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대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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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4 -
충주 미륵대원지
忠州 彌勒大院址
Mireukdaewon Stone Temple Site, Chungju
소재지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8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수량/면적
80,166㎡
시대
소유자
관리자
지정일
1987-07-18
미륵대원지3
 
 
 
 
 
 
 
 
 
 
 
 
 
 
 
 
 
 
 
 
 
 
 
 
 

1. 개요2. 상세3. 외부 링크4. 사적 제317호
4.1. 안내판 설명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절터. 대한민국의 사적 (구)제317호이다.
 
 
 
 
 
 
 
 
 
 
 
 
 
 
 
 
 
 
 
 
 
 
 
 
 
 
 
 
 
 
 
 
 
 
 
 
 
 
 
 

2. 상세[편집]

 
 
 
 
 
 
 
 
 
 
 
 
 
 
 
 
 
 
 
 
 
 
 
 
 
 
 
 
 
 
 
 
 
 
 
 
 
 
 
 
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절터이다. 정확한 명칭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고, 건립된 연대나 절의 내력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미스터리한 절이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발굴할 때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와, '명창 3년 대원사 주지 승원명'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서 이 절터의 원래 이름이 미륵사(彌勒寺), 또는 대원사(大院寺)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월악산을 통과하는 고개인 하늘재의 서쪽 초입에 자리하고 있으며, 절임과 동시에 역원(驛院)[1]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늘재를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했던 장소로 보인다.

미륵대원지는 해발 378m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절과 달리 북향으로 지어졌다. 이는 미륵대원지의 위치 때문으로, 하늘재에서 미륵대원지로 내려오는 길목은 산의 북쪽 사면이라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지기 때문에 북쪽을 향한 계단식으로 지어진 것이다. 미륵대원지 내에는 상당히 넓은 건물터와 여러 생활 물건들이 발굴되어서 규모가 상당했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관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원지의 중심은 높이 9.6m의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으로, 길이 9.8m, 너비 10.75m, 높이 6m의 인공으로 쌓은 석굴 내에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석굴은 북쪽을 향해 열린 ㄷ자 형태이고 위쪽은 뚫려있는데, 원래 석굴 위로 목조건조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없다. 석불을 안치한 석실 앞에는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미륵대원지가 어떻게 창건되었는지는 불명이다. 그러나 불상과 석탑에 마의태자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마의태자오대산[2]으로 향하면서 이 주변에서 야숙을 하다 꿈속에서 관음보살을 만나게 된다. 보살은 태자에게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영봉[3] 밑에 마애불을 건립하면 억조창생의 평화가 있을 것이라 예언하였다.

그때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 역시 꿈에서 관음보살을 만나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에 남매는 마애불을 건립하고 미륵사를 짓고 8년 동안 치성을 드렸다. 마의태자는 다시 오대산으로 향했지만 덕주공주는 미륵사에 남아 마의태자의 안녕을 기원하며 평생을 보냈다고 한다.

또다른 이야기로는 왕건에 의해 마의태자는 미륵사에 감금을 당하였고, 덕주공주는 덕주사에 감금당하였다. 이에 서로를 그리워한 남매는 남북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으로 미륵불을 조각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4]

위 전설에 따르면 미륵대원지는 통일신라 말기~고려 초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미륵리 석불입상은 석굴암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인공 석굴 형식이 특징이며, 석불입상의 전체적인 양식 또한 나말여초의 양식에 가깝다. 다만 불상의 크기나 미륵대원지의 규모가 거대하기 때문에 건국 초기에 신흥세력들이 자신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보이며, 마의태자가 만들었다는 설화는 후대에 창작된 내용인 것으로 보인다.

충렬왕 때 쓰여진 삼국유사 왕력(王曆) 아달라니질금(阿達羅尼叱今)조에 "계립령금미륵대원동령시야(鷄立嶺今彌勒大院東嶺是也)"라는 문구가 있는데, 여기에서 언급된 미륵대원이 바로 미륵대원지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충렬왕 때까지는 미륵대원지가 존속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륵대원지는 어느 시점인가 폐사되어 잊혀진 절이 되었으며, 절 부지 위에는 민가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1976년에 수안보온천 주변 관광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건물지가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5] 4차에 걸친 발굴 과정을 통해 미륵대원지가 역원 역할을 겸했던 절임이 밝혀졌으며, 많은 건물터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 '중원 미륵리사지'에서 '충주 미륵대원지'로 명칭이 변경됐다.
 
 
 
 
 
 
 
 
 
 
 
 
 
 
 
 
 
 
 
 
 
 
 
 
 
 
 
 
 
 
 
 
 
 
 
 
 
 
 
 

3. 외부 링크[편집]

 
 
 
 
 
 
 
 
 
 
 
 
 
 
 
 
 
 
 
 
 
 
 
 
 
 
 
 
 
 
 
 
 
 
 
 
 
 
 
 

4. 사적 제317호[편집]

 
 
 
 
 
 
 
 
 
 
 
 
 
 
 
 
 
 
 
 
 
 
 
 
 
 
 
 
 
 
 
 
 
 
 
 
 
 
 
 
고지대에 위치한 미륵리사지는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굴사원터이다.

거대한 돌을 이용해 석굴을 쌓은 후 불상을 모셨으며, 위에 목조건물이 있었던 자취가 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조사결과 ‘미륵당초’라고 새겨진 기와가 나와 연대를 고려 전기로 추정한다. 석불입상(보물)·5층석탑(보물)·석등·당간지주 등 중요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망함을 슬퍼해 금강산으로 갔는데, 도중에 누이인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지어 남쪽을 바라보도록 돌에 마애불을 만들었고, 태자는 이곳에서 석굴을 지어 북쪽을 향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절터이며, 석굴사원으로서 방식은 다르지만 석굴암을 모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중원미륵리사지 → 충주 미륵대원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4.1. 안내판 설명[편집]

 
 
 
 
 
 
 
 
 
 
 
 
 
 
 
 
 
 
 
 
 
 
 
 
 
 
 
 
 
 
 
 
 
 
 
 
 
 
 
 
충주 미륵리 원터
忠州 彌勒里 院址
사적

충주 미륵대원지 창건과 더불어 지리적 중요성이 큰 이곳에 원(院)을 별도로 세우고 운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원터는 고려초기 충주와 문경을 잇는 계립령로(鷄立嶺路), 지금의 하늘재에 위치하며 충주를 넘어가면 문경 관음리에 절터가 있는데 이 또한 원(院) 의 기능을 갖추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조령(鳥嶺, 새재)이 개통되면서 미륵리의 원(院) 은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지에 대한 조사결과 두 차례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건물의 형태는 ‘回’자 구조로 가운데에 말을 묶어 두는 마방(馬房) 을 두고 주변에 여행자와 관리인이 기거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개길이며 남북을 잇는 요충지인 계립령로에 자리했던 이 원터는 미륵대원지와 더불어 사원과 역원의 기능을 두루 갖춘 중요한 유적지이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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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을 맡길 수 있는 마방과 여행자들의 숙박을 담당하는 여관을 뜻한다.[2] 또는 금강산[3] 월악산의 최고봉인 영봉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4] 덕주사에 조각했다는 미륵불 역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이다.[5] 아마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과 석굴 주변을 정비할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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