 정부에서 실시하는 인구조사 등에서 자신도 천주교 신자라고 응답하는 경우 교회에는 신자로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 정부 통계에는 신자로 잡히는 경우이다.

둘째, 한국 천주교에서는 유아세례를 받은 아기들이 10살 안팎쯤 되면 교리를 배워 첫 영성체를 하게 되며, 비로소 천주교 신자로서 교적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신자 가정에서는 앞의 첫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실시하는 조사에서 교적 여부에 관계 없이 신자로 응답한다.

8. 생명윤리에 관한 강한 보수성[편집]

금욕배란주기관찰법을 제외하고, 콘돔, 체외사정, 경구피임약모든 형태의 인위적인 피임낙태, 그리고 인공수정을 교회의 가르침으로 강하게 금지[42][43]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낙태의 부분 허용을 명시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 14조[44]전면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체외사정의 경우 기독교에서 인공 피임 금지의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인 창세기 38장 1-10절에서 문제가 된 행위가 바로 질외사정이었다(이것은 다른 종파들의 경우,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다). 배란촉진제 사용에 대해서도 교육할 때 겁을 준다. 교회법에서 살인, 유괴와 함께 교회와 직접 관련이 없는 행위에 대해 처벌 조항이 있는 드문 케이스.

그 중 낙태죄의 형벌이 가장 강하며, 일반적인 낙태와 사후피임약[45], 질내 피임 기구 등을 이용한 피임을 전부 포함한다. 낙태죄를 범한 게 확실한 사람은 자동 파문된다. 또 낙태에 협력한 사람도 똑같은 죄를 범한 것이 되어 마찬가지로 자동 파문된다. 원칙적으로 이 죄에 대한 사면권은 교황주교에게 있는데, 일반적으로 주교나 교황을 찾아가 고해를 청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 여성들이 보다 쉽게 고해성사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자비의 희년을 시작하면서 낙태에 대한 사면권을 크게 확대했다. 즉 모든 사제에게 사면권을 준 것이다.[46]

그러나 한국 가톨릭의 경우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서구와는 달리 여전히 가톨릭 교세가 강하지 않은 선교권 국가에 머물러 있는 한국에서는 주교들의 사면 권한은 이미 신부들에게 위임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천주교에서는 신부들이 예전부터 고해성사를 통해 낙태죄를 용서해 왔다.

교황의 이러한 결정은 가톨릭교회가 낙태를 받아들이거나 방조한다는 것은 아니다. 죄는 단죄하지만 죄를 뉘우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낙태는 여전히 대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낙태는 비극이며 분명히 잘못된 행위"라고 했다. 다만 교회는 심판하고 단죄하는 교회가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낙태를 선택하거나 강요당한 여성들, 깊이 깨닫지 못하고 낙태에 협조한 사람들, 낙태 이후 죄의식 때문에 신앙으로부터 멀어져간 사람들에게 이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초대를 하려는 것이다.

간혹 금욕도 강요한다고 잘못 아는 경우가 있으나, 사실 날짜계산법 자체가 가임기를 피하기 위한 1달에 약 10일 정도의 주기적인 금욕이다. 날짜계산법을 인정하는데 금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모순된다. 가톨릭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평생 금욕하며 살아간다. 평신도들도 본인이 원한다면 평생 금욕을 지키며 살아갈 수도 있다.

또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도 매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느님이 주신 하나의 생명체인 배아를 연구를 위해 파괴하는 것을 살인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공수정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현재 가톨릭에서는 성관계를 하느님께서 부부 사랑의 표현과 자녀 출산을 위해 주신 성스러운 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 또는 생명 연구를 위한 생명의 파괴를 반대하고 있다. 자위행위, 부부관계를 벗어난 혼전성관계 및 혼외 성관계(간통 등), 동성 간 성행위,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9. 개신교와의 교리적 차이[편집]

삼위일체 하느님과 성경을 믿는다는 것 외에는 사실상 다른 종교.

기본적으로 기독교라는 공통된 틀안에 있어서 기초적인 사상은 같거나 비슷하나 세부적인 해석이나 신학적 입장으로는 많이 다르다. 물론 정교회와도 세부적인 교리는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특히 개신교는 종파가 어디냐에 따라서 차이는 더욱 커진다. 이는 개신교로 분류되는 종파끼리도 서로 다르다.[47]

각종 교리에 대한 여러 수많은 개신교 종파들과 가톨릭 교회간의 입장 차이는 아주 분명하다.[48] 때를 거슬러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고종22년 (1887년) 호러스 뉴턴 알렌고종황제에게 로마 가톨릭의 접근을 경계하라고 진언하면서 .(중략). 저들의 우상 숭배, 특히 마리아 숭배, 인간 사제의 죄 속량권, 남자로서 환관이 아닌 신부에게 부녀자들이 가서 죄를 고백하는 것은 몰염치한 짓이라는 상소를 한 일이 있으며 .(중략)." 와 같은 내용이 있다. 호러스 뉴턴 알렌미국에서 온 개신교 선교사이자 미국 공사인데, 19세기 말의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것은 "가톨릭=성모 마리아 숭배교" 라는 잘못된 주장이 비단 한국의 개신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좀더 오래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전구의 유무이다. 개신교는 성공회 고교회파를 제외하고는 성인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49], 성모 마리아가 이 땅에서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고 여기는 반면, 가톨릭에서는 성전을 바탕으로 교황무류성을 통해 성모몽소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으며 마리아가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에녹엘리야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승천을 했다고 믿기 때문에 개신교와 가톨릭간의 마찰이 빚어진다. 또한 정교회도 이를 정식 교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칼케돈파나 네스토리우스교 역시 역사적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개신교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성모승천이 외경을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성모몽소승천을 부정하는 한편, 가톨릭에서는 초기 교회 시기부터 내려오는 성전을 바탕으로 성모 마리아가 이 땅에서 죽지 않고 동정녀로써 승천하였다고 선포하였다. 5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서로 간의 교리적 차이가 너무나도 뚜렷해진 것이다.

다음으로, 인정하는 성경의 권 수가 다르다. 가톨릭은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을 합쳐서 73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반해, 개신교는 구약 중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면서 총 6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차이가 나는 7권의 경전은 가톨릭에서는 '제2정경(제2경전)'이라고도 호칭하며 정경에 포함하고 있지만, 개신교에서는 '위경'이라고 호칭하여 정경에서 분리하고 있다. 이 외경에 대한 경전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서는 현대의 개신교에서 숱한 논란의 대상이다. 아예 위경이나 금서로 치부하는 목사도 있고, 신학적인 가치가 있다는 목사도 있다. 정교회는 구약 49권과 신약 27권을 합쳐서 7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성공회개신교와 마찬가지로 39권을 인정하고 있다. 신구교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정경이 66권이다. [참고] 권수가 다른 이유에 대한 더 자세한 것은 성경 문헌 참고.

또한 성경을 해석하거나 이를 대하는 관점에 있어서 사도로부터 내려온 전승인 '성전(聖傳)'을 중시하고 있다.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기록된 성경과 달리, 기록되지 않은 형태로 교회의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과 실천적 관행을 성전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개인에게 말씀하신다고 가르쳐 성경 구절의 임의 해석을 허용하고 성전의 대부분을 부인하는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은 성경을 성전의 일부로 여겨 성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취급하며 성경구절의 사적 해석을 위험히 여긴다. 개신교는 관례와 전통 등을 중시하는 행위는 과거 바리새인들의 유전을 예수가 비판한 것을 들어 위험하게 여기므로 성경에 뭔가를 첨가하고 부가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경계한다.[51] 가톨릭은 어디까지나 교회전승 안에서 성경 내용을 이해하라는 것. 교리 중에서도 성경에 확실히 언급된 것이 아닌, 교회의 전승(성전)[52]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내용들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즉 성전으로 여기는 범위에서 가톨릭은 성경과 다른 전승을 모두 성전으로 보는 반면, 개신교에게는 활자로 된 성경만이 성전인 것이다.[53] 그리고 가톨릭은 성경을 해석할때 성경 전체적으로 살피고 봐야한다고 보지, 일부 개신교와 달리 성경 특정 구절을 가지고 편협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한다.(대표적인 예가 이신칭의 교리 논란)

또한 '가톨릭' 자체가 없었던 고대인들은 선하게 살았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세례받지 못한 유아나 의로운 고대인들이 가는 '림보'(limbo)가 있다고도 했었으며, 단테신곡에서도 림보가 언급된다. 이 림보라는 공간은 지옥은 아니지만 천국도 아니며, 참된 기쁨인 '지복직관(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의 평화와 안정을 얻는 장소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는 교황 첼레스티노 5세가 '고귀한 자리를 함부로 버린', 즉 자진 퇴위한 죄로 림보에 들어가 있다(그런데 현실에선 훗날에 첼레스티노 5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축일은 5월 19일).

하지만 림보 자체가 신학적 가설일 뿐 '믿어야만 하는 교리'는 아니라는 주장이 현대 가톨릭 신학계에서 강력하게 주장된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 신학자가 명예교황 베네딕토 16세.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가톨릭 교리서에서는 림보가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기존에 림보에 갔으리라 말하던 영혼이 실은 모두 천국에 있으리란 것. 그리고 유아 림보설은 결국 공식 폐기되었다. 림보에 대한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황이나 교황청 등이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는 한 가톨릭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림보를 믿든 믿지 않든 아무 지장이 없다. 믿지 않아도 이단이 아니라는 뜻.

개신교에서는 구원의 철회, 탈락 문제가 만년 신학 논쟁 대상인데, 가톨릭에서는 논의의 가치도 없이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주제다. 세례를 받고 사함을 받았어도 대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보기 때문.

그 외 '연옥의 존재 여부'에 관한 논쟁과 '성모 마리아의 위상'에 대한 논쟁이 있다. 연옥은 가톨릭 교리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지옥에 떨어질 정도의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모자라는 사람을 위한 장소로, 일종의 속죄의 장소이자 천국으로 가기 위한 이전단계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즉, 대죄를 짓게 되면 지옥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타지만, 대죄를 인지하지 못하게 짓거나 자잘한 소죄만을 지은 경우 바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옥에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정화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만이 사후에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시, 죄를 지은 순서로 사람을 1열로 세우게 되면, 어느 선에서 천국행과 지옥행이 갈라져서 아깝게 지옥에 가는 사람과 석연치 않게 천국에 가는 사람이 발생하게 되는데, 연옥은 이러한 비합리를 해소하게 해준다.

죄를 지은 가톨릭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하고 진심으로 참회하게 되면, 죄의 용서는 받으나 죄에 대한 대가는 남아있게 되는데 이를 잠벌이라 한다. 만일 살아서 이 벌을 다 갚지 않으면, 즉 기도와 선행 등으로 보속하지 않으면 남은 벌은 연옥에서 갚게 되는 것이다. 이 잠벌의 용서는 주교교황이 조건부로 주는 대사를 받으면 가능하되, 이를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양도 가능하다. 죽은 신자가 연옥에서는 더 이상 선행이 불가능하므로 오로지 은총으로만 영혼이 정화되는데, 살아있는 신자들의 대사 양도가 필수적이다. 이렇게 연옥에 머무르는 영혼은 자신의 기도와 천국에 소속된 이들의 기도, 그리고 이승에 속한 이들의 기도로 천국에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연옥은 위의 림보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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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절대 예배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당장 성모송의 끝구절부터가 "저희를 구원하소서"가 아닌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이다. 간혹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에서는 '반드시'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거쳐서만 기도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지만,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에게 직접 기도한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신자들은 정확히 말하면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모 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신 하느님에게 기도한다. 사도신경의 구절 중 하나인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에서 알 수 있듯, 가톨릭 신자들은 천국에 소속된 이들이 우리를 위해 하느님에게 간구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도움을 받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 뿐 아니라 천사나 성인들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도 또한 다양하게 존재한다. 단 그들에게 전구를 요청하는 것이지 절대로 그들에게 구원을 해달라거나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기도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이나 예수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도와는 달리,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에게 빌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모 마리아성인은 신앙의 모범이고 공경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음(성모무염시태)을 따를 교리로 선포했으며, 이를 인정하지 않을 시 파문이 기다리고 있다. 공경의 대상을 넘어 원죄가 없음을 고백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교리적 절차를 기다리고있다. 성경은 예수 이외의 원죄 없으시 분을 언급하지 않기에 이는 교리적 논쟁의 씨앗을 남기게 되었다. 공경의 근거도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느님에게 충실한 사람들로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음에 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이런 성모 마리아, 성인의 개념은 물론 그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에게 빌어달라는 뜻인 전구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전구가 없는 개신교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뜻을 가진 문장으로 마치는것 만이 인정된다. 개신교에서는 전구 대신 서로를 위한 기도로서 중보기도가 있으나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뿐이므로 중보기도라는 명칭은 비성경적이라는 논란이 있어 대신 도고기도, 청원기도 또는 이웃을 위한 기도 라는 명칭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면, 가톨릭과 정교회미사, 기도, 또는 마음을 다잡거나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성호경과 함께 십자성호를 긋지만, 개신교에서는 하지 않는다. 가톨릭과 정교회의 성호 긋는 순서와 의미는 조금 다른데, 자세한 건 성호 항목을 참조. 그 외 가톨릭의 성당은 성상이 존재하며, 일반적인 십자가뿐만이 아니라 예수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형태의 십자고상을 사용하는데, 개신교의 경우는 예수가 없는 십자가만 사용한다.간혹 십자고상이 있는 개신교 예배당도 있긴 하다.

가톨릭에는 7성사, 즉 세례성사, 견진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 병자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라는 것이 존재한다. 반면 개신교세례성만찬 이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성사적 예식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성품성사는 가톨릭 사제로 임명하는 의식이며 고해성사는 신자가 자신의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는 의식이다. 성체성사는 가톨릭 미사의 핵심으로 예수가 자신의 몸과 피를 희생한 것을 본딴 의식이라 할 수 있는데 미사의 후반부에 성체를 신자들에게 나눠주지만 성체를 신자들이 함부로 다루는 것을 금하고 있다. 또한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하지 않은 신자, 신자가 아닌 자에게는 성체를 주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개신교의 예배에서는 성찬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며 특별히 행해야 하는 날짜가 정해지진 않았다. 그리고 만인제사장을 인정하는 이유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는 없다.

