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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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 / Jeolla Province

1. 개요2. 역사
2.1. 사료
3. 지리4. 대학5. 인구 유출과 경기 침체6. 이모저모7. 정치8. 같이보기9. 둘러보기 틀

1. 개요[편집]

파일:전라도 지도.png
전라도 지도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3개 광역자치단체들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 전라(全羅)도는 고려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글자를 따서 부르던 명칭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인구는 2018년 현재 광주광역시를 제외하면 373만명, 전체로 보면 약 530만명 정도이다. 다른 말로는 호남(湖南)이라고도 한다. 호남이라는 명칭은 한반도 최초의 인공 저수지라 불리는 김제시 벽골제의 남쪽이라는 설, 금강의 옛 이름인 호강(湖江)의 남쪽이라는 설, 심지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소정방이 '중국동정호 남쪽 지방과 같이 기후가 온화하고 농사가 주업인 유사한 곳'이라 하여 전라도 지방을 호남 지방이라 칭했다는 설 등이 있다.

조선 8도상 전라도를 현재의 행정구역에 대응시켜 보면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가 해당되고, 또 1895년 이전의 구획을 기준으로 하면 거기에 충청남도 금산군(1962년까지 전라북도 산하[1])까지 해당된다. 현대에는 '전라도'라는 말이 행정구역적 개념보다는 조선 8도에 따른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지리개념에 가까운데, 이런 의미로 쓸 때도 대개 제주도와 금산군을 제외하는 경우가 99%이다.[2] 즉 현행 행정구역상 전라남도·전라북도, 광주광역시만 전라도 또는 호남이라고 부른다는 것.

2. 역사[편집]


어원은 고려 시대 성종이 설치한 12목 중 전주목과 나주목에서 유래하며 현재의 전라도 형태로 묶은 것은 고려시대 현종5도 양계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참고로 당시 지정된 도(道) 단위 행정명 중 현재까지 명칭이 유지중인 지역은 경상도와 이곳 단 둘 뿐이다. 다만 일시적으로 영조 시대 나주에서 일어난 반역으로 전광도(全光道)라는 명칭으로 바뀐 적은 있었다.# 조선시대에 특정 고을에서 역모가 있으면 그 고을의 등급을 낮추었는데, 도명의 유래가 된 고을에서 반역이 일어나면 도의 명칭에서 빼버렸다. 위 기사에서 보다시피 강원도는 원주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춘천을 따서 강춘도로 바뀐 적이 있으며, 충청도는 광해군 때 청주, 충주순으로 나란히(...)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충홍도(충주+홍주)에서 공홍도(공주+홍주)로 바뀌었다가 인조반정 후 충청도로 복귀한 일이 있다.

고대에는 이 지방에 군장국가 단계이던 마한의 여러 소국들이 난립했다. 이 가운데 현재의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천안시, 전라북도 익산시 근방으로 추정되는 목지국이라는 나라의 강력한 영향력에 눌려 특별히 두각을 드러낸 국가는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결국은 북쪽에서 밀고 내려온 백제에 의해 모두 점령 당하여 본격적인 역사의 무대 에 올랐다.

통일신라 시대에 9주 5소경 체제에서는 지금의 전북에 해당하는 '전주(완산주)'와 전남에 해당하는 '무주(무진주)'로 남북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 무주(武州)는 전북 무주(茂朱)군이 아닌 지금의 광주광역시이다. 문무왕 때 백제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무진주라고 했다가 경덕왕의 지명 한화 정책으로 고친 것. 흔히 견훤이 "무진주를 점령하고 완산주를 도읍 삼았다"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틀린 거지만 삼국사기 기록에도 무진주라고 나오는 걸 보면 이명으로 즐겨 썼거나 회복 시킨 듯. 한편 섬진강 일대 일부는 강주(현 진주시를 중심으로 한 경남 서부)에 속했다. 옛 가야의 영역.

이후 견훤후백제의 영토를 거쳐 그 때만은 수도권 고려 성종 때까지도 여전히 중국의 지명을 딴 강남도와 해양도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현종이 고려를 5도 양계로 개편하면서 전라도로 퓨전 통합시켜 비로소 모양을 갖춘다.

