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치키스 기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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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chkiss Machine Gun Mitrailleuse Hotchkiss 호치키스 기관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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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
원산지 | |
맥심 기관총의 성공적인 데뷔로 열강들은 식민지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기관총을 대거 사들이기 시작한다. 이에 자극을 받은 많은 발명가들은 기관총을 잘만 만들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설계안을 쏟아낸다. 이 와중에 오스트리아의 A. 오드콜렉 폰 우예즈는 자동 소총의 개발을 위해 도입된 가스압 작동방식의 구조와 새로운 급탄 장치로 경량 기관총을 설계했고, 마침 기관총 설계를 찾고 있던 프랑스의 호치키스 사가 이를 구입하게 된다.[5]
오드콜렉의 디자인은 경량화가 최우선 사항이었다. 때문에 맥심 기관총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첫 번째는 가스압 작동 구조의 사용으로, 가스압 구조는 반동 이용식에 비하여 작동성을 보장하기 쉬웠고, 노리쇠를 가볍게 만들어도 충분히 사속을 컨트롤할 수 있으므로 경량화를 위해 채택되었다. 다만 이 구조는 가스 튜브가 설치되기 때문에 수랭 재킷을 달 수가 없었다. 가스 튜브가 냉각되면 내부 가스가 수축하므로 작동 불량이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존 브라우닝 또한 M1895 콜트-브라우닝 기관총을 제작할 때 가스압으로 작동하는 이 물건을 공랭식으로 만든 바 있다.
두 번째는 탄띠이다.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맥심 기관총의 특허를 피하기 위해 보탄판으로 설계되었다'인데, 실제로 초기 설계안은 탄띠였다. 1891년 설계안 특허 오드콜렉의 특허안에서 보이듯이 이 탄띠는 맥심의 물건과 완전히 다른 물건이었다. 맥심 기관총은 기존 소총수의 탄띠와 유사하여 포켓에 든 탄약을 뒤로 뽑아내어 밀어넣었지만, 오드콜렉의 디자인은 탄띠는 캠으로 당겨지고 탄약만 경사로에 걸려 캠이 당기는 힘을 이용하여 탄약을 고정시킨 실 혹은 철사로부터 뜯어내는 방식이었다. 잘 상상이 안되다시피 이 안은 그다지 잘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1892년 설계안을 변경하면서 가운데가 개방된 클립으로 탄을 물어 뒤에서 밀었을 때 튕겨나오는 안으로 바뀌었고92년 설계안 특허, fig 21, 22, 23의 탄띠 디자인에 주목, 이 안을 바탕으로 로렌스 V. 베넷과 앙리 메르시에가 설계를 보완하여 마침내 호치키스 기관총을 만든다.1896년 베넷과 메르시에의 설계안 이 과정에서 기존 탄띠의 설계상의 난점 때문에 금속제 보탄판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맥심의 설계안과는 처음부터 관련이 없었다.
호치키스 기관총은 이러한 훌륭한 설계 덕분에 작동성이 매우 우수했고, 당시 중기관총 중에는 가장 가벼웠다.[6] 당시 프랑스 군부는 민간에서 개발한 이 기관총에 불만이 좀 많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기관총을 제작하려 했지만, 퓌토 APX 기관총과 그를 개량한 생테티엔 M1907의 신뢰도가 형편없어[7] 결국 1917년 최종 개량형인 Mle 1914를 정식으로 도입하게 된다.
최종 설계안에서 보탄판이 도입되었으나, 사실 초기에 이 보탄판은 탄약 수 제한이 없었다. 가스압으로 작동하는 캠의 회전력이 충분히 강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긴 판을 달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1896년 설계안의 두 번째 급탄 장치(Fig 67)가 바로 초기형 관절식 탄 벨트이다. 이것을 개랑하여 적용한 대표적인 물건이 1911년 도입되어 노르웨이에서 사용된 호치키스로 이 동네는 프랑스와는 달리 2~3발의 보탄판을 연결한 관절식 탄띠를 더 애용했다. 보탄판은 프랑스에서 애용했는데, 그 이유는 짧고 가벼워 기동성이 우수했기 때문으로, 식민지 관리를 위해 기동성이 중요했던 프랑스군의 구미에 더 맞았기 때문이다. 보탄판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보탄판 문서 참조.
