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덕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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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경덕왕릉 慶州 景德王陵 Tomb of King Gyeongdeok, Gyeongju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면적 | 32,132㎡ |
지정연도 | |
시대 | |
소유단체 | |
관리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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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릉(景德王陵) |
경주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다만 이 고분의 능주가 경덕왕으로 비정된 것은 체계적인 고고학이 도입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 경주 김씨 문중에 의한 것으로,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고분이 실제 경덕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이 이근직 교수 등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고분의 양식이 경덕왕 때보다 좀 더 후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근직 교수는 이 고분을 제39대 국왕 소성왕의 능으로 추정했으며, 진짜 경덕왕릉은 현대에 김유신장군묘로 알려진 그 고분이라고 비정했고 실제 김유신장군의 무덤은 무열왕릉 맞은편의 각간묘라고 주장했다. 그래야 왕릉과 능원의 양식이 시대별로 발전해나가는 순서가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 이외로는 소산에 장사 지냈다고 하는 희강왕의 능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비정 이후 각자 수백년간 제사를 지내왔는데 이제 와서 모두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2] 공식적으로는 이 고분을 경덕왕릉으로 지정하고 있다.
사실 경덕왕릉도 원래 문무왕릉비처럼 비석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곳에 경덕왕의 생애를 비롯한 당대의 기록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지만, 조선 말 이우의 '대동금석서'를 살펴보면 경덕왕릉 비편으로 등장하고 있어 17세기 이전에 비석은 파손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일제강점기의 사진 자료에는 이미 비편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이 고분의 능주가 경덕왕으로 비정된 것은 체계적인 고고학이 도입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 경주 김씨 문중에 의한 것으로,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고분이 실제 경덕왕의 능이 아니라는 주장이 이근직 교수 등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고분의 양식이 경덕왕 때보다 좀 더 후대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근직 교수는 이 고분을 제39대 국왕 소성왕의 능으로 추정했으며, 진짜 경덕왕릉은 현대에 김유신장군묘로 알려진 그 고분이라고 비정했고 실제 김유신장군의 무덤은 무열왕릉 맞은편의 각간묘라고 주장했다. 그래야 왕릉과 능원의 양식이 시대별로 발전해나가는 순서가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 이외로는 소산에 장사 지냈다고 하는 희강왕의 능으로 추정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비정 이후 각자 수백년간 제사를 지내왔는데 이제 와서 모두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2] 공식적으로는 이 고분을 경덕왕릉으로 지정하고 있다.
사실 경덕왕릉도 원래 문무왕릉비처럼 비석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곳에 경덕왕의 생애를 비롯한 당대의 기록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지만, 조선 말 이우의 '대동금석서'를 살펴보면 경덕왕릉 비편으로 등장하고 있어 17세기 이전에 비석은 파손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일제강점기의 사진 자료에는 이미 비편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신라 제35대 경덕왕(재위 742∼765)의 무덤이라 전해지는 곳으로 경주 시가지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경덕왕은 성덕왕의 아들이며 이름은 헌영이다. 신라 왕실의 전제왕권이 쇠퇴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왕위에 올라 행정구역 개편·직제개편 등을 단행하였다.
봉분은 둥근 모양이며, 무덤 주위에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둘레돌을 둘렀다. 둘레돌은 목조건축물의 돌기단 같은 형태로 되어 있는데, 바닥돌을 깔고 그 위에 면석을 둘렀다. 면석 사이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탱석을 배치하였다. 탱석에는 두 칸 건너 하나씩 무인 복장을 하고 무기를 든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면석과 탱석 위에는 덮개돌이 놓여 있다. 이 둘레돌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돌기둥 40개를 세워 난간을 둘렀다.
무덤 앞에는 안상문을 새긴 높은 석상이 놓여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 왕릉에서 볼 수 있는 돌사자·문인석·무인석 같은 석조물은 보이지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무덤의 자리가 이곳인지 확실치 않고, 둘레돌을 다듬는 수법이나 12지신상의 조각수법이 신라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 이 무덤이 경덕왕의 무덤인지 의문시하는 견해도 있다.
※(신라경덕왕릉 → 경주 경덕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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