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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금융 미취급. 명칭은 대외명 기준, 정렬은 지로코드

한국은행
韓國銀行 / Bank of Korea

파일:The Bank of Korea.jpg

한국은행의 CI

설립

1950년 6월 12일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9

업종명

중앙은행

중앙본부

한국은행본점
•금융통화위원회(1950)
•화폐경제박물관(2001)
•경제연구원(2002)
•외자운용원(2011)

지역본부

강남본부
인천본부
부산본부
경기본부
대구경북본부
대전충남본부
울산본부
광주전남본부
경남본부
포항본부
제주본부
목포본부
전북본부
충북본부
강원본부
강릉본부

은행코드

001

SWIFT 코드

BOKRKRSE

초대 총재

구용서

현 총재

이주열

공식 홈페이지

http://www.bok.or.kr/

노조 홈페이지

http://boklu.or.kr/index.php


1. 개요2. 상세3. 금융통화위원회4. 과거5. 관련 문화재6. 입행7. 역대 총재8. 기타
8.1. 한국은행 본점 리모델링

1. 개요[편집]

한국은행은 대한민국중앙은행으로, 통화·신용 정책의 연구결정, 경제통계 산출 및 물가 안정, 원화 발권, 외환보유고의 관리를 담당한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설립한 특수법인이나 한국은행법 등 법령에 의거하여 그 독립성을 인정받고 있다.

파일:external/www.much.go.kr/introimg_bok.jpg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9 (舊 남대문로3가 110번지) 소재. 앞쪽의 건물은 1910년대 일제에 의해 건립되어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본관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화폐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적 제280호. 현재 본관은 1987년 건립된 뒤쪽의 신관이다.

파일:resized_20160709_024055_1509425403.jpg

2020년에 완공될 한국은행 증축조감도. 본관은 리모델링한다.

2. 상세[편집]

한국은행법
제1조(목적) ① 이 법은 한국은행을 설립하고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②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

제2조(법인격) 한국은행은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한다.

제3조(한국은행의 중립성)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제4조(정부 정책과의 조화 등) ①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물가안정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②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시장기능을 중시하여야 한다.

제5조(한국은행의 공공성·투명성) 한국은행은 업무를 수행하고 기관을 운영할 때에는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6조(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의 수립 등) ① 한국은행은 정부와 협의하여 물가안정목표를 정한다.
② 한국은행은 매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을 수립하여 공표하여야 한다.
③ 한국은행은 제1항에 따른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제7조(사무소) 한국은행은 주된 사무소를 서울특별시에 두며, 업무수행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정관(定款)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지사무소(支事務所) 및 대리점을 둘 수 있다.

제47조(화폐의 발행) 화폐의 발행권은 한국은행만이 가진다.

제48조(한국은행권의 통용) 한국은행이 발행한 한국은행권은 법화(法貨)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

제49조(한국은행권의 권종 등) 한국은행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따라 어떠한 규격·모양 및 권종(券種)의 한국은행권도 발행할 수 있다.

제49조의2(위조·변조된 한국은행권의 집중 관리) ① 한국은행은 위조되거나 변조(變造)된 한국은행권에 대한 수사 및 재판이 끝난 후에는 그 위조 또는 변조된 한국은행권을 한국은행에 집중하여 관리할 수 있다.
② 제1항에 따른 위조 또는 변조된 한국은행권의 집중 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한국은행이 관계 기관과 협의하여 정한다.

제98조(예산·결산) ①한국은행의 매 회계연도 예산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한다.
② 한국은행은 제1항의 예산 중 급여성 경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예산에 대해서는 미리 기획재정부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지체 없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③ 한국은행은 해당 회계연도 개시 60일 전까지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제2항에 따른 예산의 예산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④ 총재는 회계연도가 끝난 후 2개월 이내에 외부감사를 받은 해당 연도 결산서(재무제표와 그 부속명세서 및 「공인회계사법」 제23조에 따른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를 포함한다)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와 기획재정부장관에게 각각 제출하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통화정책[1]을 결정하는 경제학오타쿠들의 성지 중앙은행이다. 한국은행권 원화를 발행하며, '국민경제발전을 위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 한국은행법에 규정된 한국은행의 최우선 목표...이다. 어쨌든 발권력 남용 논란이 상당히 거센 상황. 통화량 조절(물가 관리)을 위해 공개시장운영[2]과 여수신제도, 그리고 지급준비율 제도를 운영한다. 이와 함께 최근 개정된 한국은행법에 따라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다. 다만 이 부분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행사한다.[3] 화폐의 신뢰성을 위하여 위조지폐에 대한 대응도 담당하고 있다. 다만 화폐의 디자인과 발행권은 가지고 있지만, 화폐 제조는 기획재정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조폐공사에서 전담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와 달리 완전고용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다.[4]