1차 세계대전 당시 Mle 1914 중기관총 버전 기준으로는 편견과는 달리 맥심 기관총과 비교하면 일장일단이 있는 수준이었다. 호치키스가 맥심에게 우위를 보였던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압도적으로 간단한 구조로[8] 생산성과 가격, 유지보수 그리고 오염 저항도 측면에서 맥심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기관총을 하나라도 더 뽑아야 하는 총력전 상황에서, 특히 시궁창이나 다름없던 서부전선 참호전 상황에서 이는 분명 큰 이점이었다.
두 번째로는 가벼워서 기동전에 유리했다. 또한 생각만큼 맥심보다 지속사격능력에서도 밀리지 않았는데, 총열을 무식하리만큼 두껍게 만들었기 때문.[9] 맥심 기관총은 총열이 얇고 폐쇄형 약실이라 총기의 냉각을 전적으로 물에 의존한다. 그래서 물이 다 떨어지거나 총탄, 파편 등으로 수랭 재킷에 손상이 가서 물이 새면 무력화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반면 호치키스는 태생이 공랭식, 개방형 약실 구조에 총열까지 무식하게 두꺼워 해당 문제로부터 자유로웠다. 비슷한 이유로 아프리카 식민지 지역에서 맥심보다 선호되었는데, 물이 귀중한 환경에서 냉각수의 보급이 없어도 사격하고 공기로 냉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보탄판의 오염 저항도였다. 당시 맥심 기관총의 탄띠는 천으로 제작되어 오염, 특히 습기에 극히 취약했고 이는 곧 기능고장을 불러왔다. 반면 철판을 찍어낸 거나 다름없던 보탄판은 이물질에 대한 저항능력이 천으로 된 탄띠보다 훨씬 우수했으며 특히 습기 문제로부터는 완전히 무적에 가까웠다.
1차 대전이 끝나고서 프랑스가 신형 탄약을 제작/도입하게 되면서 FM 24/29와 레이벨 기관총을 들이게 되었고,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했으나, 세대 교체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2차 대전이 터지며 비시 프랑스에 의해 계속 사용되었다.
1890년 신생 일본 제국은 기관총이 필요했고, 유럽의 다양한 기관총을 둘러보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여러 물건들을 사용하면서 그들이 택한 것이 바로 호치키스 M1897 기관총이었다. 그들이 이 기관총을 선택한 이유는 가볍고, 물이 필요 없어 보급에 난점이 없으며, 구조가 간단하여 정비가 쉽고 국산화하기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국산화 모델이 바로 38식 기관총이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많은 삽질을 하고 러시아군의 맥심에 벌집이 되기도 했지만,[10] 호치키스의 기동성과 성능에 매료되어 이후 설계되는 대부분의 기관총이 호치키스를 바탕으로 하게 했다.
오드콜렉의 디자인은 경량화가 최우선 사항이었다. 때문에 맥심 기관총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첫 번째는 가스압 작동 구조의 사용으로, 가스압 구조는 반동 이용식에 비하여 작동성을 보장하기 쉬웠고, 노리쇠를 가볍게 만들어도 충분히 사속을 컨트롤할 수 있으므로 경량화를 위해 채택되었다. 다만 이 구조는 가스 튜브가 설치되기 때문에 수랭 재킷을 달 수가 없었다. 가스 튜브가 냉각되면 내부 가스가 수축하므로 작동 불량이 생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존 브라우닝 또한 M1895 콜트-브라우닝 기관총을 제작할 때 가스압으로 작동하는 이 물건을 공랭식으로 만든 바 있다.
두 번째는 탄띠이다.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맥심 기관총의 특허를 피하기 위해 보탄판으로 설계되었다'인데, 실제로 초기 설계안은 탄띠였다. 1891년 설계안 특허 오드콜렉의 특허안에서 보이듯이 이 탄띠는 맥심의 물건과 완전히 다른 물건이었다. 맥심 기관총은 기존 소총수의 탄띠와 유사하여 포켓에 든 탄약을 뒤로 뽑아내어 밀어넣었지만, 오드콜렉의 디자인은 탄띠는 캠으로 당겨지고 탄약만 경사로에 걸려 캠이 당기는 힘을 이용하여 탄약을 고정시킨 실 혹은 철사로부터 뜯어내는 방식이었다. 잘 상상이 안되다시피 이 안은 그다지 잘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1892년 설계안을 변경하면서 가운데가 개방된 클립으로 탄을 물어 뒤에서 밀었을 때 튕겨나오는 안으로 바뀌었고92년 설계안 특허, fig 21, 22, 23의 탄띠 디자인에 주목, 이 안을 바탕으로 로렌스 V. 베넷과 앙리 메르시에가 설계를 보완하여 마침내 호치키스 기관총을 만든다.1896년 베넷과 메르시에의 설계안 이 과정에서 기존 탄띠의 설계상의 난점 때문에 금속제 보탄판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맥심의 설계안과는 처음부터 관련이 없었다.
