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릿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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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대로 누릿재 三南大路 누릿岾 Nuridjae Pass on Samnamdaero Path | |
소재지 | |
분류 | 자연유산 / 명승 / 역사문화경관 |
수량/면적 | 22필지, 95,135㎡ |
소유자 | 산*** |
관리자 | |
지정연도 | 2021-12-08 |
조선 시대의 6대 대로 중 한양과 해남을 연결하는 삼남대로(해남로)의 일부로, 삼남대로의 마지막 고개였다고 볼 수 있다. 삼남대로는 제주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삼남대로의 끝에 위치한 강진이나 해남이 제주도로 향하는 기착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주도로 유배를 가는 사람들은 경로상 누릿재를 지났으며, 정약용과 정약전이 강진으로 유배 올 때 누릿재를 지났다고 전해진다.
월출산 남동쪽 자락, 풀치(불티재) 서쪽에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서 바라본 월출산 기암괴석의 모습이 수려하다. 또한 길 곳곳에 서낭당 터와 돌무더기 등, 민속적인 풍경도 볼 수 있다. 또한 누릿재는 황사출림(黃蛇出林)[1]의 명당이라고도 전해진다.
누릿재라는 이름은 황토가 많아 땅이 불그스름한 노란색을 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며, 때문에 황토고개, 노루재, 황치(黃峙), 황현(黃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강진과 영암을 잇는 주요한 길로서 기능했으나, 누릿재에서 멀지 않은 풀치에 길과 터널이 생기면서 잊혀진 옛길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 생태 탐방로 프로젝트'를 통해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갈 때 사용하였던 길로 알려지면서 문화 탐방로로 개발되었으며, 2021년에 길에 우거진 녹음과 서낭당 등의 민속적 풍경, 길에서 보이는 월출산의 경관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의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월출산 남동쪽 자락, 풀치(불티재) 서쪽에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서 바라본 월출산 기암괴석의 모습이 수려하다. 또한 길 곳곳에 서낭당 터와 돌무더기 등, 민속적인 풍경도 볼 수 있다. 또한 누릿재는 황사출림(黃蛇出林)[1]의 명당이라고도 전해진다.
누릿재라는 이름은 황토가 많아 땅이 불그스름한 노란색을 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며, 때문에 황토고개, 노루재, 황치(黃峙), 황현(黃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강진과 영암을 잇는 주요한 길로서 기능했으나, 누릿재에서 멀지 않은 풀치에 길과 터널이 생기면서 잊혀진 옛길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 생태 탐방로 프로젝트'를 통해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갈 때 사용하였던 길로 알려지면서 문화 탐방로로 개발되었으며, 2021년에 길에 우거진 녹음과 서낭당 등의 민속적 풍경, 길에서 보이는 월출산의 경관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의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영암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삼남대로의 중요한 고갯길로 정약용의 다양한 시와 글, 많은 문사들의 방문기록이 내려오는 등 역사적 가치가 크고, 곳곳에 위치한 서낭당 터, 돌무더기 등이 남아 있어 다양한 옛길 문화를 보여주는 등 민속적 가치 또한 뛰어난 명승지임 |
[1] '누런 뱀이 숲을 헤치고 기어 나오는 형상'을 뜻하며, 풍수지리에서 산줄기나 언덕의 모양이 길게 뻗어 내리며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형국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는 단순히 모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형이 품고 있는 강한 생명력과 혈(穴)의 자리를 찾아내는 핵심적인 풍수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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