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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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상당산성 淸州 上黨山城 Sangdangsanseong Fortress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
소유자 | 청주시 등 |
관리자 | |
면적 | 936,574㎡ |
시대 | |
지정일 | 1970년 10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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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의 남문 공남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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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 성벽[1] |
상당산성 전경 |
본래는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숙종 42년(1716) 석성으로 개수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대한민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도시의 성곽들은 헐리거나 소실되는 사례가 많으나, 상당산성은 시 외곽의 고개 너머 산골에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성곽의 형태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 풍경이나 이동로의 구조까지 잘 보존되었다. 시 외곽에 존재해서 접근성이 애매한 것이 산성과 주변 환경을 비교적 잘 보존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절묘한 위치선정 내부시설 다수와 성벽 위 여장 같은 시설들은 소실되었지만, 부실하게 복원하느니 이대로 두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한반도의 성 건축 형태뿐만 아니라 풍경까지 잘 남은 성곽으로서 가치가 높다. 조선시대의 지방 촌락이 잘 보존된 낙안읍성과 함께 보존상태로만 본다면 조선시대 산성의 풍광을 대충이나마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이다. 대도시권 성곽에 비하여 많이 갈아엎지 않았으면서 적당한 규모라서 전통적인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도시의 성곽들은 헐리거나 소실되는 사례가 많으나, 상당산성은 시 외곽의 고개 너머 산골에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성곽의 형태뿐만 아니라 주변의 자연 풍경이나 이동로의 구조까지 잘 보존되었다. 시 외곽에 존재해서 접근성이 애매한 것이 산성과 주변 환경을 비교적 잘 보존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한반도의 성 건축 형태뿐만 아니라 풍경까지 잘 남은 성곽으로서 가치가 높다. 조선시대의 지방 촌락이 잘 보존된 낙안읍성과 함께 보존상태로만 본다면 조선시대 산성의 풍광을 대충이나마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이다. 대도시권 성곽에 비하여 많이 갈아엎지 않았으면서 적당한 규모라서 전통적인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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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의 서문 미호문 |
다른 산성들처럼 시대를 거치며 돌이 파내어져 초라한 토대가 드러난 부분이 많으나 그런 곳조차도 평가가 좋고, 쌓아올린 돌담이 예쁘게 보존되는 곳도 많다.
산성을 올라가면 청주 도심이 보이며, 식당이나 관광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책로가 있다. 성은 동그란 모양으로 작은 골짜기를 싸는데, 안쪽에는 마을이 있어서 여러 가지 토속음식들을 판매한다.
산성을 올라가면 청주 도심이 보이며, 식당이나 관광시설이 들어서 있고 산책로가 있다. 성은 동그란 모양으로 작은 골짜기를 싸는데, 안쪽에는 마을이 있어서 여러 가지 토속음식들을 판매한다.
주변에 수십년 어치 쓰레기가 파묻혀 있어서 폭우로 토사가 깎일 때마다 수십년 전의 다량의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다. 시 측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그때그때 유출된 쓰레기만 치워왔다. 취재가 시작되자 우기철이 끝나고 지반이 굳으면 중장비로 파 없애겠다고 밝혔다.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의 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쳤으며 숙종 42년(1716)에 돌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비교적 잘 남아있으나 성벽 위에 낮게 쌓은 담(여장)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성 안에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문과 치성이 남아있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당산성 → 청주 상당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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