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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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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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임꼴은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된 인구로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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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 · · · · · 황목 · 황보 · ·


1. 개요2. 성씨에 관한 일화3. 이성동본 문제4. 분관5. 외자 이름6. 종친회7. 나무위키에 등록된 허씨 성을 가진 실존 유명인8. 관련 성씨9. 참고 문서

1. 개요[편집]

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부인인 수로왕비 허황옥을 연원으로 삼는 한국의 성씨이다. 김해, 양천, 하양, 태인을 본관으로 한다. 인구는 2015년 기준 326,770명.

이 문서는 김해 허씨, 양천 허씨, 하양 허씨, 태인 허씨 등이라고 입력해도 모두 들어올 수 있다. 이 성씨가 다른 성씨들처럼 앞에 본관이 적힌 채로 항목이 개설되지 않은 이유는 다른 씨족과는 달리 어떤 본관을 가지더라도 조상이 같은 동본관계의 성씨이기 때문이다. 김해 김씨경주 김씨의 관계처럼 완전히 타인 관계가 아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박씨가 있다. 박씨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한데, 박씨는 54개의 본관이 모두 시조가 박혁거세 한 사람이다. 이는 신라의 왕으로서 박혁거세의 아들들과 그 후손들이 세를 불리면서, 분관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가서 생활/일을 하게 될 경우에는 주의해야 한다. 일본어로 말할 때는 상관없지만 쓸 때 許さん(허씨)이라고 쓸 수가 있는데, 이렇게 써놓고 보면 許를 음독 '허'가 아닌 훈독으로 읽는 경우가 일반적이므로 "유루상(용서 못 해!)"라는 의미가 되어버릴 수 있다.[1] 상식적으로 이름이 이상하다고 대놓고 놀리는 경우는 별로 없겠지만 속으로 어이없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냥 한자 대신 카타카나로 쓰는 것이 무난하다.

허씨 중에서도 김해 허씨와 양천 허씨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대개 양천 허씨는 수도권에, 김해 허씨는 경상도에 많이 살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로마자 표기는 Heo이다. 2011년 외교부 여권 통계에 따르면 Heo가 약 48%, Hur가 약 21%, Huh가 약 14%, Her가 약 11%, Hu가 약 3%, Ho 등 기타 표기는 1% 미만이다. 현행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Heo,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르면 Hŏ이다.

로마자 표기 시 매우 골때리는데, 자주 쓰는 표기인 Heo는 Hoe와 발음이 같아 곤란하다. 심지어 어떤 표기를 써도 Hoe와 발음이 비슷함은 피할 수 없다.

참고로 중국어에서는 許를 Xǔ로 읽는다. 발음상으로는 徐(Xú)와 성조만 다르니 주의.

2. 성씨에 관한 일화[편집]

성씨에 관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문헌에 따르면 수로왕비인 허황옥은 인도 지방에 있던 아유타국의 공주로서 16세 때 배를 타고 지금의 경남 창원군 웅동면 용원리(현 창원시 진해구 웅동2동 일대)에 있는 부인당으로 들어와 정박을 했는데 김수로 왕이 의장을 갖추어 영접한 후 왕비로 맞이했다고 한다. 그 후 10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하루는 비가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첩은 동토의 객이니 사후에 오성을 전하지 못함이 한이 되옵니다."하니 왕이 감동하여 맏아들 거등은 김씨로 왕통을 잇게 하고, 두 아들은 (여기서 두 아들은 차자와 삼남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 허황후의 성인 허씨로 사성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불가에 귀의하여 하동칠불로 성불했다고 한다.[2]


참고로 이 성씨 설화는 고대 한반도와 인도 및 남아시아 일대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다. 실제로 DNA분석을 통해서 인류의 계통을 추적하는 하플로그룹 연구에서 인도에서 주로 나타나는 하플로 그룹이 한반도에 꽤 나타난다고 한다.

속설로 김해 김씨 남자는 생식기에 점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같은 시조를 두고 있는 허씨와 인천 이씨에게도 적용되는 속설이다. 꽤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속설에 불과하다. 근데 의외로 확인해 본 허씨 남성들의 말에 의하면 확실히 있다고 하는 경우가 꽤 된다.

그런데 이 속설에도 엄청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먼저 첫 번째 이야기는 비교적 점을 확인 하기 쉬운 남성들의 점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로 보인다.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남근이 너무 커서 배필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한번 똥을 싸면 산만하게 싸는 여자가 있다하여 찾아온곳이 경남 양산이었다. 지금도 양산에 있는 산은 모두 그 여자 똥을 핵으로 가지고 있다고 전해져 올 정도로 큰 똥을 생산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그 여자를 찾던 어느날, 여행중 갑작스런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어느 노인이 강을 건너지 못하자, 김수로가 남근을 세워 가죽다리를 만들어 노인을 건너게 해주었다. 그렇게 노인이 다리를 건너고 난뒤 담배 곰방대로 "고놈 참 용하네" 하고 거시기에 담배대를 톡! 쳤는데, 그 안에 있던 뿔똥이 떨어져 상처가 되서 남은게 점이 되어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후손은 거진 고추에 점을 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김해 김씨들 사이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허씨쪽의 버전은 조금 다르다. 허씨 쪽의 버전은 여성에게도 점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 발견했는지 그것까지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관가야의 수로왕이 수로왕비와 혼인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가야에 큰 불이 났다. 가야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불을 끄려고 온 힘을 다 했으나,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수로왕이 오줌발을 불이 난 자리에 쏘자 그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따라 하였으나, 오직 수로왕의 오줌발만이 그 불을 끌 수 있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수로왕비가 치맛폭을 걷어 붙이고 오줌을 쌌는데, 이 역시 효험이 있었다. 이에, 수로왕과 수로왕비가 돌아다니며 오줌을 싸고 다녔다. 그러던 와중에 불똥이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국부에 튀었고, 그로 인해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후손들에게서는 국부에서 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든 불로 인한 흉터가 국부에 남아 후손들에게 까지 점으로 유전되었다는 이야기로, 사실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점은 멜라닌의 발현에 의한 것으로, 발현시기의 유전의 가능성은 있을 수 있으나, 그 부위가 늘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거론되었으며, 실제로 어떤 주부의 증언에 의하면, 아들이 태어나자 시아버지와 그 가족들이 모두 몰려와 아이의 고추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도 한다.