가톨릭

개신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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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권

66권

믿음과 선행

후술

후술

성모 마리아

동정녀이자 예수님의 어머니, 신자들의 어머니

예수의 육(肉)적인 어머니.[54]

성직자

신부(독신), 남성

없음[55]

수도자

수사/수녀(독신)

성공회에만 있음

십자성호

있음

성공회, 루터교에만 있음

묵주

있음

성공회, 루터교만 있음[56]

성상

있음

성공회, 루터교[57]에만 있음

십자고상

사용

성공회,루터교[58]를 제외하고는 십자가 틀만 사용하거나, 십자가 또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성사

7성사 모두 인정

세례, 성만찬[59]

교단/종파

단일[60]

다양하게 존재[61]



※ 목사가 혼인이 가능한 것에 대해 개신교에서 말하는 만인제사장설에 따르면, 목사는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하자면 성직자와 평신도의 영적인 구분을 부정한다. 즉,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 모든 신자는 사제라는 말로서, 각자 맡은 직무만이 다를 뿐이라는 교리다. 가톨릭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평신도 사도직'이 존재한다. 하지만 목사와는 다르다.

가톨릭교회에서만 성직자 독신이 의무이다. 정교회는 결혼한 사제도 성직자이며, 별거를 하는 조건으로 주교도 될 수 있다. 오리엔트 정교회와 동방교회(네스토리우스교)에서도 성직자 독신은 의무가 아니다. 구 가톨릭교회도 독신제를 폐지했으나, 가톨릭이 아니라는 비판은 일부 국가교회의 여성 사제 안수부터 듣기 시작했다.

혼인성사는 성례(개신교에서 성사를 일컫는 말)로 인정받지 못한다. 교회에서 결혼 안 한 사람은 혼인한 게 아니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 교회에서 결혼예배를 드린다고 다 성례가 아니라, 교회의 표지로 교회에서만 할 수 있는 행사라야 성례로 본다.

장로교 중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원칙적으로는 십자가를 교회 밖에서만 예배당의 표지로 쓰고, 교회당 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우상숭배로 본다. 다만 장로교 중에서도 에큐메니컬 계열 교단에서는 십자가를 쓴다. 물론 감리교나 그 영향을 받은 교단에서는 십자가 틀을 사용한다. 교파마다 다름.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물론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보다 높다거나 하느님 이전에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을 낳는 은총을 누린 여인이라는 뉘앙스다. 대다수 기독교 신앙에 의하면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또한 하느님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인성만을, 혹은 육체만을 낳은 것이라는 주장은 이단이 된다. 성자가 마리아에게서 인간의 육체를 취했다는 것은 맞으나, 그 결과로 마리아가 낳은 것은 단순한 인간이 아닌 인성과 신성이 겸비된 성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의 실체이므로, 인간만을 낳았다는 말은 정교회와 가톨릭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주장이다. 이런 교리가 정식화된 것은 초창기의 네스토리우스파 이단과 관련이 있다. 근데 가끔 칼케돈 신조를 인정한다면서 테오토코스에 회의적인 개신교 신자도 눈에 띄는데 흠좀무인 듯.[62]

※ 성경관에서도 개신교와 차이를 보인다. 외경/제2경전에 대해 개신교는 교리의 근거로 삼을 수 없으며 보수적인 교단에서는 평신도가 외경을 읽는 것을 권장하지 않으나, 가톨릭에서는 구약 나머지 부분과 동급의 정경으로 인정한다. 그것 이외에도 성경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가톨릭에서도 구약, 신약을 똑같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기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약 복음서 (특히 예수님 말씀) > 신약 서간서 > 구약 순으로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개신교, 특히 칼뱅주의 계통에서는 신약 뿐만 아니라 구약도 많이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가톨릭과 개신교 진보파는 성서비평학을 적극 받아들이지만, 개신교 보수파는 성서무오설을 고집하고 있다. 개신교는 성경을 신앙, 교리의 유일한 바탕(오직 성경)으로 보지만, 가톨릭은 성경은 전승의 일부가 문자로 기록된 것이라고 본다.

한편 주된 교리의 차이와는 별도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차이점으로 , 담배 등에 대한 허용이 있다. 개신교에서는 교파마다 교리가 다양해서 술담배 등에 대한 입장도 다양하지만 한국의 개신교에선 음주 및 흡연을 기본적으로 자제할 것을 권장한다. 음주의 경우 (엡 5:18)[63]을 근거로 한다. 서구권의 나라에선 식사문화에 자연스럽게 주류가 포함되지만, 국내에서의 음주는 기본적인 식사 외로 취급하기 때문이 그 이유인듯 하다. 흡연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후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성경 어디에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고전 3:16~17)[64]을 들어,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주술의식에 사용하던 행위를 할 수 있겠나 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목사 등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보수적인 신자들은 담배를 하는 경우 그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물론 최근 들어 개신교 신자 중에서도 음주 흡연자가 꽤 많고, 장로교의 창시자인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지독한 골초였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가톨릭에서는 , 담배에 비교적 관대해서 성직자들도 지나치지만 않으면 담배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 돈 까밀로 신부가 시가포도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9.1. 의화에 관하여[편집]

이 부분은 상당히 길고 난해한 주제이므로 따로 서술한다.

개신교와 갈라진 교리적 원인 중의 하나로 신앙과 선행의 관계에 대한 차이가 있다. 개신교이신칭의(칭의론)라고 해서 오직 은총과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칭함받을 수 있다고 하며 이를 '칭의'라고 한다. 반면 가톨릭은 은총과 믿음으로써 '의로워진다'고 주장하며 이를 '의화'라고 부른다. 단순히 칭함받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은총을 보존하려는 개인적인 노력인 뒤따르는 선행,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가톨릭의 4대교리 중 하나가 바로 '상선벌악'. 개신교에서의 선행의 의미는 '구원받은 자로서 행해야 하는 의무' 혹은 '구원받은 자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위'에 가깝다. 유교식 표현으로는 '극기복례'를 일부 말하는 셈.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개신교에서는 몸(행위)과 마음(믿음)을 분리된 것으로 여기는 것에 반해 가톨릭은 선행을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선한 행위를 믿음과 이분법적으로 딱딱 분리하지 않는 이유는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 주류 중 하나인 칼뱅파와는 달리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데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이 본인의 의지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자유의지로 은총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고 본인의 참된 믿음을 증명하는 것에는 계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는 등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인간의 공덕 그 자체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주의(행위구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우선 하느님이 내려주는 은총이야말로 구원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어떻게 보면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신학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개신교에서 칭의-성화-영화라고 해서 구원의 3단계를 이야기하는 것을 가지고 첫 걸음을 떼기위한 '칭의'를 강조하는 것을 가지고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해진다는 면벌부가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캐오(삭개오). 그는 회개한 이후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4배로 갚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즉,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므로 면죄부 따위를 구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통회하게 되는데, 통회란 스스로의 잘못을 아파하는 것이다. 이 통회를 단지 성당이나 교회에 나와서 "할렐루야~ 나의 죄를 사하소서~"라고 했으니 앞으로 반성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엉터리다. 즉, 통회를 면죄부로 사겠다는 말은 깨달음을 학위로 대체하겠다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 받는다는 기본 교리는 똑같고 사소한 표현과 관점의 차이인데, 개신교 일각에서는 가톨릭이 행위구원론을 주장한다며 끊임없이 왜곡된 음해와 비방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65]

1999년, 가톨릭과 루터교회가 "의화(칭의)는[66]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이며 이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것의 실현을 위해 믿음의 징표인 선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구원관에 합의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으며, 2006년 감리교가 이 공동선언에 동참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해서는 외형적으로나마 점차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화해와 일치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매우 지엽적인 사건.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루터교 전체와의 합의가 아니다. 루터교 세계 연맹과만 합의가 이루어 졌고 이에 속하지 않은 미주리 시노드 등은 당연히 서명 안했다. 외려 모든 감리교가 소속된 WMC가 합의했다는 점에서 감리교 전체와 합의가 이루어진 셈.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관련하여 말을 한 적이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루카 복음서 22:37~40, 공동번역성서)" 즉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게 둘 다 중요하다는 것.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니까.

결국 가톨릭이 '행위 구원론'을 민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서 구원은 오직 은총만으로 이루어지며, 인간의 응답이라는 관점에서는 오직 믿음만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개신교도 공유하는 가르침이다.

사실 의화는 오로지 은총만에 의하여 이루어지되 인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신앙만이 의화시키나 진정한 신앙에는 선행이 없지 않다. 의화는 유일회적(唯一回的) 사건이면서도 일생에 걸친 과정이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아무 것도 내세울 수 없으나 성서는 공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톨릭 대사전, 의화 항목 中 -


그러나 선행 역시도 강조하는 이유는, 야고보서에 '행함(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나와있듯이 진정한 신앙에는 선행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신앙에 있다는 그 선행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갈라티아서 5장 6절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라고 서술한다. 후술할 트렌토 공의회 문헌에서 보듯, "선행은 얻은 의화의 열매와 표징에 지나지 않으며 의화의 증대 요인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서술이다. 또한 역시 트렌토 공의회 문헌에서 보듯, "예수 그리스도 바로 당신께서" "의화한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당신의 능력을 주입해주시"며 "그분의 능력은 그들의 선행을 이끌고 동반하며 또한 뒤따르는데, 그 능력 없이 선행만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거나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오직 은총으로 의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은총'이 의화시키는 것과 '선행이 의화의 증대 요인'이라는 것이 모두 가톨릭의 가르침인 것이다.

어찌되었든 가톨릭 교회에서는 개인이 착한 일만을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성사를 통해 '오직 은총'과 '오직 믿음'으로 의화된다고 가르치며,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인 선행도 중요시하는 것이다.[67]

끝으로, 트렌토 공의회(=트리엔트 공의회) 6차 회기에서 의화에 관하여 선언한 것들 중 일부를 서술하겠다. 이는 해당 공의회가 개신교 신학자들을 의식하였고, 이들에게 가톨릭의 교의를 분명히 하는 것을 목적 중 하나로 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와 통교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의인이 될 수 없긴 하지만, 죄인의 의화는 지극히 거룩한 그 수난 공로로 의화하는 자들의 마음에[68] 성령께서 작용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이 확산되고 그들 안에 자리 잡을 때 실현된다. 그 결과로, 의화과정에서 인간은 죄의 용서와 더불어 자신이 가지처럼 붙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용서에 천부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모든 선물을 받는다. 즉, 믿음, 희망, 사랑이 그것이다. 희망과 사랑이 없는 믿음으로는 인간은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그분 신비체의 살아 있는 구성원도 될 수 없다. 이런 연유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무용이라고[69] 말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를 받고 안 받고는 의미가 없으며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하다"라고[70]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제6차 회기 제7장 죄인의 의화가 무엇이며, 그 원인들은 무엇인가 中

인간은 믿음을 통해서[71] 그리고 무상으로[72] 의화한다고 사도(바오로)가 말하였는데, 이 말은 가톨릭교회가 옹호하며 표명해온 항구하고 일치된 견해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우리는 믿음으로 의화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요, 온갖 의화의 기본이며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음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기 때문이고",[73]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과 친교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74] 또한 우리는 무상으로 의화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화에 앞서 그 어떤 것도, 믿음이나 행업도 이 의화 은총을 얻는 전제 조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화가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 공로로 얻어지는게 아니며, (앞서 언급한 사도의 말대로) 만일 무슨 공로가 있어서 의화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더는 은총이 아니다."[75]


제6차 회기 제8장 믿음을 통하여 무상으로 주어지는 죄인의 의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 없이는 죄가 용서되지 않고 용서된 적도 없다는 믿음은 필요한 것이다.


제6차 회기 제9장 이단자들의 헛된 믿음을 거슬러 中


이제, 받은 은총을 지속적으로 간직했든, 잃었던 은총을 다시 회복했든, 이처럼 의화한 자들에게 사도(바오로)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제시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76]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보여준 선행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77] 그리고 "여러분은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신념에는 큰 상이 붙어 있습니다."[78] 그러므로 끝까지 선하게 행동하는 사람들과[79]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으로 하느님의 자녀에게 자비롭게 약속된 은총인, 또한 하느님 바로 당신께서 하신 약속에 따라 그들의 선행과 공로에 신실하게 부여해야 할 상급인 영원한 생명이 주어져야 한다. 실로 이것은 사도(바오로)가 자신의 투쟁과 달음질 이후에 자신에게 예정되어 있고, 정의의 심판관에 의해 자신에게 수여될 것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였던 바로 그 정의의 월계관을 의미한다[80]. 예수 그리스도 바로 당신께서 지체들의 머리로서, 그리고 가지들을 위한 포도나무로서[81] 의화한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당신의 능력을 주입해주신다. 그분의 능력은 그들의 선행을 이끌고 동반하며 또한 뒤따르는데, 그 능력 없이 선행만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거나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화한 자들이 삶의 처지에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한 일들을[82] 통하여, 하느님의 법을 충만하게 만족시키고, 때가 오면 (그들의 은총 지위의 상태에서 죽는다는 조건으로[83])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격을 갖추는 데 그들에게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한다. 실로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84]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로움은 마치 우리에게서 나온 것처럼 세워지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의로움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도 않는다.[85] 우리 안에 머물면서 우리를 의화하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라고 하는 그 의로움은 바로 하느님의 의로움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공로에 힘입어 그 의로움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록 성경에서(보잘것없는 당신 제자들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상급을 못 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고 또한 사도가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라고[86] 증언하실 정도로[87]) 인간의 선행에 비중을 상당히 많이 부여하고 있다고 해서, 당신의 은총이 인간들의 공로가 되기를 바라실 정도로 모든 인간에게 그토록 좋으신 분이신[88] 주님을 믿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신뢰하거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을 그 어느 그리스도인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89] 그리고 "우리는 실수하는 일이 많기"[90] 때문에, 우리 각자는 자비와 선만큼 엄격함과 심판도 눈앞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조금도 없을지라도 자기 스스로 자신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91] 인간들의 전 인생은 인간의 판단에 따라 측정되고 심판되어서는 안 되고, 하느님의 판단에 따라서 행해져야 한다. "그분은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실 것이며 마음속의 생각들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느님으로부터 각자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92] 하느님은 성경에 쓰인 대로, "각자에게 행실대로 갚아주실"[93] 분이시다.
이러한 의화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에 이어서(이 가르침을 각자가 성실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의화할 수 없을 것이다.)[94] 본 거룩한 공의화는 다음과 같은 조항들을 첨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모두가 마음에 간직하고 따라야 할 사항들뿐만 아니라, 피하고 멀리해야 할 사항들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의화에 관한 법규

1. 만일 누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로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 없이 인간 본성의 힘으로 행하거나 법의 가르침에 힘입어 행한 자신의 선행만으로 하느님 앞에서 의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2. 만일 누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이 단지 더욱 쉽게 의롭게 살게 하고, 더욱 쉽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뿐이기 때문에, 비록 힘겹고 어려울지라도, 마치 은총 없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의로운 삶과 영생을 구현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3. 만일 누가 의화 은총을 얻는 데 성령으로부터 내려오는 영감(靈感) 없이, 그리고 그분의 도움 없이 필요한 만큼의 믿음, 희망, 사랑 그리고 회개를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중략)
10. 만일 누가 우리에게 공로가 되어주신 그리스도의 의로움 없이 인간이 의화한다고 주장하거나, 바로 그 의로움으로 인해서는 허울뿐인 의인이 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중략)
24. 만일 누가 인간이 받은 의로움이 하느님 대전에서 선행을 통해서는 보존되거나 증대되지도 않고, 선행은 얻은 의화의 열매와 표징에 지나지 않으며 의화의 증대 요인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제6차 회기 제16장 의화의 열매, 즉 선행의 보상과 그 보상의 성격 中


결국 의화에 관한 핵심 키워드를 3가지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1. 오직 은총
2. 오직 믿음
3.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

10. 오해[편집]

가톨릭은 긴 역사만큼 외부의 곡해 내지는 오해도 많다.

