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최근 수정 시각: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대한민국, 북한/행정구역, 지리 관련 정보

파일:나무위키+하위문서.png   하위 문서: 황해남도, 황해북도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의 지역구분

경기

호서

호남

영남

관동*

해서

관서

관북

*관동지방영서영동으로 나뉘는 경우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규모가 작은 특별자치단체.

파일:Flag_of_Hwanghae-do_(ROK).jpg

황해도
黃海道 / Hwanghae-do

소속국가

대한민국

면적

16,743km2

하위 행정구역

3시 17군

시간대

UTC+8:30

인구

약 400만명(추측)

광복 당시 도청소재지

해주시 북본동

도지사

한상순(관선 14대)

별칭

해서(海西), 패서(浿西)[1]


1. 개요2. 역사3. 기후4. 지역 특성
4.1. 전통적 지역구분
5. 산업
5.1. 1차 산업5.2. 2차 산업
6. 교통7. 특산물8. 관광지9. 출신인물
9.1. 실향민
10. 남북통일 후 전망11.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1. 개요[편집]

한반도 중서부에 있는 도(道). 이북 5도 중 하나. 황주(黃州)와 해주(海州)에서 그 이름을 땄다.[2] 남쪽에 경기도, 동쪽에 강원도함경남도, 북쪽에 평안남도와 접경하고 있다. 사실상 전 지역이 북한 독재 정권의 지배하에 있으며, 현재 서해 5도의 경우 광복 전엔 황해도 소속이었으나 38선이 그어진 후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에 의하여 1945년 경기도 옹진군을 거쳐 1995년부턴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편제되어 있다.[3] 2008년 추정 인구는 대략 400만명으로 전라북도와 인구밀도가 비슷했다.

2. 역사[편집]

전설에 의하면 산과 바다, 호수, 골짜기 등을 만든 창조신 마고할미단군이 거느린 박달족이 밀려와서 다투다가 단군이 사람들을 잘 보살피는 것을 보고 물러났다고 한다. 그 단군이 천여년 다스리다가 기자가 오자 단군이 기자에게 선양하고 구월산으로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4] 이런 전설로 인해 구월산이 있던 황해도를 조선시대에는 단군의 고적지로 여겼다.

어째 평양서울, 개성 등 당시의 대도시에 끼여서 치이는 경향이 있다. 근초고왕고국원왕의 대결이라든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도 고구려계 호족들의 중심지인 패서 지역으로 자리매김했고 고려가 들어선 이후엔 개성의 주변지(서해도)였다. 때문에 국사 교과서 등에서는 거의 궁예의 점령지, 임꺽정의 활동지 등으로 경기도 등과 묶여서 나올 때만 설명된다. 기껏해야 방곡령 정도만 좀 유명하고[5] 마는 정도. 그러니까 존재감이 별로 없다. 조금 더 보태자면 임진왜란 당시 연안대첩이 일어났던 곳이고, 김구가 여기서 동학군의 접주를 맡았고, 안중근 일가가 여기서 지주로 살았다는 정도.

하지만 나말려초에는 이 지역의 호족들이 주축이 되어 고려를 건국하였고, 태조 왕건후삼국 통일에 가장 많은 공신을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고려가 통일한 이후 초창기에는 정계의 패권을 잡은 지역이었으며, 광종 대 호족 숙청으로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이 지역 가문들이 고려시대를 내내 휘어잡았다.

행정구역으로서의 연혁으로 통일신라기엔 한산주 소속이었고, 고려 성종10도 체제에서 관내도가 되었다가 현종5도 양계 중 서해도로 개편되었다. 문종경기 지역이 늘어나면서 동부 지역을 뺏긴다. 이는 공양왕 때까지 이어진다. 조선이 개국한 후에는 8도제서 명칭이 풍해도로 바뀌었다가, 태종 대에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 후 현재의 구역과 이름을 얻게 되었다. 광해군 때 명칭이 일시적으로 황연도로 바뀌었지만 인조 대에 명칭이 환원되었다.

