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휴정
최근 수정 시각:
⠀[1~50호]⠀⠀[51~100호]⠀⠀[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 |
![]() |
조선 전기의 문신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1498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후 독서와 사색을 하기 위해 1501년에 지었다. 김계행은 49세의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50세부터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나이가 많은 급제자를 우대하는 정책으로 벼슬길이 잘 풀려 사헌부 감찰,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 대사헌, 대사간까지 올랐다. 그러나 1498년(연산군 4) 대사간 재임 중 연산군의 실정을 지적하는 의견이 수용되지 않자 바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그 아래 떨어지는 폭포가[3] 장관을 이룬다. 만휴정이라는 이름은 ‘만년(晩年)에 쉬는 정자’라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며 이 정자 아래 계곡 바위에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란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보백당(김계행)이 만년에 쉬는 정자와 산수의 경치’라는 의미이다. 또한 만휴정의 현판에는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우리 가문에 보물은 없으나,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김계행의 호이자 집의 이름인 보백당은 여기서 따왔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그 아래 떨어지는 폭포가[3] 장관을 이룬다. 만휴정이라는 이름은 ‘만년(晩年)에 쉬는 정자’라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며 이 정자 아래 계곡 바위에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란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보백당(김계행)이 만년에 쉬는 정자와 산수의 경치’라는 의미이다. 또한 만휴정의 현판에는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우리 가문에 보물은 없으나,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이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김계행의 호이자 집의 이름인 보백당은 여기서 따왔다.
![]() |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 중 하나였으며 이 드라마 덕분에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6회 마지막 장면에서 유진 초이가 고애신에게 "합시다, 러브. 나랑. 나랑 같이."라고 말한 외나무 다리가 바로 이곳이다.
안동에서도 최남단에 있어 안동의 다른 관광지들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도 서산영덕고속도로 동안동IC, 35번 국도 근처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은 괜찮은 편이다. 만휴정 주변은 좁은 길이기 때문에 마을 입구에 마련된 임시 주차장에서 약 500m를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시내버스로는 610번이 1일 4회 경유하며,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묵계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안동에서도 최남단에 있어 안동의 다른 관광지들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도 서산영덕고속도로 동안동IC, 35번 국도 근처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은 괜찮은 편이다. 만휴정 주변은 좁은 길이기 때문에 마을 입구에 마련된 임시 주차장에서 약 500m를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시내버스로는 610번이 1일 4회 경유하며,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묵계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 |
화재가 지나간 직후의 만휴정. 방염포가 부착돼 있다 |
2025년 3월 25일, 2025년 의성발 경북 산불로 인해 전소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대일 경북도의원이 SNS에 게시한 사진에는 불이 붙는 것을 막기 위한 방염포 등이 부착돼 있었다. #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안동 만휴정 원림(명승)이 소나무 그을림 외 피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25일 안동시와 경북 북부돌봄센터, 소방서와 합동으로 만휴정에 방염포를 도포했고, 원림에 살수 작업을 진행했다고 해 천만다행으로 산불이 비껴간 것으로 보인다. # 무사한 것을 본 안동 문화재 담당직원들은 현장에서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2025년 9월 25일부터 재개방했다.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김계행은 조선 전기의 청렴결백한 관리로 뽑혔던 분으로, ‘내 집에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 뿐이다.’라는 가르침을 남겼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앞면을 마루 형식으로 개방하여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양쪽에는 온돌방을 두어 학문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16세기 초에 지은 이 정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그 아래 떨어지는 폭포는 장관을 이룬다. 정자 아래 바위에는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란 큰 글씨를 새겨 놓았다. |
만휴정(晩休亭)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은거하며 경영한 쌍청헌(雙淸軒) 터에 위치한 정자로, 영조 46년(1770) 동도(東道) 김덕일(金德一, 1734∼1794)이 중수하였다. 안동 만휴정 원림은 만휴정과 정자 주변 계곡, 폭포 등의 산림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명승이다. |
[ 펼치기 · 접기 ]
| ||||||||||||||||||||||||||||||||||||||||||||||||||||||||||||||||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