성당에 설치된 성모상이나 성인에 대한 전구 교리를 바탕으로, 성모 마리아[95]를 믿는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신교의 프로파간다도 한몫하는데, 심한 경우에는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가톨릭에서는 삼위일체성모 마리아를 끼워넣는다", "비성경적이다"는 망언을 펼친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가톨릭에서는 죽은 이의 영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교리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이 바로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이기 때문에, 또한 하느님인 예수가 성모님의 부탁이라면 틀림없이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최고위 성인으로서 공경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을 경배하는 성도는 산 이와 죽은 이를 구분짓지 않으며, 바로 이 성도의 가장 선두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이가 성모 마리아인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 등 일부 반가톨릭적 이해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앞을 가로막고 자신이 성도들의 경배를 대신 받는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비방하고 있다.

성당 입구나 마당에 성모상이 서 있는 것 역시 '마리아교'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공격을 불러일으키는데, 본래 성당 마당에는 그 성당이 세워진 곳이 순교자의 무덤일 경우에 해당하는 순교성인의 상을, 혹은 그 성당의 주보성인의 상을 세우는 것이 관례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성당이 성당의 주보성인 대신 한국 천주교의 주보성인인 성모 마리아상을 스스로 택할 뿐이다. 천주교의 교리에서 성모 마리아는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믿음의 인간으로서 존경받는 자이고, 예수삼위일체론 교리에 따라서 하느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둘의 대우는 엄연히 다르다.

성경의 어떤 훌륭한 인물이라도 특별히 언급하여 칭찬하는 경우가 없는 개신교 입장에선 오해가 있을만도 한데, 성모송 또한 여타 기도문과 같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천사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인사하였다. (28절)

(중략)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41-42절)


루카 복음서 1장 중 (공동번역성서)


성모송에는 마지막의 저희를 위해 빌어달라는 부분이 있는데.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전구(轉求)를 구하는 것으로 [96] 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비는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 기도를 전달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97][98]

즉, 가톨릭을 성모 마리아를 믿는 종교로 착각하는 건, 마치 연예인 매니저한테 말을 걸어 연예인에게 선물을 전달해달라며 건네주는 것을 보고, 연예인의 팬이 아니라 매니저의 팬으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모 마리아를 신성시하는 신자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가톨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르다. 지나치고 어긋난 성모신심은 교황청에서도 엄연히 금지하고 있고, 신자들 사이에서도 외면받는 이단적 교리다. 애초에, 성모마리아를 숭배하면 세례명으로 마리아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나 야훼를 세례명으로 쓰는 가톨릭 신자를 봤는가?

이런 연유로 가톨릭 신자들 앞에서 이 말을 했다가는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늘해질 수 있다. 갑분싸...

하지만... 성모 마리아의 위상이 다른 성인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다르고, 성모승천대축일이 지켜지고 있는 부분,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명동성당에서 한반도와 한국 가톨릭교회가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 라는 점 등등...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이 가톨릭을 바라보았을 때 성모 마리아의 면면이 먼저 보인다는것은, 괜한 오해의 여지를 주는 안타까운 부분이다.

어차피 한국의 개신교에서 성모 마리아의 위상은 매우 낮거나 없다시피한 경우가 많은 데다[99], '그게 숭배지 어째서 공경이냐'고 따지는 '들을 귀가 없는' 개신교 신자도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반박해봤자 소용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튼 위에서 설명한 가톨릭에 대한 오해나 비방은 주로 反에큐메니즘 정서가 강한 보수파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것으로[100],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는 개신교 교단들[101]은 대체로 천주교를 다른 전통의 교회 정도로 보지, 이단 내지는 기독교의 탈을 쓴 이교(異敎)로 비방하지는 않는 편이다. 사실 에큐메니컬 교단들도 성유물, 성인 공경, 성모 마리아, 고해성사에 관한 가톨릭 교리에 대해서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식으로 신학적으로 비판하는 등 긍정적으로 보진 않긴 하다. 그저 비방을 하지 않는다는 것. 단, 예장통합, 대한감리회와 같은 보수적 에큐메니컬 계열에서도 가톨릭을 유대교처럼 '믿는 만 같은 타 종교'로 보는 시선이 드물지 않다.

아래에 쓰인 것은 주로 가톨릭에 대한 오해(의 탈을 쓴 곡해)를 보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위 항목에서 언급되었던 것들도 많지만, 이런 오해(라는 가면을 쓴 왜곡)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했으며, 작성에 있어서 현직 교리교사의 간략한 의견과 함께 천주교 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의 의견을 참고했다.

  • 가톨릭은 신앙과 성경 가르침에서 이탈된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신앙과 성경, 그리고 성전에 충실한 종교이다. 이에 대해 교회의 역사성과 기독교 신앙의 전승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며, 이단에 대한 현대적 시점과 핵심에 대한 본질적 일치의 관점이 중요하다.

  • 가톨릭 신자들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선행을 통한 인간적인 화해와 협력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로 보기 때문에 선행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행위구원론이나 펠라기우스주의가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가르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에 도달할 수 있고 선행은 하느님의 은총을 보존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으로 여긴다.

  •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지 않는다. 본래 기독교의 근본이였던 만큼 성부(하느님)가 믿음의 대상이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만이 흠숭의 대상이다. 성모 마리아성인들에 대한 공경의 대상 중에서 가장 높은 공경, 즉 상경(上敬)의 대상이다. 즉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들 중에서 가장 으뜸된 자로 보고 있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천주는 흠숭, 성모는 상경, 성인은 공경이라고 할 수 있다.[103]

    • 가톨릭 교회에서는 천상의 모후(Regina Caeli)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모후면 임금의 어머니이고,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아들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측천무후나, 예전 조선시대에 어린 왕을 대신해 수렴청정하는 대왕대비나 대비[104]를 연상시키고는 하늘의 여왕이니 하면서 우상숭배 운운하는데 완벽한 오해임이 분명하다. 성모 마리아가 성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몰아 내고 ‘내가 구원의 길이다’라고 한 적 없고,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 하느님을 지배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 없음을 아무리 얘기해 주어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까지 가톨릭 교회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 묵주 기도는 성모 마리아의 발 아래에 장미를 바치는 것에서 유래한다. 어디까지나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에게 바치는 기도로서,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기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어머니가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예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기도에 깊은 의미가 실린다. 묵주 기도를 바치는 신자는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의 생애 전반을 묵상하게 되어있다. 묵주 기도를 포함해 성모님에게 드리는 모든 기도는 정확히 말하면 성모님에게 '함께 하느님께 청하여 주시기를', 혹은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시기를' 청하게 되어있다.

  • 특히 한국 천주교에서 묵주는 목에 걸면 안된다는 인식이 있다. 사실 묵주목걸이 용도가 아니기에 웬만큼 머리가 작지 않고서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평신도들이 좀 큰 묵주를 목에 걸고다니는 경우도 꽤 있으며 원칙은 목에 거는 걸 지양하지만 사실 어떻게 다니든 상관없고 묵주를 어떻게 하고 다니든 본인의 자유이며 케바케이다. (물론, 액세서리 용도로 걸고 다니거나, 성물 자체를 우습게 여기거나 종교적 이유가 아닌 목적으로 착용하고 다닌다면 이는 큰 잘못이다!) 묵주를 목에 착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지 않아도, 목에 걸 때는 옷 안으로 걸도록 권유하고 있다.

  • 천주교 마산교구에서 임진왜란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짓고 주둔하던 웅천왜성에서 자신들의 신앙활동을 위해 예수회 소속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를 불러 미사를 드렸던 것을 근거로 "세스페데스 신부가 하느님의 손길을 전했다"라며 성역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웅천왜성 축조에서의 가혹함을 지적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에는 '경상도 지역 왜구들의 강간이 극심해, 조선의 순수한 혈통이 끊겼다'고 남기고 있으며, 웅천왜성을 축조하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들은 굶주림 때문에 인육을 먹었다는 내용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웅천왜성에 가톨릭 신자들이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를 기억하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들, 그것 자체는 웅천왜성 축조의 가혹함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한 비유를 하자면, 남한산성 성지가 '신라 문무왕이나 조선 인조의 국토 방어 의지'나 '축조에서의 노동 환경' 때문이 아니라, '[[순교[[가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성지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연한 사실이지만, 임진왜란은 종교전쟁이라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예수회 선교사들은 일반적으로 히데요시가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105] 이러한 인식은 Alessandro Valignano가 1592년에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벌써 조선국을 정복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전쟁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히데요시)의 정복욕에 의한 것입니다.


    Alessandro Valignano, Adiciones(1592) del Sumario de Japon, Adicion 4, IV, 487.

    또한 당사자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조차도 왜군의 침략에 비판적이였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전쟁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모함에 의해 저질러졌다


    세스페데스 신부의 보고서 中 #

    더군다나 박철 교수(전 한국외대 총장)는 "세스페데스 신부를 왜군 종군신부로 모는 건 역사 왜곡"이라며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박 전 총장은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온 것은 극비리에 이뤄졌으며, 그 배경에는 1566년부터 가스파르 비렐라 신부가 ‘꼬라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한 숙제를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1587년 천주교 추방령을 발표한 터라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은 극비리에 이뤄졌고, 도착한 후에도 1년 동안 웅천 왜성의 은밀한 곳에 칩거하면서 복음 전파 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1년 만에 체류 사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귀에 들어가자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을 도왔던 일본의 지방 제후들이 신부를 황급히 일본 땅으로 돌려보냈다.
    박 전 총장은 “체류 당시 영내에 머물면서 왜군에 잡혀온 조선인 포로들만 접촉했으며, 일본군 천주교 병사들을 대상으로 미사세례성사를 집전한 것을 두고 종군신부라고 규정하는 건 역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으로 돌아가는 도중 대마도에서 귀족의 자손으로 보이는 어린아이 포로를 데려가 비센테(Vicent)라고 세례를 주고 보살핀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며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의 참화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일본에 있던 예수회 부관구장 신부에게 알림으로써 유럽에 전쟁의 진상과 조선 왕국의 존재를 최초로 알린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이며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총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종군신부’ 논란의 발단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1930년 일본 역사학자 야마구치(山口正之)의 ‘세스페데스의 서간문 연구’ 논문에서 왜군의 ‘종군신부’라고 단정지은 것이 시초라고 설명했다.
    그는 “1930년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당시 야마구치에 의해 왜곡된 주장이 아직도 국내 일부 교회사 연구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기사

    즉 애초에 히데요시와 정치적 이해 관계가 일치하지 않고[106] 명분을 비판한게 예수회 선교사들이고, 세스페데스가 '히데요시 몰래' 조선에서 미사와 세례를 집전하고 조선인 포로들과 접촉한 것을 가지고 임진왜란과 엮어서 비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임진왜란 당시의 예수회가 조선 정부에게 물자라도 지원했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조선인에게 해를 끼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1598년 9월 4일에 나가사키에서는, 일본 교구장 세르게이라 주교가 신부 12명을 소집하여 '조선인 노예 매매에 관한 대책회의'를 열고는 그 잔혹성을 고발한 기록도 고스란히 문서화되어있는 등 예수회 선교사들과 조선인들이 원수졌다고 볼 근거는 없다. 훗날 마산교구장이 된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는[107] 교구의 대화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이 문제에 비판적인 신자들과 더 소통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한국 가톨릭이 세스페데스를 통해 임진왜란을 정당화한다거나 미화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 외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심층적으로 알고 싶다면 밑에 첨부해 둔 본문,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가 작성한 개신교가 가톨릭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오해>를 참고하자.

11. 신학[편집]

신학/가톨릭, 교회론/가톨릭, 창조론/가톨릭 문서 참조.

좀 더 신학적으로 가톨릭에 대해 알고 싶다면 호교론(護敎論)을 펼치는 책으로는 볼티모어의 대주교였던 제임스 기본스 추기경교부들의 신앙이나, 개신교 목사에서 가톨릭 신학자로 전향한 스코트 한의 저작들[108]이 추천된다. 좀 더 부드럽고 생활 신앙적 가르침을 원하면 스코트 한의 저작들을, 강한 호교적/교리적 가르침을 원하면 <교부들의 신앙>을 추천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깊은 교리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두 스타일 모두 깊이 음미해 보는 것이 더욱 좋다.

가톨릭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교부(敎父)[109]들의 탄탄한 철학적 토대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고전 저작 중에서는 <고백록> 등 철학자로도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저작들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준주성범>[110]이 제일 많이 권해진다. 특히 <준주성범>은 개신교에서도 신앙 교재로 쓸 만큼 깊이 있는 고전 걸작.

단 평신도 사도직, 교리교육 봉사직 이상에게 추천될 정도로 찐한 책들이 많으니 신앙생활이 익숙해진 다음 신부님/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가며 차근차근 읽는 것을 권한다. 물론 고전 중에서도 <신심 생활 입문>이나 <성녀 소화(小花) 데레사 자서전>처럼 새내기 신자에게도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일드한 책들도 있다.

12. 문화[편집]

흔히 개신교를 믿는 것을 '교회 다닌다', 가톨릭을 믿는 것을 '성당 다닌다'고 해서 가톨릭에서는 교회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아니다. 가톨릭에서 '교회'라는 용어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나오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동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교회 건물이 아닌 사제와 신자들의 모임을 일컫기 때문이고, 교회가 모이는 장소가 '성당'이기 때문에 '성당에 다닌다'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개신교의 경우, 일제강점기만 해도 교회라는 단어를 가톨릭와 같은 용법으로 사용하고, '교회당(敎會堂), 예배당' 등의 단어를 사용했으나, 이후 용법이 변화해서 현재와 같이 되었다. 물론 개신교에서도 교리적으로는 교회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모임으로 정의한다. 일단 한국에서 성당이라고 부르는 곳에 가서 간판을 보면 '교회'라는 명칭을 쓰는 곳이 더 많다.[111][112]오늘날에 가톨릭 교회를 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개신교의 교회와 혼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구분하자면 교회는 개념, 성당은 그 교회가 모임 장소로 이용하는 건축물을 말한다.

