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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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立故宮博物院[1]/ National Palace Museum of the Republic of China


1. 개요2. 압도적인 유물 수3. 남부 분원4. 찾아가는 길5. 방문 시 참고 사항6. 베이징에 있던 국립고궁박물원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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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박물관. 공식사이트


본래는 중화민국 베이핑(현 중국 베이징) 고궁(자금성)에 있었으나 국공내전 시기 장제스의 명령으로 그 유물 거의 대부분을 대만으로 실어와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륙에 남은 곳도 이름에서 국립만 빼고 고궁박물원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국부천대 이후에 나온 유물들까지 합세해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보다는 아직 훨씬 못하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한국국립고궁박물과 다르니 혼동하지 말 것. 한글로는 마지막 글자만 다르지만 한자로는 '고궁'의 '고' 자도 다르다. 한국의 국립고궁박물관은 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은 故를 쓰고 있다.[2]

중국에서는 "국립"이라는 칭호를 빼고 대륙의 고궁박물원과 구분하기 위해 台北故宫博物院(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이라고 한다.

2. 압도적인 유물 수[편집]

국공내전 당시에 중국 국민당패주하면서 베이징자금성 고궁박물관에 있던 유물 중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유물 29만 점을 위시로 전국 각지의 유물 60만 8천점[3]을 선발해서 가져갔다.[4] 장제스는 피난민을 이주시킨다는 이유로 미군에게서 군함을 빌린 다음 피난민 따위는 나몰라라 하고 대부분을 유물 운반에 사용해서 미국을 분노케 했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빡치는 일이겠지만 이로 인해 수많은 유물이 문화대혁명으로부터 무사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서류상으로 고궁박물원 유물의 주인은 중화민국 정부가 아니라 중국 국민당이다. 국부천대 당시 장제스가 총통 자격이 아니라 국민당 총재 자격으로 유물을 이송시켰기 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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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육을 본따 조각한 육형석(肉形石). 취옥백채와 더불어 대만 최고의 유물로 손꼽는다. 맛있어 보인다 2017년 6월 현재 자이 분원에 전시되어 있고, 2017년 10월 초까지는 계속 자이 분원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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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부분이 녹색, 아랫부분이 하얀색인 하급 자연 옥을 이용해 여치가 앉아 있는 배추를 조각해 낸 취옥백채(翠玉白菜). 2017년 6월 기준 본원에 전시되어 있다.

남부분원 개관 이후 6개월 단위로 취옥백채와 육형석은 교차 전시된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전시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링크는 중국어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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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원 내부 식당 '고궁정화'(故宮晶華)[5]에는 육형석, 취옥백채를 흉내낸 메뉴를 맛볼 수 있다. 물론 고급 메뉴에 해당하니 값은 꽤 비싼 편.

반세기 동안 늘어난 북경 자금성의 현재 유물 숫자는 대만 고궁박물원보다 더 많다고는 하지만, 전시품의 질과 중요성에서는 아직도 대만고궁박물원이 앞선다는 논의가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지금 대만 고궁박물관의 유물들은 황실에서 가지고 있던 황실 유물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높으신 분들이 대대로 모은 유물들이다 보니 퀄리티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성공한 덕후건륭제가 수집하여 직접 목록까지 정리한 컬렉션은 압권. 실례로 법랑채 자기의 명품은 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1940년대 이전 발굴된 유물들도 죄다 대만 고궁박물원이 소유하고 있어 발굴유물 수준도 상당히 높다.

북경 고궁박물원도 최근 발견된 유물들에 힘입어 수준이 많이 올라갔지만, 아직 많이 밀리는 것이 사실. 세계 7대 박물관을 꼽으라면 북경고궁박물원은 들어갈까 말까지만, 대만고궁박물원은 세계 3대 박물관(혹은 4대 박물관)에 그럭저럭 포함된다.[6] 게다가 소장품이 너무 많아 옥제품·도자기·회화·청동의 작품들은 3개월 단위로 한번씩 유물을 바꿔서 전시하는데 60여년째 겹치는 것이 없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여기 있는 유물 위에 나오듯이 중국은 문화대혁명 당시 자국의 무수한 문화재를 박살낸 게 너무 많아서... 나중에 최대한 복원하긴 했지만 덕분에 무수한 중국 문화재가 이어붙인 흔적이 가득해졌다.

