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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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dan Винтовка Бердана 베르단 소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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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단 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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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단 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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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의 명칭은 최초 개발자인 미국의 하이럼 버든(Hiram Berdan)에게서 따 왔다. 그는 미국 남북전쟁당시 북군 대령으로 북군 제1저격연대를 지휘한 군인이며 탄피의 뇌관 방식 중 하나인 버든식 뇌관을 개발한 발명가이기도 하다. 그는 그의 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전장식 소총을 후미장전으로 개조하는 방식을 통해 돈을 벌고자 했다.
그는 다양한 국가와 논의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팔고자 했고 러시아제국이 이에 호응하여 30,000정의 신형소총 개량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최초 아이디어인 스프링필드 M1873와 같이 기존 전장식 강선소총의 트랩도어식 개량과 이와 함께 사용할 .42베르탄 탄약의 도입을 제시했다. .42베르단 탄약은 이는 45-70과 비슷한 탄약이었다. 이렇게 개량 패키지를 제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는 개조할 만한 강선소총을 보유하지 못했다[1], 때문에 버든은 스프링필드 트랩도어 에 달린 것과 같은 기존 크고 거추장스러운 해머부분을 완전히 없애고 볼트액션처럼 코킹되는 스트라이커 모듈을 뒤에 부착하여 완전히 새로운 소총을 제작하였다.
생산은 미국의 콜트사에서 담당하였으며 특허문제 때문에 생산이 약간 지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프링필드 트랩도어의 발명가인 어스킨 앨런의 특허는 문제가 없었고 다른 자잘한 특허들이 해결되어야 했다. 콜트는 생산준비를 마치고 1868년 시험용 소총 일부를 러시아제국에 납품했고 이듬해인 1869 봄에 비로소 대부분의 소총을 납품하였다.
납품직후 버든은 완전 신형소총을 납품한 김에 특허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신형 구조를 도입한 소총을 만들게 된다. 기존 강선 머스킷의 개량을 위해 도입한 트랩도어식 구조가 아니라, 유럽의 표준으로 도약하고 있던 볼트액션구조를 도입한 완전 신형의 단발식 소총을 목표로 설계를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베르단 II 소총이다. 계약 직후 설계를 시작한만큼 베르단I 이 납품된 바로 이듬해 1870년에 러시아 제국에 납품을 시작하였다. 베르단I 과는 달리 영국의 BSA(Birmingham Small Arm) 와의 협상으로 일부는 직도입, 일부는 생산시설과 같이 도입하여 툴라 조병창에서 생산하였다. 파악된 총 생산량은 모두합쳐 3백만정 이상으로, 모신나강 도입전까지 러시아 제국군의 주력화기가 된다.
어디까지나 단발총기였던 베르단 소총은 빠르게 성장하는 유럽 개인화기 기술면에서 뒤쳐졌고 10년 뒤인 1880년 러시아제국이 탄창급탄식 연발화기 개발에 뛰어들면서 모신나강 소총이 개발되며 대체된다. 1891년 신형의 소총이 개발되고 기존 베르단 II 소총이 교체되었으나 3000정 정도의 소총이 벨기에를 통해 7.62x54mmR 탄약으로 구경전환되어 시험 운영되었다. 그들은 신형 탄약에 맞춰 약실을 강화하고 신형 볼트를 장착하였으나,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는지 러시아 제국은 이후 개조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낙후된 공업력 때문에 모신나강 보급이 더뎌 러일전쟁 시기까지도 최전방에서 쓰였다. 이 때문에 30년식 소총을 사용하는 일본군에게 봉천 전투에서 크게 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적백내전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비록 신형소총에 의해 대체되었으나, 3백만정에 달하는 생산량 때문에 러시아 제국 여기저기서 알음알음 쓰였으며 스포츠용으로 풀린 소총들은 민간에서 사랑받으며 지속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는 다양한 국가와 논의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팔고자 했고 러시아제국이 이에 호응하여 30,000정의 신형소총 개량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최초 아이디어인 스프링필드 M1873와 같이 기존 전장식 강선소총의 트랩도어식 개량과 이와 함께 사용할 .42베르탄 탄약의 도입을 제시했다. .42베르단 탄약은 이는 45-70과 비슷한 탄약이었다. 이렇게 개량 패키지를 제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는 개조할 만한 강선소총을 보유하지 못했다[1], 때문에 버든은 스프링필드 트랩도어 에 달린 것과 같은 기존 크고 거추장스러운 해머부분을 완전히 없애고 볼트액션처럼 코킹되는 스트라이커 모듈을 뒤에 부착하여 완전히 새로운 소총을 제작하였다.
