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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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부속 규정에 의거하여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을 시작하며, 2년이 경과한 2019년 3월 29일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27개 회원국들 중 단 하나의 회원국이라도 협상의 시한 연장을 거부할 경우, 협상의 진행 상황과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는 자동으로 상실된다.
*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다만 영국 정부가 희망하면 유예기간 내에도 탈퇴는 가능하다.

불가리아 공화국
Република България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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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파일:불가리아 국장.png

공식국명

Република България
(불가리아 공화국)

면적

110,993km²

인구

7,144,653명 (2016년 기준)[1]

공용어

불가리아어

수도

소피아

정치체제

의원 내각제

대통령

루멘 라데프

총리

오그니안 게르지시코프

임기

2017년 1월 27일 ~

GDP

명목 504억 4600만$ (2016년 기준)

1인당 GDP

명목 7,091$,
PPP 20,116$ (2016년 기준)

민족구성

불가리아인 84%,
터키인 8.8%, 집시 4.9%

국교

정교회

종교

기독교 60%(절대 다수가 정교회),
이슬람교 8% 등(2011)

국가

친애하는 조국 (불가리아어: Мила Родино)


파일:external/www.lib.utexas.edu/bulgaria_sm96.gif

Fotopedia에서 불가리아 사진 감상하기

1. 개요2. 역사3. 정치4. 경제5. 사회
5.1. 인구
5.1.1. 주민5.1.2. 종교
6. 문화
6.1. 언어6.2. 스포츠6.3. 음식
7. 외교관계
7.1. 터키7.2. 그리스7.3. 러시아7.4. 세르비아7.5. 대한민국과의 관계
8. 상징물
8.1. 국기
9. 주요 도시10. 출신 인물11. 불가리아 국적, 출신의 캐릭터

Съединението прави силата
통합이 힘을 만든다

1. 개요[편집]

발칸 반도의 동쪽 흑해와 맞닿아있는 나라. 수도는 소피아. 화폐 단위는 '레프'다. 국가의 상징은 사자. 공용어불가리아어를 사용한다. 명산물은 장미, 담배, 유산균(...)[2], 컴퓨터 바이러스[3](...) 등등.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재외국민 수는 100여 명 정도 된다. 국내에는 '요구르트를 좋아하는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보다 많다. (유럽에 속한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2004년에 발트 3국,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와 함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였고, 루마니아와 함께 2007년 1월 1일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2. 역사[편집]

3. 정치[편집]

불가리아의 마지막 왕인 시메온 2세(1937~)는 재미있는 이력으로 유명하다. 그는 1946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스페인에서 망명생활을 했다가 귀국, 2001년에는 정치를 시작하며 '시메온 2세 국민운동연합[4]' 이라는 정당을 조직,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후 4년 간 총리를 지내고 '시메온 2세 국민운동연합'의 당수를 맡고 있다가 최근 물러났다. 2001년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으나 2005년 선거에서 지지율이 절반으로 떨어져서 여당 자리를 내주었고 2009년 선거에서는 참패하여 지금은 의석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이로서 왕위에서 쫓겨났다 선거에서 승리해 권좌에 복귀하고 다시 선거로 물러나는 웃지 못할 진기록을 세웠다.[5] 당시 불가리아의 집권 여당은 '불가리아 사회당(Bulgarian Socialist Party)'으로 1990년 기존 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면서 후신으로 창당된 당이다.

2014년 선거 이후 집권당은 '불가리아 유럽발전 시민당(Citizens for European Development of Bulgaria)'이다.

의원 내각제 국가인 불가리아대통령은 이스라엘, 인도, 독일, 이라크, 그리스 등 다른 의원 내각제 공화국 국가와 마찬가지로 권한이 별로 없다, 실질적인 정부 수반은 총리이다. 대통령의 월급은 미화 400달러(40만원(...))에 불과하며, 어딜 돌아다닐 때도 경호원 몇 명(적게는 두 명)에 불과하다. 더 안습인 건, 대통령궁이라고 할 만한 건물의 반은 쉐라톤 호텔이다. 즉, 대통령궁과 쉐라톤 호텔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국산차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의 이동 차량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EF쏘나타였다. 아마 이는 대통령이 실질적인 자기 월급 올릴 권한을 가지지 않기 때문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2013년에는 불가리아 내 친터키 세력의 지도자인 아흐메드 도안(Ahmed Doğan)의 암살미수사건이 터졌는데, 보면 알겠지만 TV 중계 중인 연설회장에 난입해서 호신용 가스총을 들이대다가 제압되었다. 참고로 최초 업로드는 코믹/유머 카테고리로 등록되어 있다가 짤렸다……

