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벨 M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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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Lebel Mle 1886
Fusil d'Infanterie Modèle 1886
1886년형 보병 소총
Lebel 86
종류
원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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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르벨 M272.2. R35 카빈
3. VB 총류탄4. 실전과 문제점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5.1. 영화5.2. 게임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프랑스군샤스포, 그라에 뒤이어 19세기말 채용해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사용한 볼트액션 소총.

세계 최초로 무연 화약탄을 사용한 제식 소총이다.[2]
 
 
 
 
 
 
 
 
 
 
 
 
 
 
 
 
 
 
 
 
 
 
 
 
 
 
 
 
 
 
 
 
 
 
 
 
 
 
 
 

2. 역사[편집]

 
 
 
 
 
 
 
 
 
 
 
 
 
 
 
 
 
 
 
 
 
 
 
 
 
 
 
 
 
 
 
 
 
 
 
 
 
 
 
 


1884년, 프랑스의 화학자 폴 베이유(Paul Marie Eugène Vieille)는 알프레드 노벨이 만든 면화약에틸알코올을 가해 에테르화한 최초의 무연화약을 개발하여 B화약(Poudre B)[3]으로 명명한다. 이는 종래의 흑색화약의 약 3배 위력으로 탄환을 발사할 수 있는 데다가, 흑색화약과는 달리 연기가 적어 사격 후 사수의 시야를 가리지 않으며, 사수의 위치를 노출시키지도 않고, 발사기구와 총신 내에 남는 그을음도 흑색화약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 한 물건으로 각 군의 주목을 받게 된다.

1886년 1월, 프랑스의 전쟁성 장관인 장 바티스트 캉페농(Jean Baptiste Campenon) 장군은 이 무연화약을 사용하는 신형 소총을 그해 5월까지 개발하여 군에 보급한다는 지나치게 야심 찬 계획을 수립하고, 개발부서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강요했다. 따라서, 당시 여러 가지 탄종과 각국에서 개발된 여러 형태의 연발총 장전기구를 어느 정도 느긋하게 연구 중이던 병기국에 갑작스러운 개발 독촉이 떨어진 것이다. 따라서 촉박한 시간 덕분에 프랑스 병기국은 당시 육군 사수학교 교장이었던 니콜라 르벨(Nicolas Lebel) 중령이 개발한 탄두에 병기국의 드살뢰(Desaleux) 대위가 개발한 탄피[4]를 합쳐 새롭고 강력한 8mm Lebel탄을 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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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mm 르벨
그리고, 거의 동시에 샤텔레로(Chatellerault) 조병창에서 신형탄에 맞는 신형 소총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촉박한 개발 기간에 맞추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소총을 개발하기보다는 당시 해군 제식 소총이었던 11mm 구경의 크로파첵 소총[5]을 신형탄에 맞게 재설계하는 방향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신형 소총의 개발은 빠르게 진행되어 전쟁성 장관이 요구한 기한 안으로 완료할 수 있게 된다.

이 신형 소총은 'Fusil d'Infanterie Modèle 1886', 프랑스어로 '1886년형 보병 소총'이라는 뜻의 제식명을 받게 되지만 사용 탄환의 개발자 이름을 따라 Lebel Mle 1886, 또는 Lebel 소총으로 불리게 된다.
 
 
 
 
 
 
 
 
 
 
 
 
 
 
 
 
 
 
 
 
 
 
 
 
 
 
 
 
 
 
 
 
 
 
 
 
 
 
 
 

2.1. 르벨 M27[편집]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1924년 개발된 7.5×54mm 프렌치 탄환을 사용하기 위해 일반적인 내장식 박스 탄창을 사용하도록 개량된 르벨 소총. 악성 재고인 르벨 소총들을 활용하기 위해서 개발되었으나 탄을 바꾸는걸 넘어 아예 내부를 뜯어고쳐 다른 총으로 바꾸는 수준이라 총기를 새로 생산하는 수준의 비용이 들었고, 베르티에 소총에 7.5mm 프렌치 탄환을 먹도록 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라 본 군 상층부에 의해서 1500정만 생산되고 생산 중단되었다.
 