역사의 변천에 따라 범위가 조금씩 바뀌었는데, 탐라라고 불리운 제주도의 경우 고려 시대까지는 별개의 행정구역이었고 간섭기엔 탐라총관부로 별도 유지되었으며 그 이전의 역사를 보아도 딱히 전라도와 연관성은 없지만, 조선 태종 무렵부터 몇백년간은 전라도와 묶이게 되었다. 이후 제주도는 해방 직후인 1946년 다시 제주도(道)로 독립한다. 군정법령 제94호

조선 말 대한제국 초기 고종이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전라북도전라남도로 분리되었고 1963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는 전라북도 금산군 전체와 현 논산시 남부 지역 일부가 충청남도 금산군 및 논산군으로 편입되어 충청도로 넘어갔다. 때문에 전라북도 북쪽 지방에 사는 연세 많은 분들은 금산이 전라북도라고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서 보듯, 전남도청은 원래 광주에 있었다. 그러나 1986년광주광역시(당시 직할시)가 독립하면서 현재의 1광역시 2도에 이르고 있다(전남도청은 2005년 무안군으로 이전했다).

2.1. 사료[편집]

태조 왕건훈요 10조에서 언급한 '차현(차령) 이남, 공주강(금강) 바깥'이 오랫동안 이 지역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이 지방 사람을 쓰지 말라고 한 것을 두고 지역감정과 결부시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는데, 왕건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세력이 현재 호남지방의 후백제였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저항한 후백제의 잔존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일단 후백제의 주요 세력이자 견훤의 사위였던 박영규가 투항하였다가 백제 멸망 후에 고려에서 큰 대접을 받았다. 또한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구한 신숭겸, 6대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보필한 최지몽도 전라도 출신이다. 애초에 '차현 이남, 공주강 바깥'이란 지역이 어디인지 상당히 애매하다. 통일 과정에서 있던 청주, 공주의 반란, 통일 후 있었던 천안 부근의 목천 오성 반란 등을 근거로 차현 이남에서 금강 북쪽에 이르는 지역(대략 현재의 충청남도 중부 지역)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시대엔 충청도, 경상도와 함께 '하삼도(下三道)', '삼남(三南)'으로 불리기도 했다. 붕당 정치가 확립될 시기 즈음, 기대승, 김인후, 이항과 같은 유학자가 나와 조선 성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붕당 형성에 기여를 하였다.[3]

선조시기 정여립의 난으로 인해 발생한 기축옥사에 휘말렸다. 직접 연류되어 죽은 사람이 수백명이며[4] 정여립과 무관하게 정개청을 추존한 사실 때문에 금고된 자가 400명, 죄인으로 억울하게 몰린 자가 50명, 그 중 유배형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은 자가 20명에 달하는 등 호남유림이 와해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전라도가 반역향으로 일시간 지정되었으나, 지역이 왕실의 본관인 전주이고 직후 벌어진 임진왜란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집권한 북인에 의한 복권시도가 있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축출되고 북인도 숙청당하면서 반란으로 규정되었다.

이후 호남 지역은 서울 지역의 정세에 따라 붕당의 세가 정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남인·북인이 우세하였지만, 정여립의 난으로 호남 내 동인 계열이 많이 숙청되면서 인조반정 이후 노론·소론이 조정에서 정권을 잡게 될 즈음에는 노론·소론의 세가 강했다고 한다.[5]