6.25 전쟁 이전에는 옹진군연백군의 대부분, 해주시, 장연군, 벽성군의 각 일부분이 38선 이남에 위치해 남한의 실효지배 하에 있었다. 그 후 임시행정조치로 실효통치 하의 장연군과 벽성군, 해주시를 옹진군과 연백군에 편입하고, 이들을 경기도 관할로 두었다. 한때 38선 이남에 잔류한 연백, 옹진, 남벽성 지역만으로 황해도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6]현실화되었다면 중화민국 복건성의 한국 버전, 한국전쟁 휴전으로 옹진군 소속의 서해 5도[7]를 제외한 육지에 접한 전 황해도 지역이 북한 치하로 넘어간 결과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황해도 도청 소재지는 해주시 상동. 현재 북한 치하에서 황해남도, 황해북도로 갈리어 황해남도는 해주, 황해북도사리원시에 도 인민위원회(=도청)가 있다. 헌데 황남/황북은 다른 도들(평안도, 함경도 등)과 다르게 황해남도/황해북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다. 아무리 봐도 동서로 나눠놓은 것이지 남북으로 나눠놓은 게 아닌 것[8]. 황해서도/황해동도

북한에서는 소위 신천학살[9]의 현장으로 반미 교육의 중요 스팟으로 이용하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산지가 엄청나게 많은 윗동네 특성상, 황해도를 주요 곡창지대로 중요하게 여기는 듯 하다.

3. 기후[편집]

해안 지방은 황해 해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하고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기온의 교차가 커진다. 해안 지대의 연평균 기온은 10 ~ 11도인데 내륙 지방은 9 ~ 10도가 되고 연교차는 전자가 29 ~ 31도인데 비해 후자는 34도 이상이 되는 곳도 있다. 강수량은 평균 900mm 정도로서 소우지대에 속한다.

4. 지역 특성[편집]

남한과 접경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8도 중에서 특히 남한 사람들에겐 가장 존재감 없는 지역 중 하나다. 일단 북한에 있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게 당연하고, 북한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지역이 평안도, 함경도이다 보니 황해도 사투리는 물론이며, 황해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게 당연한 일.

조선 후기 황해도를 표기한 지도가 선교사들에게 서해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면서 Yellow Sea의 어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설이 있으나, 다수설은 아니다. 다만 발해, 창해와 달리 황해란 단어가 시기적으로 한참 늦게 등장한건 분명한 사실이다. 거꾸로 19세기에는 외국인들이 황해도를 황해에 인접해서 붙였다고 이해한 경우도 있었다.

북한 입장에서는 넓은 평야를 끼고 있고, 특히 덤으로 남한과 가까운 최전방 지역이기 때문에 산업 면에서나 군사 안보 면에서나 중요한 요충지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이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향신료라는 고수를 즐겨 먹는 지역이다. 60년대에 시장 채소전에 가서 『고수 주세요』라고 하면 『이분 황해도에서 오셨군』이라 할만큼 황해도 사람들은 고수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고(...)출처

4.1. 전통적 지역구분[편집]

5. 산업[편집]

5.1. 1차 산업[편집]

무엇보다도 황해도는 농업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렵다. 산지가 많은 북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평야지대가 많은 곳으로, 한반도의 No.2 평야지대인 재령평야, No.3인 연백평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 당시 황해도의 경지율은 34%로 전국 최고였다.[10] 생산량은 지금도 북한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이다.[11] 북한의 제대로 된 논농사 곡창지대란 평도 있다. 또한 광복 당시 , 겨울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 황해도였다. 또한 일교차. 연교차가 매우 크고 강수량이 적어 과일 생산에 있어서는 한반도에서 제일 적합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사과, 포도, 복숭아와 같은 과일 생산량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또한 황해바다와 접하는 지역이어서 수산업도 발달했다. 또한 동부 산악의 신계군, 수안군, 곡산군은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임업도 행해졌다. 이렇듯 땅이 기름지고 물산이 풍부해,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망했어요

5.2. 2차 산업[편집]

해주시사리원시를 중심으로 경공업이 발달했다. 이례적으로 송림시에는 옛 겐지호 제철소를 기반으로 한 제철공업이 발달했다. 옹진에는 금광, 재령군에는 철광이 있어 광업도 성행했다. 곡산군의 백년광산에서는 텅스텐이 산출된다.

안습인 게 북한 치하에서도 이렇다 할 발전소가 없다(...)

6. 교통[편집]

  • 철도

    • 경의선(京義線) : 경기도에서 예성강을 건너 황해도 금천군으로 이어진 선로는 금천, 평산, 신막, 사리원, 황주를 경유하여 평안남도로 이어졌다.

