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송국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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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송국리 유적 扶餘 松菊里 遺蹟 |
대한민국의 사적 249호. 1975년 발굴된 한반도 남부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비파형 동검이 발견, 한반도 남부에도 청동기 시대가 있었음을 증명했다. 또한 민무늬 토기도 발굴, 특유의 항아리 모양으로서 송국리식 토기로 명명돼 남부 청동기 문화에 대한 지표로 통한다. 하위문단인 송국리 유형 문화도 참조. 또한 원형, 사각형의 집터, 돌널무덤과 청동기 시대 유물 다수가 발굴됐는데 고인돌 설치는 안한 것도 특징이다.※ 또한 독널도 나왔다.※
송국리 산24-1번지 소재. 현재까지 100여 기 이상 집터와 다양한 유구, 유물이 발굴돼 남한 최대의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송국리 산24-1번지 소재. 현재까지 100여 기 이상 집터와 다양한 유구, 유물이 발굴돼 남한 최대의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무덤에선 비파형 동검, 간돌칼, 화살촉, 곡옥 등 여느 청동기 무덤보다 다양한 유물이 출토, 상당한 세력가가 거주했다는 반증을 했다. 또한 인정받지 못했던 한반도 남부의 청동기시대를 명확히 했다. 전까지 일본같이 한반도도 금석병용기(석기+금속 함께 사용되는 시기)만 있다고 오해했는데, 남부에도 비파형 동검의 청동기 시대, 세형 동검의 초기 철기시대 모두 명확하게 드러나서 석기에서 중국 영향으로 뒤늦게 철기로 바로 건너뛰었다는 학설이 깨졌다.※
2024년 조사에서는 1,000m² 넘는 건축물 기반과 수백m 길이 나무기둥 박은 자리가 발굴돼 대규모 공사를 했음이 드러났다.※
2024년 조사에서는 1,000m² 넘는 건축물 기반과 수백m 길이 나무기둥 박은 자리가 발굴돼 대규모 공사를 했음이 드러났다.※
실제로 가보면 벌판에 구덩이 다수의 유적이라 실망할 수도 있다. 전시관이 옆에 있지만 유물 대부분은 다른 박물관으로 가서 조그맣다. 그러나 근처에 청동기 당시 집을 충실하게 재현해 놨고, 옆동네에 본 유적과 상관없는 고인돌 유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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