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슈타트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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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슈타트 문화(Hallstatt culture)는 기원전 약 800년경부터 450년경까지 중부유럽(오스트리아·남독일·체코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된 초기 철기시대 문화이다. 청동기 후기의 언필드(우른필드) 문화를 계승하면서 유럽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철기 사용이 확산된 단계에 해당한다.
명칭은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Hallstatt) 지역에서 발견된 대규모 소금 광산 및 유적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지역의 풍부한 암염 자원을 기반으로 한 소금 생산과 교역이 문화의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주류 학설에 따르면 얌나야 문화 계통의 원시 인도유럽인의 후손들이 형성한 문화로 추정되며, 켈트족의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켈트족의 기원이 된다.
집단유전학과 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넓게는 기원전 3400년경에서 기원후 600년경까지 존속된 중부 유럽 문화 집단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얌나야 문화로부터 매듭무늬 토기 문화와 벨 비커 문화 집단, 이후 우네티체-투물루스-우른필드로 이어지는 청동기 문화를 할슈타트 문화와 연속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유럽 최초의 체계적인 철기 문화라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철기 기술 자체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인도유럽계 이주민 집단이었던 히타이트(BC 1600~1200)에서 발명되어 발칸반도를 거쳐 유럽에 전달되는데, 할슈타트는 마침 발칸반도에서 중부 유럽 평야로 건너가는 도나우강 유역에 있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문물을 받아들이고 적용해 중부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명칭은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Hallstatt) 지역에서 발견된 대규모 소금 광산 및 유적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지역의 풍부한 암염 자원을 기반으로 한 소금 생산과 교역이 문화의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주류 학설에 따르면 얌나야 문화 계통의 원시 인도유럽인의 후손들이 형성한 문화로 추정되며, 켈트족의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간 켈트족의 기원이 된다.
집단유전학과 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넓게는 기원전 3400년경에서 기원후 600년경까지 존속된 중부 유럽 문화 집단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얌나야 문화로부터 매듭무늬 토기 문화와 벨 비커 문화 집단, 이후 우네티체-투물루스-우른필드로 이어지는 청동기 문화를 할슈타트 문화와 연속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유럽 최초의 체계적인 철기 문화라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철기 기술 자체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인도유럽계 이주민 집단이었던 히타이트(BC 1600~1200)에서 발명되어 발칸반도를 거쳐 유럽에 전달되는데, 할슈타트는 마침 발칸반도에서 중부 유럽 평야로 건너가는 도나우강 유역에 있었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문물을 받아들이고 적용해 중부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Yamnaya (BC 3300–2600) : 폰틱-카스피안 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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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acomb/Poltavka (BC 2800–2200) : 폰틱-카스피안 스텝
Corded Ware (BC 2900–2300) : 북동부 유럽
Bell Beaker (BC 2800–1800) : 중부 및 서부, 남부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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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etice (BC 2300–1600) : 체코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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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mulus (BC 1600–1200) : 독일 남부-헝가리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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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nfield (BC 1300–750) : 프랑스 남부, 벨기에-네덜란드, 이탈리아 북부까지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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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statt (BC 800–450) : 알프스 북부 도나우 강 유역(오스트리아 중심)
할슈타트 문화도 결국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이주민들로부터 형성된 문화이므로, 얌나야 문화로 대표되는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 남부 의 폰틱-카스피안 대초원 스텝 지역에서 넘어왔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들을 스텝 집단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고인류학적으로 EHG(Eastern Hunter-Gatherers, 동유럽 수렵채집인)를 기반으로 ANE(Ancient North Eurasian, 고대 북유라시아인)가 섞인 집단에, CHG(Caucasian Hunter-Gatherers, 코카서스 수렵채집인)을 통해 농경민의 가축 기술을 도입해, 기원전 3300~2600년 초원지대에서 말을 길들인 최초의 유목 집단을 말한다. [1]
얌나야(Steppe) 집단은 기원전 2900~2800년경 스텝을 떠나 서진하여 유럽에 진입하는데, 이 때 유럽 군데군데 산재해 있던 EEF(Early European Farmers, 초기 인도 농경인) 집단과의 접촉를 통해 농경 기술을 받아들이고 반농반목 문화로 전환하게 된다. 이들은 북동부 유럽의 매듭무늬 토기 문화((Corded Ware), 기원전 2900~2300) 중부 유럽의 벨 비커 문화(Bell Beaker, 기원전 2800~1800)를 형성하게 된다.[2]
할슈타트 문화는 바로 Bell Beaker 문화와 Coded Ware 문화의 경계지역(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청동기가 도입되고 발전하면서 생겨난 문화이다.