본점은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에 16개의 지역지점이 산재한다. 본점에서는 화폐 금융 화폐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짐바브웨 달러 같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신기한 돈도 있다.다만 짐바브웨는 하이퍼 인플레이션 때문에 자국 발행을 포기했다.

근 몇 년 사이 오만원권 지폐 인물 문제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대로 기획재정부와 그리 좋지 않은 사이를 보여 왔다. 광복 직후부터 2공화국까지는 한국은행의 인적자원이 재무부보다 월등하여 고위층의 파견근무 등이 잦았고, 이로 인해 재무부를 '한국은행 세종로 출장소'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그러나, 3공화국 출범 이후 수출을 통한 고도 성장을 목표로 세우고 일사불란한 경제정책 집행을 위해서 중앙은행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면서 독립성이 크게 약화되어 재무부와의 관계가 역전되었다. 이후, 한국은행이 확실한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기획재정부의 한 부서로 인식할 정도였다. 실제로 1997년까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은 재무부 장관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불렸던 별칭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였다. 나름흑역사.

1995년 한국은행법 개정으로 확실한 독립기관이 되었지만, 여전히 대통령 및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한국은행법을 통해 독립이 되었지만, 그동안의 관습적인 운영 원리를 보면 정부의 간섭이 상당히 잦은 편이다. 한국은행 총재, 부총재를 대통령이 임명하고, 통화운영위원회 구성에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앙은행은 특성상 정부와 항상 독립성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므로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최근엔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서 일부 정신나간 국회의원이나 장관들을 제외하곤 독립성이 크게 확보된 편. 요즘엔 기재부, 금융위 등과 같은 급끼리 회의도 하고 인사교류도 하는 등 중앙은행으로서의 지위도 정상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부가 한국은행에 간섭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 대표적인 것이 위의 한국은행법 제98조. 이에 관련한 내용은 아래 금융통화위원회 문단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최근 몇 년간 경기 침체를 핑계로 선제적 금리 인상을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현재의 고물가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5] 그러나 이는 2011년을 전후한 시기의 이야기이고, 2014년 기준으로는 물가 등을 핑계로 저금리 시대에도 금리 인하를 하지 않아 경기 부흥의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2016년에는 너무 지속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해 가계부채 규모를 키우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는다. 아니 대체 뭐 어쩌란말이냐....[6]

수장의 명칭은 한국은행'장'이 아닌 한국은행 '총재'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 '총재'라는 단어가 너무 권위주의적이라 바꾸자고 했었는데 현실적인 이유[7]로 일단 놔두기로 했다. 관련기사 화폐 개혁을 시도하지 않는 이상은 못 바꾼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총재나 은행장이나 뭐 다를 것도 없잖아?

대한민국GDP통계청이 아니라 한국은행에서 작성하여 발표한다. 지방자치단체별 GRDP는 통계청 소관. 이 문제 관련해서 2016년 통계청과 한국은행 사이 전운이 감돌고 있다. 향후 이 내용은 추가 바람

노조는 1989년 설립 이후 한국노총 금융노련 산하였으나, 1997년부터 민주노총 사무금융노련 소속이다.

3. 금융통화위원회[편집]

내부 결정 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또한 한국은행의 운영[8]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 부분은 사기업의 이사회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7명으로 구성되며, 의장은 한국은행 총재가 겸하고, 나머지 6명은

  • 한국은행 부총재(당연직)[9]

  • 한국은행 총재의 추천 인사

  • 기획재정부 장관의 추천 인사

  • 금융위원회 위원장의 추천 인사

  •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추천 인사

  • 사단법인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의 추천 인사

로 구성된다.