해외에서의 가톨릭 교회도 성당(cathedral)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해외에서 사용하는 cathedral이라는 용어가 교회와 성당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 항목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cathedral은 정확히 주교좌 성당, 즉 대성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구 내의 일반 성당들은 그대로 church로 표기한다. 개신교회[113] 중에서도 과거 대성당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사용하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교회들에 cathedral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서양의 가톨릭 교회의 경우 제일 붐비는 일요일 오전 10시 교중미사를 무조건 대성당에서만 거행되는데, 그러다보니 외국인인 한국인들은 대성당의 존재만 알고 있어 서양도 한국처럼 개신교회와 천주교회를 구분하는 걸로 인지하는 듯.

또한 천주교 성당이면 어디를 가든지 동일성경구절과 동일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곳이다. 성당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각 성당의 외형과 규모(크기), 신부님의 강론 스타일, 실내장식의 분위기 등 사소한 것들 뿐이다. 목사장로들의 성향에 따라 분위기가 매우 다른 개신교 교회와는 차이가 있다. 개신교의 경우 이사를 가더라도 이전까지 다니던 교회를 계속 출석하는 경우도 많지만 천주교의 경우 집 근처의 성당에 다니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물론 개신교의 경우 교회들마다 따로 헌금을 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헌금 수입의 감소 등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교회 자체적으로도 신자의 이탈을 꺼리기도 한다.

가톨릭은 신자들이 교리와 그 권장사항을 따르길 권장하지만, 신자들이 그 권장사항을 지키지 않는다고 신앙을 박탈하는 경우는 현대에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가톨릭에서 '콘돔 사용을 금지하자'고 주장하더라도 최소한 한국 가톨릭의 신자들이 콘돔을 사용하든 말든 신앙에는 전혀 침해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왜 콘돔 사용을 금하는지 그 뜻에 대해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며, 그 뜻에 따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해성사를 할 순 있어도, 현실에서 그런 사유로 가톨릭에서 따로 처벌하는 일은 찾기 힘들며 성당에서 추방되는 경우도 없다. 파문은 옛날에는 분명 신앙 외적인 부분에서도 한 사람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처분이었지만, 현대의 파문은 신자가 뉘우치고 돌아올 때까지 일시적으로 교회를 통한 은총을 유보하는 것에 가까우며, 파문 결정도 대단히 신중히 하며 나중에 복권될 기회도 충분히 준다.[114]

가톨릭에서는 포교행위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물론 가톨릭도 전교(포교)를 하기는 하지만, 지정된 수도회수도자(수사/수녀)와 여기서 오래 훈련 받은[115] 소수의 평신도를 중심으로 해당 교구의 철저한 통제 하에 시행한다. 교육만 성실히 받으면 그 외 자격 조건은 없다. 하지만 대부/대모가 될 수 있는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을 권하는 편이다(이끌어 오는 사람의 대부/대모가 되는 일이 많으니까). 18세 이하의 청소년도 포교단 할동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긴 하나, 한국의 교육 현실 때문에 실제적으로 활동하는 곳은 보기 힘들다.

포교와 전도는 분명히 칭송받을 덕목이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그것이 곧바로 구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도는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참된 복음은 말과 설득보다 모범적인 행동과 그리스도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신자들의 삶에서 드러내는 실천이 곧 구원의 길이고 은총이고 선행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한국 사회에서 80년대 중반 이후 가톨릭 교세가 크게 확장한 데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2번에 걸친 방한과 시성식 영향이 컸지만, 사회 약자를 돕고 정의로운 일에 나서며,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간접적인 포교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식의 막무가내식 협박성 포교와 달리 대중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도 있다.

  • 만약 십자가 짊어지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친다거나 길거리에서 휴대용 물티슈 나누어 주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하는 행위로 전교를 정의한다면 가톨릭 교회는 전교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전교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복음서 28:20)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서 전교를 정의한 성경 구절을 들자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복음서 13:35)가 그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다른 종교의 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령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 목사의 자녀와 성당에서 혼인성사로 올리면서 개신교식의 혼인예절을 하게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적 존중 차원에서 이들의 예식을 비난하거나 탄압하지는 않으며, 전통 예식이라도 종교적인 의미가 퇴색된 경우에는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지난 시대에 저질렀던 탄압과 무자비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결과. 또한 그러한 문화를 가톨릭 속에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 천주교에는 미사 중에 국악곡을 부르는 경우도 있고 한복 입은 아기 예수성모 마리아의 상도 있으며, 아프리카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글빙글 돌고 춤추면서 야외 미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철학은 물론이고 불교, 이슬람 등 타 종교에 대해서도 필히 공부하게 되어 있다. 예로 외국에 있는 한인 성당과 한인 절은 각각 기념일에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예수회는 전통적으로 세속 학문과 철학 연구에 있어 전문적인 학자 사제들을 배출해왔다. 풍부하고 객관적인 내용으로 전세계 철학도들의 필독서인 철학사 시리즈의 저자가 영국예수회 신부 프레데릭 코플스톤(Frederick Copleston)일 정도. 그만큼 문화와 학문에 대한 개방성이 개신교에 비해 매우 크다고 평가된다. 광주광역시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는 실제로 철학이라는 과목 명으로 학교의 재단인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수사님이 강의하는데, 개신교는 물론이거니와 이슬람, 불교, 유교에 대해서도 균형잡힌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생물 과목을 강의하는 교사가 신부님이라는 것. 당연히 진화론을 부정하거나 그런 거 없다. 이 학교는 지나다니다 보면 전대 교장 신부님이 수레를 끌고 다니며 제초작업이나 나무를 다듬곤 하는 곳이기도 하다.

제사 역시 조건부로 허용한다. 교황 비오 12세가 "유교 문화권의 조상 제사는 민속적 관습일 뿐 가톨릭의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단, 신위나 신주, 제방은 금하며 사진을 놓는 것만 허용된다. 사진이 없어 제방을 놓아야 하는 경우는 신위(神位)라는 글자를 빼고 이름만 써야 한다. 그래서 사실 제사를 허용했다기보다는 토착화의 일환으로 조상 추도 의식 내지는 조상의 영혼을 위한 기도식을 제정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는 유교에서 조상 혼백의 개념이 일반적인 신앙의 대상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유교에서 조상의 혼백은 숭배의 대상도 아니고 가문의 길흉화복과 전혀 무관하며, 단지 자식으로서 예를 갖추는 것 뿐이다. 공자가 "괴력난신에 대해서 논하지 말라"고 못 박은 것도 이런 취지이다. 조상의 혼백이 길흉화복과 연관된다는 믿음은 도교와 불교, 민간 신앙이 뒤섞이면서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유교에서도 조상이 돌아가시더라도 예를 다해 잘 모시면 선한 행동이 보답받는다는 정도의 믿음은 있지만 그 정도는 타협 가능한 수준이고, 기복만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유교에서도 대차게 비판받는다. 오로지 보상 정도로만. 일본에서는 신사 참배도 동일한 맥락으로 허용한다고 한다.

사실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은 서양에서도 있다. 마을 어귀의 가족묘지에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정도의 추모 의식이 그것이다. 다만 묘지가 아니고 집에서, 묘비가 아니고 신위 앞에서, 묵념이 아니고 절을 하고, 저녁 음식이 아닌 제사상의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추모를 넘어선 우상숭배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791년 순교복자 윤지충 바오로의 공초에서 이러한 개념이 상충하면서도 대립하는 요상한 컬처 쇼크를 볼 수 있다.

문초관 : 네 죄목은 신주를 불태운 것. 죽을 죄를 지었지?
윤지충 : 천주학 역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나무 쪼가리가 내 부모라고 가르쳤습니까?
문초관 : 여기가 서양이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여기는 조선이다.
윤지충 : 조선에서도 5대째 되면 신주를 불태웁니다.
문초관 : …4대까지가 성현이 정한 육신의 도리이다.
윤지충 : 그거 누가 정한 것입니까?[116]
문초관 : ……매우 쳐라!


그래서 사실 쉽게 합의가 되는 문제일 수도 있는데 공연히 아시아에서, 특히 한국에서 상당한 수의 순교자가 발생한 것도 영향이 있다. 지금의 한국 천주교에서는 이 역시 교회 공동체의 일로 승화시켰고, 심지어 설이나 추석 때 성당에서 합동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특히 설날에는 합동 제사가 끝난 뒤 주임신부가 세뱃돈을 나눠 주기도. 본래 주임신부 개인 사비로 나눠주는 것이 원칙이라 한다.

이렇듯 현대의 천주교는 지역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관용적이고 현지화도 상당한데, 이는 천주교의 지향점이 '어느 국가 어느 민족이라도 믿을 수 있는 보편된(catholic) 교회'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논란이 되는 작품인 다빈치 코드에 대해서도, 그저 픽션적인 작품이라는 단순한 결론만 내려두고 신경 쓰지 않는다. 금서라고 칭하거나 반박하는 일도 없다. 2009년에 교황청에서 다윈진화론에 대하여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미 1950년경에 교황 비오 12세가 "진화론은 인간의 발전에 유용한 과학적 접근"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발언을 상기하면서, 이에 대해 창조론은 그에 발맞춰 다른 방향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교황청 부속기관인 로마 산타 크로체 대학의 신부이자 교수인 주세페 탄젤라 니티도 "4세기에 활동한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에서도 진화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며 교황청의 견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화는 가설 이상의 사실"이라고 밝히며 "진화론이 가톨릭의 교의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언급만 없다 뿐이지, 사실상 교황청진화론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영혼은 하느님이 창조했다"는 주장만큼은 굽히지 않고 있는데, 이건 가톨릭 한정 혹은 기독교 전반의 근본을 뒤흔들 문제이기 때문이다.[117]

가톨릭에는 수도회라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특정한 구역에서 특정한 목표만을 추구하는 사제/수도자들의 모임을 일컫는다. 메이저 수도회예수회, 아우구스티노회, 프란치스코회, 베네딕토회, 도미니코회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자 수도회가 약 30여 곳, 여자 수도회가 약 130여 곳이 있다. 생각보다 매우 많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신부수녀는 교구 소속 신부이거나 교구에 파견된 수녀이며, 수도회 소속 신부/수녀는 대외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회이거나 특정한 목적의 외출이 아니면 수도회 밖으로 나오는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보기가 힘들다.

'봉쇄수도원'이라고 하여 평생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괴롭히려는 것이 아닌, 그만큼 철저한 구도(求道)와 봉사를 한다는 뜻이므로 오해는 하지 않도록 하자. 수도회를 다룬 작품 중에서는 《위대한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매우 추천할 만하다.

신자들과 신부들이 가지는 관계도, 개신교에서 신자들과 목사들이 가지는 관계와 다소 차이가 있다. 교리적으로 파고들면 개신교는 '교회의 권위란 적법한가?'에 대한 의문에서 분리된 종파이기에 '교회와 신자'라는 관계에 있어서는 가톨릭보다 신앙을 다소 개인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부(목사)와 신자의 관계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이 나타나는데, 오히려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이 관계를 덜 중시한다. 교구 사제들은 몇 년마다 교구에서 다른 본당으로 뺑뺑이 돌리는 신세인 반면, 목사들은 자의로 이적하거나 숙청 당하지 않는 이상 해당 지역 신자들과 수십년씩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118] 또한 신자들이 교육을 받을 때도 가톨릭은 전세계가 동일한 교리를 공유하므로, 사제들이 가르치는 내용은 그 스타일에 차이점은 있을지언정 동일하다. 반면 개신교는 같은 교단 내에서도 목사들 개개인의 해석이 차이가 날 수 있고, 정말 심각하게 막 나가지 않는 이상 뭐라고 지적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서적 등을 통해서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가톨릭 신자들은 일단 '가톨릭' 타이틀[119]만 제대로 붙어있다면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읽는 경향이 있는 반면, 개신교 신자들은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르지는 않는지, 혹시 문제 있는 목사의 서적은 아닌지 등등을 짚어가며 읽는 편이다. 때문에 가톨릭 신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본당 사제 이외에 정보를 취할 경로가 많으며, 본당 사제와의 관계가 개신교 신자들이 목사와 가지는 관계와 차이가 있다.

비유하자면, 가톨릭의 신부는 초 거대 프랜차이즈에서 근무하는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직원'에 가깝고, 개신교의 목사는 어떤 특정한 협회에 소속된 '회원'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교단에서의 대우나 신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당연히 차이가 나는 것. 때문에 가톨릭 내부에서도 신부들과 신자들의 관계가 (개신교에 비해) 너무 냉랭한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120]

가톨릭의 신부를 프랜차이즈의 가맹점 점주로, 개신교 목사를 자영업자로 비유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비유든 본질을 파악하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지금도 유럽 가톨릭 교회에는 우리나라 개신교처럼 한 번 소임지가 정해지면 평생 그곳에서 사목하고 있는데, 이것과 우리나라처럼 일정기간 사목 후 정기적으로 이동하는 경우 일장일단이 있고,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사제와 신자들 사이의 관계에는 일정한 간격이 필요한데, 이는 과거 성직자와 평신도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인 사고가 아니라 사제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맺어진 관계가 되어야지, 예수 그리스도는 배제된 채 사제와 신자 간의 인간적인 관계가 우선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 또한 사제가 소수의 특정 신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되면 공동체의 유지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된 것처럼 우리나라 사제들은 붙박이가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이동하기 때문에 사제와 신자들의 관계가 개신교 예배당과 같을 수 없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개신교 예배당 분위기에 익숙한 시각에서 보면 사제와 신자들의 관계가 냉랭하다는 오판을 할 수도 있다. 또한 이는 서로 다름의 문제이지, 비교의 문제는 아니다.

12.1. 한국 가톨릭의 문화[편집]

13. 역사[편집]

오랜 역사만큼이나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종교이다. 십자군 전쟁 등 전쟁에 관여한 적도 많았고, 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대희년(大喜年)첫 성사에서 나열한 가톨릭이 저질렀고 반성하는 만행 목록에 들어가 있다. 이 외에도 마녀사냥 등 굵직한 일들을 반성하고 사과하였으며, 이에 정교회권과 이슬람권이 크게 반색했다고 한다.

카노사의 굴욕이 흔히 교권이 왕권을 압도한 사건이라고 알려졌지만 후에 교권과 왕권은 아비뇽 유수에 의해 역전된다. 카노사의 굴욕 사건의 당사자인 하인리히는 나중에 '힘만 있으면 대립교황을 내세우고 정통교황을 발라버려라' 하는 오래 써먹힌 전법을 제대로 구사하였다. 이는 도리어 교황의 정치적 생명력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십자군 전쟁 중반부까지는 교권이 강력해졌다가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면서 교권이 끊임없이 추락해서 교황아비뇽 유수를 당한 역사도 있다. 마치 중세교황서유럽을 지배했던 시기인 것처럼 묘사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는 중세 내내 교황과 황제가 치열하게 기싸움을 벌였다. 그 사이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순전히 이익에 따라 교황과 황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거나 아예 베네치아 공화국처럼 양쪽 모두에게 확실히 선을 그어버렸다.