다만 유물의 대부분이 중국 고대의 청동기와 명나라말과 청나라대의 유물이라는 것은 단점.[7] 아무래도 국민당 정부가 급하게 튀면서 챙긴 것이 대부분인데다가 자금성에 있던 청나라 황실의 입맛에 맞는 유물들을 가져왔으므로 상당수의 유물이 고대 청동기, 그리고 유명한 서예나 그림 작품들, 그리고 명, 청시대의 궁중유물에 편중되어 있는 것을 사실이다. 비록 문화대혁명이 있었지만 50년대 이후에도 중국에서는 진시황 병마용갱, 마왕퇴, 삼성퇴 등등의 굵직한 고고학적 성과들이 있었고, 나름 체계적인 수집과 기증도 이어졌다. 그래서 자금성의 고궁박물원은 현재 소장품이 160만점,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과 위상이 같은 중국국가박물관은 소장품이 100만점으로 소장품 60만점의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을 이미 까마득히 뛰어 넘었다.[8] 그래서 중국의 전체 역사와 전체 지역을 돌아보고 싶다면, 북경의 자금성이나 중국국가박물관을 찾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타이완 섬의 역사를 보고 싶으면 타이난의 국립대만역사박물관이 낫다. 그럼에도 중국 고대 왕권의 상징이 정(鼎)이 이렇게 널렸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양이 소장되어 있다. 3층에 가 보면 최소 2~3천년 된 고대의 청동 정과 종[9]들이 널려있다... 그리고 신석기시대의 옥 유물들을 위시로 2~3천년 된 옥 유물들이 3층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너무 오래 되어 정확한 연대 측정이 불가능한 토기 잔은 물론 국사 교과서에서 어쩌다 마주쳤을 당삼채(唐三彩) 중에서도 거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전시되었으므로 보기도 전에 실망부터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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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라 때 만들어진 자기인 여요연화식온완(汝窯蓮花式溫碗)


하여튼 여기 있는 유물들은 중국 역대 왕조가 수천년 동안 계승한 것이다. 즉, 국립고궁박물원은 중화민국이 중국 정통 정부임을 자처할 수 있는 가장 확고한 물질적 유산이기도 하다.[10]

3. 남부 분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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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남부 자이(嘉義)에 국립고궁박물원 남부 분원이 완공되었다. 초기에는 시범 개관을 한지 채 1주일도 안되어 건물에 비가 새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남부 분원은 타이완 고속철도 자이(嘉義)역에서 버스나 택시로 접근 가능하며, 택시이용시 150~200NT$ 정도이다. 참고로 남부분원은 중국 유물뿐만아니라, 테마에 따른 여러 나라의 유물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4. 찾아가는 길[편집]

세계적인 박물관이지만 주변 지역이 산기슭이여서 타이베이 첩운과의 접근성은 별로 좋지 않다.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은 타이베이 첩운 홍선을 타고 스린역[11]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다. 이런 버스들 중에는 종점이 고궁박물원인 버스도 있다. 시내에서 택시를 탈 경우 타이베이 처찬을 기준으로 80~130NT 정도면 갈 수 있다. 향후 순환선인 타이베이 첩운 황선이 국립고궁박물원을 지날 예정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5. 방문 시 참고 사항[편집]

  • 대부분의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큰 가방과 음식, 음료는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백팩은 반드시 보관해야하며, 크로스백 등은 괜찮다. (이는 많은 인파때문에 등에 맨 가방이 통행에 불편을 줄 수 있고 예술품들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짐은 매표소 옆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맡긴다. 물품보관소는 대형마트에 있는 코인락커랑 유사하다. 짐을 보관할 때 10NT가 필요하며, 코인을 넣고 자물쇠를 잠구도록 되어있으며, 짐을 찾을때 반환된다. 잔돈이 없을 경우 물품보관소 앞 Information에서 친절하게 바꿔준다.

  • 입장할 때 검표를 하고 금속탐지기를 지나간다. 박물관 소장품들을 카메라로 찍을 수는 있으나 카메라 플래시를 절대로 써선 안되고 무조건 무음으로 찍어야 관리인들에게 제지당하지 않는다.(꼭 지켜야 하는 매너이므로 무음 카메라 어플을 다운하는 것이 좋다.) 이는 다른 나라의 대부분 박물관도 마찬가지이며 특이하게 한국에서만 카메라 촬영을 금지하는 박물관이 많다. -> 사실상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음. 만약 찍을려고 하면 근처에 있는 직원이 저지함. -> 2017년 6월 기준, 무음이 아니라 소리내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고, 플래시를 쓰지 않으면 사진 촬영을 저지하지도 않는다. 만약에 직원이 다가와서 뭔가 얘기할 경우, no flash라고 대답하면 괜찮다고 얘기하고 지나간다. 국보급 문화재나 중요 유물은 아예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표시를 유물 제목 옆에 둔다. 촬영금지 표시가 없으면 촬영해도 무방. 다만 2층 회화실은 대부분 촬영 금지니 포기하는 게 속 편하다.

