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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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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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7호로 재지정[10]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8호로 재지정[11]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75호로 재지정[12] 울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제8호로 재지정[13]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76호로 재지정[B] 14.1 14.2 사적 제510호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로 통합, 재지정[C] 16.1 16.2 16.3 사적 제513호 나주 반남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D] 19.1 19.2 사적 제514호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E] 21.1 21.2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
⠀[101~150호]⠀
⠀[151~200호]⠀
⠀[201~250호]⠀
⠀[251~300호]⠀
⠀[301~350호]⠀
⠀[351~400호]⠀
⠀[401~450호]⠀
⠀[451~500호]⠀
⠀[501호~550호]⠀
⠀[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1)]⠀
2021년 11월 19일부로 번호 지정제 폐지
2021.11.19 - 2026.05.14
[37] 내동리 쌍무덤. 옥야리 장동 방대형 고분 4기 총 5기
⠀[번호없음-2]⠀
2026.05.14 -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제일교회
貞洞第一敎會 | Chungdong First Methodist Church
정동제일교회 로고
기본 정보
위치
종교
교파
교단
주요 목회자
설립목사 헨리 아펜젤러(Appenzeller, H.G.)
담임목사 천영태 (제21대)
창립일
1885년 10월 11일 (140주년)
표어
하나님 나라가 삶의 모든 자리에 임하시도록 부름받은 성령 공동체
나라가 임하시오며 (마태복음 6:10)
링크
홈페이지 아이콘 | 유튜브 아이콘 | 페이스북 아이콘 | X Corp 아이콘(블랙)
서울 정동교회
漢城 貞洞敎會 | Chungdong First Methodist Church, Seoul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개신교
수량 / 면적
1,133㎡
지정일자
1977년 11월 22일
건축시기
조선시대, 1897년
소유자
(소유단체)
기독교 대한감리회유지재단
관리자
(관리단체)
감리교재단
2621D19C-3FA5-42...
정동제일교회 전경
정동제일교회1
정동제일교회 본당
 
 
 
 
 
 
 
 
 
 
 
 
 
 
 
 
 
 
 
 
 
 
 
 
 

1. 개요2. 역사3. 역대 담임목사4. 교회 내부5. 여담6. 관련 인물

 
 
 
 
 
 
 
 
 
 
 
 
 
 
 
 
 
 
 
 
 
 
 
 
 
 
 
 
 
 
 
 
 
 
 
 
 
 
 
 

1. 개요[편집]

 
 
 
 
 
 
 
 
 
 
 
 
 
 
 
 
 
 
 
 
 
 
 
 
 
 
 
 
 
 
 
 
 
 
 
 
 
 
 
 
TBS에서 제작한 〈정동길 조그만 교회당 정동제일교회〉 영상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1885년 미국 감리회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에 의해 설립된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들 중 하나로, "한국의 어머니 교회"로도 불린다. 특히 1897년 건축된 벧엘예배당은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으로, 1977년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유관순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출석했던 교회로 유명하며, 기미독립선언서가 이 교회 예배당 지하에서 대량으로 복사되어 배포되기도 했다.
 
 
 
 
 
 
 
 
 
 
 
 
 
 
 
 
 
 
 
 
 
 
 
 
 
 
 
 
 
 
 
 
 
 
 
 
 
 
 
 

2. 역사[편집]

 
 
 
 
 
 
 
 
 
 
 
 
 
 
 
 
 
 
 
 
 
 
 
 
 
 
 
 
 
 
 
 
 
 
 
 
 
 
 
 
Jeong Dong Metho...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정동교회 초기 모습
1885년 10월 11일, 아펜젤러 목사가 자신의 정동 사택에서 성찬식을 거행한 것을 시초로 한다. 오늘날까지도 한국 감리교단을 대표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로, 여러 분야에서 ‘한국 최초’ 기록을 보유하면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초기에는 작은 기와집을 예배당으로 사용했는데 점차 교인 수가 늘어나면서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근대식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하고 1895년 9월 9일 정초식을 거행했으며 1897년 12월 26일 벧엘예배당 봉헌 예배를 드렸다. 벧엘예배당에는 1918년 하란사가 설치한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있는데, 이후 6.25전쟁 때 예배당 강대 쪽이 폭파되면서 파이프오르간이 파괴된 적이 있다.