과거에는 정교회와 함께 초대교회를 이루었으나 서로마의 서방교회에서는 니케아 신경에 원본 그리스어 판에는 없는 성령성부성자 양측으로부터 나온다는 교리를 6세기 말경 2차 중흥기를 누리는 아리우스파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 삽입했다. 동로마의 동방교회에서는 원문 그대로 성령은 오직 성부로부터 나온다는 교리를 유지했고, 이로 인한 갈등이 빚어졌다.

그러던 726년 동방 황제 레온 3세가 성상 파괴령을 내려 반감이 증대된 것에 성직자 결혼 문제, 정치적 문제가 뽕짝되고 내내 불화를 겪다가, 1054년 로마에서 온 추기경 사절단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미카일 케룰라리오스가 서로를 파문한 것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되었다(1차 교회분열). 이후 동방교회는 정교회의 이름으로, 서방교회는 가톨릭의 이름으로 역사가 갈라져버린다.

흔히 정교회가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종파라거나, 그 반대의 형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엄밀히 말해서 가톨릭과 정교회의 공동역사이고, 두 교회 모두는 초대교회의 적법한 직계후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사실 이거 때문에 두 종파의 신자들 모두 부심이 장난이 아니다. 이후 십자군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버린 사건 때문에 감정은 더더욱 극도로 나빠졌고, 두 교회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동서 교회의 분열은 분열이지 특정 교파가 분리독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훗날 벌어지는 소위 종교개혁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분열 이전의 초대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공동역사이지, 둘 중 한쪽만의 역사는 아니다. 또한 '정교회는 가톨릭에서 떨어져나갔다'거나 '가톨릭은 정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갔다'는 말 역시도 정답은 아니다. 정교회와 가톨릭 모두 초대교회의 직접적인 정통 계승자라 할 수 있다. 원래 가톨릭 수사신부였던 마르틴 루터 등이 소위 종교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옛 공의회의 결정을 무시,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이름 하에 몇몇이 떨어져 나가 개신교를 만들긴 했지만(2차 교회분열), 전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이쪽이 다수.

종교적 권위가 거의 힘을 잃은 오늘날에도 교황청으로 대표되는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권위는 범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건 단순히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느냐 교황을 범기독교의 수장으로 보느냐 마느냐와 같은 신앙/교리적인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정치/사회적인 문제이다. 일단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거시적인 측면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톨릭은 기독교 단일 종파 중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장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단순히 가톨릭(25%)-개신교(51%)로만 나누자면 현재에도 미국개신교 국가라고 불릴 만하지만, 종파로 파고들면 가톨릭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최다종파인 가톨릭이 2위 종파인 남침례회의 4배가 넘는다.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도 가톨릭 교세가 만만치 않다.[121]

물론 가톨릭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 예컨대 이슬람, 서로를 정통교회로 인정하지만 워낙 가톨릭에게 쌓인 게 많은 정교회권, 유난히 가톨릭에게 츤츤거리는 북유럽이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조차 정치/사회적으로 가톨릭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낮지 않다. 교황청에서 새로운 사회 회칙을 발표하거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언급을 할 경우 언론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는 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장 교황 베네딕토 16세콘돔 사용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했을 때 각국의 언론사들의 반응만 보더라도.

14. 아시아에서의 가톨릭[편집]

아시아에서 가톨릭 신자 비율이 높은 지역은 홍콩, 마카오, 대한민국, 필리핀, 싱가포르, 동티모르 등이 있다.

14.1. 대한민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대한민국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2. 일본[편집]

무종교 비율이 높은 동아시아권에서도 독보적으로 비중이 낮다. 모든 기독교 종파를 합쳐도 전체 인구의 약 1% ~ 2% 수준에서 오르내리는데 그치며 로마 가톨릭만을 고려하면 2013년 기준으로 44만명 수준이라 0.3% 남짓에 불과하다. 신자는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는 편이며 예외적으로 카쿠레키리시탄의 영향이 있는 나가사키 교구는 인구대비 신자 수가 4%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높다.

역대 추기경은 5명이 있었으며 최초의 일본인 추기경인 도이 타츠오 베드로(도쿄 대주교) 추기경을 시작으로 타구치 요시고로 바오로(오사카 대주교), 사토와키 아사지로 요셉(나가사키 대주교), 시라야나기 세이이치 베드로(도쿄 대주교), 하마오 후미오 스테파노(요코하마 주교) 순으로 서임되었다.

이 가운데 도이 베드로 추기경은 1963년 콘클라베(바오로 6세)에, 시라야나기 베드로 추기경과 하마오 스테파노 추기경은 2005년 콘클라베(베네딕토 16세)에 각각 참여한 바 있다. 2009년 시라야나기 베드로 추기경이 선종한 이후 추가 서임이 없어 일본의 추기경은 2018년 현재까지 공석이다.

14.3. 중화인민공화국과의 마찰[편집]

바티칸중국과는 수교하지 않고 있는데, 중국 공산당은 종교를 모두 공산당 아래에서 관리 감독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당에서 종교인을 임명하고 있다. 문제는 가톨릭 사제들도 중국 공산당에서 자체적으로 임명한다는 것. 이것을 '중국 천주교 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라고 한다. 이 천주교 애국회에 속하는 걸 거부하는 신부들은 감옥에 가거나 가택 연금된다.

가톨릭 사제들은 모두 교황의 정식 승인을 받은 주교들이 임명해야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신부를 뽑아 임명하는 막장스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주교 서품도 교황청의 승인없이 공산당에서 해버린다. 본디 성직자 서품, 특히 주교 서품은 교리상 교황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이러한 만행은 교회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중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당이 관리하는 교회에는 나가지 않으며 지하에서 자체적으로 가톨릭의 종교활동이나 모임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하교회는 탄압의 대상이며, 적발될 경우 바로 감옥행이다. 당국의 종교규제를 피해 모이는 지하교회 같은 경우는 가톨릭,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공식 교회 수치보다 매우 많다. 왜냐면 공식 교회를 배교자로 보고 외면하기 때문이다. 한번쯤은 홍콩이나 마카오, 싱가포르 등의 그리스도인이 많은 화교권 사업가들이 몰래 지하교회에 성경 등을 반입하다 걸려 추방 당하거나 투옥되기도 한다.

때문에 애국교회라 불리는 관영 단체를 바티칸은 인정치 않고 있으며, 중국과 외교관계도 수립하지 않고 있다. 중화민국과 수교하고 있는 상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7년에 "교회를 수하에 두려는 '국가단체'는 가톨릭 교의와 양립불가"라는 입장을 천명하였다(참고: 중화인민공화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서한).

다만 교황청으로서도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의 국력을 무시할 수 없기에, 대체적으로는 공산당 애국교회의 사제와 주교들을 사후 승인하는 방식으로 인정하고 있긴 하다. 특히 주교에 관해서, 일단 애국교회 소속으로 서품을 받았어도 교황청에 순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주교들을 사후 승인하고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바티칸과 공산당 양쪽에서 인정받고 당당히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사를 전달하지 않은 주교들도 있다는 듯. 아무튼 흔히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중국에 없는 것은 바티칸과 중국 공산당 양자가 모두 동의하는 주교회의이지, 양자에게 모두 합법적인 중국인 주교가 아니다.

이는 위에서 링크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서한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이다.

일부 주교들은[122] 교회 생활에 대한 부당한 통제에 굴복하지 않고 베드로의 후계자와 가톨릭 교리에 온전히 충실하려는 열망에서 비밀리에 축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밀스러운 상황은 교회 생활의 정상적인 특징이 아니며, 역사가 보여 주듯이, 목자들과 신자들이 이러한 방법에 의존해 온 것은 오로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신앙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교회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는 문제들에서 국가 기관의 간섭에 저항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황청은 이러한 합법적인 목자들이 필요하다면 사회적 효력을 위해서도 정부 당국의 인정을 받고, 모든 신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환경 안에서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의 압력 아래 놓인 다른 목자들은[123] 교황의 위임 없이 주교품을 받는 데에 동의하였으나, 곧이어 베드로의 후계자와 다른 형제 주교들과 이루는 친교 안에 받아들여지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교황은 그들의 성실한 마음과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고 이웃 주교들의 견해를 참작하여, 그들이 주교 재치권을 온전하고 합법적으로 수행하도록 교회의 보편 목자의 고유한 책임으로 허락하였습니다. 교황의 이러한 결정은 그들 축성의 특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완전한 친교를 재건하려는 깊은 사목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에 사제와 신자들은 자신의 주교가 합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 못한 까닭에 여러 가지 심각한 양심의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더욱이 인정받은 주교들 가운데 일부는 그들의 합법성을 입증할 분명한 표지를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해당 교구 공동체의 영적 선익을 위하여, 일단 그러한 인정을 받았으면 되도록 빨리 공개되어야 하고, 인정받은 주교들은 베드로의 후계자와 이루는 온전한 친교의 확실한 표지를 점점 더 제시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부 극소수 주교들은[124] 교황의 위임 없이 서품을 받았고 필요한 법적 허가를 요청하지 않았거나 아직 받지 못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따라 이들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여겨져야 하지만, 유효하게 서품된 주교들에게 성품을 받았고 가톨릭 주교 서품 예식이 존중된 것이 확실하다면 유효하게 서품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황과 친교를 이루지는 않지만 성사 집전으로 비록 합법적이지는 않다 하여도 그들의 직무를 유효하게 수행합니다. 필요한 조건들이 성립되어 이러한 목자들도 베드로의 후계자와 모든 가톨릭 주교와 친교를 이룬다면 중국 교회가 얼마나 더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겠습니까! 그러면 그들의 주교 직무가 합법화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중국 교회가 로마 주교와 전 세계 다른 모든 개별 교회와 결합된 가톨릭 교회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제와 신자들과도 더욱 풍요로운 친교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극소수를 제외하면 중국인 주교들은, 지하교회에서 활동하든 애국회에서 활동하든, 교회법상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주교이며 재치권을 온전히 허락 받았으며 교황과 친교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애국회의 사람들을 모조리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라고 취급해버리는 것은 가톨릭 입장에서도 옳지 않다. 이 단체의 구성원들을 교회법적 합법으로 끌어안는 것은 바티칸이든 중국 공산당이든 오래전부터 원하고 있는 바이며, 서로 동의한다. 다만 대화가 막히는 주제는 2가지로, '주교 서품권'과 '바티칸-대만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언론들이 관영 단체에 대한 바티칸의 호의적 태도를 마치 교황청이 항복한 것처럼 간주하면서 오해를 낳고는 하는데, 분명히 강조하자면 교황청은 주교 서품권을 포기한다고도 대만과 단교한다고도 발표한 적이 없다. 이미 공산 국가인 베트남에서도 바티칸과 베트남 공산당 양자가 동의하는 주교들이 당당히 활동하고 있기에, 바티칸과 중국 공산당 양자의 동의를 얻는 주교라는 개념은 전례 없는 일이 아니다. (참조 기사번역)

In mainland China, there are also some bishops of the clandestine churches not yet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Some may still be living in situations deprived of freedom and are unable to exercise their episcopal ministry. Consequently, a future bishops’ conference in China would have to include all the legitimate bishops of the open Church as well as the clandestine bishops.To strive for and protect the legitimate authority of the bishops of the clandestine churches in China, Rome should also conduct a dialogue in order that these bishops be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as legitimate. Some people are worried that the illegitimate bishops are being treated with excessive leniency in Sino-Vatican negotiations puts the principles of faith and communion of the church in second place. Such worries are unnecessary.If the Holy See has any intention of forsaking the principles of faith and communion of the church, there would actually be no need for it to dialogue and negotiate with the Chinese government. The unceasing dialogue actually represents the unwavering stance of the Holy See towards this question.Some people are concerned that the dialogue between the Holy See and the government may sacrifice the legitimate rights of the clandestine churches. Some are worried that the clandestine bishops in prison may be forgotten. I believe that this worry could represent a mistrust of the love of the Holy See towards the church in China. This way of thinking may indeed be an offence against the Holy See and its delegated representatives in the negotiations; it should not come from the hearts of us Catholics.
중국 본토에는 정부에 의해 아직 인정받지 못한 비밀 교회들에 속한 주교들도 있다. 일부는 아직도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 살고 있을 수 있으며, 자신들의 주교 직무를 실행할 수 없다. 그 결과, 장래의 중국 주교회의는 공식교회의 모든 합법 주교는 물론 이들 지하교회 주교들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편집자 주[125]- 공식교회의 상당수 주교는 주교 서품 전후에 교황청과 의사소통을 통해 합법 주교로 인정받은 상태다.)
중국에 있는 지하교회 주교들의 합법적 권한을 추구하고 보호하기 위해, 로마는 이들이 정부에 의해 합법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대화를 실행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들 합법 주교가 중국과의 대화 속에서 (교황청이) 너무 양보함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신앙이라는 원칙들이 뒤로 밀리는 가운데 처리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런 염려는 불필요하다.
만약 교황청이 교회의 일치와 신앙의 원칙들을 내버릴 생각이 있다면 중국 정부와 대화하고 협상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대화를 해왔다는 것 자체가 이런 물음에 대한 교황청의 확고한 입장을 대변한다.


통혼 추기경, 홍콩
원문번역


또한 지하교회가 처한 어려움은 당면한 현실이며, 이들에게 '이대로가 좋으니 그대로만 있어다오'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톨릭적 관점에서 옳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바티칸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교황청과 중국 당국의 대화는 오랫동안 이루어지고 있으며, 베트남 등 여러 특수한 사례들을 참조하여 주교 서품이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의 특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서품 포기도 대만과의 단교도 발표되지 않았는데 자극적으로 넘겨짚는 이야기들은 걸러 듣는게 좋다.

그리고 2018년 3월에 주교 임명과 관련해 합의 서명할 예정이라 바티칸-중국의 수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이다.

한편 중국 영토이지만 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 교구는 로마 교황청의 정상적 수위권 아래 놓여 있다. 그래서 중국 추기경은 본토가 아닌 홍콩의 추기경과 마카오 추기경, 대만 추기경의 3인으로 치기도 한다. 홍콩마카오기독교도교 다음으로 교세가 크며 그 중 과반수가 가톨릭을 믿고 나머지는 성공회장로교 등 신교이다. 참고로 도미니코회 로사리오 관구가[126] 마카오에 있고, 마카오의 성 요셉 신학교에서 도미니칸들이 양성되고 있다.