호치키스 기관총은 이러한 훌륭한 설계 덕분에 작동성이 매우 우수했고, 당시 중기관총 중에는 가장 가벼웠다.[6] 당시 프랑스 군부는 민간에서 개발한 이 기관총에 불만이 좀 많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기관총을 제작하려 했지만, 퓌토 APX 기관총과 그를 개량한 생테티엔 M1907의 신뢰도가 형편없어[7] 결국 1917년 최종 개량형인 Mle 1914를 정식으로 도입하게 된다.
최종 설계안에서 보탄판이 도입되었으나, 사실 초기에 이 보탄판은 탄약 수 제한이 없었다. 가스압으로 작동하는 캠의 회전력이 충분히 강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긴 판을 달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1896년 설계안의 두 번째 급탄 장치(Fig 67)가 바로 초기형 관절식 탄 벨트이다. 이것을 개랑하여 적용한 대표적인 물건이 1911년 도입되어 노르웨이에서 사용된 호치키스로 이 동네는 프랑스와는 달리 2~3발의 보탄판을 연결한 관절식 탄띠를 더 애용했다. 보탄판은 프랑스에서 애용했는데, 그 이유는 짧고 가벼워 기동성이 우수했기 때문으로, 식민지 관리를 위해 기동성이 중요했던 프랑스군의 구미에 더 맞았기 때문이다. 보탄판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보탄판 문서 참조.
1차 세계대전 당시 Mle 1914 중기관총 버전 기준으로는 편견과는 달리 맥심 기관총과 비교하면 일장일단이 있는 수준이었다. 호치키스가 맥심에게 우위를 보였던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는 압도적으로 간단한 구조로[8] 생산성과 가격, 유지보수 그리고 오염 저항도 측면에서 맥심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기관총을 하나라도 더 뽑아야 하는 총력전 상황에서, 특히 시궁창이나 다름없던 서부전선 참호전 상황에서 이는 분명 큰 이점이었다.
두 번째로는 가벼워서 기동전에 유리했다. 또한 생각만큼 맥심보다 지속사격능력에서도 밀리지 않았는데, 총열을 무식하리만큼 두껍게 만들었기 때문.[9] 맥심 기관총은 총열이 얇고 폐쇄형 약실이라 총기의 냉각을 전적으로 물에 의존한다. 그래서 물이 다 떨어지거나 총탄, 파편 등으로 수랭 재킷에 손상이 가서 물이 새면 무력화되는 치명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반면 호치키스는 태생이 공랭식, 개방형 약실 구조에 총열까지 무식하게 두꺼워 해당 문제로부터 자유로웠다. 비슷한 이유로 아프리카 식민지 지역에서 맥심보다 선호되었는데, 물이 귀중한 환경에서 냉각수의 보급이 없어도 사격하고 공기로 냉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보탄판의 오염 저항도였다. 당시 맥심 기관총의 탄띠는 천으로 제작되어 오염, 특히 습기에 극히 취약했고 이는 곧 기능고장을 불러왔다. 반면 철판을 찍어낸 거나 다름없던 보탄판은 이물질에 대한 저항능력이 천으로 된 탄띠보다 훨씬 우수했으며 특히 습기 문제로부터는 완전히 무적에 가까웠다.
1차 대전이 끝나고서 프랑스가 신형 탄약을 제작/도입하게 되면서 FM 24/29와 레이벨 기관총을 들이게 되었고,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했으나, 세대 교체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2차 대전이 터지며 비시 프랑스에 의해 계속 사용되었다.
1890년 신생 일본 제국은 기관총이 필요했고, 유럽의 다양한 기관총을 둘러보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여러 물건들을 사용하면서 그들이 택한 것이 바로 호치키스 M1897 기관총이었다. 그들이 이 기관총을 선택한 이유는 가볍고, 물이 필요 없어 보급에 난점이 없으며, 구조가 간단하여 정비가 쉽고 국산화하기 쉽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국산화 모델이 바로 38식 기관총이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많은 삽질을 하고 러시아군의 맥심에 벌집이 되기도 했지만,[10] 호치키스의 기동성과 성능에 매료되어 이후 설계되는 대부분의 기관총이 호치키스를 바탕으로 하게 했다.