생산은 미국의 콜트사에서 담당하였으며 특허문제 때문에 생산이 약간 지연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프링필드 트랩도어의 발명가인 어스킨 앨런의 특허는 문제가 없었고 다른 자잘한 특허들이 해결되어야 했다. 콜트는 생산준비를 마치고 1868년 시험용 소총 일부를 러시아제국에 납품했고 이듬해인 1869 봄에 비로소 대부분의 소총을 납품하였다.
납품직후 버든은 완전 신형소총을 납품한 김에 특허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신형 구조를 도입한 소총을 만들게 된다. 기존 강선 머스킷의 개량을 위해 도입한 트랩도어식 구조가 아니라, 유럽의 표준으로 도약하고 있던 볼트액션구조를 도입한 완전 신형의 단발식 소총을 목표로 설계를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베르단 II 소총이다. 계약 직후 설계를 시작한만큼 베르단I 이 납품된 바로 이듬해 1870년에 러시아 제국에 납품을 시작하였다. 베르단I 과는 달리 영국의 BSA(Birmingham Small Arm) 와의 협상으로 일부는 직도입, 일부는 생산시설과 같이 도입하여 툴라 조병창에서 생산하였다. 파악된 총 생산량은 모두합쳐 3백만정 이상으로, 모신나강 도입전까지 러시아 제국군의 주력화기가 된다.
어디까지나 단발총기였던 베르단 소총은 빠르게 성장하는 유럽 개인화기 기술면에서 뒤쳐졌고 10년 뒤인 1880년 러시아제국이 탄창급탄식 연발화기 개발에 뛰어들면서 모신나강 소총이 개발되며 대체된다. 1891년 신형의 소총이 개발되고 기존 베르단 II 소총이 교체되었으나 3000정 정도의 소총이 벨기에를 통해 7.62x54mmR 탄약으로 구경전환되어 시험 운영되었다. 그들은 신형 탄약에 맞춰 약실을 강화하고 신형 볼트를 장착하였으나,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는지 러시아 제국은 이후 개조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낙후된 공업력 때문에 모신나강 보급이 더뎌 러일전쟁 시기까지도 최전방에서 쓰였다. 이 때문에 30년식 소총을 사용하는 일본군에게 봉천 전투에서 크게 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적백내전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비록 신형소총에 의해 대체되었으나, 3백만정에 달하는 생산량 때문에 러시아 제국 여기저기서 알음알음 쓰였으며 스포츠용으로 풀린 소총들은 민간에서 사랑받으며 지속적으로 이용되었다.
Forgotten Weapons의 베르단 I 리뷰 영상 |
대개 강선식 머스킷을 개량한 총들과는 다르게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물건이라 기존 퍼커션캡 방식 소총의 해머부분이 없다. 때문에 구조가 매우 단순하고 신뢰성있었으나, 버든 본인이 즉시 새 소총을 디자인할 정도로 강력한 경쟁작들과 빠른 소화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상적인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다.
스프링필드 M1873과는 달리 트랩도어가 완전히 열리지는 않고 가늠자에 걸려 120도 정도만 열린다. 다만 장전 및 추출 구조는 완전히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특징적인 볼트액션식의 스트라이커 덕분에 트랩도어 자체의 특허분쟁은 없었다. 덕분에 온갖 특허가 난무하던 19세기에 무난하게 생산을 진행할 수 있었다. 콜트사는 이후 베르단 I의 구조를 이용해 스포츠 소총류를 만들기도 했으나 크게 재미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스프링필드 M1873과는 달리 트랩도어가 완전히 열리지는 않고 가늠자에 걸려 120도 정도만 열린다. 다만 장전 및 추출 구조는 완전히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특징적인 볼트액션식의 스트라이커 덕분에 트랩도어 자체의 특허분쟁은 없었다. 덕분에 온갖 특허가 난무하던 19세기에 무난하게 생산을 진행할 수 있었다. 콜트사는 이후 베르단 I의 구조를 이용해 스포츠 소총류를 만들기도 했으나 크게 재미는 보지 못했다고 한다.
