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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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성왕릉 慶州 文聖王陵 Tomb of King Munseong, Gyeongju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면적 | 411㎡ |
지정연도 | |
시대 | |
소유단체 | |
관리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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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왕릉(文聖王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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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 앞에 세워진 세워진 '신라문성왕릉(新羅文聖王陵)' 표석 |
삼국사기에서는 857년 9월 병이 들어 유언과 같은 조서를 남기고 7일 후 사망해 시호를 문성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라는 땅에 장사를 지냈다.
원래 옆에 있는 진지왕릉과 함께 사적 제178호 '신라진지문성왕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두 왕릉을 별도의 사적으로 분리하면서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다만 이 고분이 문성왕릉으로 비정된 시기는 조선시대 경주 김씨 문중에 의한 것으로, 대부분의 신라왕릉이 그렇듯 현재의 문성왕릉 또한 능주의 비정이 잘못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지적은 조선 후기 김정희, 유의건 등의 유학자들부터 오늘날 역사학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악동 고분군, 진흥왕릉 문서를 참조할 것.
현재 진짜 문성왕릉의 후보로는 헌강왕릉, 진덕여왕릉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
원래 옆에 있는 진지왕릉과 함께 사적 제178호 '신라진지문성왕릉'으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두 왕릉을 별도의 사적으로 분리하면서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다만 이 고분이 문성왕릉으로 비정된 시기는 조선시대 경주 김씨 문중에 의한 것으로, 대부분의 신라왕릉이 그렇듯 현재의 문성왕릉 또한 능주의 비정이 잘못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지적은 조선 후기 김정희, 유의건 등의 유학자들부터 오늘날 역사학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악동 고분군, 진흥왕릉 문서를 참조할 것.
현재 진짜 문성왕릉의 후보로는 헌강왕릉, 진덕여왕릉 정도가 거론되고 있다.
일제시대 고적으로 관리하여 오던 것을 1963년 사적으로 일괄 지정하였으며, 2011년 진지왕릉과 분리하여 재지정하였다.
문성왕은 신무왕의 아들로 신라의 쇠퇴기에 재위하였으나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난을 평정하고 혈구진을 설치하여 지방 세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임해전을 크게 보수하였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0.8m, 높이 6m이다.
봉분에는 호석이나 상석 등이 존재하지 않으며, 남측에 1기의 표석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로 문화유산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봉분 주변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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