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촌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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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수촌리 고분군 公州 水村里 古墳群 Ancient Tombs in Suchon-ri, G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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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촌리 고분군의 전경 |
무령왕릉 이후 최대의 발굴성과라 일컬어질 정도로 급이 높은 유물들이 대거 쏟아졌다.
또한 수촌리 고분군은 토광묘, 석곽묘, 석실분 등의 다양한 묘제가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한 묘역에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그동안 백제의 고분군으로 알려진 다른 고분군들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특이한 현상이라고 한다.
당시 발굴을 진행했던 학자들에 의하면 웅진 지역의 토착 세력가이자 문주왕의 웅진 천도 이후 두각을 나타낸 백씨 가문의 무덤군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한다고 한다. [1]
수촌리 4호분과 5호분에선 각각 반으로 쪼개진 대롱옥[2]이 발견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둘을 맞춰보자 하나로 딱 맞아떨어졌는데 학자들은 4호분과 5호분이 서로 부부 사이이고 내세에서도 부부의 정을 간직하고자 했을 거라고 이런 부장품을 넣었을 거라고 추정한다.부부 사이 금슬이 좋았나보다
또한 수촌리 고분군은 토광묘, 석곽묘, 석실분 등의 다양한 묘제가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한 묘역에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그동안 백제의 고분군으로 알려진 다른 고분군들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특이한 현상이라고 한다.
당시 발굴을 진행했던 학자들에 의하면 웅진 지역의 토착 세력가이자 문주왕의 웅진 천도 이후 두각을 나타낸 백씨 가문의 무덤군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한다고 한다. [1]
수촌리 4호분과 5호분에선 각각 반으로 쪼개진 대롱옥[2]이 발견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둘을 맞춰보자 하나로 딱 맞아떨어졌는데 학자들은 4호분과 5호분이 서로 부부 사이이고 내세에서도 부부의 정을 간직하고자 했을 거라고 이런 부장품을 넣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원래 주변에 알려져 있던 유적은 아니었고 공주 의당농공단지 조성 예정부지에서 지표조사를 하던 도중 우연히 유적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상당히 뒤늦게 실시한 구제발굴인 데다가 도굴 흔적도 있어서 발굴에 참여한 학자들은 유적에 대해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막상 조사를 시작하자 기존 백제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유물이 쏟아졌다.
현재 발굴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발굴된 고분들이 있는 곳은 공원으로 정비되어서 방문객을 맞고 있다. 발굴된 유물은 전부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나 유적이 구릉지대에 있어 경관은 나름 괜찮은 편이다.[3]
상당히 뒤늦게 실시한 구제발굴인 데다가 도굴 흔적도 있어서 발굴에 참여한 학자들은 유적에 대해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막상 조사를 시작하자 기존 백제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유물이 쏟아졌다.
현재 발굴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발굴된 고분들이 있는 곳은 공원으로 정비되어서 방문객을 맞고 있다. 발굴된 유물은 전부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나 유적이 구릉지대에 있어 경관은 나름 괜찮은 편이다.[3]

수촌리 고분 발굴 당시의 모습
공주수촌리고분군은 공주 의당농공단지 조성 예정부지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현재 공주사와 문화재청은 유적의 역사적 가치와 성격을 규명하기 위하여 연차별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초기철기시대 토광묘, 백제시대 분묘(대형토광목곽묘, 횡혈식 석실분, 수혈식 석곽묘)등 고대의 다양한 시기의 유물과 유구가 조사되었다.
초기철기시대 토광묘에서는 세형동검과 검파두식(검자루끝장식) 등 다양한 청동제품이 출토되었다. 또한 점토대토기(점토띠토기), 흑고장경호 등 토기가 매장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유물도 발견되어 초기철기시대 묘제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백제시대 분묘에서는 금동관과 금동신발, 금제이식, 환두대고(고리자루 큰칼), 중국제 흑유도기, 흑유 계수호(닭버리 모양 주전자) 등이 발견되었다. 이들 분묘는 공주지역 백제고분의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로서 출토된 유물이 백제의 웅진천도 이전에 조영된 것으로 짐작되어 가치가 크다. 특히 발견된 부장유물은 피장자의 신분이 당시 공주지역 유력자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이며, 이들 제사관련 자료를 통해 한성 백제시대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관련성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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