기원전 2500년을 전후로 당시 유럽 전역에는 벨 비커 문화와 매듭무늬 토기 문화가 퍼져 있었다. 두 문화의 경계는 지금의 독일 지역으로, 라인강과 도나우강 인근은 각 문화 집단이 섞여서 나타나게 된다.
매듭무늬 토기 문화는 기원전 2900년경부터 유입되어, 기원전 2700년 즈음이면 지금의 네덜란드부터 덴마크, 스웨덴, 북부 독일과 폴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북부 러시아 스텝으로 연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문화 집단은 은 폰틱-카스피안 스텝의 북부 지역으로 뻗어나가면서, 스텝 남부의 카타콤 문화(Catacomb Culture, 기원전 2800~1900)와 활발히 교류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는 더 동쪽으로 나아가 훗날 카자흐스탄 북부의 신타슈타 문화(Sintashta Culture, 기원전 2,200~1,800년)를 이루게 된다.[3]
반면 벨 비커 문화는 기원전 2800년경부터 유입되어 기원전 2500년 즈음이 되었을 때 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중부와 이탈리아 북부에 퍼졌으며, 기원전 2400년 즈음에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기원전 2300년이 되어야 이베리아 반도에 도달한다. 또한 동쪽으로도 다시 라인강과 도나우강 등을 따라 남부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로 점차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인다.
발칸 반도나 카르파티아 산맥 주변, 남부 이탈리아 등지에는 수천년 전부터 Anatolian farmer(아나톨리아 농경민)유입이 많았고, 이에 따라 아나톨리아인 비중이 높은 EEF(Early European Farmers)가 보다 높은 인구밀도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원전 3200년경 다뉴브 강을 따라 헝가리 평원에 진입했던 스텝 집단은, 이들 집단과 섞이며 남하하여 기원전 2400~2000년경에 발칸반도의 그리스 지역에 도달하며, 이들은 훗날 미케네 문명(Mycenaean civilization, 기원전 1600~1100년) 을 이루면서 고대 그리스인의 직접적인 조상이 된다.
할슈타트 문화는 벨 비커 문화와 매듭무늬 토기 문화와 만나는 독일 남부 및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발원하게 된다.
매듭무늬 토기 문화는 기원전 2900년경부터 유입되어, 기원전 2700년 즈음이면 지금의 네덜란드부터 덴마크, 스웨덴, 북부 독일과 폴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북부 러시아 스텝으로 연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문화 집단은 은 폰틱-카스피안 스텝의 북부 지역으로 뻗어나가면서, 스텝 남부의 카타콤 문화(Catacomb Culture, 기원전 2800~1900)와 활발히 교류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는 더 동쪽으로 나아가 훗날 카자흐스탄 북부의 신타슈타 문화(Sintashta Culture, 기원전 2,200~1,800년)를 이루게 된다.[3]
반면 벨 비커 문화는 기원전 2800년경부터 유입되어 기원전 2500년 즈음이 되었을 때 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중부와 이탈리아 북부에 퍼졌으며, 기원전 2400년 즈음에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기원전 2300년이 되어야 이베리아 반도에 도달한다. 또한 동쪽으로도 다시 라인강과 도나우강 등을 따라 남부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로 점차 퍼져나가는 양상을 보인다.
발칸 반도나 카르파티아 산맥 주변, 남부 이탈리아 등지에는 수천년 전부터 Anatolian farmer(아나톨리아 농경민)유입이 많았고, 이에 따라 아나톨리아인 비중이 높은 EEF(Early European Farmers)가 보다 높은 인구밀도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원전 3200년경 다뉴브 강을 따라 헝가리 평원에 진입했던 스텝 집단은, 이들 집단과 섞이며 남하하여 기원전 2400~2000년경에 발칸반도의 그리스 지역에 도달하며, 이들은 훗날 미케네 문명(Mycenaean civilization, 기원전 1600~1100년) 을 이루면서 고대 그리스인의 직접적인 조상이 된다.
할슈타트 문화는 벨 비커 문화와 매듭무늬 토기 문화와 만나는 독일 남부 및 오스트리아 지역에서 발원하게 된다.
벨 비커 문화(기원전 2800~1800년)에 형성된 중부 유럽인들은 도나우강을 따라 독일 남부 지역에 계속 번성하면서 독일 북부의 매듭무늬 토기 문화 집단과 계속 교류하며 섞이고 문화를 발전시키게 된다.
벨 비커 문화와 교류가 많았던 독일 지역의 매듭무늬 토기 문화집단 일부는 체코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청동기를 도입하면서 우네티체 문화(Únětice culture, BC 2300~1600)를 형성한다. 이는 유럽의 최초 청동기 문화인데, 체코 지역을 중심으로 독일 동부와 폴란드 서부까지 퍼지게 된다.