4. 경제[편집]

5. 사회[편집]


주요 유럽 선진국들과 불가리아의 국민성과 생활상을 비교하며 불가리아를 까고 이 주제에 EU에 가입했다며 자축하는(...) 자학개그 영상이다. 사실 이거 이탈리아도 자주 하는 자학개그.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불가리아는 유럽(EU)의 관문이다. 즉, 불가리아를 통과하면 유럽 어느 나라든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가보면 국경 세관 검사도 까다로운편.(참고로 동영상에서 Европа는 유럽, България는 불가리아)

5.1. 인구[편집]

1988년에 898만 명[6]으로 인구 최고점을 찍은 이후에 출산율이 한때 1명대 초반으로 급락한데다가 다른 나라로의 이민 행렬까지 겹치면서 2014년에 1950년 수준으로 인구가 감소하였고, 2050년대에는 500만까지 감소할 예정이다. 그래도 2000년대 중반 들어서 출산율이 1.5명대로 회복되긴 했는데, 그 이후로 출산율이 오르지 않은데다가 사망률 역시 1000명당 15명을 기록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전망은 암울하다.

그리고 터키인과 집시인의 비율 역시 감소했다.# 참고로 출산율 저조는 동유럽 국가들의 공통된 문제다..

5.1.1. 주민[편집]

주민의 대부분이 불가리아인이다. 그 외에도 터키인, 집시, 기타(러시아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등)도 거주하고 있다.

불가리아인의 기원은 트라키아인, 슬라브인, 불가르인으로 손꼽히는데 트라키아인들은 기원전부터 현재의 불가리아 일대에 살았더 민족이었지만 서기 6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많은 슬라브인들이 들어오면서 혼혈을 통해 슬라브화되었으며 언어도 슬라브어를 쓰게 되었다.불가리아라는 이름은 튀르크 계통의 불가르인에게 따왔지만 불가르인들과 트라키아와 혼혈한 슬라브인과의 혼혈을 통해 불가리아인이 탄생했으며 불가르인들은 원래 숫자가 더 많았던 남슬라브인에게 동화되어 오늘날 불가리아인들은 완벽하게 슬라브화되었다.[7]

5.1.2. 종교[편집]


파일:external/viajar.elperiodico.com/catedral-de-alejandro-nevski-en-sofia_galeria_principal_size2.jpg

대부분이 정교회를 믿고 있으며, 불가리아의 국교로도 지정되어 있다. 보리스 1세 국왕에 의해 불가리아에 정교회 신앙이 들어와 공인되었으며, 1945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 의해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953년 총대주교좌 교회로 위치가 격상되었다. 불가리아 정교회의 총대주교는 소피아의 관구장 겸 불가리아 교회의 수석 주교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총대주교좌 소재지는 수도 소피아에 있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대성당이다. 현재 총대주교는 2013년 선출되어 착좌한 네오피테 주교이다.

이슬람교[8],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9]를 믿는 사람도 조금 있다. 최근 불가리아에서 불교 사원이 생길 예정이다.#

6. 문화[편집]

6.1. 언어[편집]

불가리아어가 공용어다. 러시아어와는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으며 키릴 문자를 사용한다.[10][11] 터키어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에 불가리아로 이주한 터키인들에 한해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공산정권 시절에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였지만, 민주화이후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도 쓰이고 있다.[12] 루마니아와 함께 프랑코포니에도 가입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불가리아어 문서 참조.

6.2. 스포츠[편집]

축구는 동유럽답게 꽤 잘하지만 국대는 잠깐만 월드컵 및 유로컵 기준으로 잘했던 나라. 국대에 관한 것은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가장 유명하다. 최근에는 불가리아 백작이라는 별명을 갖고있는 맨유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알려져 있고, 레체, 유벤투스, 피오렌티나,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고 현재 파르마로 임대된 발레리 보지노프, 이청용과 같이 볼튼 원더러스에서 뛰었던 마틴 페트로프 역시 불가리아 사람이다.

야구도 한다. 불가리아 야구 국가대표팀 참조.