대한상의, 은행연합회 추천은 정부(특히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강하다. 총재[10], 부총재[11]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추천 인사는 사실상 정부의 경제 관료 낙하산 인사 몫. 어찌보면 대통령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 구조.

하지만 한국은행 측 인사라 볼 수 있는 3인[12]은 중립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결정하려 한다는 후문.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은행 내부인사이면 대통령이 임명하기 이전부터 이미 30여 년 이상을 한국은행을 위해 일해온 사람이며,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이는 내부인사가 보임하는 부총재에도 해당하는 이야기. 또한 한국은행 추천 몫의 금융통화위원도 중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사를 추천한다.

거기에 은행연합회의 경우에 정부의 입김이 강하지만 단기시장유동성과 단기외환유동성을 통제하는 한국은행을 좌시하기도 뭐한 구조. 따라서 이전의 서술처럼 중립성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어느 정도 중립성은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과거처럼 은행감독권한이 한국은행에 있다면, 금융 기획은 금융위원회 감독은 한국은행이 함으로서 정말 중립적일 수 있다. 그러니까 한국은행에 다시 은행감독권을 돌려주자.

하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통화정책 의사결정 기구의 중립성이 약한 것은 사실.

대통령제를 채택한 선진국이 몇 없기 때문에, 대표적인 미국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 해보자.

미국의 경우 FOMC에서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FOMC의 구성은 7인의 Board of Governor와 5인의 지역 연방준비제도장이 순환하며 이뤄진다. 이 중 핵심은 7인의 Board of Governor인데, 대통령이 지명하고 지명된 위원 전원이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인사청문회 시스템을 고려해 보았을 때 사실상 정부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사가 되기 힘든 구조. 삼권분립에 의거해 중립적인 통화정책을 위해 위와 같이 구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한국은행의 인건비와 인건비에 상응하는 복지후생비용의 경우 기획재정부 장관의 승인을 득해야 한다는 조항이 한국은행법에 버젓이 삽입되어있으며 이 조항은 한국은행과 금융통화위원회에 대한 통제에 사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항목에 대해서 미국의 경우 FRB는 의회의 통제를 받는다.

무자본특별법인으로서 발권력을 통해 자칫 잘못 편성집행 될 수 있는 인건비를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나, 이 통제를 기획재정부에서 하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이 한국은행법을 입맛에 맞게 제정하여 한국은행을 국책은행 처럼 운용한 데 있다. 군사정권의 잔재를 치우는 입장에서도, 정부로 부터 독립하여 장기적인 시계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을 수립 운용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같이 행정부보다는 입법부의 통제를 받는 것이 바람직 할 것.하지만 국회통제를 받으면 한국은행 직원들은 훨씬 더 고통스러워지겠지

또한 미국의 경우 은행감독권 역시 FRB가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위의 사항들 이외에도 통화정책의 중립성을 위해서는 아직 한국의 제도는 충분히 연구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4. 과거[편집]

한국은행의 전신은 일제 수탈의 한 도구였던 조선은행이었다는 흑역사가 있다. 저 서울역 구역사스러운 건물 모양만 봐도 보이는 사실. 도쿄역일본은행, 구 부산역의 건축가인 다츠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했다. 다만 서울역은 다츠노 긴고의 제자가 설계에 참여했을 뿐 건축을 총괄한 건축가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여튼 한때 일본의 자랑 중 하나였던 만큼, 한국은행 바로 앞의 사거리는 역시 한때 일본인 거리이자 당대 모던뽀이의 거리였던 명동[13]의 코앞에 있었고, 일본어로는 센긴마에(조선은행앞, 鮮銀前)라 불리웠다. 정확히는 현재의 소공로가 구한말에 '하세가와쵸(長谷川町)'라는 이름으로 뚫리며 시작되었는데, 이는 중국인들이 구한말부터 거대한 차이나타운[14]을 형성하고 있던 걸 눈꼴시러하던(...) 일본군이 군사용 목적[15]으로 차이나타운을 반 갈라놓는 목적으로 짓고 거기에 조선은행을 떡 박아놓은 것.(...)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명동, 충무로와 함께 일제시대 최고의 번화가[16]였으며, 1950년 한국은행이 되어 수탈셔틀 신세를 벗어난 현재도 이곳은 한국은행사거리로 불리며 주요 광장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사거리 한복판에 분수대가 있는데, 일제적의 일본인들이 깔아놓은 분수대의 후계자쯤 되는 녀석.