 
 
 
 
 
 
 
 
 
 
 
 
 
 
 
 
 
 
 
 
 
 
 
 
 
 
 
 
 
 
 
 
 
 
 
 
 
 
 

2.2. R35 카빈[편집]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계속 악성 재고로 썩고 있던 르벨 M1886을 개조해 포병이나 보급병, 예비군 등에 지급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카빈으로 최후의 르벨 M1886 개량형이다. 카빈이란 특성상 17.7인치, 약 450mm까지 총열을 단축시키고 이에 따라서 8발인 탄창 역시 고작 3발들이만 들어가게 되었다. 전방 병력들은 MAS-36이나 베르티에 소총 등을 지급받았다.
 
 
 
 
 
 
 
 
 
 
 
 
 
 
 
 
 
 
 
 
 
 
 
 
 
 
 
 
 
 
 
 
 
 
 
 
 
 
 
 

3. VB 총류탄[편집]

 
 
 
 
 
 
 
 
 
 
 
 
 
 
 
 
 
 
 
 
 
 
 
 
 
 
 
 
 
 
 
 
 
 
 
 
 
 
 
 
Gewehr-Granate V...
VB
설계자들의 이름 첫글자를 딴 비방-베시에 라는 총류탄 발사기도 존재했으며 점화부터 폭발까지 약 8초가 걸렸다고 한다. 이후 프랑스군의 지원을 받은 미국 원정군도 사용할 수 있도록 스프링필드 M1903이나 M1917 엔필드에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특이하게 공포탄이 아닌 탄두가 달린 일반 탄환을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4. 실전과 문제점[편집]

 
 
 
 
 
 
 
 
 
 
 
 
 
 
 
 
 
 
 
 
 
 
 
 
 
 
 
 
 
 
 
 
 
 
 
 
 
 
 
 
르벨 소총은 등장 당시, 기대되었던 대로 무연 화약의 장점을 그대로 발휘하여 위력과 사거리, 정확도, 신뢰성, 내구성, 운용성 등 모든 면에서 경쟁국이자 적국인 영국과 독일의 흑색화약 소총을 능가하는 성능을 갖고 있었으나, 최초로 개발된 물건인 만큼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주어진 개발기한이 단 5개월이었던 만큼 새로운 설계를 시도할 여유가 전혀 없었기에, 탄은 그라 소총의 탄피를 억지로 8mm 신형 탄두에 맞게 고친 수준이고, 총자체도 사실상 기존의 크로파첵 소총을 신형탄에 맞게 재설계한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무연화약 소총탄의 적용을 제외하면 새로운 요소가 거의 없었고, 1890년대부터 볼트액션 경쟁작들이 하나하나씩 등장하면서 르벨 소총은 빠르게 구식화되기 시작한다.[6]

먼저, 사용탄의 경우 개발당시에는 유일무이한 무연화약 소총탄으로 당연히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지만, 곧 독일의 마우저와 영국의 엔필드에서 이를 능가하는 탄환과 이를 사용할 소총인 7.92mm 마우저게베어 1888, .303 브리티쉬리-엔필드를 개발하게 된다. 그리고 5년 후인 1891년에는 서구권에 비해 기술력이 뒤떨어지는 러시아도 모신나강7.62×54mmR 탄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후발 주자인 7.92mm 마우저와 .303 브리티쉬 탄 등에 비하여 르벨탄은 탄도 특성, 탄도 안정성, 위력이 모두 떨어졌고, 테이퍼 형태에 림이 튀어나온 뒤로 갈수록 심하게 굵어지는 탄피 형태는 나중에 기관총등의 자동 화기 운용에 큰 불편을 초래하게 된다.[7]

