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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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산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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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무왕 3년(663)에 쌓은 신라 산성으로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한다. 주사산·오봉산·오로봉산·닭벼슬산이라고도 불리는 부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성이다. 산성이 있는 곳은 대구에서 경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선덕여왕 때 백제군이 이 산을 넘어 옥문곡(일명 여근곡)까지 침입한 일이 있었다. 그 이후에 경주의 서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외곽산성으로 조선시대 전기까지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성밖은 4면이 경사가 심하고 험준하여 방어에 적합하다. 성안에는 넓고 평탄한 지형이 많으며 물이 풍부하여 신라의 중요한 군사기지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효소왕 때 화랑 득오(得烏)가 죽지랑(竹旨郞)과의 우정을 그리워하며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지은 곳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현재는 남문터와 군의 창고터, 군사훈련을 시켰던 연병장터·우물터·못터, 그리고 비밀통로인 암문터 등이 남아 있다. |
경주 부산성 慶州 富山城 사적 부산성은 대구에서 경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신라의 산성으로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한다. 문무왕 3년(663)에 쌓기 시작하여 3년 만에 완성하였다. 선덕여왕 때 백제군이 이 산을 넘어 옥문곡*까지 숨어들었다가 섬멸된 적이 있기에 문무왕 때 도성 서쪽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남산에 장창(長倉)**을 건립하면서 함께 쌓았다고 한다. 산성은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감싸도록 자연석을 쌓아서 만들었다. 성벽 길이는 9.7km에 달하고 남문, 창고, 암문(暗門) 등의 터가 남아있다. 성의 바깥쪽은 4면이 모두 경사가 심하고 험준하여 방어에 적합한 천연의 요새이면서, 안쪽은 평탄하고 물이 풍부하여 거주하기에 알맞다. 성 안에는 신라의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주암사의 터가 있고, 절터 북쪽에 김유신이 술을 빚기 위해 보리를 두었던 곳이라는 지맥석(持麥石)이 있다. 한편 이곳은 효소왕 때 득오(得烏)가 지은 향가인 `모죽지랑가(慕竹旨郎歌)'의 주 무대로 알려져 있다. *옥문곡(玉門谷) : 여근곡(女根谷)이라고도 함. **장창(長倉) : 곡식과 병기를 저장해둘 목적으로 왕성과 가까운 남산신성의 내부에 설치한 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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