5. 관련 문화재[편집]

참고로 저 사거리에는 한국은행 본관, 한국은행 별관, 서울중앙우체국, 신세계 본점 본관, SC제일은행 제일지점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별로 변한 게 없는 사거리라고 볼 수 있다? 완전히 새로 지어진 우체국을 제외하면 모두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항목에서 거론된다.

  • 한국은행 구 본관. 사적 제280호. 현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 한국은행 제2별관. 1932년에 건립된 건물이지만 구 본관과 달리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당초 한국은행 본점 리모델링 추진 과정에서 헐릴 뻔했지만 근대 건축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로 평가돼 남겨두기로 했다. 2017년부터 내부 수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 옆에 있는 제1별관은 철거한 후 재건축 예정.

  • 한국은행 소공별관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유리로 덮인 건물. 사진을 저렇게 찍어놔서 그렇지 여기도 일단은 한국은행 건물이다. 원래 이곳에는 한국상업은행 본점이 있었는데, 광복 이후 주요 은행으로 성장하면서 그때 그건물 위층으로 하얀 콘크리트 건물을 증축했다. 후에 IMF를 지나면서 상업은행은 현재의 우리은행으로 합병되었고, 상업은행 본사는 한은에 팔리고 리모델링되어 유리궁전이 되었다. 다만 2015년부터 한국은행 본점 부지 전체를 리모델링하면서 매각 얘기가 나오고 있다.

  • 서울중앙우체국
    여기도 원래는 서울역풍의 건물이 있었다. 1915년에 일본이 처음으로 우체국을 지을 당시에는 당연히 벽돌건물. 그러나 6.25 전쟁으로 우체국이 뼈대만 남아버려서 이후 복구할 때는 뼈대에 콘크리트만 덧씌웠다.
    파일:external/www.seoulstory.kr/82%EB%85%84%EB%B6%80%ED%84%B02003%EB%85%84_%EC%84%9C%EC%9A%B8%EC%A4%91%EC%95%99%EC%9A%B0%EC%B2%B4%EA%B5%AD_2.jpg
    이후 1981년 헐리고 성냥갑(...)이 지어졌으며, 이는 2003년까지 쓰이고 현재 마징가, 바지타워포스트타워로 불리는 사옥이 지어지게 된다. 사실은 신한카드타워 한국에 있던 근대건축물 중 제일 크던 건물이라 근대건축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사뭇 아쉬운 감이 있다.

  •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일본의 백화점인 미츠코시 경성점으로 지어졌다. 이상이 소설 날개에서 "날자, 날자꾸나."라고 했던 곳이 이 백화점의 옥상이었다. 일제 패망 후에는 미군 PX(...)였던 흑역사가 있으며, 이후 설립된 동화백화점을 삼성그룹이 인수하여 신세계가 되었다. 하지만 원래 4층에 사거리를 따라 ㄱ자형으로 되어 있던 건물이었던 것이 증축되어 5층 사각형 건물이 되었고, 원래의 외장재도 몇 번 교체되었기 때문에(최근 리모델링은 그나마 원본에 가까움) 문화재는 못 된다. 그러니 이상을 따라하려면 옥상 말고 5층에서 따라하자.

  • SC제일은행 제일지점. 서울시유형문화재 71호.
    조선저축은행 본점으로서 지어졌고, 해방 이후 제일은행이 되어 본사는 종각 옛 신신백화점 터로 가고 제일은행 제일지점이 되었다. 그러다 제일은행이 영국스탠다드차타드에 팔려 오늘날 SC제일은행 제일지점에 이르고 있다. 실내 장식을 근대에 준하게 꾸며놓았기 때문에 다크나이트의 고담시 은행같은 고풍스러운 느낌을 느낄 수 있다. 2015년 건물의 소유권이 SC제일은행에서 바로 옆 건물의 주인인 신세계그룹으로 넘어갔다.