    • 토해선(土海線) : 경기도에서 예성강을 건너 황해도 연백군으로 이어진 선로는 배천, 연안, 청단을 거쳐 해주에서 종착한다.

    • 해옹선(海甕線) : 해주에서 시작하는 선로는 취야, 신강령을 거쳐 옹진에서 종착한다.

    • 사해선(沙海線) : 사리원에서 시작하는 선로는 재령을 거쳐 동해주에서 종착한다.

    • 사장선(沙長線) : 사리원에서 시작하는 선로는 재령, 신천, 송화를 거쳐 장연에서 종착한다.

    • 경의고속철도

7. 특산물[편집]

대표적인 지역 유명 음식은 해주비빔밥, 사리원냉면이 있다. 과일도 유명 특산물인데, 그 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이 황주 사과, 사리원 포도, 재령 복숭아 정도. 바다가 많기 때문에 꽃게, 바지락, 조기 등의 해산물도 유명하다고 한다.

8. 관광지[편집]

해주의 부용당, 석빙고, 사미정, 백세청풍비, 멸악산, 구월산, 장산곶, 몽금포 코끼리바위, 구미포해수욕장, 성불사, 장수산, 안악 고구려 고분, 석담구곡, 옹진온천, 배천온천, 달천온천 등이 있다.

9. 출신인물[편집]

해방정국을 주도했던 2명의 거인을 비롯해서 은근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황해도 출신이다. 다만, 분단 이후에는 존재감이 급락. 탈북자이거나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전에 출생한 인물만 추가할 것.


그 외에 황해도 출신은 아니지만 황해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으로는 양주동[14]이 있으며,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이 월남에서 피난을 와 정착한 곳이 황해도 옹진군 북면의 화산동이다. 관련 유적으로는 망국단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개성(송악) 출신의 호족이지만 패서(황해도) 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한 고려 태조 왕건도 넓게 보면 경기북부와 이 황해도와 관련이 깊다고 말할 수 있다.

9.1. 실향민[편집]

일제강점기에는 일자리를 찾아 가까운 인천광역시 일대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고 혼란한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많은 사람들이 월남하여 실향민이 되었다.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은 고향과 가까운 도서지역이나 인천광역시서울특별시 등 근방 대도시에, 멀리는 전라북도 군산시부산광역시 등지에 정착했다.[15] 그 중 인천의 경우 황해도 실향민들이 몰려와 일종의 파워그룹을 형성하여, 인천의 지역유지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천 토박이 아니면 황해도 출신의 집안이다.[16] 황해안 따라 쭉 내려오면 닿는 경기도, 충청남도의 서해안에 정착한 수도 어느정도 있다.

인천 지역 학교에서 한 반에 실향민 후손을 한두 명 정도는 볼 수 있을 정도로 수가 많다. 경기도계 실향민(개성시와 그 인근)도 꽤 있지만, 그쪽은 인천 본토보다는 강화도 쪽에 많다. 그리고 경기도계 실향민들이 가장 많은 곳은 서울이다.[17] 하지만 황해도의 인식은 개인차가 있어서, 황해도에 관심이 많아 황해도 사투리도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있고, 황해도는 단순히 조상님의 고향일 뿐 자신과는 상관 없는 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서해 5도는 논외, 거긴 원래부터 황해도였으니까. 옛날에는 인천 토박이들이 황해도 38따라지니 뭐니 하면서 지역감정도 있었지만, 지금은 황해도 실향민 1세들도 인천 사람일 정도로 인천에 살아온지라.

이들은 또 알게 모르게 인천 특유의 말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0. 남북통일 후 전망[편집]

서울특별시의 관점에서 봤을 때 평양직할시를 가기 전 거치는 곳이며, 비교적 완만한 평야지대를 끼고 있기 때문에 발전이 용이하다고 볼 수 있다. 수도권에서의 거리도 충청도와 비슷하기 때문에 경기 북부지역이 발전하면서, 옹진군이나 연백군 같은 황해도 남부지역이 같이 발전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특히 경의고속도로와 경의선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사리원시해주시를 위협하는 황해도 제1의 도시로 발전 할 것이다. 이미 인구수에서 해주를 추월하긴 했지만.