냉전 시절에는 공산권 특유의 스포츠 육성 정책에 따라 작은 나라인데도 올림픽 메달 획득 순위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역도에서는 한때 강국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 애틀란타 올림픽까지 역도 3연패를 달성한 '포켓 헤라클레스' 나임 슐레이마놀루도 원래 불가리아 출신 선수였는데, 불가리아의 소수민족 탄압 정책으로 터키로 망명한 케이스. 1980 모스크바 올림픽때는 미국이 불참하기는 했으나 종합순위(이하 금메달수 기준)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 내기도 했다. 1984 LA 올림픽에는 공산권 보이코트로 불참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당시 대한민국과 미수교 상태였지만 참가하여 금메달 10개를 따며 종합 7위에 올라 계속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하지만 공산권이 붕괴되고 이전의 스포츠 육성 정책도 무너지면서 1990년대 이후 부진한 편이다. 거기에다가 강세 종목으로 손꼽히던 역도가 선수들의 약물 스캔들로 물의를 빚게 되면서 충격에 휩싸이는 등 악재가 겹쳤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는 역도 종목에 아예 참가하지 않기로 했으며 이 대회에서 금1, 은1, 동3을 따는 데 그쳐 56년만에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적은 수의 메달을 따는 부진을 보였다. 2012 런던 올림픽에는 더욱 부진해져서 은1, 동1에 그쳐 60년만에 하계 올림픽에서 가장 저조한 성적을 올렸고, 메달순위는 63위로 추락. 32년전 올림픽에서 3위, 24년전 올림픽에서 7위를 했던 위엄은 완전히 사라졌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은1, 동2를 획득하며 런던 때보단 나은 성적이지만 순위는 65위로, 4년전보다 2위 더 내려간 순위로 마쳤다. 여담으로 전 기계체조 선수인 요르단 요르체프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부터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총 6번의 올림픽 출전으로 은1, 동3의 성적을 올린 바 있다. 현재까지 최다 올림픽 출전은 1972 뮌헨 올림픽부터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총 10번을 출전한 캐나다 출신의 승마선수 이안 밀러. [13] 자세한 올림픽 최다 출전자는 링크 참조.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athletes_with_the_most_appearances_at_Olympic_Games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최다 출전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귀화, 아들의 백혈병 문제 등으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옥사나 추소비티나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2016 리우 올림픽까지 총 7번 출전했다.[14] 뒤이어 요르단 요르체프가 6번 출전으로 역대 5번째로 최다 출전 기록을 갖고있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금1, 은2, 동3개를 딴 것이 전부이다. 금메달 1개는 바이애슬론에서 나왔고, 유럽국가로는 특이하게 쇼트트랙에서 은메달 2개를 딴 바 있다. 여자 쇼트트랙의 예브게니야 라다노바는 유럽 선수 중에서는 드물게 2000년대에도 쇼트트랙에서 세계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던 선수다.

운동기구 불가리안 백의 종주국.

6.3. 음식[편집]

의외로 동유럽에서 음식과 술이 맛있는 나라이다. 술의 경우 와인자두, 살구등 과일을 증류해서 만든 발칸반도의 전통주 라키야가 유명한데. 그 중에서 와인은 프랑스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유럽의 와인 강국들의 와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맛과 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부르드, 텔리쉬, 에니라, 카다르지나등의 여러 와인 브랜드들이 있으며, 이 중 마부르드는 불가리아 현지에서만 나는 토착 포도 품종으로만 양조된다고 한다.

음식의 경우 기본적으로 유럽권 국가 답게 이 주식[15]이고, 전통요리로는 요구르트로 만든 수프 요리 타라토르와 수파 탑체타, 잘게다진 고기 완자를 불에 구운 고기 완자구이 케바프체, 고기와 채소를 꼬치에 끼워 불에 구워 만드는 꼬치구이 쉬시체타, 단단한 도자기 질그릇에 고기, 달걀, 채소등을 넣고 오븐에 넣어 끓여 만드는 불가리아식 찌개 요리 카바르마, 치즈를 넣어 만든 치즈파이 바니짜, 피망, 오이, 토마토 위에 양유로 만든 불가리아 전통 치즈 시레네 덩어리를 뿌려서 만드는 샐러드 샵스카등이 있다. 그 중 요구르트로 만든 냉수프 타라토르는 불가리아 현지에서도 한국의 냉면 비슷하게 여름 별미로서 인기가 굉장히 높다고 한다. 타라토르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식 찌개 요리 카바르마와 샐러드 샵스카도 굉장히 맛 있는 편이다. 역사적, 지리적으로 터키 요리와 그리스 요리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터키 요리, 그리스 요리와 유사한 부분도 많이 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음식 중에 팔내니 추슈키(피망에 속재료를 채워 요리한 것)가 있는데 영어로는 stuffed pepper라고 부른다.