1902년 6월 11일, 아펜젤러 목사가 순교하여[1] 후임으로 1903년 최병헌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이필주 목사(제5대 담임목사)와 박동완 전도사가 민족대표 33인으로 참여하였다. 당시 이화학당 학생이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다수의 교인들이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일제에 의해 구속되어 탄압을 받았고, 교회는 강제로 폐쇄 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3. 역대 담임목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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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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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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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이재은
김봉록
조영준
송기성
제21대
천영태
정동제일교회 로고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
이름
임기
1
1885 ~ 1902.6.11
2
1902 ~ 1913
3
현순
1913 ~ 1915
4
1915 ~ 1918
5
1918 ~ 1919
6
김종우
1919 ~ 1927
7
김영섭
1927 ~ 1934
8
김종우
1934 ~ 1938
9
김영섭
1938 ~ 1943
10
황치헌
1943 ~ 1945
11
김인영
1946.6 ~ 1953.6.11
12
장석영
1953.10.18 ~ 1955.3.26
13
박창현
1955.3.27 ~ 1963.3.24
14
김광우
1963.3.31 ~ 1972.6.3
15
한영선
1972.6.4 ~ 1975.4.6
16
1975.4.6 ~ 1979.8.26
17
이재은
1979.9.23 ~ 1987.7.31
18
김봉록
1988.1.17 ~ 1996.3.12
19
조영준
1996.3.1 ~ 2008.3.26
20
송기성
2007.6.1 ~ 2021.4.18
21
천영태
2021.11.9 ~ 현재
 
 
 
 
 
 
 
 
 
 
 
 
 
 
 
 
 
 
 
 
 
 
 
 
 
 
 
 
 
 
 
 
 
 
 
 
 
 
 
 

4. 교회 내부[편집]

 
 
 
 
 
 
 
 
 
 
 
 
 
 
 
 
 
 
 
 
 
 
 
 
 
 
 
 
 
 
 
 
 
 
 
 
 
 
 
 
정동제일교회1
정동제일교회2
예배당 본당 내부
 
 
 
 
 
 
 
 
 
 
 
 
 
 
 
 
 
 
 
 
 
 
 
 
 
 
 
 
 
 
 
 
 
 
 
 
 
 
 
 

5. 여담[편집]

 
 
 
 
 
 
 
 
 
 
 
 
 
 
 
 
 
 
 
 
 
 
 
 
 
 
 
 
 
 
 
 
 
 
 
 
 
 
 
 
  • 유관순 열사의 장례식을 치른 곳이며,[5] 이승만의 장례식도 여기서 치렀다.
  • 범현대가의 단골 예식 장소이기도 한데 이렇게 된 이유는 현대가가 정동교회와 인연이 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신영동아일보 기자는 독일 유학중 장정자 현대학원 이사장과 결혼을 했는데 장정자의 가문이 정동교회 설립에 기여를 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 이후 정신영이 사고로 죽자 그때부터 정주영은 온 가족과 함께 정동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현대가의 2세들인 정몽구, 정몽근, 정몽우, 정몽헌, 정몽준이 여기서 결혼식을 했고 지금은 정몽준의 차녀(3세), 정의선의 장녀(4세) 등 현대가의 3세, 4세들도 결혼식을 이곳에서 하고 있다.
  • 예원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여기서 예배를 드린다.
  • 교회 내부에서는 부모 또는 조부모 세대부터 교회를 다닌 가정의 자녀들을 비공식적으로 ‘정동키즈’라고 부르기도 한다.
 
 
 
 
 
 
 
 
 
 
 
 
 
 
 
 
 
 
 
 
 
 
 
 
 
 
 
 
 
 
 
 
 
 
 
 
 
 
 
 

6. 관련 인물[편집]

 
 
 
 
 
 
 
 
 
 
 
 
 
 
 
 
 
 
 
 
 
 
 
 
 
 
 
 
 
 
 
 
 
 
 
 
 
 
 
 
 
 
 
 
 
 
 
 
 
 
 
 
 
 
 
 
 
 
 
 
 
 
 
 
[1]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선박충돌사고가 일어나 같이 승선한 여학생을 구하려 탈출을 미루었고, 결국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순교하고 말았다.[2] 다만 임시정부 대통령 직은 탄핵되었다.[3] 감리교는 남녀 모두 장로로 임명한다. 이희호 여사가 창천교회 장로를 지낸 게 대표적이다.[4] 참고로 김대중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이다.[5] 당시 서대문형무소 측에서 시신 훼손 상태가 너무 심해 시신을 인도하는 걸 꺼렸다고 하는데, 당시 이화학당의 교장이었던 룰루 프라이가 직접 시신인도를 요구해 학교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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