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연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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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연방국
Bundesstaat Österreich
오스트리아 연방국 국기
오스트리아 연방국 국장
국기[1]
국장
위치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위치
1934년 5월 1일 ~ 1938년 3월 12일
성립 이전
위치
정치 체제
주요 대통령
주요 총리
독일인
역사
1934년 성립
1938년 나치 독일에 병합
통화
크로네, 실링
 
 
 
 

1. 개요2. 역사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에서 조국전선이 정권을 장악한 후 독재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1934년 헌법을 개정하면서 세워진 정치 체제다. 조국전선은 나치당과는 다른 별개의 파시즘 성향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나치당이 훨씬 더 방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에 갈수록 국내에서 세력을 넓혀가는 나치당 동조자들에 의하여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다가 결국 1938년 나치 독일에 강제로 합병당하고 만다.
 
 
 
 

2. 역사[편집]

 
 
 
 
1932년 정권을 장악한 엥겔베르트 돌푸스가 이끄는 파시즘의 성향을 가진 기독사회당 정권은 1933년 엥겔베르트 돌푸스를 당수로 하는 조국전선으로 집권하게 되고[2] 자국 내에서 점점 세력을 늘리던 나치 지지자들을 견제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1934년 5월에 헌법을 개정하고 오스트리아 연방국을 창설한다. 돌푸스 정권은 헌법 통과 직후부터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나치당을 탄압하는데 온 힘을 쏟았지만 같은 해 7월에 아돌프 히틀러의 사주를 받은 국가사회주의 오스트리아 노동자당[3] 지지자에게 돌푸스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암살 직후 오스트리아 나치당은 군사 반란을 시도했지만 돌푸스를 계승한 신임 총리 쿠르트 슈슈니크가 재빠르게 대처했을 뿐 아니라, 이탈리아 왕국베니토 무솔리니 역시 4개 사단을 오스트리아-이탈리아 국경으로 파견하여 히틀러에게 노골적으로 경고를 하면서 간신히 오스트리아 연방국은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4] 결국 히틀러는 돌푸스의 암살과 군사 반란 시도에 대한 모든 연관성을 부인하고 물러서야만 했다.

이후 슈슈니크 총리는 오스트리아 나치당의 활동을 금지하였지만 히틀러는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와 같은 나치 동조자를 적극 활용하여 오스트리아를 장악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1936년에는 에티오피아 침공으로[5] 주요 국가에게 고립된 무솔리니가 히틀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1936년 11월 1일 독일이탈리아추축국을 선포했다.[6] 슈슈니크는 오스트리아 내 나치당을 사면시키면서 어떻게든 국가는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1938년 슈슈니크가 사퇴하고 잉크바르트가 총리로 임명되면서 오스트리아 나치당이 집권했다. 독일군이 오스트리아에 진군했으며 독일은 오스트리아의 잉크바르트와 협약을 맺어 오스트리아를 병합한다.[7] 오스트리아는 나치당의 감독 아래 독일 합병 의견을 묻는 명목상의 국민 투표를 시행하였고[8] 결과는 97% 찬성이었다.
 
 
 
 

3. 관련 문서[편집]

 
 
 
 

[1] 국장을 뺀 국기도 사용하였다.[2] 당시 오스트리아는 생제르맹 조약으로 인해 산업 역량이 파탄난 상태였고, 대공황의 영향까지 받았다. 돌푸스는 전체주의 독재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무래도 조합주의 체제를 채택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얼마 못 가 암살당했다.[3] 안슐루스를 외치는 등 사실상 NSDAP의 위성정당이었다.[4] 무솔리니가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을 반대한 이유는 돌푸스 치하 오스트리아는 확장주의적인 면모가 없었고, 이탈리아에 우호적인 게 확실했는데 히틀러는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이라 이탈리아 측에선 독일이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었는데 이전부터 히틀러가 범게르만주의적인 발언을 자주한 것도 있어서 무솔리니 입장에서는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이후 쥐트티롤에도 영유권을 주장할 염려를 가질 만 했었다.[5] 이미 영독 해군 조약으로 스트레사 전선은 와해되었지만, 이탈리아는 그래도 명목상 동맹국인 영불이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을 묵인할 것이라고 여겼다. 허나 영불은 제재는 미미해도 이탈리아를 비난하며 갈라선 것은 매한가지였다.[6] 헝가리의 지울라 굄베시가 추축국 설립 안건을 내었다.[7] 만일 이때 오스트리아가 격렬히 저항했다면, 제대로 된 군대가 갖추어지지 않았던 히틀러의 독일은 이때 붕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안슐루스를 위해 진군하는 와중에도 독일군은 매우 지리멸렬했기 때문이다. 허나 오스트리아는 이미 친나치 세력이 집권한 데다 대독일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에 독자적 파시스트인 슈슈니크가 힘을 잃은 이상 저항하려고 하지도 않았다.[8] Ja에 해당하는 영역이 nein 영역보다 몇 배는 크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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