두 번째, 탄창의 구조도 문제가 되는데, 마우저 등 대부분의 볼트 액션식 소총이 채용한 장전기구의 바로 밑에 고정식 박스 탄창이 자리 잡는 방식이 아닌, 총신 아래에 튜브식 탄창을 장착한 형태로 채용한 것이 문제가 된다. 개발 당시로서는 꽤 많은 8발이나 장전되는 등,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되었으나 다른 볼트 액션 소총의 장전 방식이 스트리퍼 클립 방식을 주로 쓰면서 장전 속도가 빨라진데 반해, 르벨 소총은 한발 한발 튜브탄창에 탄을 밀어 넣어야 한다. 이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사능력이 구형 단발식에 비해 크게 빨라진 게 아니라는 모순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또 튜브탄창에서 탄을 위쪽 약실로 끌어올리는 송탄장치를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조작 방법이 다른 소총과 비교해서 꽤 까다롭다. 예컨대 볼트를 당기면서 송탄장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급탄 불량이 생기지 않으려면 볼트를 힘껏 당겨야 하고 재장전할 때마다 볼트 조작을 두 번씩[8] 해야 하기 때문에 급박한 상황에서 탄을 다 쏴버린 경우 재장전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상당히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튜브 탄창의 구조 때문에 뾰족한 탄두가 전방의 탄을 찔러 의도치 않은 폭발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있는데, 프랑스 군부도 바보가 아닌지라 탄창 내 유폭 문제는 8mm 르벨 탄의 개량으로 최대한 억제하여 심각한 결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뾰족한 탄두를 장착하면서 뇌관부 둘레로 도넛 모양의 홈을 파 두어 탄창 내에서 뾰족한 쪽이 홈에 막혀 뇌관부로 올라가지 않도록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사고가 간혹 보고되자 1915년 경 뇌관부의 캡을 더 두껍고 볼록하게 변경하여 최종적으로 해결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병사의 손에서 터지기 일쑤인 엽기적인 총이었다면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장기간 사용되었다거나 타국군에 공여되거나 노획하여 사용한 사례, 베르티에 소총의 초기형이 장탄수가 3발밖에 되지 않아 오히려 르벨 소총을 더 선호했다는 기록이 말이 되지 않는다.

전장이 길고 말을 타고 있는 동안에 1발씩 장전해야 하는지라 기병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카빈화가 시도되었지만 간신히 길이를 줄인 시제형만 등장하고 채택이 거부되었다.[9]

세 번째, 타국의 소총들과 달리, 총열 위를 덮는 핸드가드가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장시간 총을 사용할 경우 달아오른 총열에 손이 닿아 화상을 입을 위험이 다른 소총보다 높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이를 보완할 베르티에 계열 소총[10]이 대거 보급되면서 서서히 주력의 자리에서 밀려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년까지 생산이 지속되면서[11] 제1차 세계 대전 내내 준 주력의 자리를 지켰고, 세르비아, 러시아, 벨기에 등에 공여되기도 했다. 한편 제1차 세계 대전 초반에 독일군에게 다량으로 노획되어 후방 부대에 지급되기도 하였다.

종전 후에는 적지 않은 수량이 망실된 데다 신형 베르티에 소총이 이미 대량 보급된 상태였으므로 2선급으로 돌려졌지만, 식민지 유지를 위한 대규모 병력의 무장에 필요한 총기의 수요가 컸고 국방 예산도 축소되었던지라 완전히 퇴역시킬 여건은 아니었기에 후방 부대나 식민지 부대 등에서 지속적으로 운용되었고 전방 부대의 경우에도 총류탄 발사에 사용하게 위해[12] 분대당 1정 정도가 지급되었다.

