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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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정의 모습[1] |
1418년(태종 18년)에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난 태종이 그 해 9월에 이궁으로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419년(세종 1년) 2월에 완공했다.[2] 변계량이 지은 《낙천정기(樂天亭記)》에 의하면 태종이 바람을 피해 언덕의 간방(艮方) 모퉁이에 이궁을 짓도록 했고, 언덕 위에 정자를 짓도록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변계량이 지은 《낙천정기》는 판한성부사 권홍이 쓰고 판각하여 정자에 걸었다고 한다.
문종과 중종 대에 수리했다. 인조 연간까지는 기록에 보이나 그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보아서는 낙천정 또한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자연스레 무너져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낙천정 터는 1991년 12월 24일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받았으나, 2009년 10월 22일에 지정 해제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정자는 1991년에 신축한 것이며 정확한 고증 없이 조선 전기 양식이 아닌 모습으로 지은 것인 데다가, 각종 사료에 남아 있는 낙천정의 원위치인 대산(臺山)이란 산의 정상과도 대략 200m 이상 떨어진 곳에 세운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문화재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였다.[3]
문종과 중종 대에 수리했다. 인조 연간까지는 기록에 보이나 그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보아서는 낙천정 또한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다가 자연스레 무너져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낙천정 터는 1991년 12월 24일에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받았으나, 2009년 10월 22일에 지정 해제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정자는 1991년에 신축한 것이며 정확한 고증 없이 조선 전기 양식이 아닌 모습으로 지은 것인 데다가, 각종 사료에 남아 있는 낙천정의 원위치인 대산(臺山)이란 산의 정상과도 대략 200m 이상 떨어진 곳에 세운 것이라는 점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문화재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였다.[3]
현재 낙천정 건물은 문화재 지정이 해제 되었지만, 주변 지명은 예전과 같이 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낙천정나들목, 낙천정지하도 등이 있다.
⠀[1~4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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