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강왕릉
최근 수정 시각:
경주 희강왕릉 慶州 僖康王陵 Tomb of King Huigang, Gyeongju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면적 | 9,494㎡ |
지정연도 | |
시대 | 통일신라 희강왕 |
소유단체 | |
관리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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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강왕릉(僖康王陵) |
사진으로 봐도 알겠지만, 굉장히 무색무취한 것이 특징이다. 희강왕릉을 알리는 표석이 없으면 크기만 좀 큰 일반 백성의 무덤이나 야트막한 구릉으로 착각할 정도로 왕릉치고 아무것도 없다. 아무래도 재위기간이 고작 1년 1개월 밖에 안 되는 임금인데다, 최후 또한 불분명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당대의 사회상이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여느 신라왕릉들이 다 그렇듯 이 무덤도 진짜 희강왕릉이라고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희강왕을 소산(蘇山)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 소산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진짜 희강왕릉에 대해서는 여러 고분들이 거론되는데, 능지탑[2]의 십이지신상이 희강왕릉 석물이라는 설부터, 전 경덕왕릉이 진짜 희강왕릉이라는 설도 있다.
다만 여느 신라왕릉들이 다 그렇듯 이 무덤도 진짜 희강왕릉이라고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희강왕을 소산(蘇山)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 소산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진짜 희강왕릉에 대해서는 여러 고분들이 거론되는데, 능지탑[2]의 십이지신상이 희강왕릉 석물이라는 설부터, 전 경덕왕릉이 진짜 희강왕릉이라는 설도 있다.
신라 43대 희강왕(836∼838)의 무덤이다. 그는 재위기간이 3년밖에 되지 않아 별다른 업적은 보이지 않는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자 소산에 장사지냈다고 하나 그 지점은 알 수 없다.
지름 14m, 높이 3.4m의 이 무덤은 얕은 구릉의 중간 부분에 있으며, 흙을 쌓아 올린 둥근 무덤으로 높이에 비해 아랫부분이 넓은 편이다. 희강왕릉의 무덤이라고만 전해 내려오다가 조선 후기에 희강왕릉으로 지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무덤은 크기만 클 뿐 일반 백성의 무덤과 비슷하며 특징은 없다.
※(희강왕릉 → 경주 희강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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