한국에 불가리아 요구르트가 잘 알려져 있지만, 현지인들은 좋은 것을 알면서도 자랑거리로는 삼지 않는다. 대다수가 특별히 선호하는 요구르트 브랜드는 없으며 그냥 싼게 좋은거라고 한다(...) 한국에서 파는 요구르트 브랜드 중 도마슈노(домашно)는 불가리아어로 '집에서 만든(homemade)'이라는 뜻이다.

7. 외교관계[편집]

주변국들과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꽤 있다. 서쪽에 세르비아마케도니아, 남쪽에 그리스, 동쪽에 터키, 북쪽에 루마니아 등이 있는데, 그나마 친척인 마케도니아를 빼면 이 국가들은 발칸 전쟁과 양차대전 때 적어도 한번 이상은 붙었던 국가들이기에 국민정서적으로 사이가 안 좋다. 마케도니아도 유고슬라비아 독립 후 독자 정체성을 내세우기 시작해서... 그나마 루마니아하고는 좀 친한 편이다.

가장 사이가 나쁜 국가들을 언급하면, 터키와 그리스 정도가 된다.

터키와 그리스 음식을 두고 불가리아에선 자기들 고유 음식이라고 반발하는 게 많다. 유산균 요구르트를 두고도 터키랑 으르렁거리면서 서로들 자기가 원조라고 한다[16]. 그러나 이들 나라 음식 상당수가 아랍권과 비슷한게 많아서 이름 문제는 더 복잡하다.

7.1. 터키[편집]

불가리아는 오스만 제국 시절에 지배를 받은 기억이 있어서 사이가 좋지 않다. 다음과 같은 사례를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1. 오스만 제국의 지배 말기에 독립운동을 하면서 활동했던 '바실 레프스키[17]'와 '흐리스토 보테프', '이반 바조프' 같은 인물들이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2. 불가리아에서 터키의 국경을 통과할 때 터키 관리들은 불가리아인들의 짐 검사를 몇시간씩 해댄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까지 뜯어볼 정도이다. 반면, 그 때 돼지고기를 싣고 가던 한국인들(터키는 이슬람이 주 종교인 국가[18]) 차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3.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불가리아인들은 이스탄불을 이스탄불이라고 부르지 않고, "짜리그라드(Цариград, 황제(차르)의 도시)"라고 부른다. 자존심 문제가 있는 듯 하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이스탄불을 콘스탄티노폴리스(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η)라고 부르길 고집한다.

4. 터키와 축구를 붙는 날에 외국인들은 밖에 나가면 상당히 위험하다. 불가리아의 신종 네오 나치즘 빠돌이(주로 스킨헤드)들이 축구를 보고 나와서 노면전차에 타고 돌아다니며 외국인들을 가격하고 두들기기 때문이다. 주 타겟은 중국인들이지만, 그네들이 보기에 비슷한 용모인 아시아인들도 자주 당한다. 꽤 오래 전 얘기지만, 한국인이 총을 맞은 사례도 있다. 어지간하면 축구 경기가 있는 날에는 적어도 경기장 주변은 가지 않는 것이 좋다.

5. 불가리아 최대 소수민족인 터키계[19]에 대한 차별대우가 심하다.[20] 1988, 92, 96년 올림픽 역도 금메달을 받아 최초로 역도 금메달 3연패를 거둔 터키 역도선수 나임 술레이마놀루가 바로 불가리아 출신으로 성도 불가리아풍인 술레이마노프였다. 하지만 터키계에 대한 차별과 탄압으로 불만을 느낀 그는 1986년 불가리아에서 터키로 망명하여 터키 국적을 얻었고, 성씨를 술레이마놀루로 바꿨다. 그러자 불가리아는 터키 국적인 그를 올림픽 국제대회 참가못하게 하려고 별별 훼방을 놓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덕분에 터키는 20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받게 되었고 그는 역도계의 전설로 남았다.