  • 한글 팜플렛이 제공되며 한국어 음성 해설도 지원이 되어 유물앞에 붙어있는 음성 해설 번호를 입력하면 해설을 들을 수가 있다. 꽤나 충실한 설명을 해주므로, 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꼭 음성 해설을 듣도록 하자. 기타 유물 표제에는 한글이 없이 간자체/번자체, 일본어, 영어만이 제공되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참고로, 오디오가이드는 150NT이고, 대여 시 신분증을 맡겨야 한다.

  • 금토일과 휴일 낮에 절대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박물관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대륙 여행객들의 인파와 소란함에 유물 구경도 제대로 못할 수 있다. 특히 유명한 박물품의 경우 이어진 줄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박물관 구경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평일 오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육형석이나 취옥백채[12]를 편하게 보려면, 평일 오전에 도착하자마자 3층으로 직행하는 것이 좋다. 오전 9시 오픈에 맞춰서 갔는데도, 조금 지나면 단체 여행객들이 시간차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 상기한 이유로 인해 모든 전시실을 꼼꼼히 느긋하게 관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고로 고대 청동기 시대 및 명/청대의 유물이나 취옥백채 등을 위주로 알짜배기만 관람하고 나오거나, 그냥 아예 박물관 관람에만 하루 전체를 투자한다는 식으로 한나절 넘게 구경하거나 하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 가이드들도 6시간 정도 관람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하니 알아서 타겟을 정해서 갈 것.

  • 근처 도보 5분 정도 거리에 대만 원주민을 주제로 한 순이 대만원주민박물관(順益台灣原住民博物館)이 있다. 중화권 문화의 총본산과 대만 고유문화의 상징이 서로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느낌을 준다.

  • 전시관 안을 구경하다 보면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전시실이 상당히 많다. 예전에 설계되어 그런지 동선이 다소 중복되거나 움직임을 최소화 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아 많이 걸어야 한다.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욕심 내서 너무 많이 보려고 하지 않는 게 좋다. 휴게 장소라도 건물 내부인 경우 신발을 벗지 못하게 제지하므로 주의하자.

  • 택시를 이용하고 싶다면, 박물관 지하1층의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얘기하면 택시를 불러준다. 대체로 5분 이내에 택시가 오는 것 같고, 인포데스크 왼쪽 출구 앞에서 곧바로 탑승할 수 있다.

6. 베이징에 있던 국립고궁박물원[편집]

고궁박물원 참조.

[1]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쓰는 간화자로는 国立故宫博物院이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번체자를 사용해야 할 때에는 國立故博物院이라고 쓰는 게 원칙이다. 물론 원칙을 안 따르고 '宮'으로 적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참고로 宮/宫에 들어 있는 呂/吕(음률 려)는 원래 전통적으로 서로 통용되던 이체자이다.[2] 한국의 古宮은 옛 안방이라는 뜻이고, 대만의 故宮은 이미 사라진 왕조의 궁전이라는 뜻이다.[3] 출처 http://www.npm.gov.tw/ko/Article.aspx?sNo=03001513[4] 현재는 약 69만 7천여점에 이른다.[5] 타이페이에서 꽤 유명한 호텔인 리젠트 타이페이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 [6] 해당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항상 포함된다는 말은 상당히 어폐가 있다.[7] 그래도 고대 청동기와 자기 유물들은 상설전시, 명청대 유물은 순환전시로 진행되고 있어 둘러보는 데 있어서 비율상으로 부족하지는 않다. 그만큼 소장품의 수가 방대하다는 이야기.[8] 북경 수도박물관의 30만점, 국사박물관, 원명원박물관 등등을 합치면 북경에 있는 유물의 수는 결코 만만치 않다[9] 복제품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상태가 좋은 유물이 널려있다. ㄷㄷㄷ[10] 1층의 중국 역사 오리엔테이션 전시실에 가면 중국 역사 마지막 부분이 분단도 아니고 중화민국으로 되어 있는 것이 포인트.[11] 장제스 부부가 살던 스린관저가 근방에 있으며 관람 가능하다.[12] 2017년 11월 기준 106실로 옮겨져 있다. 상아구도 같은 방에 전시 중. 육형석은 남부 분원에서 전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