현재 전라북도대전광역시광주광역시에 너무 가까워 끼인 것처럼, 황해도도 제대로 된 지역발전정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남북통일 이후에도 수도의 기능을 유지할 서울(및 그 영향을 받는 개성시)과 평양에 끼어 상대적으로 발전이 지체될 가능성도 크다. 보통 지역 발전은 지역의 중심지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평안도가 대중국 최전선이 될 일은 없다.[18] 어차피 한국중국은 국교를 맺은 엄연한 수교 국가들이며 미국의 군사동맹국인 한국을 굳이 중국이 쳐들어올 일은 없다. 미군 주둔이 없는 동유럽 국가들과는 아주 다르다. 되려 평안도함경도는 국경 무역 등으로 특수를 누리면 누리지 절대 군사위협을 겪진 않는다. 현실적으로도 한국 정부러시아중국미국과의 동맹 없이 혼자 막을 힘 따위는 없고 대결을 원치 않는다.

문제는 서울 수도권의 포화란 것이며, 서울 수도권의 배후지로 가까운 황해도가 선정되어 향후 도시 연담화가 될 서울-평양권의 확장에 있어 새로운 대안으로 선정되어 대발전될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

11.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편집]

http://sphotos-a.ak.fbcdn.net/hphotos-ak-ash3/157061_135557793167340_4636206_n.jpg http://sphotos-g.ak.fbcdn.net/hphotos-ak-ash3/65892_135557783167341_4241803_n.jpg

좌측이 광복 직후, 우측이 현 북한에서 사용하는 행정구역. 표에서 기록하는 행정단위의 이동은 면 단위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면적의 단위는 km2이며 소수점 이하는 반올림하였다.

황해도의 행정구역 변화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번호

시 / 군

면적

번호

시 / 군

면적

참고

황해도

A

송화군

723

황해남도

A

과일군

324

B

송화군

193

H

삼천군

353

[19]

황해도

B

장연군

1,073

황해남도

C

장연군

396

D

룡연군

463

J

태탄군

342

[20]

황해도

C

은률군

467

황해남도

E

은률군

413

[21]

황해도

D

안악군

851

황해남도

F

은천군

454

G

안악군

386

[22]

황해도

E

신천군

792

황해남도

[23]

H

삼천군

354

[24]

I

신천군

490

 

황해도

F

벽성군

1,564

황해남도

[25]

J

태탄군

342

[26]

K

벽성군

449

L

신원군

479

[27]

M

해주시

206

[28]

N

청단군

489

[29]

P

강령군

506

[30]

황해도

G

옹진군

1,062

황해남도

[31]

O

옹진군

639

황해도

H

재령군

740

황해남도

Q

재령군

328

황해북도

T

은파군

378

[32]

황해도

I

황주군

874

황해북도

R

황주군

517

U

연탄군

544

[33]

송림시

65

[34]

황해도

J

봉산군

842

황해북도

S

봉산군

436

[35]

T

은파군

378

[36]

황해도

K

서흥군

914

황해북도

U

연탄군

544

[37]

V

서흥군

566

W

린산군

503

[38]

황해도

L

평산군

1,353

황해북도

[39]

황해남도

X

봉천군

493

[40]

황해북도

Y

평산군

545

황해도

M

연백군

936

황해남도

N

청단군

489

[41]

Z

연안군

479

[42]

a

배천군

475

[43]

황해도

N

수안군

1,215

황해북도

U

연탄군

544

[44]

b

연산군

547

[45]

c

수안군

666

황해도

O

곡산군

1,854

황해북도

d

신평군

1,075

[46]

e

곡산군

521

 

황해도

P

신계군

820

황해북도

[47]

f

신계군

722

황해도

Q

금천군

959

황해남도

X

봉천군

493

[48]

황해북도

h

토산군

422

[49]

g

금천군

498

 