15. 창작물에서의 가톨릭[편집]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은연 중에 복선으로 많이 이용되며, 현실과의 갭이 크다 못해 100억 광년 정도 거리가 있다는 것은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창작물 중 주인공이 가톨릭 소속 혹은 가톨릭을 참조한 세력인 경우 주인공의 꽉막힌 소속집단으로 자주 출현한다. 주인공이 가톨릭 소속이 아닌 경우가 당연히 더 많으며, 이런 경우는 제3세력으로 등장하거나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타 종교나 타 기독교 종파에 비해 체계가 계급적이고 뚜렷하게 잡혀있기 때문에 구현하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회미국 대통령 최다 배출 종파라는 나름의 위엄이 있지만, 영국만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여 거대 세력으로 설정하기가 어렵고, 루터교청교도개신교는 종파 수도 많고 조직체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톨릭과 비슷한 시스템의 정교회는 가톨릭에 비해 세계적인 인지도가 현저히 덜하다. 구세군의 경우는 뚜렷한 조직체계와 군대를 연상시키는 시스템 때문에 잘다루면 그럴듯한 물건이 나오지만, 인지도가 미미하며 기껏해야 자선 등의 이미지로 알려지는 정도다. 즉, 뚜렷한 조직 체계와 많은 신자 수를 거느린 종교 중에서 가톨릭만큼 만만한 게 없다.

또한 중세 시절의 파문, 마녀사냥, 면죄부, 종교 개혁 등 악역으로서의 이미지도 뚜렷한 편이고, 적이든 아군이든 일단 출현하면 '이교도' 같은 대사를 자주 내뱉는 배타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대의 가톨릭이 다른 기독교에 비해 오히려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점을 생각하면 한숨.

  • 게임이나 소설 등에서 퇴치를 위해 전투를 하러 가는 그룹에 신부님이 있을 경우, 대부분 역할은 회복이나 버프를 주는 역할(...)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님아 힐좀

15.1. 구마(엑소시즘)에 대한 오해와 진실[편집]

2009년에는 실제로 퇴마사를 교황청 내에서 단체로 육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뭇 오타쿠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127] 그러나 그 전에도 신자들 중에서도 알 사람은 많이 알았던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사실 성직자 과정 중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딱히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성품성사 중 7품급 가운데 '구마(驅魔)품'이 3번째 품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또한 구마기도는 묵주기도 등의 다른 기도를 하되 청하는 바를 '구마'로 하면 되기 때문에 그 자체는 일반 신자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쉽게 얘기하면, 묵주기도주님의 기도든지 좋으니 생각나는 통상기도문 중 아무 거나 외면서 지향을 마귀를 몰아내 달라고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마귀야 물라가라." 라고만 해도, 성경 중 예수가 마귀를 몰아내는 장면을 읽고 나서 같은 말을 덧붙여도 구마 기도가 된다.

다만 성직자에게 특별히 유보되는 것은 한국 가톨릭에서 흔히 '엑소시즘'이라고 불리는 '장엄구마식'인데, 이 장엄구마식은 남용할 때 폐해가 너무 큰 관계로 반드시 해당 교구장의 허락을 받도록 교회법으로 규정했다.[128]

이 장엄구마식을 전문적으로 행하는 성직자들이 흔히 알려진 '엑소시스트'들이며 현재 한국 가톨릭 성직자 중 엑소시스트라 할 만한 사람은 최소한 2명, 청주교구가 지정한 구마사제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와 인천교구의 차동엽 노르베르토 신부도 구마 경험이 많고 관련 강론도 한다고 한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다른 교구에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단지 알려져 보았자 대다수 신자들에게 좋을 것 없을 뿐. 모든 사제는 서품을 받기 전에 장엄구마식을 배운다고 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에 대해서는 구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가톨릭에서는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 누구나 구마능력이 생기는 것으로 보며, 신심의 차이로 그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마기도문을 일반 신자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또 의외. 다만 이는 장엄구마식에 쓰이는 기도만 해당한다. 미카엘 대천사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긴급한 구원의 기도 같은 것에는 사실상 구마를 청하는 기도도 많다. 심지어는 수호천사들에게 악마로부터 보호해줄 것을 청하는 기도도 있다.

다만 좀 더 추상적인 개념에서 악으로부터 보호를 비는 것과, 구체적으로 대상을 영적인 악의 존재로 지정하고 물러갈 것을 명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 밖에 성령쇄신지도신부들도 뛰어난 구마능력을 갖고 있다는데, 정신과에 가야 할 사람이 엑소시즘 권한을 받은 성직자에게 올 가능성이 많거니와, 현대 가톨릭에서는 그러한 정신이상 증세에 대해 악마의 영향이라고 여기는 것을 마지막 가능성으로 미루는 것이 교리이다.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것을 구마(exorcismus)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이를 행하셨으며 교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과 의무를 예수님께 받았다. 세례를 거행할 때 간단한 형식의 구마를 행한다. “대구마(大驅魔)”라고 부르는 장엄한 구마 예식은 주교의 허가를 받아서 사제만이 행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구마는 마귀를 쫓아내거나 마귀의 지배력에서 구해내는 것이 목적이며 예수님께서 주신 영적 권한으로 행하는 것이다. 질병, 정신 질환은 마귀들린 것과는 전혀 다르며, 질병은 의학이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마를 행하기 전에 질병이 아니라 마귀들린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


이를 다룬 창작물로는 2015년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이 있다.

16. 비판[편집]

2차대전 당시에 우스타샤라는 개막장 집단이 있었다. 이들이 권력의 주축이 된 우스타시-크로아티아는 추축국이 세워준 괴뢰국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동유럽판 만주국 비슷한 셈. 이들은 정교유착 파시스트로 세르비아 정교인 및 유대인들을 강제 개종 및 산 채로 배를 갈라 죽이고 심지어 임산부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죽이는 악랄한 파시스트 조직인 우스타샤의 간부들이 가톨릭 교도였다. 이런 진상을 제대로 알아 보지도 않고 크로아티아 가톨릭계는 마냥 칭송했으며, 우리나라 가톨릭계가 이들을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독립군으로까지 칭찬하는 왜곡기사를 쓴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기관총을 든 신부님>이라는 글로 이걸 통렬하게 까던 하영식 기자에게 일부 신부들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적반하장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의 가톨릭계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군을 지지했으며 이후 프랑코가 죽을 때까지 강압적인 독재를 하여 많은 피해자들이 나올 때도 스페인의 주류 가톨릭계에선 침묵하던 것도 수치스런 역사이다.[129]

아직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바는 없지만 해외에서는 신부의 아동 성범죄 사례가 상당히 많이 있다. 베네딕토 16세도 이 사건들의 은폐에 연관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어 베네딕토 16세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한 일도 있다. 그런데 피해 아동의 상당수가 남자아이라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이라 볼수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신부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고, 외국에서도 있었다는 게 뒤늦게나마 밝혀졌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신자들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권장하는 편이다. 실례로 가톨릭이 국교였던 적이 있는 이탈리아기독교 계열의 정당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그 정당들 대부분은 가톨릭 계열이다. 독일 같은 경우도 기독교민주동맹을 통해서 가톨릭교회의 정치적 입김이 강하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허용할지라도, 성직자들이 정당을 만들거나 선출직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교황청은 성직자 및 신자들의 사회활동을 위한 사회교리서를 통해 교회가 허용하는 사회활동의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조항에서 정치활동은 사제가 아닌 평신도(신자)들의 몫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현 교황 프란치스코는 오래 전부터 "사제들도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따라서 이런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사례를 볼 때 요즘 논란이 되는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교회법에서 어긋난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의구현사제단한국 천주교 내의 비공식 조직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한국 천주교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한국 천주교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지만,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정부 비판, 4대강 사업 비판 등은 주교회의에서 대체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과 입장을 같이 하는 편이다.

고로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은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가톨릭 교회의 비공식 집단이라 아무리 목소리가 커도 영향력이 별로 없으나,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가톨릭 때리기로 바뀜으로써 가톨릭 교회가 자기 식구 지키기로 돌아선 게 크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일제강점기 시절 등의 부끄러운 역사 때문에,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걸 요구당하면 대체로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고 가톨릭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정치성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기 힘든 게, 가톨릭 교회는 참여정부 시절 사학법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반대했는데 의외로 한기총과 연대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거부권 사용을 종용했고, 그러지 않을 경우 법률 불복종 운동을 하겠다고 정부를 협박했다.

당시에도 내부적으로 가톨릭 교회가 주교회의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편들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논란이 있었고, 특히 가톨릭 교리상 별 상관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가톨릭 계열 재단법인 등 높으신 분들의 이기적인 밥그릇 챙기기라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주교회의가 이런 흐름을 총괄하고 결정권도 있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은 주교회의를 통해 당시 사학법 개정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재밌게도 당시 정치적인 사학법 반대 입장을 주교회의에서 통과시킨 건 정진석 (現 추기경) 니콜라오 대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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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발간한 책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 천주교는 황사영에 대해 내심 옹호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반역 및 국가전복을 기도한 황사영 백서 사건이나 사회적 정의와 상관없이 자기보신주의만 내세워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130] 주교를 비롯하여,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는 한국 가톨릭의 수치스런 역사다.

또한 천주교에서 국내의 천주교 성지들을 성역화하는 사업을 벌이면서, 천주교 성지 중 다른 종교 시설들과 겹치는 곳들을 천주교만의 성지로 바꾸는 짓을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천진암/주어사 터를 놓고 불교계와 벌이는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 있으며, 서울 서소문 역사공원을 천주교 중심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천도교에서 발끈하고 있다.

사실 서소문 역사공원의 경우 현재 천주교에서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울시에서 '관광지 산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본문에 링크한 유튜브 영상에 보이듯이 스타트는 가톨릭에서 한 게 맞다. 문제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관광 상품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이곳은 천주교 순교자만 처형당한 게 아니라,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녹두장군 전봉준을 포함한 동학농민운동의 중요 인물들이 처형된 곳이다. 거기다 여기서 처형당한 천주교인 중 하나가 황사영 백서 사건의 당사자 황사영이다.

특히 천도교는 일전에 교조 최제우의 순교지인 대구 관덕정에도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성지화 사업을 벌여 성당을 지으면서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는데다, 서소문 역사공원 사업과 관련해 '겉으로는 역사기념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순교 성지 관련 시설 건립에 필요한 예산 확보"란 말을 쓰는게 말이 되느냐'면서 이번 사태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참조 영상

이 와중에 가톨릭 측에서 서소문 성지화 사업과 관련해 불교 측을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안그래도 승암산 이름 문제, 천진암, 주어사 문제 등에서 가톨릭과 마찰을 빚은 전례가 있는 불교 측에서도 서소문 성지화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의 과거를 지적하며 불쾌해하는 중이며, 가톨릭 내부에서도 가톨릭의 일방적인 독점은 잘못되었다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이후 천주교 측의 성지화 사업이 결국은 돈때문이라는 가톨릭프레스의 집중 보도가 나온 상황.

또한 주교들의 인사 관련 부정적 행위(링크)직무이탈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더욱이 앞서 서소문 성지화 사업과 관련해 불교 폄하 발언을 한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박문수 씨가 추가적인 불교 폄하 발언을 해 불교 측에서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중.[131] 더군다나 박문수 씨는 진보 계열 천주교인으로 진보적 언론인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와 새로 창간되는 '가톨릭평론' 일간지 편집위원을 겸하면서 불교와 천도교 관련 행사나 단체에도 활동 참여 경력이 있는 인물이라 타 종교와의 마찰은 더 심해지는 중. 천주교 내부에서도 이런 성지화 작업에 열중하는 교단의 행보에 경종을 울리는 여론이 존재하나, 그렇게 두드러진 상황은 아니다.

또한 천주교 측이 주어사 터에 있던 해운대사 의징(海運大師義澄)의 부도비를 1973년 11월 멋대로 가져간 사실까지 언급되는 등 불교계에서 점차 날을 세우고 있다.

그 외에 2009년에 가톨릭, 불교, 성공회, 원불교의 여성 수도자 모임인 삼소회 주관으로 열린 각 종교 성지 순례 행사에서 가톨릭과 성공회, 원불교 측이 보인 무례한 행위와 음식과 관련된 교단 간 규정 등으로 반감이 쌓이던 중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성당 행사에서 기도문 낭송 행사로 충돌이 벌어진 사례도 있다. 다행히 나중에 서로 화해했지만. 혹자는 해당 기사만 보고 성공회 측 문제라고 하지만, 여행의 시작 기사를 보면 일행 중 수녀들에 대해 천주교와 성공회 수녀라고 되어 있다.

영미권에서는 반가톨릭주의가 꽤 강한 편이다. 영국은 다른 개신교가 주류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으로부터의 독립과 투쟁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형성했고, 국가적으로 성공회를 밀고 있고, 가톨릭교도들을 탄압했다. 17세기부터 가톨릭교도가 공직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물론, 선거권도 갖지 못하게 한 법률이 19세기 초까지 있었다. 영국에서는 현재도 계승률(Act of Settlement)에 의해 왕위를 성공회 신자에게 한정하는데, 한 번이라도 가톨릭교도였던 사람은 성공회로 개종하더라도 왕위계승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미국 역시도 개신교 문화권이다보니 가톨릭 신자들이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왔다. '중세=닥치고 암흑시대, 가톨릭=암흑시대를 만든 만악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실 중세 가톨릭을 만악의 근원 취급하는 건 유럽권에서 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인식이긴 하다. 이 와중에 성공회를 포함한 개신교는 개혁적이고 근현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톨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미국에도 그대로 이어졌다.[132]

한국 내 기독교계에서 개신교의 비중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개신교는 현대적이고 개혁적인 종교라는 인식 때문에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인 가톨릭을 밀어내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다만 21세기 들어서 개신교에 실망한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태가 많아져서, 내부적으로는 위기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디테일로 들어가보면 개신교는 단일 종파가 아니고, 명백히 이단으로 낙인찍힌 군소 교파들도 개신교 통계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교파별 분류를 할 경우 가톨릭 신자수가 가장 많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다만 현대에는 영국 자체가 종교색이 많이 희석되어서 영국 내 차별은 많이 줄어들었다. 한국처럼 영국에서 점차 가톨릭 교세가 확장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도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이민자가 늘어나고[133] 미국 내 가톨릭 신자가 2017년 기준으로도 국민의 5분의 1 이상(22%) 차지하기 때문에 가톨릭의 입김이 상당하다.

17. 트리비아[편집]

법원에서 판사나 검사가 입는 법복의 유래가, 사실은 가톨릭 성직자의 복장을 따라 한 것이다.[134]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방정교회 신자 그리고 성공회 신자는 가톨릭 신자처럼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135]
한국에 경우, 천주교 신부가 성공회 신부로 개종할 경우 사제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보수 교육기간만 가지면 성공회 사제로 활동 할 수 있다.