스테이플러를 뜻하는 상표명 호치키스와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미국의 호치키스사에서 제조한 스테이플러가 일본으로 수입되어 대중화되면서, 일본인들이 스테이플러를 호치키스라 부르게 되었고, 이 명칭이 대한민국으로 그대로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미국 호치키스사의 설립자는 일라이 허벨 호치키스(Eli Hubbell Hotchkiss)라는 사람으로, 기관총을 개발한 개발자 벤자민 호치키스와는 다른 시대[11] 다른 인물이다. 다만 인척 관계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두 명 모두 코네티컷 주 뉴 헤이븐 지역 출신인데, 호치키스 가문은 공장 등을 운영하며 이 지역의 초기 성장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유력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둘은 모두 코네티컷의 호치키스 가문의 후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참조링크 내용으로 보면, 후손들도 "관계가 전혀 없다", "사촌뻘이다" 등 의견이 서로 엇갈리는 듯. 하지만 기관총을 개발한 벤자민 호치키스는, 남북전쟁이 끝나 미국에서 무기사업이 시들해지자 프랑스로 이민을 가서 회사를 차렸고, 이쪽 호치키스사는 결국 프랑스 회사가 되었다. 한편 코네티컷에 위치한 교육기관, 호치키스 스쿨과도 관련이 있다. 이 학교는 벤자민 호치키스가 사망한 후, 그의 부인 마리아 호치키스가 다시 고향인 코네티컷으로 돌아와 그의 유산으로 설립한 학교다.
이상하게 국내에서 과소평가당하는 기관총이다. 특히 많이 보이는 말이 맥심 기관총의 특허문제 때문에 설계가 변경되어 저런(?) 물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구 일본군이 호치키스식 기관총을 선호했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으로 추측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맥심 기관총의 설계와는 처음부터 그 관련성이 없었다. 세부적인 설계들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겹치는 것이라고는 초기 설계안의 탄띠밖에 없는데, 이 역시 형상이나 작동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M1895 콜트-브라우닝은 탄띠 설계가 맥심과 매우 비슷하지만, 딱히 특허권 침해에 대한 말도 없을뿐더러, 미군에 채택되어 잘만 찍어냈다. 따라서 애초에 근거없는 이야기라는 소리다.
수랭식을 채택하지 않은 것도 맥심 기관총의 영향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도 사실무근으로, 애초에 가스식 기관총은 수랭식 냉각자켓을 달기 힘들다. 고온 고압의 가스가 피스톤을 밀어야 하는데 물 때문에 냉각, 응축되어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스 작동식은 반동 이용식이나 블로우백에 비하여 작동 간의 신뢰성이 더 높고, 의외로 설계하기도 쉬운 데다[12] 무거운 노리쇠가 필요 없으므로 가볍다. 현대 소총이나 기관총[13]이 죄다 가스 작동식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수랭식은 지속 사격 능력은 우수하나 기동성이 너무 떨어졌다. 그 이유가 물 때문인데, 전장에서 물이 매우 귀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송조차 유류만큼이나 힘들고, 병사들도 물을 소모하기 때문에 그 중요도가 너무 높다. 게다가 냉각 재킷의 내구성이 약해 총알구멍이라도 나면 물이 새서 총을 못 쓰게 되는 일이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탄판을 증설하기도 했다. 따라서 1차대전 종전 후 경량화 바람과 함께 수랭식 기관총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호치키스 기관총이 어찌보면 선구자였던 셈이다.
의외로 최초의 대구경 중기관총이 될 뻔한 물건이었다. 경장갑 차량 대응용으로 13.2 mm 탄약을 사용한 호치키스 M1929 모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물건은 대공용 및 경장갑 차량 대응용으로 사용되었으며, 기병대 혹은 보병대에 의해 삼각대나 대공 거치대에 거치되어 사용되었다. 안타깝게도 미국에 밀려 최초 타이틀은 못 가졌고[14] 그리 대중적으로 사용되지도 못했다. 이후 프랑스 공군이 M1930의 제식명으로 도입하여 근거리 방공용으로 잘 써먹었다.
이상하게 국내에서 과소평가당하는 기관총이다. 특히 많이 보이는 말이 맥심 기관총의 특허문제 때문에 설계가 변경되어 저런(?) 물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구 일본군이 호치키스식 기관총을 선호했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으로 추측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맥심 기관총의 설계와는 처음부터 그 관련성이 없었다. 세부적인 설계들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겹치는 것이라고는 초기 설계안의 탄띠밖에 없는데, 이 역시 형상이나 작동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M1895 콜트-브라우닝은 탄띠 설계가 맥심과 매우 비슷하지만, 딱히 특허권 침해에 대한 말도 없을뿐더러, 미군에 채택되어 잘만 찍어냈다. 따라서 애초에 근거없는 이야기라는 소리다.