6. 입행[편집]

한국은행 입행은 종합기획직원(G5)와 일반사무직원(C3)로 나누어진다. G5는 통화신용정책, 경제동향조사, 금융시스템 관리 등 주요핵심업무를 담당하며 C3는 총무, 회계, 경리, 국고, 출납, 여수신, 외환심사, 국고, 증권, 통계, 비서 등 업무영역이 한정적 일상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시중은행으로 치면 G5는 본사 근무자이고 C3는 G5업무를 보조하며 일반적인 사무를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은행 직원이라고 하면 G5를 말한다. 두 직종 간 전환은 허용되지 않으며 보수 및 인사를 비롯한 대우 또한 상이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종합기획직원(G5)의 경우, 대우도 공공기관[17] 중 최상위고 그만큼 들어가기도 힘들다. 다만 서류전형은 비교적 널널한(?) 편.[18] 필기 시험에서 대부분의 합격 여부가 결정되었으나, 최근 들어 인성과 면접전형에 대한 강화를 천명하였다. 실제로 최근의 채용설명회 내용을 보면 필기시험 이후 합격자들에 대한 면접전형에는 필기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제로베이스라고 설명하고 있다. 면접전형은 1차의 경우는 집단으로 평가하는 전형과 개인으로 평가하는 전형이 있다고 알려지며, 1차를 통과한 인원에 대해서는 간부면접이 있다는 듯. 간부면접까지 패스하고 나면 신원조회와 신체검사를 통과한 인원에 대해서 입행자격이 주어진다.

즉 입행 프로세스는 서류, 필기, 1차면접, 2차면접, 신원 및 신체검사의 순. 입행이 완료되고 나면 1월부터 일을 한다. 한은 내부 소식지는 1월 소식지에 입행인원 전원의 이름과 증명사진을 싣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은행 나름의 전통인듯.

각 직렬에 대해 먼저 경제직렬부터 이야기 하자면 아래와 같다.

행정고시와 한국은행을 같이 준비하려는 대담한(?) 사람도 있으나 둘 다 말아먹기 쉽상이다. 필요과목들과 준비방식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엔 시험 난이도 널뛰기가 심해 행시 경제학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준이 나오는가 하면, 다음해엔 행시 경제학 중급 수준으로 나오는 등 난이도 편차가 심하다. 물론 시험난이도가 높다고 해서 행시경제학보다 합격점 받기가 어렵다는 것은 아니다. 한은 경제학은 문제를 다소 틀리고 심지어 몇 개는 빈칸으로 두어도 합격에 무방하지만, 행시 경제학은 논리적 흐름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경우 합격점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엄청난 난이도로 시험장을 고통에 빠뜨렸던 2015년 한국은행 필기시험은 절반을 맞춘 사람조차 거의 없어 채점자들이 점수 산출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년도부터는 난이도가 다소 평이하게 출제되고 있다. 그리고 보통 학부 책에서는 실마리만 던져주고 끝내고 마는 내용도 적당히 변형해서 내기 때문에 석사 1학년 과목을 듣는 준비생도 종종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업무에도 높은 수준의 경제 지식이 필요하며, 경제직렬 시험과목도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국제경제학, 화폐금융론, 계량경제학이다.

계량경제학의 경우 대부분의 경제학과에서 경제수학, 경제통계학을 수강한 이후 2학기에 걸쳐 가르치기 때문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기출을 보면 다른 경제학 과목의 문제도 어렵지만 계량은 기출 범위 자체가 광범위하다. 특히, 한국은행 시험에서는 시계열(time series)도 출제 대상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경우에도 시계열 수업은 2년에 한 번 열리며, 계량경제학 수업에서는 보통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비슷한 시험으로 취급되는 다른 금융공기업에서도 계량경제학을 출제하지만, 시계열까지는 요구하지 않는다. 시계열은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에 학부 수준에서는 상당한 고급과정으로 취급한다.

경제학 외에 경영학, 법학, 통계학, 전산학 전공으로도 필기시험을 볼 수 있다. 경제학을 제외한 나머지 중 절반 정도가 경영학 전공이며, 2014년에는 24명이 합격했으며 그 중 12명이 대한민국 공인회계사 가산점을 받았다. 다만 2015년 부터는 한국은행 주관 금융통화경시대회 수상실적 이외에는 (KICPA AICPA CFA FRM 등등) 가산점이 없다.

