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군수리 사지
최근 수정 시각:
⠀[1~50호]⠀⠀[51~100호]⠀
⠀[101~150호]⠀⠀[151~200호]⠀⠀[201~250호]⠀⠀[251~300호]⠀⠀[301~350호]⠀⠀[351~400호]⠀⠀[401~450호]⠀⠀[451~500호]⠀⠀[501호~550호]⠀⠀[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1)]⠀⠀[번호없음-2]⠀
|
부여 군수리 사지 扶餘 軍守里 寺址 Temple Site in Gunsu-ri, Buyeo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면적 | 34,391㎡ |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제작시기 | |
위치 | |
![]() |
군수리 사지의 전경 |
![]() |
1936년 발굴 당시의 모습 |
1935년 전국에 있는 폐사지들 중 최초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조사를 진행한 사람은 일본인 고고학자 이시다 모사쿠(石田茂作, 1894-1977)였다.

남아있는 금당지의 초석

남아있는 목탑지의 초석
부여 군수리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의 절터로, 절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1935년 일본 사람에 의해 조사되었는데, 그 결과 중문·목탑·금당·강당 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된 1탑 1금당의 구조임이 밝혀졌다. 백제 사찰에서의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는 이 절터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는데, 중문, 목탑, 금당, 강당을 일직선으로 배치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금당터의 기단은 기와를 쌓아 만든 것이 특징이며, 유물은 절터에서 골고루 출토되었다. 먼저 강당터 남쪽에서 금동관 조각이 나왔고, 금당터 주위와 탑터에서는 약 1,150점의 옥과 금당 서쪽에서는 금동제방울·구두 모양의 금구가 출토되었다. 또한 연꽃무늬·덩굴무늬가 아름답게 조각된 상자 모양의 벽돌과 금제고리·작은 구슬을 비롯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목탑의 중심부에서는 군수리 금동미륵보살입상·군수리 석조여래좌상과 칠지도·철못·삼족토기를 비롯한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칠지도이다. 칠지도는 중심에서 양쪽으로 각각 세 가지씩 칼이 뻗어있어 7개의 칼날을 가지고 있는 칼이다. 이와 비슷한 백제 칠지도 하나가 일본에 있어 백제와 일본의 문화교류의 한 단면을 말해주고 있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