수랭식을 채택하지 않은 것도 맥심 기관총의 영향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도 사실무근으로, 애초에 가스식 기관총은 수랭식 냉각자켓을 달기 힘들다. 고온 고압의 가스가 피스톤을 밀어야 하는데 물 때문에 냉각, 응축되어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스 작동식은 반동 이용식이나 블로우백에 비하여 작동 간의 신뢰성이 더 높고, 의외로 설계하기도 쉬운 데다[12] 무거운 노리쇠가 필요 없으므로 가볍다. 현대 소총이나 기관총[13]이 죄다 가스 작동식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수랭식은 지속 사격 능력은 우수하나 기동성이 너무 떨어졌다. 그 이유가 물 때문인데, 전장에서 물이 매우 귀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송조차 유류만큼이나 힘들고, 병사들도 물을 소모하기 때문에 그 중요도가 너무 높다. 게다가 냉각 재킷의 내구성이 약해 총알구멍이라도 나면 물이 새서 총을 못 쓰게 되는 일이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탄판을 증설하기도 했다. 따라서 1차대전 종전 후 경량화 바람과 함께 수랭식 기관총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호치키스 기관총이 어찌보면 선구자였던 셈이다.
의외로 최초의 대구경 중기관총이 될 뻔한 물건이었다. 경장갑 차량 대응용으로 13.2 mm 탄약을 사용한 호치키스 M1929 모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물건은 대공용 및 경장갑 차량 대응용으로 사용되었으며, 기병대 혹은 보병대에 의해 삼각대나 대공 거치대에 거치되어 사용되었다. 안타깝게도 미국에 밀려 최초 타이틀은 못 가졌고[14] 그리 대중적으로 사용되지도 못했다. 이후 프랑스 공군이 M1930의 제식명으로 도입하여 근거리 방공용으로 잘 써먹었다.

기존 M1900의 구조를 토대로 개발되었으며, 단/연발 선택 사격을 집어넣기 위해 작동구조가 많이 변경되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프랑스에 도입된 중기관총 모델. 가장 많이 사용된 모델이다.



위 경기관총 버전과 마찬가지로 30발짜리 탄창 이외에도 측면에 15발짜리 보탄판으로도 장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탄창을 사용했다. 동시에는 안 되고 급탄기구 교체가 필요하다. 흔치 않은 13.2×99mm 탄약을 사용했으며 현대에 들어서서 .50 BMG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된 것이 있다.
파생형으로는 일본군이 면허생산한 93식 중기관총이 있다.

1930년대부터 개발되어 왔으나 정작 프랑스군에서는 느린 사속으로 인한 화력 부족 및 탄창용량 문제로 채택하지는 않았다.[16] 루마니아와 일본 등에 수출되었으며, 일본군이 이를 수입해서 96식 25mm 고각기총으로 운용했다.
- 장군에게 총알을(A Bullet for the General)[17]


해당 캐릭터 엘 츈쵸가 원활한 급탄을 위해 24발들이 보탄판에 기름칠을 하고, 엄지로따봉을 날리듯이보탄판을 밀어주고, 탄을 다 쏘면 바로 보탄판을 갈아 끼우는 장면이 나온다. 보탄판을 밀어주는 이유는, 한두 발 쏘고 급탄 불량으로 장전손잡이를 자꾸 다시 당겨대니 응급조치로서 보탄판을 수동으로 밀어준 것. 아마 호치키스 M1914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작품일 것이다. 정부군을 팍팍 쓰러트리는 것에 엘 츈쵸가 광소를 터트리는 모습이 잘 어울려 호치키스 홍보 영상으로 삼아도 좋을 수준.
작중에서 기관총이 마우저 탄을 쓴다고 말하는 장면과, 멕시코 혁명이란 작중 배경을 고려할 때 스패니시 7x57mm 탄을 사용하는 버전으로 생각된다.
