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신창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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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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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적 시대
대전 둔산 선사유적지구석기~청동기, 하남 미사리 유적신석기~철기, 굴포리 서포항 유적구석기~청동기[10], 달서구 선사유적구석기~청동기
기타
※ 문서가 있는 경우만 서술. 밑줄은 세계유산.
[ 각주 펼치기 · 접기 ]
[1] 문서에 나오듯 우상화 지명이라서 통일 후 원래 지명 신산동굴로 개명 유력.[2] 아슐리안 석기 옛 학설을 뒤집었다.[3] 남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 한강 이남의 구석기 문화 존재를 밝혀냈다. [4] 유적지는 멸실되고 유물만 충북대학교박물관에 보존중. [5] ~ 후기 철기 시대[6] ~청동기 시대[7] 한반도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 구석기에서 넘어온 과도기 모습. [8] 층서가 형성됐고 토기가 다양해 한국 신석기 문화의 변천을 잘 보임. [9] 한반도 남부 최초 발견된 초기 청동기 유적[10] 해방후 한반도 최초 발견 구석기 유적 포함
정부상징
대한민국
사적 史蹟
⠀[1~50호]⠀
⠀[51~100호]⠀

[9]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7호로 재지정[10]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8호로 재지정[11]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75호로 재지정[12] 울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제8호로 재지정[13]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76호로 재지정[B] 14.1 14.2 사적 제510호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로 통합, 재지정[C] 16.1 16.2 16.3 사적 제513호 나주 반남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D] 19.1 19.2 사적 제514호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E] 21.1 21.2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으로 통합 재지정
⠀[101~150호]⠀
⠀[151~200호]⠀
⠀[201~250호]⠀
⠀[251~300호]⠀
⠀[301~350호]⠀
⠀[351~400호]⠀
⠀[401~450호]⠀
⠀[451~500호]⠀
⠀[501호~550호]⠀
⠀[번호폐지 이후(번호없음-1)]⠀
2021년 11월 19일부로 번호 지정제 폐지
2021.11.19 - 2026.05.14
[37] 내동리 쌍무덤. 옥야리 장동 방대형 고분 4기 총 5기
⠀[번호없음-2]⠀
2026.05.14 -
광주 신창동 유적
光州 新昌洞 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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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분류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유적분포지
면적
260,715㎡
지정연도
1992년 9월 9일
제작시기
위치
 
 
 
 

1. 개요2. 내용3. 기타4. 외부 링크5. 사적 제375호
 
 
 
 

1. 개요[편집]

 
 
 
 


光州 新昌洞 遺蹟. 광주 신창동 유적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신창동에 위치한 초기 철기시대 대표 유적으로, 1992년 사적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편집]

 
 
 
 
광주 신창동 유적에는 저습지를 중심으로 하여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2- 기원전 1세기)부터 원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집터, 무덤 등과 같은 유적들이 모였다. 여기서는 각종 철기 무기와 공구를 비롯하여 목제품들 및 현악기 등과 같은 당시의 생활 유물들뿐만 아니라 토기, 가래나무와 같은 견과류[1], 각종 곡물의 씨앗 및 농경기구 등 농업과 관계된 유물들이 다량 발견됐다. 이렇게 발견된 유물들 중 상당수가 국내 최초 발견이라 해도 무방할 것들이었다고 한다.[2]

1963년 서울대학교 발굴조사단이 신창동 유적에서 옹관묘(甕棺墓)[3] 53기를 발견했고, 이후 국립광주박물관이 1992년 실시한 첫 조사[4]한 이래로 수차례 조사로 생활유적들을 발굴했다.[5]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 대부분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6]
 
 
 
 

3. 기타[편집]

 
 
 
 
신창동 유적지를 위키백과에서는 신창동 512-1번지로 소개한다. 1992년 신창지구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기 전에는 광주시와 장성군을 잇는, 1번국도와 고속국도가 병행하는 평범한 시외곽의 농업지구였다.

해당 지역에 신창동 유적 선사체험 학습관이 건립을 시도중이다. #
상세한 유적지 지도가 있는 기사가 있다. #
근처에서 백제시대 마을 터도 발견되었다. #
 
 
 
 

4. 외부 링크[편집]

 
 
 
 

5. 사적 제375호[편집]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영산강 유역 낮은 평야지대에 자리한 초기 철기시대의 늪과 못터, 토기가마터, 배수시설, 독무덤(옹관묘) 등 고대 농경문화와 생활유적이 있는 곳이다.

독무덤은 53기가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토기와 철기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지역 독무덤은 영산강 유역 삼국시대 독무덤 계보가 선사시대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가치가 크다.

늪과 못터에서 토기, 목제, 석기 등의 유물이 나왔는데, 특히 빗, 괭이, 나무 뚜껑과 같은 목제유물들은 당시 생활모습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이와 함께 불탄쌀, 볍씨, 살구씨와 같이 농경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것들도 발견되었고, 터에서는 토기 제작기술의 발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움집터에서는 바닥 가운데에 타원형 화덕을 설치하였다.

이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 생활문화연구와 농경생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목제 유물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중요하다.
 
 
 
 
[1] 기사로는 호두라고 쓴 것이 많이 보이는데 막상 박물관 가서 보면 분명히 가래나무 열매다. 호두는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에 원나라에서 당추자라는 이름으로 처음 전래되었다.[2] 출처: 한국 미의 재발견 선사 유물과 유적 - 광주 신창동 유적[3] '독무덤'이라고도 한다. 거대한 도기 항아리(옹관)를 관으로 삼아 시신을 매장했다.[4] 국도 1호선 직선화 개량공사 때문에 긴급조사를 했다고 한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 광주 신창동 유적[5] 출처: 고고학사전 - 신창동 유적[6] 2012년 12월 25일부터 2013년 3월 3일까지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광주 신창동 유적에 관련한 '2000년 전의 타임캡슐' 특별전시전을 열기도 했다. 중앙일보 - 비단·현악기·신발 .. 광주 신창동은 '고대사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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