우네티체 문화는 그대로 남서쪽으로 이어져 독일 남부의 투물루스 봉분 문화(Tumulus culture, BC 1600~1200)로 이어진다. 중기 청동기인 투물루스 문화에서 계층 분화에 따른 전사 계층의 귀족화가 이루어진다. 투물루스 문화의 중심지는 도나우강을 따라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헝가리로 이어지고, 영역을 확장하면서 우네치체 문화 지역 대부분을 흡수하게 된다.
기원전 1300년경 후기 청동기 문화인 언필드 문화(Urnfield culture, BC 1300~800)가 이어진다. 언필드 문화의 영역은 동쪽으로는 발칸반도의 카르파티아 산맥과 그리스 북부, 서쪽으로는 프랑스 남부의 옥시타니아와 프로방스지방에까지 이른다. 북쪽으로는 벨기에-네덜란드 지역부터 남부 독일-남부 폴란드 지역까지 확장되고 남쪽으로는 이탈리아 북부를 비롯한 아드리아해 연안으로 확장된다.
언필드 문화는 중요한 분기로, 이 이후에 알프스 북쪽은 할슈타트 문화를 중심으로 켈트족집단이 분기되며, 알프스 이남으로는 이탈릭집단이 분기된다. 물론 켈트족과 이탈리아족의 부족 집단 자체는 벨 비커 문화 후기인 BC 1800년 경부터 분기되고 있었지만, 언필드 문화까지는 두 집단이나 다른 집단들이 서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이 시기 이후로 알프스 이남 이탈리아 반도와 알프스 이북 켈트족이 서로 명확히 다른 문화로 갈라진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점이다.
언필드 문화 시기(BC 1200~800)에 이탈릭집단은 알프스 이남 이탈리아 반도 지역에 진입하고 아드리아해 주변을 걸쳐 발칸반도 서부와 이탈리아 반도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이 집단은 이탈리아 반도의 EEF(Early European Farmers)계열 선주민이었언 에트루리아인과 만나면서 빌라노바 문화(Villanovan culture, BC 900~700)의 도시국가들로 이어지게 된다.[4] 이후 빌라노반 문화 지역에 해당되었던 라치오 라틴족이 로마 왕국을 세우고, 다른 역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언필드 문화 시기(BC 1200~800)에 알프스 이북에 있던 집단은 오스트리아와 남독일 지역을 중심으로 할슈타트 문화(Hallstatt culture, BC 800~450)를 발전시키는데, 이들이 바로 켈트족으로 이어지게 된다.[5]
집단유전학분석에 따르면, 우네티체-투물루스-우른필드 시기를 거치며 집단 전체의 얌나야(Steppe)유전 성분은 평균적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기존 유럽 선주민 농경 집단의 유전적 비율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그 비율은 아래와 같다.
벨 비커 문화와 교류가 많았던 독일 지역의 매듭무늬 토기 문화집단 일부는 체코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청동기를 도입하면서 우네티체 문화(Únětice culture, BC 2300~1600)를 형성한다. 이는 유럽의 최초 청동기 문화인데, 체코 지역을 중심으로 독일 동부와 폴란드 서부까지 퍼지게 된다.
우네티체 문화는 그대로 남서쪽으로 이어져 독일 남부의 투물루스 봉분 문화(Tumulus culture, BC 1600~1200)로 이어진다. 중기 청동기인 투물루스 문화에서 계층 분화에 따른 전사 계층의 귀족화가 이루어진다. 투물루스 문화의 중심지는 도나우강을 따라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헝가리로 이어지고, 영역을 확장하면서 우네치체 문화 지역 대부분을 흡수하게 된다.
기원전 1300년경 후기 청동기 문화인 언필드 문화(Urnfield culture, BC 1300~800)가 이어진다. 언필드 문화의 영역은 동쪽으로는 발칸반도의 카르파티아 산맥과 그리스 북부, 서쪽으로는 프랑스 남부의 옥시타니아와 프로방스지방에까지 이른다. 북쪽으로는 벨기에-네덜란드 지역부터 남부 독일-남부 폴란드 지역까지 확장되고 남쪽으로는 이탈리아 북부를 비롯한 아드리아해 연안으로 확장된다.
언필드 문화는 중요한 분기로, 이 이후에 알프스 북쪽은 할슈타트 문화를 중심으로 켈트족집단이 분기되며, 알프스 이남으로는 이탈릭집단이 분기된다. 물론 켈트족과 이탈리아족의 부족 집단 자체는 벨 비커 문화 후기인 BC 1800년 경부터 분기되고 있었지만, 언필드 문화까지는 두 집단이나 다른 집단들이 서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는데, 이 시기 이후로 알프스 이남 이탈리아 반도와 알프스 이북 켈트족이 서로 명확히 다른 문화로 갈라진다는 것이 중요한 차이점이다.