어느 조선 후기 척제(瘠齊) 이서구(李書九, 1754~1825)라는 사람이 단가 "호남가"를 지은 적이 있다. 이 사람은 1793(정조 17)년과 1820(순조 20)년 두 차례 전라 감사를 역임한 바 있는데, 전라도 곳곳에는 이서구와 관련된 민간 전승이 다수 남아 있다. 이 "호남가"를 보면, 조선 시대 전라도의 여러 고을들이 나와 있다. 여기에는 진산(珍山) 등 누락된 고을도 있으며, 현재는 충청남도로 편입된 금산군 및 전라도에서 분리된 제주도도 포함되어 있다. 아래 시를 자세히 보면 각각의 고을 이름을 의역하여 나름대로 의미와 내용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咸平(함평) 天地(천지) 늙은 몸이 光州(광주) 故鄕(고향)을 보랴 하고,
濟州(제주)[6] 漁船(어선) 빌려타고 海南(해남)으로 건너갈 제,
興陽(흥양)에 돋은 해는 寶城(보성)에 비쳐 있고,
高山(고산)에 아침 안개 霊岩(영암)을 둘러 있다.
泰仁(태인)하신 우리 聖君(성군) 藝樂(예악)을 長興(장흥)하니,
三台六卿(삼태육경)은 順天心(순천심)이요, 方伯守令(방백수령)은 鎭安民(진안민)이라.
高敞城(고창성) 높이 앉아 羅州(나주) 風景(풍경)을 바라보니,
萬丈(만장) 雲峰(운봉) 높이 솟아 層層(층층)한 益山(익산)이요,
百里(백리) 潭陽(담양) 흐르는 물은 굽이굽이 萬頃(만경)인데,
龍潭(용담)에 맑은 물은 이 아니 龍安處(용안처)[7]이며,
陵州(능주)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錦山(금산)[8]이라.
南原(남원)에 봄이 들어 各色花草(각색화초) 茂長(무장)하니,
나무 나무 任實(임실)이요, 가지 가지 玉果(옥과)로다.
風俗(풍속)은 和順(화순)이요, 人心(인심)은 咸悅(함열)인데,
異草(이초)는 茂朱(무주)하고, 瑞氣(서기)는 靈光(영광)이라.
昌平(창평)한 좋은 세상 務安(무안)을 일삼으니,
士農工商(사농공상) 樂安(낙안)이요, 父子兄弟(부자형제) 同福(동복)이라.
康津(강진)의 商賈船(상가선)은 珍島(진도)로 건너갈 제,
金溝(금구)의 금을 일어 싸 놓으니 金堤(김제)로다.
農事(농사)하는 沃溝百姓(옥구백성) 臨陂城(임피성)을 둘러 있고,
井邑(정읍)의 井田(정전)법은 納稅人心(납세인심) 淳昌(순창)하고,
古阜(고부) 春陽(춘양) 楊柳色(양류색)은 光陽春風(광양춘풍) 새로워라.
谷城(곡성)에 묻힌 선비 求禮(구례)도 하거니와,
興德(흥덕)하기를 나날이 時習(시습)하니, 扶安齊家(부안제가) 이 아닌가.
우리 湖南(호남) 좋은 法聖(법성) 全州百姓(전주백성)을 거느리고[9],
長城(장성)을 널리 싸고 長水(장수)로 돌렸는데,
礪山(여산)돌 칼을 갈아 南平樓(남평루)에 꽂아 놓으니,
어느 外方之國(외방지국)이 輕擧(경거)할 뜻을 둘까 보냐.

3. 지리[편집]

호남 지역에는 두 개의 평야가 있는데, 하나는 한반도 최대의 평야인 전북 서부의 호남평야가 있고 다른 하나는 전남 서부에 위치한 나주평야가 있다. 호남평야에는 도시가 발달하여 전주시, 익산시, 군산시가 있다. 반면 호남 동부는 험준한 산지이다. 특히 전북 동부는 진안 고원으로, 같은 전북 도내의 서부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지리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 [10]

광주전남권과 전북권을 나누는 기준은 '노령산맥'이다.[11]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전북의 드넓은 호남 평야가 이어지다가 큰 산이 보이는데 이곳이 노령이고 이 산의 호남 터널을 지나면 전라남도이다. 이 노령은 과거부터 전북과 전남을 구분했으며 현재도 전북과 전남의 도시권/생활권/문화권을 구분짓고 있다. 전북과 전남의 사투리 차이도 크게 존재하며 도시권 역시 다르다. 실제로 광주광역시가 전라북도에 도시권을 미치는 범위는 고창군 정도이며 나머지 도시들은 정읍시순창군처럼 전북 남부에 위치해 있어도 전주시의 도시권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다. 광주전남과 전북의 자연적 지리특성이 과거부터 두 지역을 구분지었고 현재도 도시권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호남 지역일지라도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사투리의 경우 흔히 접하는 전형적인 전라도 방언의 경우, 전남 방언 (그 중에서도 특히 전남 서부 방언)이고, 전북 지역의 방언은 북쪽으로 갈수록 충청방언과 가까워지는 특성이 있다.

광역시로는 광주광역시가 있고, 특례시로는 전주시가 있다. 현재 전남권의 중심 도시는 광주광역시, 전북권의 중심 도시는 전주시이다. 두 지역이 각 권역에서 큰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실제로 전남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도로가 뻗어나가는 현태로 도로가 건설되어 있으며, 전라북도 역시 전주시를 중심으로 한 교통망이 많이 개설되어 있다.[12]

광주와 전주 이외에도 많은 중소도시가 있다. 전남의 목포시는 전남 서부권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순천시는 동부권 중심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수시는 거대한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공업도시이며 광양시 역시 제철 산업이 발달하고 전남 최대의 항구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전북의 익산시는 호남 철도의 집결요새 역할을 하고 있는 철도의 도시이며 익산국가식품클러스터를 통한 산업이 발전하고 전주의 배후도시 역할을 하고 있더. 군산시 역시 산업이 발달하고 항구가 발달했으며 새만금의 중심도시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시되는 도시이다.