7.2. 그리스[편집]

터키보다는 덜하지만 그리스와도 역시 고양이 같은 관계이다. 그리스와의 다툼에 관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이렇다.

1. 두 나라는 20세기 초반에 자기네 나라들의 최고봉(山)이 어느 쪽이 더 높은 지를 가지고 다퉜을 정도이다. 참고로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올림푸스 산은 불가리아에서 가장 높은 릴라 산맥에 있는 '무살라'보다 8m가 낮다. 그래서 당시 그리스 국왕이 국민들에게 '흙을 퍼서 올림푸스 산에 쌓으면, 올림푸스 산이 무살라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2. 키릴 문자를 만든 키릴로스와 메토디오스 성인이 서로 자기네 나라 출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싸우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그리스쪽 주장이 더 옳다. 키릴 형제는 현 그리스 테살로니키 출신이기 때문. 불가리아에는 온 적도 없다. 키릴 형제의 어머니가 슬라브족 출신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불가리아의 슬라브족은 오보드리티족[21]이고 키릴 형제의 출신지인 테살로니키의 슬라브족은 스트루베니티족이다. 하지만 키릴 형제의 제자들이 불가리아로 피신하면서 그곳에서 만들어진 게 키릴 문자이기 때문에 키릴 형제가 불가리아와 아주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3. 이스탄불을 짜리그라드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리스의 지명인 테살로니카(Θεσσαλονίκη)를 그대로 부르지 않고 불가리아인들이 점령했을 적에 사용했던 이름인 '솔룬(Солун)'으로 부른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냉전 시기에 불가리아는 소련의 위성국으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입하였고, 그리스는 내전 끝에 서방 진영에 가담해서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면서 대립이 첨예화되었다.

그러다가 2017년 8월 7일에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와 불가리아의 보리소프 총리는 회담을 하면서 에게 해부터 흑해에 이르는 지역까지 잇는 철로신설계획을 발표했다.#

7.3. 러시아[편집]

러시아에 대한 불가리아인들의 감정은 조금 복잡미묘하다.

러시아는 불가리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해방'되도록 공헌했다. 불가리아인들이 자랑하는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성당인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은 돔 위에 금박을 입혔는데, 이건 러시아인들이 황금을 원조한 덕분. 그리고 애초에성당은 독립 전쟁에서 죽어간 전몰자들을 추도하는 목적에서 지어진 것이었다.

이런 우호적인 측면도 있지만, 러시아가 거저로 독립해줄 린 없었다. 러시아 정교를 강요하고 이모저모 정계 간섭 및 조공을 바치라는 투로 대하여 불가리아에선 은인이면서도 역시 거저 은혜를 준게 아니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 때문에 공산주의 치하에서 빌빌거린 것에 대한 악감정도 있기 때문에, 동경과 증오가 미묘하게 섞인 시선을 보낸다. 무엇보다도 현재 불가리아는 나토유럽연합의 회원국이다. 러시아에서 불가리아를 보는 관점도 비슷할 듯(...)

또한 소련 시절에는 소련의 사회주의의 영향 하에 소련의 위성국 정도로 전락했다. 그러다가 동구권 민주화와 1991년 소련의 해체 이후 관계가 미묘해져서 딱히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그래도 역사적 이유로 반러감정이 심한 폴란드나 발트3국, 우크라이나 등 다른 여러 동구권 국가들에 비하면 그나마 러시아에 우호적인 편이라고는 볼 수 있다. 러시아 관광객들은 언어적 유사성과 저렴한 물가, 온화한 기후로 인해 불가리아를 많이 찾아주니 그들을 미워할 수 만도 없다. 특히 여름에 써니비치 같은 인기관광지에서는 러시아인을 쉽게 볼 수 있다.

2016년 11월 13일에 총선에서 친러후보가 당선되고 총리는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총선에서는 여당이 승리하고 친러성향의 야당은 2위를 차지했다.