진짜 유전적으로 그러한 특징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조선 후기에 횡행하던 족보 거래로 인해 지금은 무의미한 이야기가 되었다. 물론 일설에 의하면, 족보 매매라는 특성상 주요 성씨에 국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허씨에게는 그러한 요소가 남아 있을 수 있다고도 한다.

3. 이성동본 문제[편집]

김수로왕의 아내 허황옥이 허씨였는데, 김수로왕이 9명의 왕자 중 아내의 성도 계속 이어지도록 배려해서 2명의 왕자에게 허씨를 따르도록 해서 시작된 것이 허씨이므로[3] 허씨와 김해 김씨는 비록 성씨는 다르지만(이성동본 異姓同本) 사실상 동성동본관계가 되어 서로 혼인을 금한다는 옛 통념이 있었다. 여기에 김해 허씨 말고도 양천 허씨나, 같은 계열 성씨인 태인 허씨에서 갈라져 나온 인천 이씨 등 갈라져나온 성씨가 꽤 많아서 옛 통념상 동성동본이 되어 혼인을 금하는 성씨들이 제법 된다. 하지만 이것은 통념에 불과한 것이고, 민법상 동성동본 금혼 제도가 있었을 때에도 일단 본관이 다르면 결혼은 가능했다. 더욱이 동성동본 금혼이 폐지된 지금에는 8촌 이내 친인척만 아니라면 결혼이 가능하다.

4. 분관[편집]

허황옥의 30세손 선문을 시조로 하는 공암 허씨 (여기서 공암은 양천의 옛 이름으로 현재는 양천 허씨라 불리는 씨족이다.), 같은 30세손 사문을 시조로 삼는 태인 허씨, 33세손 강안을 시조로 삼는 하양 허씨, 35세손 염을 시조로 삼는 김해 허씨로 분관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4]

김해 허씨가 늦게 분관한 것에는 족보체계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야는 김해지역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허씨의 집성촌 역시 가야지역에 밀집되어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분관을 하게 되는 경우는 세거지가 옮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가야에 남아있던 허씨들이 다른 지역으로 간 허씨들이 만든 족보를 보고 이를 따라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위에 적힌 시조들은 모두 다른 성씨에서 였으면 중시조로 분류되어야 할 인물들이다.

『조선씨족통보』[5]에 따르면 71본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양천, 하양, 김해, 태인, 함창, 수원, 양주 외에는 단순한 세거지명[6]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현존하는 본관은 모두 얖서 말한 양천, 태인, 하양, 김해이다.

5. 외자 이름[편집]

허준, 허균, 허목 등 허씨는 유난히 외자 이름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양천 허씨의 시조인 허선문은 김수로왕의 30대손으로 양천(지금의 서울 강서구. 양천현의 중심지는 강서구 가양동 일대이다. [7]또한 가양동에 허선문이 태어났다고 하는 허가(공암)바위가 있다.)에서 살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군량을 바친 공로로 양천의 본관을 얻었다. 그 공로로 준왕족의 지위를 보장받아서 당시는 왕족에 한해 사용했던 외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후 지금까지도 양천 허씨들은 외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6. 종친회[편집]

김해 허씨 대종회 http://cafe.daum.net/Kh.daum.net

김해 허씨 대종회 사이트 카페 자체는 2014년 4월 말에 생성되었으나 2015년 12월 10일에 김해허씨 대종회 창립추진위원 3인 (가락군인전파승산대종중이사장 허정환, 시빈재공삼문문중회장 허이량, 시중공파중앙회회장 허권중)을 중심으로 한시중공파중앙회회장을 김해허씨 대종회 회장으로 하여 김해 허씨 대종회가 창립되었다. 사무실 주소는 서울 중구 퇴계로 182 가락종친회관 5층 501호이다.

7. 나무위키에 등록된 허씨 성을 가진 실존 유명인[편집]

8. 관련 성씨[편집]

9. 참고 문서[편집]

[1] '용서할 수 없다'라는 뜻의 일본어는 許さない. 그런데 일상 회화의 구어체에서 さない를 줄여 표현해서 さん이 될 수 있다.[2] 출처: 『한글판 우리집의 족보』, 민중서원, 1997.[3] 거의 모든 허씨의 조상은 본관과는 상관없이 김수로왕과 허황옥이기 때문[4] 출처: 『한글판 우리집의 족보』, 민중서원, 1997.[5] 1928년 세창서관에서 초판 발행한 종합계보서.[6] 단순히 해당 성씨가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곳의 지명[7] 양천현 관아터와 양천향교 모두 강서구에 있다. 양천구는 구 양천현의 일부이지 양천현의 중심지는 아니다.[A] 8.1 8.4 31세손 '萬'자 항렬.[B] 9.1 9.2 9.5 33세손 '會'자 항렬.[C] 33세손 '茂'자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