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평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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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평왕릉(眞平王陵) |
경주 시가지 동쪽 보문 들판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높이는 7.9m, 지름 36.4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둘렀으나, 현재 몇 개만 남아있는 상태다.
다만 이 무덤이 진평왕릉으로 비정된 건 체계적인 학문이 도입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비정으로,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고분이 실제 진평왕의 능이 아니라 신문왕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이근직 교수 등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신문왕릉으로 알려진 그 무덤은 실제로는 효소왕의 무덤이며, 효소왕릉으로 알려진 무덤은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게 보아야 왕릉과 능원의 양식이 시대별로 발전해나가는 순서가 들어맞기 때문. 그러나 신라왕릉 배치의 진행 방향을 중심으로 봤을 때 진평왕릉을 중대의 신문왕릉으로 보는 것에 중대 신라왕릉의 여러 속성과 맞지 않는 문제점이 있어서, 진평왕릉이 신문왕릉이 아닌 실제 진평왕의 능이 맞다는 주장도 있다.[A][B]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있다.
다만 이 무덤이 진평왕릉으로 비정된 건 체계적인 학문이 도입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비정으로, 현대 학자들의 연구 결과 이 고분이 실제 진평왕의 능이 아니라 신문왕의 무덤이라는 주장이 이근직 교수 등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신문왕릉으로 알려진 그 무덤은 실제로는 효소왕의 무덤이며, 효소왕릉으로 알려진 무덤은 신라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게 보아야 왕릉과 능원의 양식이 시대별로 발전해나가는 순서가 들어맞기 때문. 그러나 신라왕릉 배치의 진행 방향을 중심으로 봤을 때 진평왕릉을 중대의 신문왕릉으로 보는 것에 중대 신라왕릉의 여러 속성과 맞지 않는 문제점이 있어서, 진평왕릉이 신문왕릉이 아닌 실제 진평왕의 능이 맞다는 주장도 있다.[A][B]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신라 26대 진평왕(재위 579∼632)의 무덤이다.
진평왕은 독자적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중앙 행정부서를 설치하였다. 또한 중국의 수·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효율적으로 막았고, 경주 명활성을 보수하여 수도 방위에 힘썼다.
높이 7.9m, 지름 36.4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돌을 둘렀으나, 현재 몇 개만 남아있다. 규모로 보아 왕릉급 무덤임이 분명하며 평야 가운데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신라진평왕릉 → 경주 진평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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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1 1.2 봉토 외형으로 본 신라 전·중기의 왕릉 추정[B] 2.1 2.2 신라 진평왕릉의 위치 비정[3] 신라 왕릉의 새로운 비정[4] 통일신라 왕릉 편년연구[5] 舊 사적 제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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