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상산성
최근 수정 시각:
⠀[1~50호]⠀⠀[51~100호]⠀
⠀[101~150호]⠀⠀[151~200호]⠀⠀[201~250호]⠀⠀[251~300호]⠀⠀[301~350호]⠀⠀[351~400호]⠀⠀[401~450호]⠀⠀[451~500호]⠀⠀[501호~550호]⠀⠀[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1)]⠀⠀[번호없음-2]⠀
|
대한민국의 산성 | ||||||||||||||||||||||||||||||||||||||||
[ 펼치기 · 접기 ]
| ||||||||||||||||||||||||||||||||||||||||
![]() |
적상산성 성벽 |
적상산성(赤裳山城)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의 적상산 정상부 일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현재 국가유산 사적에 지정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정(山頂) 산성이다. 적상산은 해발 약 1,030m의 높은 산으로, 산 중턱은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정상부는 비교적 평탄한 분지를 이루고 있어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로 평가받았다.
적상산성은 일반적인 능선형 산성과 달리 산 정상의 넓은 분지를 둘러싸고 축조된 포곡식 산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연 절벽을 방어시설로 활용하고 취약한 구간에만 성벽을 쌓아 방어력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성 안에는 현재의 적상호 주변을 중심으로 넓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적상산사고와 안국사 등이 자리하여 국가적 중요 시설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적상산성은 단순한 지방 산성이 아니라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했던 적상산사고를 방어하기 위한 핵심 시설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도 안국사, 적상산사고 유구, 안렴대 등과 함께 무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 |
산성 내 연못 |
적상산성이 언제 처음 축조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재 확인되는 기록상으로는 고려 말에 본격적으로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74년(공민왕 23) 왜구와 외적의 침입이 빈번하던 시기에 명장 최영이 적상산의 험준한 지형을 보고 국방상 중요한 요충지로 판단하여 축성을 건의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산성이 구축되면서 인근 주민들의 피난처이자 군사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적상산성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국가 기록을 안전하게 보존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614년(광해군 6)에 적상산 정상부에 적상산사고가 설치되었다. 이곳에는 《조선왕조실록》과 각종 왕실 문서가 보관되었으며, 전주사고본 실록을 비롯한 중요한 기록들이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1643년(인조 21)에는 사고와 산성을 수호하기 위해 안국사가 창건되었다. 승려들이 사고를 관리하고 비상시에는 산성을 방어하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적상산성은 조선 후기까지 국가 중요 문서 보관시설을 지키는 군사적·행정적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사고에 보관된 실록을 보호하기 위해 안렴대 아래 석실로 옮겨 보관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은 적상산성이 단순한 지방 방어시설이 아니라 국가 문화유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적상산성은 일부 성벽과 문지, 유구가 남아 있으며, 적상산사고 유적과 함께 조선시대 기록문화와 산성 방어체계를 연구하는 중요한 사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산 정상의 분지를 둘러싼 독특한 입지와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우리나라 산성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위의 분지를 에워싼 대표적인 방어산성이다.
고려 후기 거란이 침입한 후 최영은 이곳에 산성을 쌓게 하고 창고 짓기를 건의했으며, 조선 세종 때의 체찰사 최윤덕도 반드시 보존할 곳이라고 건의한 바 있다. 고려 때 거란과 왜구의 침입에 이미 산성을 이용하여 인근 여러 고을의 백성이 피난한 사실에서 이 산성은 고려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광해군 2년(1610) 이곳에 조선시대 5개의 역사책보관소 중의 하나인 적상산사고를 설치하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였다. 실록전, 사각(史閣),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호국사를 세웠고 임진왜란 이후 진(鎭)을 두어 산성을 수축하고 운영했다.
현재 성벽은 무너져 숲 사이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고, 사각과 기타의 건물들도 그 터만이 남아 있다. 최근에 성 안에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