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모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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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궁 배치도인 〈경모궁도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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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모궁 터 |
원래 이 자리에는 창경궁 동쪽에 딸린 정원인 함춘원(含春苑)이 있었다. 성종은 1484년(성종 15년)에 태종이 상왕이 되어 머물렀던 수강궁 터에 창경궁을 짓고, 창경궁의 안산(案山)인 마두봉(馬頭峰)을 보호하라는 풍수지리에 따라 이 곳에 나무를 심고 담장을 둘러 사람의 출입을 금했다. 연산군 때에는 함춘원 밖에 별정군을 배치하였고, 담을 성곽처럼 만들었으며 대문을 크게 지었다. 그뿐만 아니라 함춘원의 동쪽에 있는 낙산까지 있던 민가를 전부 철거한 뒤 기묘한 화초를 심기도 했다. 그러나 연산군이 쫓겨난 후 집권한 중종은 백성들을 다시 돌아와 살게 했다. 인조 때에는 부지 절반을 궁궐 내 가축을 담당하는 관청인 사복시(司僕寺)에 나눠주었다. 이후 140여 년간 말을 풀어 기르는 목장으로 사용했다.
1762년(영조 38년) 임오화변으로 사도세자가 사망하였다. 이후 한성부 북부 순화방에 사당인 수은묘(垂恩廟)가 마련되었다. 2년 뒤 1764년(영조 40년)에 수은묘를 함춘원에 옮겨 지었고, 1776년(정조 즉위년) 정조가 즉위 후 10일 만에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 묘를 ‘영우원’, 사당을 ‘경모궁’으로 올려 이때부터 경모궁으로 불렸다. 이후 건물을 고쳐지었으며 직접 편액을 써 달았다. 경모궁 서쪽에 일첨문을, 창경궁 동북쪽에 월근문을 내어 서로 통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경모궁에 자주 들러 참배했으며 창경궁에는 친아버지의 사당을 바라볼 수 있는 통명전 뒤 언덕에 자경전을 지어 생모 혜경궁 홍씨를 모셨다.[2]
1785년(정조 9년) 8월에 경모궁과 사도세자 원묘(園墓)에 대한 의식절차를 적은 《궁원의(宮園儀)》를 완성하는 등 이 일대를 정비하였고 1791년(정조 15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효심으로 자신의 어진을 현륭원과 경모궁 망묘루에 걸어두었다.
1785년(정조 9년) 8월에 경모궁과 사도세자 원묘(園墓)에 대한 의식절차를 적은 《궁원의(宮園儀)》를 완성하는 등 이 일대를 정비하였고 1791년(정조 15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효심으로 자신의 어진을 현륭원과 경모궁 망묘루에 걸어두었다.
정조의 후손들인 후대 왕들도 이곳을 중요하게 생각해 순조, 헌종, 철종, 고종 등이 이곳에서 배례를 거행하기도 했다. 1839년(헌종 5년) 12월에 봉안각(奉安閣)이 소실되었으나 곧 중건되었고 이후 이곳에 순조, 익종, 헌종, 철종의 어진이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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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락정 현판 |
1899년(광무 3년) 사도세자가 족보상 현손자가 되는 고종에 의해 장종대왕을 거쳐 장조의황제로 추존되었다. 임금의 신분이 되었으니 신위도 종묘로 옮겨져 그곳에서 제사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경모궁의 의미가 없어지자 경모궁의 망묘루를 영빈 이씨[3]의 사당인 선희궁 내로 옮겨 짓고 이름을 ‘평락정’으로 고쳤으며 망묘루에 봉안했던 다섯 임금의 어진 또한 같이 옮겼다.
이렇게 경모궁이 빈 공간이 되자 1900년(광무 4년) 지금의 충무로 쪽에 있던 어진 봉안소 영희전을 이곳으로 옮기고 영희전에 봉안했던 태조, 세조, 원종, 숙종, 영조, 순조의 영정을 옮겼다. 이때 제작한 《영희전영건도감의궤》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렇게 경모궁이 빈 공간이 되자 1900년(광무 4년) 지금의 충무로 쪽에 있던 어진 봉안소 영희전을 이곳으로 옮기고 영희전에 봉안했던 태조, 세조, 원종, 숙종, 영조, 순조의 영정을 옮겼다. 이때 제작한 《영희전영건도감의궤》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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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6월 21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경모궁 철거 기사 | 현재 경모궁 자리에 들어선 서울대학교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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