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안골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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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안골 고분군 扶餘 陵안골 古墳群 Ancient Tombs in Neungangol, Buy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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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안골 고분군의 전경 |
성왕의 사비천도 이후 이 곳은 백제 고위 귀족층의 집단 매장지로 사용되었다가 백제멸망전 때 백제의 상류층 상당수가 당으로 압송되면서 사람들의 기억속에선 점차 잊혀진 곳이 되었다.
그러나 그후에도 유적이 위치한 장소는 현지 주민들에게 '능안골(陵안골)'이라 불리며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지명에 남아 후대까지 전해졌다.
이후 1994년 부여군 공설운동장 조성 과정 중 백제시대의 고분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1995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조사가 끝난 후 백제 후기 귀족들의 집단 묘역이라는 점과 출토유물들이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7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깔끔하게 묘역의 정비가 이루어지고 주차장과 화장실 및 탐방로 등이 설치된 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그러나 그후에도 유적이 위치한 장소는 현지 주민들에게 '능안골(陵안골)'이라 불리며 예사롭지 않은 곳이었다는 사실 자체는 지명에 남아 후대까지 전해졌다.
이후 1994년 부여군 공설운동장 조성 과정 중 백제시대의 고분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1995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발굴조사가 끝난 후 백제 후기 귀족들의 집단 묘역이라는 점과 출토유물들이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7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깔끔하게 묘역의 정비가 이루어지고 주차장과 화장실 및 탐방로 등이 설치된 역사공원으로 조성되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대표적인 사비시대 귀족의 부부 합장묘이다.
고분군 남쪽의 만들어진 무덤인데 경사진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작은 돌들로 3단 축대를 만들어 묘역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무덤 남쪽을 별도로 좁게 파고 내려간 뒤, 바닥에 작은 돌들을 덮은 배수로를 L자형으로 약 11m 길이가 되게 조성하였다. 다른 고분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독특한 구조라고 한다.
부여 능산리고분군 동쪽에 있는 백제의 무덤이다.
1995∼1996년 사이에 조사되어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30여기, 돌덧널무덤(석곽묘) 20여기, 독무덤(옹관묘) 4기 등을 발견하였다. 홑무덤(단장묘)이나 합장묘, 어린아이 무덤 등 다양한 형태로 매장되었는데, 주(紬)·사(紗) 등의 옷감 및 금귀고리, 은제관장식과 띠드리개장식(요대장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덤의 형식과 출토된 유물을 통해 6∼7세기경 백제 귀족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백제 후기 무덤형식과 의복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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