이후 신형 7.5mm 탄을 사용하는 MAS-36의 보급이 진행되었지만, 대공황의 여파로 도입이 늦어진 데다 도입 자체도 원활하지 못했던 탓에[13] 르벨 소총의 교체는 완전히 진행되지 못하여 제2차 세계 대전때에도 식민지군에서는 상당량이 사용되고 있었다. 또한 2차 대전 말기에는 독일군에 의해 국민돌격대에 지급되기도 했다. 전후에는 잠시 2선급 무기로 쓰이다가 곧 완전히 도태되어 사라졌지만 1979년까지 예장용으로는 사용되었다고 한다. 국외로 반출된 것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용되었는데, 1, 2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베트콩들이 사용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이라크 전쟁 때도 소량이 사용되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간간히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총생산량은 350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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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전에서는 이렇게 마개조 당하기도 하였다.
구한말 레밍턴 롤링블럭을 대체하기 위해 일단 소량 도입하여 운용평가를 하려고 했었으나, 얼마 안 되어 보관 중이던 무기고가 전소된 탓에 엎어졌으며, 차기 주력소총의 자리는 마우저 사의 Gew71 계열의 소총들이 차지하였다.#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 미이라
    초반부 하무납트라에서 프랑스 외인부대와 유목민 군대와의 전투에서 등장한다. 자세히 보면 전투가 진행되면서 르벨 소총의 관형 탄창을 쓰지 않고 한 발씩 약실에 삽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관형탄창 내의 탄을 다 쓰면 다시 장전하는 것보다 한 발씩 삽탄해 사격하는 것이 오히려 지속적인 사격에 나은 르벨 소총의 치명적인 단점을 잘 표현한 것이다. 아무튼 이 느려터진 장전 덕분에 떼거지로 밀려오는 유목민 기병대에게 저지력을 갖추지 못하고 전멸한다. 그런데 시기가 1926년인데 주둔지에 중기관총이나 경기관총 하나 배치하지 않은 것은 의아한 부분.
 
 
 
 
 
 
 
 
 
 
 
 
 
 
 
 
 
 
 
 
 
 
 
 
 
 
 
 
 
 
 
 
 
 
 
 
 
 
 
 
 
 
 
 
 
 
 
 
 
 
 
 
 
 
 
 
 
 
 
 
 
 
 
 
 
 
 
 
 
 
 
 
 
 
 
 
 
 
 
 
  • 배틀필드 1
    정찰병 장비로 등장하며 보병용과 저격용 두 가지 타입이 존재. 8발 다 사격하고 재장전에 돌입하면 8발 장전 후 볼트를 2번 당기는 고증까지 충실하게 재현해놨다.
  • 헌트 쇼다운
    롱 탄약을 사용하는 높은 사거리와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총 장탄 수 말고는 모든 점이 모신나강의 하위 호환인 소총으로 나온다. 이 게임에서도 탄환을 정성스럽게 밀어 넣는 고증이 잘 표현되어 있다.
  • ENTRENCHED
    프랑스 소총수의 기본 소총으로 등장한다.
  • Grave/Digger
    '프린스'란 이름을 가지고 기본으로 주어지며, 기본 소총답지 않게 다른 소총들보다 데미지, 유효사거리등의 스탯이 높다.
  • Squad 44
    6월 작전 업데이트 이후 프랑스군의 소총으로 추가되었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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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첨자V : 국민돌격대가 사용
당시 독일은 고질적인 무기부족, 점령국가의 치안을 이유로 기존의 노획 무기에 새로운 제식명을 붙여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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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관총
※ 윗첨자J/F: 일본/프랑스군으로부터 노획
※ 윗첨자L: 제한적 사용
※ ''기울임체'':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음


 
 
 
 
 
 
 
 
 
 
 
 
 
 
 
 
 
 
 
 
 
 
 
 
 
 
 
 
 
 
 
 
 
 
 
 
 
 
 
 