Forgotten Weapons의 베르단 II 리뷰 영상 | 사격 영상 |
베르단 I 생산이후 빠르게 전환한 덕분에 단발 볼트액션식으로 유럽 및 각국에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볼트 자체는 드라이세와 비슷하게 45도 정도로 기울어있으며, 폐쇠기구는 볼트핸들 하나뿐이다 흑색화약 소총이라 내구성에 문제는 없었다.
특이하게도 노리쇠 후방이 공이 뭉치로써 작동했으며 캠 구조에 의해 볼트핸들이 45도로 꺾어야 공이가 노출되었다.
19세기 말엽에 만들어진 물건답게 곡사 가늠자가 존재한다. 가늠자 옆의 홈이 그것이며 전방 배럴밴드 같은 위치에 핀같은 것이 곡사용 가늠쇠이다.
특이하게도 노리쇠 후방이 공이 뭉치로써 작동했으며 캠 구조에 의해 볼트핸들이 45도로 꺾어야 공이가 노출되었다.
19세기 말엽에 만들어진 물건답게 곡사 가늠자가 존재한다. 가늠자 옆의 홈이 그것이며 전방 배럴밴드 같은 위치에 핀같은 것이 곡사용 가늠쇠이다.
제정 러시아 이외에도 대한제국[2],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지에서 사용되었다. 대한제국은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군사고문단의 입국과 함께 7000정의 베르단 소총이 제공되었는데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겠지만 돈 한 푼 안 받고 공짜로 대량의 탄약까지 함께 보내줘서 청일전쟁 때 양국의 군수물자 수탈과 지방통제력 상실로 위기에 빠져있던 대한제국군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추운 러시아의 기후에 맞게 만들어진 무기라 그런지 대한제국이 운용할 당시 함경도나 평안도 등 북방지역에서는 괜찮게 작동했으나 남부지역에서는 종종 고장이 나곤 했다고 한다.[3] 게다가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지라 대한제국군에서 종종 마우저Gew71/84 소총과 비교하여 까다가, 러일전쟁이 터지기 몇 년 전 탄창식 30년식 아리사카를 직도입하고 나중에 아예 설비까지 들여와 자체 생산을 하였다.
스위스에서도 러시아가 이 총을 도입하던 시기에 미국으로부터 도입을 검토했으며 이를 위해 미국에서 소량을 구입하여 테스트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자국산 베테를리 소총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어 실제 도입에 이르지는 않았다.[4]
구조 자체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독일의 Gew71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총 모두 기존에 존재하던 드라이제나 샤스포 소총 등을 기반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가령 두 총 모두 장전손잡이 부분에 길쭉한 폐쇄돌기가 있는데, 이 구조는 사스포에서 유래한 것이다.
추운 러시아의 기후에 맞게 만들어진 무기라 그런지 대한제국이 운용할 당시 함경도나 평안도 등 북방지역에서는 괜찮게 작동했으나 남부지역에서는 종종 고장이 나곤 했다고 한다.[3] 게다가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지라 대한제국군에서 종종 마우저Gew71/84 소총과 비교하여 까다가, 러일전쟁이 터지기 몇 년 전 탄창식 30년식 아리사카를 직도입하고 나중에 아예 설비까지 들여와 자체 생산을 하였다.
스위스에서도 러시아가 이 총을 도입하던 시기에 미국으로부터 도입을 검토했으며 이를 위해 미국에서 소량을 구입하여 테스트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자국산 베테를리 소총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어 실제 도입에 이르지는 않았다.[4]
구조 자체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독일의 Gew71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총 모두 기존에 존재하던 드라이제나 샤스포 소총 등을 기반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가령 두 총 모두 장전손잡이 부분에 길쭉한 폐쇄돌기가 있는데, 이 구조는 사스포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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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단카 엽총. 사진은 II를 기반으로 개조되었다. |
퇴역한 베르단 소총들은 베르단카(Берданка)라는 이름으로 사냥용 엽총으로 개조되어 민간에 판매되었다. 1차, 2차 세계대전 이후 잉여 모신나강 일부나 비슷한 일본의 흑색화약 소총인 무라타 소총도 많은 수가 엽총으로 개조되어 민간에서 쓰였다.