18. 관련 용어 및 관련 문서[편집]

19. 인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로마 전례 특별 양식(forma extraordinaria)에 따른 미사 중 거양성체 장면.[2] 파일:external/image.kmib.co.kr/130314_06_1.jpg
기독교 종파 1위. 전체 기독교 신도들 중 50%가 가톨릭이다.
[3] 가톨릭을 영어로 쓸 때 Ecclesia Catholica Romana 또는 Roman Catholic Church 라고 적으면 안 된다. 가톨릭교회는 로마전례 외의 동방전례를 보존하는 23개 동방가톨릭교회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로마가톨릭교회라고 하면 이들 1.5%의 동방가톨릭교회를 배제하게 된다.[4] 이는 한글 표기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가톨릭교회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며, 로마가톨릭교회라는 표기는 가톨릭교회를 로마에 국한된 지역교회로 격하시키는 부적절한 표현이다.[5] 정체[6] 간체[7] 개신교에 대응하여 ‘구교(舊敎)’라고도 불리나, 천주교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구교'란 용어 사용을 지양하고 있다.[8] 가톨릭의 경우 개신교를 갈라진 형제로 인정하지만, 정교회는 가톨릭과 자신을 제외한 모든 종교(개신교 포함)을 '열교' 라고 칭하고 있다.[9] 성공회의 경우 한자말로 풀어쓰면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이기 때문에 가톨릭과 뜻이 통하기는 하지만, 이건 한자문화권 한정이다. 원어로는 Anglican이라 Catholic이 아니다.[10] 동방 가톨릭의 경우 전례와 규율이 라틴교회(흔히 말하는 가톨릭)와 다르지만, 교리는 라틴교회와 완전히 동일하다. 물론 외부인이 보기에는 전례나 규율이나 교리나 다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11] 쉬운 예로서 자위행위 문제를 들자면, 교도권 차원에서는 자위행위를 고해성사 봐야 할 중죄로 보지만, 모든 신자가 자위행위를 중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고해성사가 필수적이지 않은 소죄 또는 죄가 아니라고 보는 신자들도 있다.[12] 개신교 출신 개종자의 개신교 세례 인정 문제에서도 영미권 가톨릭과 한국 가톨릭의 입장이 많이 다르다. 영미권 가톨릭은 웬만한 개신교 세례를 인정하여 개종자에게 재세례(정식 영세)를 베풀지 않지만(인터넷에서 영미권 가톨릭 신자들에게 개종자의 영세 문제에 대해 문의하면 '재세례(정식 영세)는 결코 없다'는 단호한 답변을 달아준다), 한국 가톨릭은 2012년 주교회의 의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신교 세례를 사실상 불인정하고 있다.[13] 다만 그리스와 동구권은 제외.[14] 가톨릭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대한민국 국민 A씨는 틀림없이 가톨릭교회의 일원이지만, 대한민국이 UN 회원국이라 하여도 A씨 개인을 UN 회원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15] 그래서 과거의 사도신경을 보면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러나 1996년부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로 표현이 바뀌어져 있다. 이 표현이 바뀔 즈음에 성호경에도 '성신'이라는 표현이 '성령'으로 바뀌었다.[16] 여기서 짐작했겠지만, 가톨릭 교리상 개신교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가톨릭교회와 정교회뿐이며, 개신교는 교회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못해 '교회적 공동체(ecclesial community)', '그리스도교적 공동체'로만 지칭할 수 있다. 즉 개신교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와 유사한 커뮤니티(공동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 군대 등에서 일반인들이 천주교와 개신교를 편하게 지칭할 때 '성당',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17]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개신교의 용어는 언어적으로 영어독일어의 영향이 짙다. 아우구스티누스를 가톨릭에서 '아우구스티노', 개신교에서 '어거스틴'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을 영어식으로 캐톨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8] 정교회도 보편된(Catholic) 교회를 지향하기 때문. 이때문에 천주교는 '로마 가톨릭'이라고 불러야 하고 '가톨릭'이라고 부르는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어원을 따지고 보면, 천주교도 정교회(Orthodox, 정통 교회)라 할 수 있고 모든 기독교 종파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름을 쓰는 여호와의 증인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이 없으며, 사회적으로 가톨릭=천주교로 합의가 되어있으므로 천주교를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19] 양 측을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라고 둘다 지역명을 붙여서 부르는 방법이 부적절한 것이 이 때문이다. 결국 양자 모두를 지역명을 떼고 '가톨릭', '정교회'라고 칭하는게 옳을 것이다.[20] 종교개혁자들은 자신을 보편된 교회(catholic)라고 했다. 실제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제25장에서는 교회의 보편성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 가톨릭의 유형적 교회관과 달리, 개신교는 교회관이 비가시적이고 우주적인 무형적 교회를 보편 교회라고 본다.[21]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하게 본다. 오늘날에 자신들을 가톨릭 신자라고 칭하는 개신교인이 없지만, 개신교 또한 Catholic의 개념을 인정한다. 안 보이는 관념적 교회라 그럴 뿐.[21] Invisible Universal Catholic 으로 말한다.[22] IC XC는 그리스 문자로 각각 이오타, 시그마(중세 그리스어 서법), 카이, 시그마이다. 그리스어 ΙΗΣΟΥΣ ΧΡΙΣΤΟΣ(IESOUS ChRISTOS, 예수 그리스도)의 약자이다.[23] 가톨릭 소속이 아니던 이런 교회들이 나중에 다시 가톨릭과 일치하는 것을 '귀일'이라고 한다.[24] 한국에서 유럽어의 무성파열음을 유기음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영어, 독일어게르만어파의 영향이 크다.[25] 다만 이런 관점은 가톨릭 초기시대에 이단들과의 싸움이 치열했던 시기에 교부들이 "교회의 수장인 사도 성 베드로가 로마에서 자신의 후계자를 임명했고, 로마에서 순교했기에 로마와 친교를 거부하면 이단이다"라는 논지로 한 주장이라 이것을 현대에 가톨릭 외의 타종파에까지 적용하기는 상당히 무리가 있다. 단적으로 현재 가톨릭은 정교회를 이단으로 여기지 않으며, 오리엔트 정교회개신교와도 이단 단죄를 그만두고 끊임없는 화해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단, 교황공석주의나 중국의 애국교회나 성 비오 10세회 같이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로마성좌와의 화해나 친교를 거부하는 집단은 여전히 파문으로 단죄한다. 다만 성 비오 10세회와 애국교회는 2017년 기준으로는 파문 당한 공동체까지는 아니고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공동체이다.(성 비오 10세회의 창설자인 마르셀 르페브르는 파문이 철회되지 않음)[26] 수도자인 동시에 사제. 수사신부, 성직수사라고도 한다.[27] 그러나 보좌신부가 주임신부에게 순명할 의무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보좌신부가 순명할 대상은 어디까지나 교구장 주교이다. 또한 주교 역시도 사목권을 교황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받는 것이다.[28] 수도자성직자는 수평적 개념이며, 어느 한쪽이 낮은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전체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예외이다. 베네딕도회아빠스이든 수녀원의 총장이든, 수도회의 총장들은 주교급으로 대우 받는다.[29]암묵의 룰의 배경이자 기반이 되는 성경 구절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루카 복음서 4,24)”다. 이 대목은 예수가 자신의 고향인 나자렛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예언자로 보지 않고 예전에 보던 동네 꼬마라고 수군거리며(“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루카 4,22)”) 희대의 어그로꾼으로 판단하고 예수를 벼랑 밖으로 내몰아 던지려고 했던(루카 4,29) 내용이 나온다.[30] 다른 이유도 있는데 해당 사제를 꼬꼬마 시절부터 지켜봐온 어르신들이 사제의 말을 제대로 안 들을 위험(즉, 사제에 대한 불순명)도 있기 때문이다.[31] 영미권에서 개신교를 일컫는 Protestant라는 의미는 '저항하는 자들', '항의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종교개혁 항목 참고.[32] 교의라는 표현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리를 이야기할 때 쓰는 표현이다.[33] 농담같아 보이지만 정말 가르친 건 이거밖에 없다. 4대교리를 교육시킨 뒤에는 영성체 예절과 6대 의무 정도가 가르치는 것에 전부.[34] 이 관면 허락은 전통적으로 소속 본당 본당신부에게 허락받는 게 원칙이다.[35] 이 자율적으로 행하는 금육의 실천은 다음과 같다. 14세 이상의 모든 천주교 신자들은 연중 모든 금요일에 육고기 식사를 하지 않거나[36], 또는 육고기 식사를 부득이하게 하는 대신 특정한 자선, 선행, 기도 등을 할 수 있다. 또 금연이나 금주 같은 다른 금욕방식으로도 실천할 수 있다.[36] 이 경우에도 계란이나 고기기름으로 만든 양념, 우유 등은 먹어도 된다.[37] 교구마다 차이가 있다.[38] 양업시스템이라고 불리는 한국 천주교만의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전산화 되어 있어 신자별로 고유번호가 부여되어 있으며, 이를 바코드 형태로 표시한다. 판공성사를 보고 성사표를 내면 이를 바코드 리딩 방식이나 수동전산입력방식으로 처리하며, 성사표를 못 챙겨갔다 하더라도 물론 성사를 보지 않고 전산상으로만 처리될 수 있는 허점이 있으나 성사를 본 사실을 성당 사무실에 접수하면 이를 신뢰하고 보통은 전산상에 성사를 본 것으로 처리한다[39] 또는 성당에 따라 성당 사무실에 제출하라는 곳도 많다[40] 한국 가톨릭에서는 이 기간을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보통 2월 말~ 3월에 있다)부터 여름에 있는 삼위일체 대축일까지 연장해서 적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꼭 부활절 당일이나 사순 시기에 판공성사를 못봤더라도 삼위일체 대축일 전에 1번 이상 고해성사 및 영성체를 하고 성당 사무실에 성사표를 제출하면 냉담자로 집계되는 일도 없고, 이 의무도 충족된다. 도저히 너무 바빠서 이 기간에 못한다면 성탄 시기에라도 판공성사를 꼭 볼 의무가 있다. - 한국 지역교회법인 천주교 사목 지침서 참조.[41] 한국 천주교우리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삼고 있어 우리은행 전산망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42] "부부행위를 앞두고, 또는 행위 도중에, 또는 그 자연적인 결과의 진행 과정 중에, 출산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수단으로 하는 모든 행동은" 근본적으로 악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판 6쇄 844쪽)[43] 교회는 1세기부터 모든 인위적 낙태를 도덕적인 악으로 단정하였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판 6쇄 816쪽) "범죄 사실 자체로", 그리고 교회법으로 정해진 조건들에 따라, "낙태를 주선하여 그 효과를 얻는 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같은 쪽)[44] 강간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또는 태아나 산모에게 심각한 건강상 질환이 있을 때(기형아 포함)의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이다.[45] 가톨릭에서는 이것을 낙태약으로 간주한다. 성폭행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도 포함.[46] 자비의 희년 1년 동안 적용되는 한시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무기한으로 바뀌어 회칙이 선포되었다.[47] 가장 가톨릭과 비슷한 교리와 전례를 가진 개신교 종파는 성공회이며, 그 반대는 안식교이다.[48] 개신교 내에서마저 서로끼리 수없이 분열되어 같은 개신교라는 간판 아래에서도 통일된 신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마당에, 과장 좀 섞어서 개신교와 가톨릭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고백한다는 점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49] 그렇기에 사도신경라틴어 "communionem sanctorum", 즉, "모든 성인의 통공"을 "모든 성도의 교통함"으로 번역하였다.[참고] 마르틴 루터성경을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말씀이 적힌 유일한 종교적 교범으로 보았고,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인지 확인 불가한 출처가 부정확한 부분은 과감하게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경전은 초대 교회 시절 히브리어 사본을 찾아내지 못했고, 불가타 라틴어역을 저술한 예로니모도 히브리어 사본이 없는 제2경전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졌다. 이런 교부들의 불신을 반영해서 구약성경을 재편한 그는 우선적으로 구약의 헬라어 부분인 제2경전을 위와 같은 이유로 삭제했다. -연옥항목에서 발췌[51] 특히 장로교(개혁주의 계통), 침례교와 같은 보수교단.[52]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전승의 존재를 암시하는 내용이 성경에도 나와 있다. 요한 복음서 21장 25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가 그렇다.[53] 가톨릭 입장에서 개신교의 '오직 성경' 교리는 외려 비성경적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에서조차도 성경 이외의 전승의 존재를 암시하는 구절이 버젓이 있기 때문.[54]성공회테오토코스는 인정하고, 무염시태, 평생동정 등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는 성공회의 공식적인 주류 입장일 뿐이지, 성공회 신자 개인이 무염시태, 평생동정 신앙관을 취하는 것을 이단시하지는 않는다. 이는 성변화(화체설)의 경우도 마찬가지.[55] 근본적으로 만인제사장을 받아들이므로 그리스도와 평신도 사이에 사제는 필요없다는 입장. 평신도이자 일종의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가 대체. 사제는 아니지만 설교와 예배를 할 독점적 권한은 있다. 무교회주의나 침례회 아니면 일반 장로급은 이런 일을 하는데 매우 제한적이다. 남성만 목사가 되는 교파도 있고, 여성 목사를 허용하는 교파도 있다. 성공회, 루터회는 이런 사제 제도가 있긴하다.[56]루터교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구습이 많이 남아 있는 일부 북유럽 루터교 정도에서만 존재[57] 다만 두 교파 모두 성상 없는 인테리어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실재로 성상을 설치하지 않은 예배당도 존재한다. 특히 루터교의 경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교회에는 성상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또한, 루터교의 경우 크기가 큰 성상은 거의 없으며, 예수상 이외의 성상은 거의 만들지 않고, 공경하거나 성상에 직접 기도하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58] 다만 루터교는 십자고상이 설치된 교회도 있으나, 다른 개신교 교회와 같이 십자가가 설치된 교회도 많다[59] 횟수는 교단마다 다르다. 성공회는 2개만 정식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5개는 준성사(예식)로 취급한다.[60] 동방 가톨릭을 예로 들며 종파가 여러 개가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으나, 동방 가톨릭은 교황의 수위권에 속해 있는 엄연한 가톨릭 교회와 일치된 종단(宗團)이다. 전례의 형식이 다를 뿐이다. 물론 정교회에서는 동방 가톨릭의 교황수위권 인정을 반대하지만. 