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소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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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효소왕릉 慶州 孝昭王陵 Tomb of King Hyoso, Gyeongju | |
소재지 |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면적 | 20,782㎡ |
지정연도 | |
시대 | |
소유단체 | |
관리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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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왕릉(孝昭王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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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 본 효소왕릉(孝昭王陵) |
바로 옆에 효소왕의 다음 대 국왕이자 동생인 성덕왕의 성덕왕릉이 있는데, 지금도 섬세한 장식이 남아있는 성덕왕릉에 비해 규모도 작고 초라해서 비교가 된다(...)
다만 경주의 많은 신라왕릉이 능주(陵主) 비정이 잘못됐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현재 경주시 조양동에 있는 이 효소왕릉으로 알려진 고분도 실제 효소왕의 왕릉이 아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근직 교수는 현재 신문왕릉으로 알려진 곳이 실제 효소왕릉이며, 지금 효소왕릉으로 알려진 여기는 어느 신라 귀족의 무덤이라고 주장하였다. 남아있는 기록상으로도 그렇고 왕릉과 주변 석물 양식의 흐름을 보아도 그렇게 해석해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만약 효소왕릉이 아니라는 이 설을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성덕왕의 충신을 성덕왕릉 근처에 묻은 배총(딸린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지리상 7번 국도에서 불과 100m 거리고 경주시 시내버스를 이용한다면 한국광고영상박물관 정류장에서 매우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도로와 왕릉 사이에 동해선 철도 철길이 있었는데 2022년 기준으로 이 철길은 폐선되어 열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아 그냥 걸어서 지나가도 된다. 과거에 열차가 다니던 시절에는 철길을 건너지 않으려면 북동쪽 마을까지 돌아서 가야 했다.
일제강점기에 닦은 현 동해선을 복선전철화하면서 굳이 경주 중심부에서 거리가 먼 산 쪽으로 이설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기존 동해선이 여기처럼 유적지들 바로 코앞이거나, 심하게는 사천왕사지나 동궁과 월지처럼 유적지 위를 지나는 경우가 많아 유적 훼손 방지 겸 방문객의 편의성을 위함이다.
다만 경주의 많은 신라왕릉이 능주(陵主) 비정이 잘못됐다는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현재 경주시 조양동에 있는 이 효소왕릉으로 알려진 고분도 실제 효소왕의 왕릉이 아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근직 교수는 현재 신문왕릉으로 알려진 곳이 실제 효소왕릉이며, 지금 효소왕릉으로 알려진 여기는 어느 신라 귀족의 무덤이라고 주장하였다. 남아있는 기록상으로도 그렇고 왕릉과 주변 석물 양식의 흐름을 보아도 그렇게 해석해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만약 효소왕릉이 아니라는 이 설을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성덕왕의 충신을 성덕왕릉 근처에 묻은 배총(딸린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지리상 7번 국도에서 불과 100m 거리고 경주시 시내버스를 이용한다면 한국광고영상박물관 정류장에서 매우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도로와 왕릉 사이에 동해선 철도 철길이 있었는데 2022년 기준으로 이 철길은 폐선되어 열차가 더 이상 다니지 않아 그냥 걸어서 지나가도 된다. 과거에 열차가 다니던 시절에는 철길을 건너지 않으려면 북동쪽 마을까지 돌아서 가야 했다.
일제강점기에 닦은 현 동해선을 복선전철화하면서 굳이 경주 중심부에서 거리가 먼 산 쪽으로 이설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기존 동해선이 여기처럼 유적지들 바로 코앞이거나, 심하게는 사천왕사지나 동궁과 월지처럼 유적지 위를 지나는 경우가 많아 유적 훼손 방지 겸 방문객의 편의성을 위함이다.
신라 제32대 효소왕(재위 692∼702) 무덤이다.
신문왕(재위 681∼692)의 아들로서 삼국을 통일한 후 안정과 발전이 있던 시기에 왕위에 올라 서시전과 남시전 등 시장을 열어 물품의 유통을 쉽게 하였다.
높이 4.3m, 지름 10.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석을 돌렸으나 현재 몇 개만이 남아있다. 무덤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혼령이 머무는 자리라는 혼유석만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702년에 왕이 죽자 이름을 효소라 하고 망덕사 동쪽에 장사지냈다고 했으나, 현재 서쪽에 있는 이 무덤은 망덕사지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약 8㎞ 거리에 있어 차이가 많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망덕사지 동쪽에 있는 신문왕릉을 효소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신라효소왕릉 → 경주 효소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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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舊 사적 제1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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