2018년 3월 30일에 보이코 보리소프 총리는 EU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 정책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7.4. 세르비아[편집]

같은 발칸반도 국가이자 민족, 종교적으로 남슬라브계, 정교권인 세르비아와는 그렇게 사이가 좋지는 않다. 중세 시기 불가리아에 세르비아가 복속된 적도 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발칸반도 정복 과정에서 두 나라 모두 오스만의 식민지로 병합되어 100년 넘게 지배를 받게 된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 발칸전쟁등에서 서로 발칸 영토들을 가지고 전쟁을 벌이기까지 하였으니 역사적으로 서로 좋은 감정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둘 다 공산주의 체제의 국가가 되었는데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맹주이자 공산권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의 일원이긴 했으나 공산권의 맹주인 소련과는 거리를 두며 제3세계의 지도국으로서 큰 소리를 내는가 하면 불가리아는 냉전이 몰락할 때까지 소련의 위성국이자 친소련 국가로 남아 서로 상반된 길을 걸었다. 결국 두 나라의 운명을 가르기까지 한 사건이 냉전 몰락 이후에 벌어지게 되는데 불가리아는 1989년 동유럽 혁명에서 평화적으로 공산 독재 정권을 쓰러트리고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를 전환하였고 정치적인 안정에도 성공하여 2007년 유럽연합(EU)에도 가입한 데 반해 세르비아는 1990년대 초 구 유고 연방이 와해, 분열되면서 유고 연방에서 분리독립, 이탈을 시도하려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등 구 유고 연방 국가들과 벌인 전쟁과 학살로 인해[22]과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유럽연합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등[23] 20세기 말 탈냉전 과정에서 두 나라가 겪은 역사적인 행보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경 지역에서 무역, 왕래등이 이뤄지는 등 최소한 세르비아와 구 유고 연방 국가들과의 관계 만큼 절대적으로 원수지간은 아니긴 하다.

다만, 2008년에 불가리아가 코소보를 독립국가로 인정을 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일시적으로 긴장된 관계가 있었다. #

7.5. 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신라 황금보검이 여기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냉전 시절까지는 다른 동구권 공산국가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과 미수교 상태에 있었다가 1990년에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서울과 수도 소피아에 상주 대사관이 설치되었고 1988 서울 올림픽 때 자국 선수단 및 임원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1995년에 젤류 젤레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과는 1948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동유럽권 국가들 중에서 유독 한류 인기가 높은 나라다. 수도 소피아 대학교에 한국어학과가 있고 K-POP 음악이나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한국에 동경을 갖는 젋은이들이 많다고. 얼마 전 골드문트라는 인디 일렉트로 팝 밴드가 수도인 소피아에서 한국 뮤지션 최초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왠지 모르는 사람들은 매일유업요구르트 이름으로 처음 듣는 듯도 하다(...).

그나마 요즘은 한국에서 불가리아 요리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미카엘 셰프 덕택에 조금은 친숙해졌을 지도?[24]

수교 26년 만에 외교부 장관이 처음 방문한다.

한국 대사관에서 열린 오찬 행사에 이례적으로 북한 대사가 참여하기도 하였다. #

8. 상징물[편집]

8.1. 국기[편집]

하양, 초록, 빨강의 3가지 색으로 된 국기이며 1877년 오스만제국 지배시절 독립운동 때 처음 사용되었고 그 당시에는 사자와 BULGARIA라는 영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1947년 공산주의 정권 출범 때 하양 부분에 인민공화국 국장(國章)이 있었으나 1989년 공산주의 정권 폐지 이후 없어졌다. 러시아 국기와 비슷해 보이는데 실제로 불가리아 국기는 러시아 국기에서 파랑색을 초록색으로 바꾼것이라 한다.

9. 주요 도시[편집]

  • 주요 도시들

10. 출신 인물[편집]


스모선수 고토오슈 가쓰노리가 이 나라 출신이다. 원래 레슬링 선수였다가 19살 때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와 2002년 스모판에 데뷔했다고. 2008년 유럽인 최초로 일본 스모 최상위리그 '마쿠노우치' 여름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한다.

11. 불가리아 국적, 출신의 캐릭터[편집]

※ 해당 국가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제외한다.