경영학 필기시험의 난이도는 공인회계사 1차와 2차 시험의 난이도 사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회계사 시험의 유형과는 다른 유형의 시험이기 때문에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주요 과목은 재무회계 (고급회계는 제외), 재무관리, 원가관리회계, 경영학이며 회계사시험과는 달리 경영학 과목 문제도 숫자를 써서 푸는 문제가 출제된다. 시험에서는 재무관리의 비중이 높은 편이고, 그중에서도 선물옵션스왑의 난이도가 악명높다.

경영직렬까지는 2자리수를 모집하지만 법학, 통계, IT직렬에서는 1자리수만 모집한다. 그래도 이 두 전공은 거의 매년 채용하나, 전산학 전공은 인력수요에 따라 채용하지 않는 해도 있다. 과거보다 한국은행의 입행인원이 증가하면서 법 3-5, 통계 2-4, IT 3-5명을 채용하고 있다.

통계직렬의 경우에는 수리통계 과목을 기초로 하여 표본조사, 시계열, 비모수, 다변량통계, 회귀분석, 실험계획법이 주요 출제내용이다. 가끔 베이즈통계, 알고리즘, GLM을 묻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학교 통계학과 커리큘럼을 기준으로 하여, 통계학과 2,3학년 과목 전부를 토대로 하여 4학년 과목 일부가 출제된다고 보는 것이 옳은데, 서울대학교 통계학과 3,4학년 과정은 타 대학 석사 1학년 과정과 맞먹기 때문에, 실제 합격인원을 보아도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나 통계학과를 주전공이나 복수전공으로 하고 있는 학생이 많다. 이는 타 대학에 비해 서울대학교 통계학과의 커리큘럼 수준이 높고, 지방인재 적용인원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하고 있는듯 하다.

타 직렬의 경우에는 추가바람

입행 후에는 다음해 1월 초부터 5주간 신입연수가 있고 2월 초부터 첫 출근을 한다. 국가기관 중에서도 일이 빡세다는 평가이다. 다만, 외국 학술연수기회가 있다. 1년에 70여 명이 입행한다면 매년 15명 내외의 직원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1~2년에 걸쳐 지원받는다.

산업화 시기에는 상고졸업 후 바로 한국은행에 입행하는 사례도 많이 있었다. 한국은행 인사를 찾아보면 상고출신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산업화 시기 특성상 상고에는 가정이 불우하거나 경제형편이 좋지 않은 인재들이 몰렸고 이들이 한국은행과 국책은행이나 사설은행에 입행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것도 외환위기 이후 다 사라졌다.[19]

7. 역대 총재[편집]

  • 초대 구용서(1950.06.05~1951.12.18)

  • 2대 김유택(1951.12.18~1956.12.12)

  • 3대 김진형(1956.12.12~1960.05.21)

  • 4대 배의환(1960.06.01~1960.09.08)

  • 5대 전예용(1960.09.08~1961.05.30)

  • 6대 유창순(1961.05.30~1962.05.26)

  • 7대 민병도(1962.05.26~1963.06.03)

  • 8대 이정환(1963.06.03~1963.12.26)

  • 9대 김세련(1963.12.26~1967.12.25)

  • 10대 서진수(1967.12.29~1970.05.02)

  • 11대 김성환(1970.05.02~1978.05.01)

  • 12대 신병현(1978.05.02~1980.07.05)

  • 13대 김준성(1980.07.05~1982.01.04)

  • 14대 하영기(1982.01.05~1983.10.31)

  • 15대 최창락(1983.10.31~1986.01.07)

  • 16대 박성상(1986.01.13~1988.03.26)

  • 17대 김건(1988.03.26~1992.03.25)

  • 18대 조순(1992.03.26~1993.03.14)

  • 19대 김명호(1993.03.15~1995.08.23)

  • 20대 이경식(1995.08.24~1998.03.05)

  • 21대 전철환(1998.03.06~2002.03.31)

  • 22대 박승(2002.04.01~2006.03.31)

  • 23대 이성태(2006.04.01~2010.03.31)

  • 24대 김중수(2010.04.01~2014.03.31)

  • 25대 이주열(2014.04.01~현재)


