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주 석장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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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석장리 유적 公州 石莊里 遺蹟 |
대한민국의 사적 제334호. 한국에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여러 문화층이 단계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한 최초로 밝혔다.[1] 금강과 산의 완만한 경사면이 만나는 지대에 위치하며, 1964년 5월 홍수로 강둑이 무너져 확인되었다. 동년 4월에 미국인 알버트모어 부부에 의해 발견되었고, 발굴조사는 연세대 손보기 교수팀이 동년 11월 하여 이후로도 조사가 이어졌다. 유적은 동굴, 바위그늘, 평지 등에서 발견되고, 뗀석기와 골각기가 출토됐다. ※ 막집 유적도 발견됐고 구석기 후기로 보이는데 자세한 조사내용은 해당 문서에 이미 서술됐으니 참조.
발굴결과 전기구석기(30만 년 전)에서부터, 중기구석기(10만년~3만년), 후기구석기(2만년)~신석기~청동기에 이르기까지 13개 문화층이 확인된 표준유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손보기 교수가 한국 최초로 구석기 유적을 발굴해 주먹도끼, 찍개, 긁개, 밀개 등 고고학 용어를 우리말로 표현했다. 또한 석장리 주민들을 높은 임금을 주고 고용해 명성이 컸다.#
본 유적은 층위가 있어 구석기시대 전기~말기 변천사를 보여준다. 전기에는 주변에 흔한 차돌 등을 쓰다가 말기엔 고급 수입 흑요석 등을 썼고 기술도 발전해 간다. 이후 청동기시대 층위도 나와 주거지로서 오래 쓰였던 것도 알 수 있다.※
발굴결과 전기구석기(30만 년 전)에서부터, 중기구석기(10만년~3만년), 후기구석기(2만년)~신석기~청동기에 이르기까지 13개 문화층이 확인된 표준유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손보기 교수가 한국 최초로 구석기 유적을 발굴해 주먹도끼, 찍개, 긁개, 밀개 등 고고학 용어를 우리말로 표현했다. 또한 석장리 주민들을 높은 임금을 주고 고용해 명성이 컸다.#
본 유적은 층위가 있어 구석기시대 전기~말기 변천사를 보여준다. 전기에는 주변에 흔한 차돌 등을 쓰다가 말기엔 고급 수입 흑요석 등을 썼고 기술도 발전해 간다. 이후 청동기시대 층위도 나와 주거지로서 오래 쓰였던 것도 알 수 있다.※
석장리박물관 누리집
인근에 박물관과 함께 당시 막집을 재현한 것이 많고, 세계 다양한 구석기 스타일의 막집을 옆에 만들어 놨다.※ 또한 주변에 구석기인들의 생활을 충실히 재현한 모형 다수와 주변 조경이 잘 꾸며져 있다.#
인근에 박물관과 함께 당시 막집을 재현한 것이 많고, 세계 다양한 구석기 스타일의 막집을 옆에 만들어 놨다.※ 또한 주변에 구석기인들의 생활을 충실히 재현한 모형 다수와 주변 조경이 잘 꾸며져 있다.#
총사업비 222억원으로 석장리 유적지 일대 3만2천95㎡에 구석기 교육원, 31m 높이의 공주시 최초의 전망대, 체험 공원을 조성한다. 2027년 1월 개관 예정이다.
공주시, 석장리 세계 구석기공원 조성…전망대 4월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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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 석장리박물관 주변에서 공주 석장리 구석기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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