[1] 1989년 900만 명을 찍은 후 출산율의 저하와 해외이민으로 인구가 격감하고 있다. 2016년 현재엔 1940년대 후반 수준까지 인구가 줄어 조만간 7백만명 미만이 될 전망이다.[2] 이 유산균으로 요구르트를 만드는 방법이 좀 ㅎㄷㄷ 하다. 산수유 나뭇가지를 꺾어와서 우유에 푹 꽂아서 따뜻한 곳에 두면 요구르트가 완성된다고 한다.[3] 도스시절 최악의 바이러스로 이름을 날린 어둠의 복수자 바이러스와 Dir II 바이러스의 원산지다. 1980년~90년 당시 불가리아는 국가적으로 컴퓨터 교육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컴퓨터를 접하기 쉬운 편이었다고 한다.[4] 키릴 약자로 НДСВ, 영어식 표기로는 NMSII(National Movement Simeon II)을 창당했다. 참고로 이 당은 2007년 이름을 '안정과 진보를 위한 국민운동연합'(National Movement for Stability and Progress)으로 변경했다.[5] 사실 그가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유년기에 왕위에 있었던 것이 한몫 했다. 그가 부왕인 보리스 3세의 급사로 인해 왕이 된 것이 1943년, 우리 나이로 7세 때의 일이다. 공산혁명으로 인해 강제 퇴위할 때의 나이도 1946년의 일이었으니 우리 나이로 10세(한국 기준 초등학교 3학년)였다. 당연히 어린 나이에 잠깐 왕위에 앉아있기만 하다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니 동정론이 어느 정도 있을 수 밖에는 없는 편. 비유하자면 단종에 대한 조선 후기 사람들의 감정과 같다고 볼 수 있다.[6] 통계별로 차이가 있다.[7] 언어부터가 슬라브어다.[8] 이슬람교인 경우 오스만 제국시절에 이주한 터키인이 믿고 있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에 일부 개종한 포마크족도 믿고 있다.[9] 19세기에 불가리아에 온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존재해 있다.[10] 사실 멀리갈 것도 없이 애초에 키릴 문자를 만든 키릴 형제가 바로 불가리아인이다. 즉 이 키릴 문자의 언어와 만든 사람이 불가리아라는 것.[11] 유럽연합 소속 국가 중에서는 유일한 키릴문자 사용국이며, 유로지폐에 키릴문자가 있는 이유도 불가리아 덕분이다.[12] 2005년 유럽 연합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어가 가장 많이 쓰이고, 그 다음으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순으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어가 영어와 함께 주요 외국어로도 지정되어 있고 2013년에는 90년대당시에 소수에 불과했던 러시아어교육기관이 다시 늘어났다. 이쯤되면 불가리아와 러시아는 매우 가까운 형제국이 된다.[13] 유일한 10번 출전자. 9번 출전에는 두 명이 이름을 올렸지만 10번은 이안 밀러가 유일하다.[14] 심지어 이 선수는 2020 도쿄 올림픽까지 출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자신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보고싶다고.[15] 아침식사로 바니짜(banitsa)라는 모양으로 말아 구운 빵을 주로 먹는다.[16] 터키 요리에 자세히 나온 내용인데 한국에서 발매된 요구르트(드링크형) 상품명 중 '불가리스'란 이름의 제품이 출시되자 불가리아 대사관측에서 "정답입니다!"란 반응을 보였다. 이에 터키측에서 불쾌하게 여겼다고.[17] 불가리아 곳곳에 그의 이름을 붙인 도로명이 있을 정도다.[18] 단, 터키는 중동의 많은 국가들과는 달리 세속국가다. 돼지고기 먹을 수 있고 술도 먹을 수 있는 곳이다.[19] 1908년 불가리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당시, 불가리아에 체류하던 중 미처 귀국하지 못하고 불가리아에 그대로 남았던 다수의 오스만 제국 사람들, 즉 터키인들이 있었다. 1945년 일제 패망 직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반도에 억류되었던 재한 일본인들과 같은 케이스. 이들이 지금까지 터키계 불가리아인으로 불가리아 내에서 최대의 소수민족 집단을 이루고 있다.[20] 여기에는 과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오스만 제국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차별에 대한 반감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영향이 가장 크다.[21] 정확히는 7개 슬라브 부족의 연합[22] 하지만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조차도 유고 내전 당시 서로 학살을 자행한 바가 있다. 자세한건 유고슬라비아 내전 항목 참조[23] 물론 세르비아도 EU에 가입하려고 2009년 EU에 가입 신청서를 내고 가입 후보국 지위를 받는 등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2007년에 EU에 가입한 불가리아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황이다.[24] 참고로 미카엘의 어머니는 폴란드 사람이라고 한다.[25]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릴라 수도원의 건립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