또한 구 가톨릭교회, 성 비오 10세회 등의 공동체를 가톨릭 교회의 일부로 인정한다면, 가톨릭 내부에서도 이상적인 일치 상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61] 감리교, 장로교, 루터교, 성공회 등이 존재함.[62] 그런데 당시 고대 그리스의 영향권에서 여신 숭배가 광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네스토리우스도 교리적으로 위에 서술된 정도의 내용을 명확히 아는 신자들이 테오토코스를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으려해서, 안티오크 주교가 크리스토토코스(그리스도의 어머니)를 여신 숭배를 억누르기 위한 용어로 제시한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여신 마리아가 신과 관계를 맺었다는 그리스 신화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헌이 있다. 출처 : 크리스토프 바우머, 안경덕 옮김, 《실크로드 기독교 동방교회의 역사》, 서울, 일조각, 2016.[63]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64]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 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65] 인간의 의지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데에 중요한 것이냐의 문제로서 행위구원론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개신교 주류의 뿌리인 칼뱅파의 예정설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해를 많이 산다.[66] 의화와 칭의는 한자어에서는 다르지만, 영어로는 어차피 둘 다 justification으로 어휘 자체는 동일하다.[67] 물론 개신교라고 해서 '예수님 믿기만 하면 대강 살아도 천국감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의 회개도 필요 없이 천국 간다"는 식의 구원파는 100% 이단이다.[68] 참조: 1코린 12,11[69] 야고 2,17.20.[70] 갈라 5,6[71] 참조: 로마 3,28 그리고 다른 곳들.[72] 참조: 로마 3,24.[73] 히브 11,6.[74] 참조: 2베드 1,4.[75] 로마11,6[76] 1코린 15,58[77] 히브 6,10[78] 히브 10,35[79] 마태 10,22[80] 참조: 2티모 4,7-8.[81] 참조: 요한15,1 이하.[82] 참조: 요한 3,21[83] 참조: 묵시 14,13[84] 요한 4,13-14[85] 참조: 로마 10,3[86] 2코린 4,17[87] 참조: 마태 10,42; 마르 9,41.[88] 참조: 교황 첼레스티노 1세, 「갈리아의 주교들에게 보낸 서간」 제12장(PL 50,336; D 141번.[89] 참조: 1코린 1,31; 2코린 10,17(예레 9,23-24).[90] 1코린 4,5[91] 마태 16,27; 로마2,6; 묵시 22,12[92] 1코린 4,5[93] 마태 16,27; 로마 2,6; 묵시 22,12[94] 참조: 아타나시오 신경의 초반부.[95] 중화권인 홍콩, 마카오에서도 가톨릭을 성모 마리아나 다른 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로 엄연히 분리한다. 홍콩 교회와 마카오 교회는 天主堂이라는 말이 개신교, 가톨릭을 아우르는 교회의 뜻으로 쓰인다. 홍콩의 종주국 영국이 가톨릭이라면 학을 뗀 나라라 신교와 가톨릭을 철저히 분리해 그렇지. 그 배경은 당연히 정치적인 문제였다. 성공회 참조.[96] 정교회의 성모송에는 없다. 개신교 신자들이 성모송을 접할 때 가장 난감해하는 부분.[97] 서방 교회의 기도문 중 하나인 성인 호칭 기도를 들어봐도, 성부, 성자, 성령(삼위일체 야훼)에게는 '자비를 베푸소서'(miserere nobis)라고 하지만, 성모 마리아 이하 성인들에게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ora pro nobis)라고 한다.[98] 위의 개신교와의 차이에서도 나오지만 다만 개신교에서의 이에 대한 비판은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직접 통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중보자 역할을 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직접 전달되게 되는 것인데 기도 전달자로서의 성모 마리아의 역할 자체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마리아를 숭배의 대상이나 구원의 역할자로 보고 무작정 가톨릭을 비판하는 것은 무지에 기인한 것이 맞으나 개신교의 기본적인 시각은 중보자의 역할은 예수님 혹은 동일체 성령으로 충분, 혹은 유일하다는 것이므로 성모 마리아 등의 성인들의 기도 전달의 역할은 불필요하고 도리어 이러한 중보자의 역할로 인하여 행하게 되는 성모마리아에 대한 여러가지 규율들은 중보자 역할 교리가 오해되거나 아직 믿음이 작은 가톨릭 성도들조차 마리아에게 어떠한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모마리아에 대한 기도 전달의 부탁은 본인이 스스로 혼자 기도하기가 어려울 때 성직자나 동료 성도가 부탁을 받아 함께 기도하면서 중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성인들을 존경하고 그 모범을 따르는 것은 납득이 되지만 이미 소천한 그들에게 나의 기도를 전달해주기를 구하는 것 자체, 즉 전구교리 자체가 개신교로서는 에큐메니칼적 관점에서도 이러한 중보자 역할은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99] 그럴만한게 성모공경을 하는 성공회루터교가 소수 교파다. 루터교가 오리지널 신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홍콩싱가포르영국령이었던 관계로 루터교와 성공회가 사실 더 많다. 웨일스가 극성 루터교 지방이고 성공회는 잉글랜드의 국교이기 때문. 장로교도 예장통합처럼 스코틀랜드계의 융통성 있는 개신교라 복음주의지 근본주의는 아니다.[100] 이들은 가톨릭과의 교류나 대화 같은 것을 가톨릭 세력에 의해 순교당한 프로테스탄트들에 대한 배반으로 보기에(단순한 배반이 아니라 신성모독급의 배반으로) 이들은 다른 개신교 교단(에큐메니컬 계열)에 비해서 천주교를 배척하려는 정서가 더 강하다.[101] 대한민국 기준으로 성공회, 감리교, 예장통합, 기장 등으로 한국교회협의회 회원들이다. 이 중 성공회는 성모 신심도 그럭저럭 남아있고 묵주도 있다![102] 굳이 비신앙인의 구원 가능성을 얘기하자면 가톨릭 신앙을 가지지 '못한' 착한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까지 부정하지는 않으나, 이러한 구원 '가능성'은 가톨릭 교회에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에 비해 매우 힘들다고 본다. <여기에 물이 있다>같은, 신앙 초심자들에게 특화된 유명한 가톨릭 교리해설서 등에서도 확실한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와 가톨릭 교회에 대한 믿음이 없이 양심만으로 구원의 가능성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다는 점을 강조한다.[103] 참고로 dulia와 cult는 둘 다 공경으로 번역된다. dulia는 여기서 언급한 성인 공경을 의미하며, cult는 하느님에게도 바칠 수 있는 것이다.(성체 공경이라고 할때의 그 공경이 cult이다) 성인에 대한 cult는 cultus라고 주로 쓴다.[104] 대개 사극에서 수렴청정하는 대왕대비나 대비는 구렁이 같은 대소신료들로부터 어린 왕을 보호하기 위해 강한 이미지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105] 예수회 선교사제들의 일반적 인식은 다음을 근거로 한다. <왜란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일본과 조선 인식 - 순찰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의 일본 방문을 중심으로 ->,교회사 연구 제49, 2016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김혜경(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강의전담교수)[106] 1587년에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다.[107] 최상단의 비판 기사에 나온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당시는 아직 주교가 아니었고 신부였다.[108] 대표적인 저술로 <영원토록 당신 사랑 노래하리라>)[109] 많은 가르침을 남긴 학자[110] 한국어판 번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윤을수 라우렌시오 신부가 했다. 윤 신부는 인보성체수녀회 창립자이자 한국 천주교 최초의 박사 신부이며,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제2대 학장을 지냈다.[111] 교세가 급격히 확장된 90년대 이전에 지어진 성당은 "천주교 XX 교회" 라는 식으로 명판이 붙어 있는 데가 많고, 이후 지어진 곳은 주로 "천주교 XX성당"이나 "XX성당" 같은 명판을 달고 있다.[112] 성당 이름은 행정구역명을 따라 짓는 것이 원칙이다. 다른 지역에 같거나 비슷한 이름인 성당이 이미 있을 경우, "오금동 성 요셉 성당"처럼 주보성인의 이름을 넣거나 "수리동성당" 이라고 행정구역 명까지 넣어서 다르게 짓는다. [113] 단, 성공회의 경우 주교좌가 있는 성당을 cathedral라 한다[114] 예를 들면 죽기 직전이라면 어느 신부에게든지 회개하고 파문을 철회받아 교회로 돌아올 수 있다.[115] 대략 3개월 이상 교육 과정[116] 조선시대 유교 제사에서 5대째에 신주를 불태웠던 이유는, 유학자들이 영혼이 사후 120년(4대) 이후에는 자연스레 소멸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기독교 종파인 천주교는 신주를 우상숭배라 보고 영혼불멸을 믿기 때문에, 성리학 사회에서 가치관이 양립하기가 힘들 수밖에.[117]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대 가톨릭 교회는 진화론 등등 자연과학의 영역에 대하여 교회가 인정한다거나 불허한다거나 하는 식의 입장은 표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화론을 어떻게 생각하던지간에 그건 신자 개개인의 생각에 맡기고, 다만 "진화론이 교회와 모순이 있는건 아니다"고 오해할 여지를 설명해줄 뿐이다. 쉽게 말해서 철학자가 자연과학에 대하여 인정을 하네 마네를 논할 자격이 없듯이, 성직자 역시도 그러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영혼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역시도, 자연과학을 거슬러 주장을 했다기보다는 자연과학이 다루지 않는 영역에 대하여 종교적 믿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봐야한다.[118] 수도 사제는 목사들처럼 몇십 년 동안 한 지역에 자리잡는 경우가 있으나,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제는 교구 사제이다.[119] 가톨릭 관련 서적들은 원칙적으로 교황청/주교회의/개별 교구의 검열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런 검열을 통과한 책들은 imprimatur를 받게 되는데, 이런 책은 가톨릭 신자가 안심해도 좋다.[120] 물론 개신교 스타일에도 단점이 존재하는데, 목사들은 월급쟁이가 아니므로 자기 생계는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때문에 돈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흑화에 취약하다. 게다가 개념 제대로 박힌 사람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목사 때려치우는 경우도 많다. [121] 영국 내 가톨릭 신자 수와 냉담자를 뺀 성공회 신자(실질적으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성공회 신자) 수가 비슷비슷하다고 한다.[122] 지하교회 주교들.[123] 애국회 소속이지만 교황과의 친교가 이루어져 교회법적 관점에서도 합법적인 주교들.[124] 애국회 소속이며 교황과의 온전한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주교들[125] 위키의 편집자가 아니라 기사 편집자의 주석[126] 대한민국, 중국, 대만, 마카오, 홍콩, 일본, 미얀마, 동티모르, 베트남, 베네수엘라, 스페인 도미니코회가 소속되어 있다. 기독교 비율 상 실제로는 대한민국, 홍콩, 마카오, 동티모르만 아시아에서 제대로 활동한다. 미얀마나 일본은 가톨릭이 극소수이고 중국대륙은 정상적 로마 교황청의 수위권 내에 있지 않다.[127] 사실 굉장히 성경적인 내용이다. 사도들이 악마를 쫓아냈다는 기록이 신약 여기저기 나와있기 때문.[128] 남용될 때의 폐해도 폐해지만, 장엄구마식은 묵주기도로 하는 구마가도나 그 외 여타 구마기도와 달리 엄연히 전례의 형식을 갖춘 "전례"이다. 장엄구마예식서 또한 각종 전례예식서를 모아놓은 로마 예식서에 포함되어 있다. 따리서 본질적으로 그 권한이 사제에게만 부여된 것은 본질적으로 당연한 것이다.[129] 물론 스페인 내전 이전 때부터 공화정부가 성직자들과 신자들을 학살하는 경우도 있는 등 가톨릭 교회를 강력하게 탄압해서 내전 당시에 프랑코 편에 선 것은 어쩔 수 없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스페인 가톨릭에서 프랑코 정권에 대해 아주 지지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바스크 지방의 가톨릭 교회는 스페인 내전 때부터 오히려 가톨릭 교회를 탄압한 공화전선의 편이었고, 다른 스페인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들도 프랑코 집권 이후에는 종종 몇몇 성직자들이 쓴 소리를 하고 프랑코의 독재 통치에 간접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프랑코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는 했다. 가톨릭의 수호자라고 프랑코 스스로가 떠든 바람에 이들을 대놓고 탄압은 못했다. 그리고 프랑코가 늙어 죽어가던 집권 말기 땐 결국 스페인 가톨릭 주요 성직자들까지도 프랑코의 독재에 불만을 드러냈다. # 반공정책을 펴고 가톨릭을 수호했다고 하지만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 프랑코의 강압적이고 비상식적인 독재 통치에 스페인 가톨릭 교회조차도 결국 엄청난 염증과 답답함을 느꼈다는 얘기.[130]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8대 교구장.[131] 링크된 법보신문은 친 주류종단 성향의 불교 언론이다. 참고로 박문수 씨 글에서는 불교포커스를 조계종에서 훼종 언론으로 분류하는 데 대해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지만, 불교포커스와 같은 진보 성향이면서 불교포커스보다 더 강력하게 조계종단 비판을 하던 불교닷컴의 경우는 소송까지 갔다가 법정에서 패소해 배상한 경력이 있고, 이런 불교계 진보 언론들은 동국대학교/사건사고 항목의 2015 총장 선거 종단 개입 사태와 관련해 물의가 드러난 몇몇 학생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싸고 돈 전적도 있다. 물론 사건사고 항목에 나오듯이, 그렇다고 조계종이 잘한 건 건 아니다. 당장 조계종만 해도 선학원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겨 놓고도 기사 제목을 빌리자면 백기투항하는 행위를 보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보이고 있다.[132] <만들어진 신>에서는 재미있는 설문이 나온다. 어떤 대통령 후보자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충분한 능력과 자격은 갖추었지만 흑인이거나, 여성이거나, 가톨릭 신자이거나, 유대인이거나, 동성애자이거나, 무신론자일 경우, 그에게 투표하겠냐고 묻는 설문이었다. 여기서 가장 부정적인 응답이 나온 파트는 무신론자인데, '가톨릭'이 여기에 후보로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미국 주류사회에서 가톨릭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멀지 않은 과거인 1960년대만 해도 JFK가 가톨릭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였을 지경이니.[133] 비록 히스패닉 인구 중 개신교 개종 비율이 높아진다고는 하지만[134] 한동일 법으로 읽는 유럽사 참조-유럽에서 교회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당연히 성직자들이었고 그에 맞는 성직자 복장을 입었는데 나중에 교회법을 이외의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교수 등)도 성직자와 같은 복장을 따라했다. 또 현재 주교는 한 지역구의 종교지도자 정도이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현재의 도지사+지방법원장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다-레미제라블을 보면 촛대 등을 훔친 혐의로 장발장을 잡아 온 헌병들이 미리엘 주교에게 고위관료를 대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장면이 있다.[135] 한국 천주교회는 두 교회의 세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므로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물론 교리교육은 다시 받아야 한다.[136] 시작은 개신교 계열의 수도원이었으나, 한국에선 주로 가톨릭에 의해 보급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