역대 총재 중에서도 특히 문민 정부 이후의 총재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대부분 4년 임기를 채우는 편이다. 이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경제 통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임기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관례로 잡았기 때문이다. 18대 조순 총재의 경우 러브콜을 받고 정계에 입문하면서 사직했고 19대 김명호 총재는 1995년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폐기처분할 예정이던 화폐들이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터져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리고 20대 이경식 총재는 한국은행법 개정안 파동과 1997년 외환 위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8. 기타[편집]

1946년부터 실업농구단을 운영하여 1970년대까지 산은-기은과 함께 금융팀 삼대장으로 군림하여 명센터이자 훗날 KBL 패밀리 초대 회장을 지낸 백남정, 前 삼성전자 감독 김인건 등의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해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삼성, 현대 등이 창단하여 거액을 들여 좋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는 바람에 성적이 급감하여 1983년 농구대잔치 출범 이후 오동근과 김재득이 분투했음에도 언제나 승수셔틀(...) 신세. 결국 1996년에 해체되었다. 이승학, 김상준, 김영래 3명은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 입단하고, 다른 선수들은 그대로 은퇴.

조사-연구자료 섹션에 있는 자료들은 현직자들도 자주 찾아볼 정도로 방대하고 정교한 자료들이 그득하다. 이 자료들을 출판도 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재료값 수준의 돈만 받고 팔고 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을 5천원 정도 가격에 파는데, 대학교 복사실에 가도 이 정도 가격은 안나온다. 물론 홈페이지에서 PDF파일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경제교육 플래시를 무료로 볼 수 있다. 또 금요일에 본점에서 특별강좌를 하는데 이게 꽤 인기있는 편이라 월요일 오전 9시 30분에 신청이 시작되면 30분도 안 돼 마감이 된다. 특별강좌에 참가할 때마다 쿠폰을 1장씩 주는데 25장을 모으면 한국은행 경제기본과정 수료증을, 50장을 모으면 한국은행 경제전문과정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법상 다른 은행에 출자를 할 수 없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의 주요주주이며, 외환은행의 주요주주이기도 했다. 은행 이외에 출자는 허용되어 있어서 대한민국국부펀드한국투자공사(KIC)에 매년 100-150억 달러수준의 외환보유액을 출자하고 있다.(물론 KIC 출자와 동시에 외환보유액에서는 빠진다.)

글로벌 전망모형(BOKGPM)을 개발했다.

의외로 미술계에서 '큰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소유하고 있는 미술품만 1000점이 넘는다. 총 감정가도 4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주로 195~60년대에 구입한 작품으로, 당시 생활고에 시달리던 무명 화가들의 그림을 구입해 준 것이 현대까지 전해진 것이다. 이중에는 이후 가격이 크게 오른 작품도 적지 않다. 이 작품들은 한국은행 산하 화폐박물관에서 상설 전시하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KDB산업은행에도 적지 않은 수의 작품들이 있다.

8.1. 한국은행 본점 리모델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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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본점 리모델링 조감도


2015년부터 한국은행 본점의 리모델링이 발표되었다. 당초에는 제1별관과 제2별관[20]을 재건축한 뒤 순차적으로 본관 등을 리모델링할 계획이었으나, 보안 문제 및 공사기간 단축 등을 이유로 아예 본점을 임시이전한 뒤 본점 전체에 공사판을 벌이기로 하였다. 가장 큰 일은 지하 금고에 보관된 현금을 별도 공간으로 수송하는 일. 현금 금고는 역삼동에 있는 강남지점으로 옮기기로 했는데 무려 약 10조원의 돈이 명동에서 강남으로 옮겨갈 전망이다.

한편 6.25 이후 한번도 명동을 떠난 적이 없다는 한국은행의 임시이전 후보지도 비범한데, 바로 태평로 삼성 본관이다. 삼성생명이 해당 건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입주기간 동안에는 한은이 삼성생명 측에 임대료를 내야 할 상황이다. 2008년 삼성그룹이 관계사들을 싸그리 서초동으로 이전해서 건물이 좀 비었는데[21] 그 건물의 상당수를 한국은행이 쓰기로 했다. 한국은행이 만족스러워할 정도로 보안은 꽤 철저한 듯. 임대비가 문제냐? 보안이 엉망이면 아무 소용도 없는데~!!!(...) 삼성이 최근 도심의 사옥들을 열심히 처분 중이라 삼성본관의 매각 가능성 또한 상당히 높지만, 아직 삼성 본관은 매각하지 않은 상태고 현재 삼성카드 등이 입주해 있다. 참고