4. 대학[편집]

종합대학으로는 호남을 대표하고 있는 거점국립대학교가 2개 있다. 하나는 전북의 거점 역할을 하는 전북대학교전주시 덕진구에 있고, 또 광주전남의 거점 역할을 하는 전남대학교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다. 호남에서는 이 두 대학의 규모가 가장 크며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외에도 국립대학군산대학교, 목포대학교, 순천대학교, 목포해양대학교가있다

규모가 큰 사립 대학으로는 전라북도 익산시원광대학교가, 광주광역시 동구조선대학교가 있다. 이외에도 우석대학교, 호남대학교, 광주대학교, 동신대학교, 전주대학교 등의 사립학교가 있다.

특수 대학으로는 교육대학교인 전주교육대학교광주교육대학교가 있고 광주과학기술원도 있다.

5. 인구 유출과 경기 침체[편집]

가장 높은 지방 인구 유출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제가 침체된 곳이다 보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국에서 가장 인구 유출이 심각하다.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 감소가 예사로운 일이라고 해도 전라도는 특히 심각하다. 당연히 안 그래도 안 좋은 경기 침체를 가속화시켜 전라남도, 전라북도, 광주의 gdp는 순위에서 서로 끝을 다투고 있는 등 악재가 계속되고 있으며, 전국에서도 특히 인구 증대, 재정 자립도, 지역민 복지 수준 등에서 하위권을 차지한다.

산업화 시기에 경제발전에서 심하게 소외된 지역이다보니 영남권 지역이나 충청권 지역에 비해 타 도시나 수도권으로 이탈한 호남 출신 지역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는 인구 증감과 관련된 자료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1949년 → 2015년 9월 기준

  • 전북 약 205만 → 약 187만(약 18만 감소)

  • 광주•전남 약 304만 → 약 338만(약 34만 증가)


로 타 지역[자료]에 비해 증가세가 정체되있고 특히 전북은 대한민국 총 인구가 약 2018만 → 약 5148만, 약 3130만으로 증가한 와중에도 유일하게 인구가 감소한 지역이다.

6. 이모저모[편집]

통계청에 따르면 종교적으로는 한반도 평균(개신교 18%, 불교 22%)에 비해 개신교의 세가 강하고[14], 반대로 불교의 세가 비교적 약한 편이라 한다.[15] 가톨릭은 호남 지역에 두 개의 교구를 두고 있는데, 광주전남 지역의 천주교 교회(성당)을 관할하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전북 지역을 담당하는 천주교 전주교구가 있다.

저항, 폭동, 반란의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동학농민운동, 호남의병항쟁, 광주학생항일운동, 광주민주화운동등 통치에 반발하여 일어난 굵직한 항쟁이 많은 편이다. 이 때문에 전라도지역은 '반란의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유명한 바둑기사가 많이 나오기도 한다. 정웅창(전남 보성), 조남철(전북 부안), 조훈현(전남 목포), 이세돌(전남 신안), 김인(전남 강진), 이창호(전북 전주) , 조치훈 역시 조남철의 조카이고, 박정환 역시 아버지가 광주 출신이다.

간혹 한 글자가 같고 이름이 비슷한 호서(湖西) 지방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호서 지방은 충청도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호서라는 말은 현대에는 잘 안쓰이므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전라도 음식, 요리가 상당히 발달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남도 음식으로 통용된다. 종종 다른 지역에서도 전라도이름을 내걸은 식당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반찬이 다양한 백반요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인지 '끼니'를 빠지지 않고 챙기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젊은 층은 덜하지만 중,노년층은 " 한번 빼먹은 끼니는 영원히 못 챙겨 먹는다 "[16] 라는 고정관념이 강해서 끼니를 놓치면 밤늦게라도 반드시 끼니를 챙겨 먹는다. 전북보다 전남지역이 이런 경향이 매우 강하며, 그래서인지 전남지역에 고령층 당뇨병 환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전남출신 노인은 반드시 끼니는 챙겨 먹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거른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식사량을 조절해야하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꼭 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병원이나 요양기관에서 직원들과 마찰이 잦은 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A형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다. 한국에서 A형의 비중은 약 34% 정도인데 호남 지역은 평균 37% 정도에 이른다. 여담으로 전라도와 가장 인접한 제주도는 이와 정반대로 A형의 비중이 약 28% 정도로 한반도에서 제일 적고 B형의 비중이 약 33% 정도로 제일 높다. 혈액형 연구자에 따르면 정착 생활을 주로 하는 농경 사회에서 A형의 비중이 높은 경향을 보이는데 전라도가 전통적으로 농업이 발달한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이동 생활을 주로 하는 기마 민족은 B형의 비중이 높은데 북한 지역이 이를 반영하듯 남한 지역보다 A형 비중이 적고 B형 비중이 높다.[17]