경기도

R

개풍군

744

황해북도

[50]

i

개성시

179

[51]

j

개풍군

263

경기도

S

장단군

724

황해북도

k

장풍군

542

경기도

T

연천군

696

평안남도

U

중화군

909

황해북도

l

중화군

232

m

상원군

490

평안남도

V

강동군

668

황해북도

n

승호군

159


[1] 한국의 패강 서쪽에 있는 지방이라 이렇게 불리운다.[2] 많은 사람들이 황해에 접해 있어서 황해도인 줄 안다. 안습 근데 한자론 똑같이 黃海라는 게 함정 참고로 고려시대엔 서해도라고 불렸다.[3] 해방 이전까지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옹진군 중 백령면, 대청면, 연평면이 황해도 관할이었다.[4] 이런 류의 전설들이 여럿인데 마고할미는 모계사회, 단군은 제정일치의 샤먼, 무당, 기자는 새로운 세력 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중국 상나라 기자는 동쪽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5] 함경도 방곡령은 을 주 대상으로 하였다.[6] 면적은 제주도(道)보다 좀 넓은 정도였을 것이다. 다만 임시 도청이라고는 해도 옹진과 연백 중에서 어디를 중심지로 할지가 어려웠을 듯.[7]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대연평도, 소연평도.[8] 굳이 따지자면 황북황남보단 약간 북쪽에 위치한다.[9] 1950년 10월 유엔군대한민국 국군이 북진할 당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미군 중대장 해리슨의 지시로 3만 5천명이 학살당한 사건이라고 하나, 이는 북한의 역사왜곡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신천군에서 궐기한 반공청년단, 반공유격대 및 보안대가 학살의 주체였다는 것이 통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10] 남한 전국의 경지율은 평균 17%[11] 나머지 생산량의 대부분도 평안남도평안북도 해안 일대에 걸쳐있다. 경의선 라인이 아니면 쌀 재배는 거의 언감생심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12] 후에 친일인사로 변절하여 흑역사를 남겼다.[13] 휴전협정 이후 출생자라 취소선 처리. 기형도 출생 당시 연평도는 경기도 옹진군 소속이었다.[14] 경기도 개성시 출신. 유년을 황해도 장연군에서 보냈다.[15] 대부분 북한지역이던 황해도는 한국전쟁 당시 후방이라서 피난할 필요가 없었다가 국군의 북진 후 다시 후퇴할 무렵 남쪽으로 피난한 경우가 많으며 해안지역이 많아 육로로 피난하기보다는 미군의 함선을 써 피난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서해에 면한 큰 항구도시인 군산에 정착한 경우가 제법 많을 수밖에. 군산에 정착한 황해도 실향민 부모를 둔 유명인으로는 조계현KIA 타이거즈 단장이 있다. 부산은 실향민들의 집결지 역할을 하다보니 황해도 출신도 많이 정착했다.[16] 사실 실향민이 피난하여 정착한 지역에서 파워그룹을 이룬 경우는 많다. 대표적으로 김화라든가.[17] 당시 파주는 한창 전쟁터였던 까닭에 피난민 수가 많지 않다.[18] 당연히 국경도시인 신의주 지역은 대중무역 같은 걸로 상당히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19] 남부 2개의 면만 이동[20] 동부 2개의 면만 이동[21] 일부 면적이 송화군 소속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면적이 줄어든 것.[22] 동남부 4개의 면만 이동[23] 북부 3개의 면이 이동[24] 서부 3개의 면이 이동[25] 북부 1개의 면만 이동[26] 서부 2개의 면만 이동[27] 동부 5개의 면이 이동[28] 중부 1개의 면과 2개 면 일부가 이동. 구 면적은 불과 14.52㎢였다.[29] 동부 5개의 면과 2개 면 일부가 이동[30] 남부 3개의 면이 이동[31] 동부 4개의 면이 이동[32] 동부 1개의 면만 이동[33] 동부 3개의 면이 이동[34] 겸이포읍이 승격됨. 지도에서 R로 표시된 부분 안쪽의 표시되지 않은 부분이 송림시.[35] 각 봉산군 구역 내에 있는 조그만 도시가 사리원시이다. 현재 면적 188㎢.[36] 남부 5개의 면이 이동[37] 북부 3개의 면이 이동[38] 서남부 1개의 면만 이동[39] 북서부 4개의 면이 이동[40] 남부 5개의 면이 이동[41] 북서부 2개의 면과 1개 면 일부가 이동[42] 중부 8개의 면이 이동[43] 동부 9개의 면이 이동[44] 서부 1개의 면만 이동[45] 북부 5개의 면이 이동[46] 북부 5개의 면이 이동[47] 동북부 1개의 면만 이동[48] 서부 2개의 면이 이동[49] 동부 6개의 면이 이동[50] 북부 1개의 면만 이동[51] 중부 1개, 남부 1개의 면이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