[1] 탄창에는 8발이 들어가며, 탄약 엘리베이터에 추가로 한 발을 더 장전할 수 있다. 약실에도 장전하면 최대 10발을 장전할 수 있으나, 약실에 탄을 장전한 채로 휴대하면 오발사고의 위험이 있어서(특히나 이 소총은 수동 안전장치가 없어서 약실에 탄을 장전하고 소지하는 행위는 더더욱 위험했다) 안전하게 장전할 수 있는 최대 장탄수는 9발이다.[2] 제식 소총이라는 기준점을 제외하면 다른 총을 들 수 있는데 M1854 로렌츠 라이플이다. 오스트리아의 빌헬름 렝크 폰 볼프스베르크 장군이 면화약을 이용한 카트리지를 도입하려 하였고 고무적인 성과를 냈으나, 1862년과 1865년에 일어났던 폭발사고로 인해 개발이 중단되었고 이후에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배로 유럽에 후장식 총기 개발 붐이 일어나게 되면서 로렌츠 라이플 자체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3] 프랑스어 Poudre Blanche(백색 화약)를 축약한 이름이다. 흑색화약과 대비되는 의미로 백색화약이라 명명한 것. 참고로 무연화약 전반을 일컫는 프랑스어는 Poudre Sans Fumée이다.[4] 기본적으로 그라 소총의 11mm 흑색 화약 탄환의 탄피를 8mm 탄두에 맞게 조금 수정한 것이다[5] 튜브 장전식이며, 프랑스 육군도 흑색화약식 연발총으로서 약간 개량된 모델을 도입하려고 시도 중이었다.[6] 프랑스가 이 소총과 탄약을 채택해서 얻은 소총의 군사적 우위는 길어봐야 3~4년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차라리 시간을 들여서 총기와 탄약을, 아니 탄약만이라도 더 연구했다면 나중에 1차 대전 이후 탄약을 7.5mm로 교체한다고 고생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7] 쇼샤 기관총의 크기만 크고 20발밖에 안 들어가는 반원반형 탄창은 결국 8mm 르벨탄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생겨난 형상이었다.[8] 재장전을 위해 아래로 내린 송탄장치를 제자리로 올리고자 볼트를 살짝 전진시켰다 뒤로 힘껏 당겨주고, 탄을 약실에 넣으려면 다시 한번 볼트 조작을 하거나 직접 약실에 삽탄해 주는 동작이 추가로 필요하다. 그냥 탄 밀어넣고 볼트를 폐쇄하기만 하면 끝나는 다른 소총들에 비해 2~3배 가량 시간을 잡아 먹는다.[9] 다만 1930년대에 R35라는 이름으로 기존 르벨 소총을 짧게 개조한 카빈형이 도입된 바 있다. 이는 후방 비전투 부대에게 지급할 목적으로 기존 총을 재활용한 것이다.[10] 고정식 탄창과 클립장전을 쓰는 비교적 평범한 볼트 액션 소총이나 초기형은 고작 3연발 이었다. 개량형인 Mle 1916부터 5연발로 증가.[11] 다만 충분한 수량이 생산되었다는 판단에 따라 생산라인이 1904년에 닫혔기 때문에 르벨 소총의 대부분은 1886년부터 1904년 사이에 생산되었고, 이후의 생산은 재고 부품을 조립하는 방식으로 1차 대전 기간 동안 20만 정 가량이 생산되었다.[12] 이는 불릿 트랩 방식 총류탄이 가진 특장점 때문이다. 프랑스는 1차 대전 중에 이미 공포탄을 사용할 필요 없이 실탄으로 발사 가능한 총류탄 개발/배치에 성공하였다. 문제는 당시에는 불릿 트랩 장치에 연결된 뇌관 장치의 신뢰성이 그리 높지 않아, 탄의 구경에 비해 에너지가 높은 경우 뇌관을 작동시키는 게 아니라 손상시키므로 불발이 잦았다. 1차 대전 중 미군이 프랑스군의 총류탄을 30-06탄 호환용으로 컨버전한 물건을 개발했으나 이런 문제로 고생했던 적이 있는데, 기존의 8mm 르벨 탄에 비해 7.5mm 프렌치 탄은 구경이 크게 줄어들었으므로 불릿 트랩 방식을 계속 사용할 경우 비슷한 불발 문제에 마주쳤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프랑스군은 이 문제를 굳이 기술적으로 해결하느니, 총류탄 사수에게만 남아도는 르벨 탄약과 총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해결한 것 같다.[13] 1940년 5월까지 보급된 MAS-36은 고작 25만 정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대독 선전포고 이후 생산량을 대폭 늘려 15만 정을 생산한 결과였다. 게다가 기존 베르티에 소총을 신형탄에 맞게 개조한 M1907-15 M34의 수량조차도 6만 3천 정에 불과한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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