7. 정치[편집]

정치적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 기반이다. TK, 즉 대구 및 경상북도 권역과 반대에 위치해 있다. 정치 성향의 정도는 3개 광역자치단체가 대체로 비슷하지만 굳이 따지면 5.18의 주도세력이었던 광주광역시가 가장 강하고 그 다음이 전라남도, 전라북도 순이다. 정치 성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각 광주광역시/정치, 전라북도/정치, 전라남도/정치에 나와있다. 특히 광주광역시/정치 문서는 호남의 현대 정치사를 압축하여 서술되어 있고, 전주시/정치 문서는 전북권의 정치사가 압축 서술되어 있다.

겉으로 봐도 한번에 알 수 있듯이, 호남 지역의 정치 분위기는 맹신 그 자체이다. 2018년 지금도 민주당계 정당 지지율이 마의 90%는 그냥 넘어간다.[18]

8.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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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산군은 1895년 23부제 실시 때 잠시 공주부에 편입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전라북도로 편입되었고,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2] 제주도는 원래부터 한반도 본토와 떨어져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 생활 양식 등을 지닌 곳이고, 금산군은 충청남도 편입 이후 대전광역시와 밀접한 생활권이 형성됐으며 심지어 대전광역시 통합(편입)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3] 이전 버전에는 이일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일이 아니라 이항이다. 이일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장수 이름이다.[4] 기축년 10월부터 이때에 이르기까지 20개월 사이에 죽은 자가 수백 명이나 되었는데, 조신(朝臣)·명관(名官) 중에 죽은 자가 10여 인이었으며#[5] 영남 지역은 북인이 몰락하고 서인 계통의 붕당이 집권한 이후에도 남인이 대세였다. 정여립 난 이전에도 동인과 서인의 세가 비슷했던 호남 지역과 달리 영남 지역은 북인의 몰락으로 세가 약해진 인조반정 이전에도 남인을 주축으로 동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서인은 극소수였다.[6] 해방 이후 1946년 제주도(현 제주특별자치도)로 분리되기 전까지 전라도(1896년 이후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다.[7] 문자 그대로 '이 편안히 쉬는 곳'으로도 읽힐 수 있다.[8] 1963년 충청남도로 편입되기 전까지 전라도(1896년 이후에는 전라북도)에 속해 있었다.[9] 여기에서는 '모든 고을의 백성을 거느린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10] 이런 지리적 특색을 가지고도 신도시가 많이 지어지지 않아 전라도의 인구가 늘지 않는다.[11] 다만 노령산맥이 온전히 전남북의 경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북 동반부는 노령산맥 이남에 있으나 전북이고, 영광군은 노령산맥 이북에 있으나 전남이다. 사실 노령산맥이 전남북 경계에 걸리는 곳은 장성군 - 정읍시, 고창군 뿐.[12] 다만 철도의 중심지는 익산시이다. 익산역은 호남 철도의 집결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호남에서 가장 중요한 역으로 인식된다.[자료] 수도권 약 419만 → 약 2545만(약 2126만 증가), 강원도 약 114만 → 약 155만(약 41만 증가), 충북 약 115만 → 약 158만(약 43만 증가), 대전•세종•충남 약 203만 → 약 379만(약 176만 증가), 대경권 약 320만 → 약 519만(약 199만 증가), 동남권 약 313만 → 약 805만(약 492만 증가), 제주도 약 25만 → 약 62만(약 37만 증가)[14] 약 20~25%.[15] 약 15%[16]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오늘 날짜에 먹을 끼니를 놓치면 한번 지나간 날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니까 다시는 못 먹는다 라는 미신적인 개념이다.[17] A형은 각각 남한 34%, 북한 31%. B형은 각각 남한 27%, 북한 30%.[18] 다만 세부적으로는동교동계를 지지하는 중노년층과 친노친문계를 지지하는 청년층 구도, 전남 동부 vs 서부 구도, 전남 vs 전북 구도로 대립하기도 했는데 19대 대선에서 결국 문재인으로 표가 쏠리고 제7회 지방선거에서 다시 더불어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상황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