굉장히 많은 전장에서 쓰였는데 엉뚱하게도 영국의 1903년 티베트 원정에서 티베트 수비대가 사용했다고 한다. 정황상 청나라에 수출된 것들이 티베트에 들어왔거나 대영제국을 아니꼽게 생각한 제정 러시아가 지원한 장비로 보인다. 제1차 세계 대전은 물론 심지어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군도 사용했다. 그 외에도 핀란드군도 겨울전쟁 당시 잘 써먹었다고 한다. 소련군도 7.62×54mmR 탄으로 개수한 형식이나 베르단카 엽총을 독소전쟁 내내 후방부대 또는 파르티잔 용으로 사용되었다.
굉장히 많은 전장에서 쓰였는데 엉뚱하게도 영국의 1903년 티베트 원정에서 티베트 수비대가 사용했다고 한다. 정황상 청나라에 수출된 것들이 티베트에 들어왔거나 대영제국을 아니꼽게 생각한 제정 러시아가 지원한 장비로 보인다. 제1차 세계 대전은 물론 심지어 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군도 사용했다. 그 외에도 핀란드군도 겨울전쟁 당시 잘 써먹었다고 한다. 소련군도 7.62×54mmR 탄으로 개수한 형식이나 베르단카 엽총을 독소전쟁 내내 후방부대 또는 파르티잔 용으로 사용되었다.
- 메트로 2033
2033년의 메트로에서 여전히 사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160년이 지나고 먼 근미래의 핵전쟁 이후에도 여전히 잘 작동되는 러시아제 단발소총의 위엄.[5] 직접 등장한 건 아니고 아르티옴이 동료가 장사꾼들을 날강도라며 욕하자 그들이 없다면 탄약도 없는 베르단 소총을 들고 괴물들에게는 소금을 치고 있을 거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언급만 된다. 하지만 아르티옴이 책이나 인터넷으로 밀덕질을 해서 구식 무기들을 아는 것은 아닐테니[6], 메트로 내에 베르단이 소수나마 유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일 듯. 그러나 메트로 내에서 주로 쓰이는 총기는 러시아군의 제식 군용 소총 AK-74이고, 생산량이 엄청나게 많은 모신나강이면 모를까 이런 박물관에나 있을 구닥다리들은 전쟁 이전 물건이 살아남아 유통되는 것보다는 간단한 구조 때문에 메트로 내에서 스토커들이 구해다 준 설계도를 입수하여 저가에 생산되어 쓰이는 것일 가능성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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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크른카 M1857같은 물건이 있긴 했었는데 이미 다른 소총으로 개량사업을 진행한 뒤라서 1860년대 쯤에는 이렇다 할 만한 물건이 남아있질 않았다.[2] 진위여부는 모르지만 이때 받은 수량 중 일부가 대한민국 해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아스트랄한 목격담도 있다.댓글 참조[3] 격발 불량이 심했다고 하는데 탄약이 문제가 아니면 구조상 이 총에서 고장날 부위라고는 노리쇠와 안의 메인스프링뿐이다. 내부구조 아마도 안 그래도 오래된 총(처음 나온 게 1870년 초반)이 더위와 습기로 인해서 러시아 제국의 낮은 공업기술로 만들어진 스프링이 녹슬고 탄성을 잃어버린 것이 원인인 듯하다. 실제로 원 사용국인 러시아군에서 쓸 때는 어디서나 잘 작동한다고 호평했다.[4] 이는 적은 병력으로 주변 열강을 막아낼 군사력을 갖추어야 했던 스위스 군부가 장탄수가 11발에 달하는 연발 볼트액션 소총인 베테를리 소총의 뛰어난 속사능력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이다.[5] 볼트액션 소총의 단순한 구조와 작동 메커니즘을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으나, 이 소총은 흑색화약 단발 소총인 만큼 사격 후 철저한 유지보수가 필수다. 게다가 지금도 땅 파면 나오는 모신나강도 쏴보면 고장나기 일쑤이니, 160년 동안 계속. 때빼고 광내고 부품 갈아주고 한 경우에나 가능한 일. [6] 다만 베데엔하 역은 과거의 지식들을 중요시해, 아무리 낡아빠진 책들도 반드시 구해온다는 설정이 있기에 무기에 관한 책들도 충분히 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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