[1] 금융정책 전체가 아니라, 금융정책의 일부인 통화정책을 수행한다. 금융정책이 아닌 재정정책은 정부(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다. 그러나 최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은행법 제1조 제2항에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생겨서 금융 쪽에도 그 영향을 넓혀가고 있다. 금융안정은 한국은행이 아니면 파악하기 힘든 것이 금융기관 사이 지급결제망을 한국은행이 운영하고 있고, 금융기관의 거시안정성이 통화정책에 밀접한 영향이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다.[2] 공개시장조작이라는 용어가 16년부로 공개시장운영으로 바뀌었다.[3] 금융감독원이 미시적인 부분을 바라본다면 한국은행은 거시안정성에 초점을 맞춘다.[4] 국내에서 고용관련 부분은 유의는 하나 크게 건드리기 뭐한데 고용은 한국에서 현재 재정 즉 정부 쪽 목표이다.[5]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 저금리를 원하는 정부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서 고금리를 주장하는 중앙은행 간의 마찰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대통령과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대립. 폴 볼커는 20%에 달하는 초고금리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진압했지만, 한계기업의 파산과 실업자 급증으로 1980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참패한다.[6] 사실 국내 금리결정은 미국이나 강대국과 달리 주변이나 타국의 경제 상황 및 정책을 고려해야 하는 외생적인 결정이라.... 창의적인 해결방법이 없다.... 최대한 노력할 뿐....[7] 우리가 갖고 있는 지폐를 한번 보자. 모두 '한국은행총재'의 도장이 찍혀 있어서, 이거 하나 바꾸는 데만 해도 큰 돈이 들어간다(화폐도안 변경, 이로인한 ATM기 인식시스템 변경 등).[8] 이는 한국은행 법에 한국은행 정관변경, 한국은행 조직 및 기구, 한국은행의 예산 및 결산, 한국은행 직원의 보수기준의 결정으로 명시되어 있다.[9] 부총재의 임기는 한국은행 법에 3년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것이 문제 되는 사항은 다른 금통위 위원의 임기가 4년으로 규정되어있기 때문.[10]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받고 대통령이 임명한다.[11] 총재가 추천하여 대통령이 임명한다.[12] 총재, 부총재, 한국은행 총재 추천 위원[13] 지금도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거리라지만 일제 때에 비교할 것이 못된다. 일제 당시의 명동은 그야말로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거리'였다.[14] 이 차이나타운은 플라자호텔을 짓기 시작하던 1970년대 초반까지도 남아있었다! 현재 중앙우체국 옆동네에 남아있는 골목은 극히 일부의 흔적.[15] 방사형 도로는 병력수송을 원활케 하기 위한 군사도시의 특징 중 하나이다. 진해의 도시구조를 생각해보자.[16] 현재의 충무로 카메라거리인 본정통(혼마치도리)은 1930년대 당시 즐비한 전깃불 때문에 도쿄보다도 더 번화하다는 기사가 남아 있을 정도다.[17]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한국은행은 공공기관이 아니다. 기획재정부가 지정하는 공공기관 지정에서도 당연히 빠져있다. 이는 중앙은행으로서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중요하기 때문.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이며, 중앙은행으로서 공익을 위해 노력한다.' 라는 것이 바람직한 설명이다.[18] 보통 20-30배수의 인원에게 필기 시험 자격을 부여한다.[19] 상고출신으로서 국장의 자리에 올랐던 인재들도 많이 있었다. 그 당시에 6급으로 입행한 인원들이 일정 기간을 채우게 되면 5급 시험을 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의 일. 현재의 G5와 C3 분리채용과 인사제도하에서는 불가능하다.[20] 위 사진에서 중앙 다리 왼편에 있는 건물이 제2별관이다. 제1별관은 제2별관 왼편에 현재 위치하고 있다. 위에 제시된 조감도에 2별관 왼편 신식 건물이 제1별관을 철거 후 재건축 하고 나면 지어질 건물이다.[21] 2008년 서초사옥 준공 직후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들이 다 떠났고 그 자리에 삼성물산 일부 사업부나 삼성증권 등이 입주했다. 그러나 이들 회사마저도 2016년에 모두 태평로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