- 스틸 디비전 시리즈
루마니아군이 호치키스 13.2mm 대공 중기관총을 사용한다. 대공능력은 너무 약해서 공습을 막지 못하는 수준이나 보병들을 멀리서 순식간에 제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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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대까지 프랑스군이 사용했으며, 실제 양산은 1897년 이후에 시작됨.[2] M1914 기준[3] 구식 탄약이나, 이러한 구식 탄약 특유의 대구경 때문에 소이탄으로 사용하기 적합하여 이 탄을 소이탄으로 만들어 기구 격추용으로 사용했다.[4]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력 대공포인 96식 25mm 고각기총의 원형이다.[5] 호치키스 자신이 디자인에 관여한 물건은 아니다. 당시 이미 고인이었기 때문이다.[6] 냉각수 무게를 제외하면 이보다 가벼운 기관총도 있었지만, 이놈은 애초에 물이 안 들어가니까 물이 들어간 무게와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수랭식 기관총은 탄약을 제외한 모든 장비를 갖춘 무게만 70kg를 넘겼다. 하지만 이놈은 탄약까지 갖춰야 그 정도 되었으니 이 정도면 매우 가벼운 것이다.[7] 이 생테티엔 M1907 기관총은 특허 회피를 위해 일반적인 '후퇴하는' 피스톤 대신 '전진하는' 피스톤을 사용하고 이 피스톤에 연결된 활대의 톱니가 톱니바퀴를 회전시켜 노리쇠를 후퇴시키는 아주 기괴한 설계를 도입했으나... 이런 특유의 구조 때문에 부품 수가 호치키스 M1914의 두 배인 64개에 달했고(M1914는 32개) 이 같은 많은 부품과 특유의 작동구조 탓에 생산성도 그다지, 신뢰성도 그닥이라는 평가만 받으며 2선급으로 돌려졌다.[8] 위의 Forgotten weapons 채널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부품 수가 극히 적고 부품 하나하나가 큼지막하다.[9] 호치키스의 총열 냉각은 대략 1000발 정도를 발사한 뒤에 물 먹은 스펀지를 끼얹거나 4분 30초간 냉각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베르됭 전투 당시 304고지에 설치된 2정의 M1914 호치키스가 기관총 사수를 교대하고 탄약을 지속적으로 보충받는 방식으로 10일 동안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낸 사례가 존재한다. 즉, 호치키스 기관총도 지속사격능력은 충분히 훌륭했다.[10] 물론 많은 러시아군 또한 일본군의 호치키스 기관총에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봉천회전만 하더라도 일본군이 동원한 기관총의 숫자는 러시아군의 5배에 달한다.[11] 출생년도 기준으로 대략 한세대(30년)정도 차이난다.[12] 실제 현대 개발되는 대부분의 총기는 가스 작동식으로, 작동 구조에 있어선 노리쇠를 직접 밀어주는 것이 총열에서 뽑아낸 가스 그 자체(가스 직동식)냐, 가스가 밀어낸 피스톤이냐(가스 피스톤식), 가스 피스톤식이라면 피스톤의 왕복 거리가 노리쇠 왕복 거리와 같느냐(롱 스트로크) 짧느냐(쇼트 스트로크)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의외로 블로우백이 가장 설계하기 어렵다. 탄약의 압력과 노리쇠가 밀리는 정도의 황금 비율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실제로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약을 무지하게 가리는 데다, 탄약이 강할수록 필요한 무게와 장력이 천정부지로 높아지므로 대구경에는 적용할 수조차 없다. 이를 극복하고자 여러 지연 블로우백 방식이나 API 블로우백이 개발되었지만, 기계적 지연 요소를 제작하는데 복잡한 기계 가공이 필요하거나(지연 블로우백) 오픈 볼트 총기에서만 활용할 수 있고 그나마 노리쇠 폐쇄 전 딱 맞는 격발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API 블로우백).[13] 현대에 개발된 물건 한정.[14] 브라우닝이 프로토타입을 만든 시기가 1918년으로 가장 빠르다. 그 밖에 독일 제국도 13.2mm TuF 탄을 쓰는 MG18TuF 기관총을 개발한 바 있으나, 1차대전의 종전으로 인해 시제품만 생산되었고 실전 투입에 이르지는 못했다.[15] 사진은 7 mm 탄을 사용하는 모델이다.[16] 그런데 웃긴 게, 정작 신예 전함인 리슐리외급 전함에는 이 대공포보다도 성능이 나쁜 37mm 단발 대공포(발사속도 분당 42발)와 13.2mm 기관총을 대공무장으로 달아놓았다... 차라리 이 대공포를 다는 쪽이 그나마 더 나았을 것이다.[17] 1966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멕시코 혁명을 배경으로한 서부극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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