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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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3도수군통제사였던 이운룡 장군이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으로, 1606년에 만들어졌다.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면서 김화의 충렬서원처럼 교육 시설이기도 했다. 사적 제236호.
한편 통영에는 1599년에 처음으로 세워진 이순신 장군 사당인 착량묘도 있었다.
한편 통영에는 1599년에 처음으로 세워진 이순신 장군 사당인 착량묘도 있었다.
⠀[1~50호]⠀⠀[51~100호]⠀
⠀[101~150호]⠀⠀[151~200호]⠀⠀[201~250호]⠀⠀[251~300호]⠀⠀[301~350호]⠀⠀[351~400호]⠀⠀[401~450호]⠀⠀[451~500호]⠀⠀[501호~550호]⠀⠀[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1)]⠀⠀[번호없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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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51~79호]⠀⠀[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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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시 충정로 228-13 (수성동 614-3)에 위치한 이순신의 사당. 정읍 시청 바로 옆이며 사당을 중심으로 충무 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을 조성했다. 매년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 제사를 지낸다.
다른 충렬사와는 달리 8.15 광복 후인 1949년에 지역민들의 모금으로 창건기성회를 만들어서 건립하다가 6.25 전쟁으로 조성을 중단, 1963년 4월 정식 준공하였다. 정읍 또한 이순신과 연관성이 있는 곳인데,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가 되기 바로 전[1]에 정읍현이 설치된 후 정읍 초대 현감에 부임한 인연과 지역민들의 존경심이 합쳐져서 건립하게 되었다.
다른 충렬사와는 달리 8.15 광복 후인 1949년에 지역민들의 모금으로 창건기성회를 만들어서 건립하다가 6.25 전쟁으로 조성을 중단, 1963년 4월 정식 준공하였다. 정읍 또한 이순신과 연관성이 있는 곳인데,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가 되기 바로 전[1]에 정읍현이 설치된 후 정읍 초대 현감에 부임한 인연과 지역민들의 존경심이 합쳐져서 건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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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는 국민혁명충렬사 말고도 수많은 충렬사가 있다. 대만의 법에 따라 모든 직할시와 성할시 및 현은 하나 이상의 충렬사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각 지방정부가 충렬사를 관리한다.
지방정부에서 관리하는 충렬사 역시 타이베이의 국민혁명충렬사처럼 일본 신사 건물을 개수하여 세워진 것이었으나, 국민당 정권에서 '식민지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하나둘 신사를 밀어버리고 중국식 건축 양식의 충렬사를 건립했다. 타오위안 충렬사의 경우 여전히 일본 신사 건물을 개수하여 사용하고 있어 일본 신사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다른 충렬사처럼 1970년대에 철거하고 중국식 건축 양식으로 대체하려다가 지역 사회의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가오슝시 충렬사의 경우 바로 앞에 수산연인전망대가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진먼 섬에는 태무산 충렬사가 있다. 1958년 진먼 포격전 당시 순직한 기자들의 위패는 이곳에 모셨으며 최병우 기자의 위패도 그곳에 있다.
오늘날에는 국가유공자나 군인뿐만 아니라 직무 중 순직한 경찰 및 소방관, SARS 대란 당시 의료종사자 등 공동체를 위해 순직한 사람들도 충렬사에 모셔진다.
지방정부에서 관리하는 충렬사 역시 타이베이의 국민혁명충렬사처럼 일본 신사 건물을 개수하여 세워진 것이었으나, 국민당 정권에서 '식민지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하나둘 신사를 밀어버리고 중국식 건축 양식의 충렬사를 건립했다. 타오위안 충렬사의 경우 여전히 일본 신사 건물을 개수하여 사용하고 있어 일본 신사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다른 충렬사처럼 1970년대에 철거하고 중국식 건축 양식으로 대체하려다가 지역 사회의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가오슝시 충렬사의 경우 바로 앞에 수산연인전망대가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진먼 섬에는 태무산 충렬사가 있다. 1958년 진먼 포격전 당시 순직한 기자들의 위패는 이곳에 모셨으며 최병우 기자의 위패도 그곳에 있다.
오늘날에는 국가유공자나 군인뿐만 아니라 직무 중 순직한 경찰 및 소방관, SARS 대란 당시 의료종사자 등 공동체를 위해 순직한 사람들도 충렬사에 모셔진다.
[1] 전라좌수사 전에 진도 군수, 가리포첨절제사에 임명된 적은 있지만, 이는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임명하기 위해 선조가 일부러 파격 승진을 시킨 것이라서 해당 직위에 부임하기도 전에 곧바로 다음 자리로 임명된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부임은 정읍 현감에서 곧바로 전라좌수사가 된 형태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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