언필드 문화 시기(BC 1200~800)에 이탈릭집단은 알프스 이남 이탈리아 반도 지역에 진입하고 아드리아해 주변을 걸쳐 발칸반도 서부와 이탈리아 반도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이 집단은 이탈리아 반도의 EEF(Early European Farmers)계열 선주민이었언 에트루리아인과 만나면서 빌라노바 문화(Villanovan culture, BC 900~700)의 도시국가들로 이어지게 된다.[4] 이후 빌라노반 문화 지역에 해당되었던 라치오 라틴족이 로마 왕국을 세우고, 다른 역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언필드 문화 시기(BC 1200~800)에 알프스 이북에 있던 집단은 오스트리아와 남독일 지역을 중심으로 할슈타트 문화(Hallstatt culture, BC 800~450)를 발전시키는데, 이들이 바로 켈트족으로 이어지게 된다.[5]
집단유전학분석에 따르면, 우네티체-투물루스-우른필드 시기를 거치며 집단 전체의 얌나야(Steppe)유전 성분은 평균적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기존 유럽 선주민 농경 집단의 유전적 비율이 조금씩 늘어나는데, 그 비율은 아래와 같다.
- 우네티체 문화 : Steppe(유목): 45~60%, EEF(농경): 30~45%, WHG(수렵): 5~10%
- 투물루스 문화 : Steppe(유목): 40~50%, EEF(농경): 40~50%, WHG(수렵): 5~10%
- 우른필드 문화 : Steppe(유목): 35~45%, EEF(농경): 45~55%, WHG(수렵): 5~10%
- 투물루스 문화 : Steppe(유목): 40~50%, EEF(농경): 40~50%, WHG(수렵): 5~10%
- 우른필드 문화 : Steppe(유목): 35~45%, EEF(농경): 45~55%, WHG(수렵): 5~10%
우네티체 문화까지는 매듭무늬 토기 문화 반농반목 집단의 직계 후손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후 남쪽과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EEF비중이 더 높은 벨 비커 집단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또한 다른 EEF 기층 집단이 계속 유입된 결과로 보인다. 켈트인과 라틴인의 공통 조상집단이라고 볼 수 있는 우른필드 문화에 이르러서는, 유럽 기층 집단의 유전적 기여 비율이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기원전 800년 이후로, 알프스를 북쪽과 남쪽에 형성된 집단의 유전 비율은 아래와 같다. 북쪽 켈트 집단은 스텝 유전자를 그래도 절반 가까이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에트루리아인 같은 보다 많은 토착 농경민 인구가 유입되면서 EEF비중이 더 많이 늘어나게 된다. 즉 라틴계집단이 켈트계집단보다 전반적으로 유목집단보다 농경집단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6]
기원전 800년 이후로, 알프스를 북쪽과 남쪽에 형성된 집단의 유전 비율은 아래와 같다. 북쪽 켈트 집단은 스텝 유전자를 그래도 절반 가까이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에트루리아인 같은 보다 많은 토착 농경민 인구가 유입되면서 EEF비중이 더 많이 늘어나게 된다. 즉 라틴계집단이 켈트계집단보다 전반적으로 유목집단보다 농경집단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6]
- 할슈타트 문화 : Steppe(유목): 40~55%, EEF(농경): 35~50%, WHG(수렵): 5~10%
- 빌라노반 문화 : Steppe(유목): 25~40%, EEF(농경): 45~60%, WHG(수렵): 5~10%
- 빌라노반 문화 : Steppe(유목): 25~40%, EEF(농경): 45~60%, WHG(수렵): 5~10%
언어적으로는 직접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인도유럽어족 켈트어파의 전신인 Proto-Celtic 단계에서 역사적으로 확인 가능한 Celtic 단계로 이행하는 시기로 평가되며, 이후 라텐 문화로 발전하여 유럽 전역으로 켈트 문화가 확산되는 기반이 된다.
켈트인과 할슈타트 문화의 연관성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켈트인의 유래가 할슈타트 문화 이전인지 그 이후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쟁거리인 주제다.[7]
집단유전학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켈트인 유전적 배경은 절반이 얌나야계(Steppe) 유목민, 나머지 절반은 EEF(Early European Farmers, 초기 유럽 농경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체코 지역의 우네티체 문화까지는 스텝 문화의 직계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이후 집단의 문화적-인종적 주류 집단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적 근연성과 연속성을 기반으로 우네티체-투물루스-우른필드를 일련의 연속된 동일 계통 집단으로 보는 학설이 주류이기는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잇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고고학적으로는, 그 이전 우른필드 문화까지는 명확한 역사/언어 증거가 없는 집단이었기에 Proto-Celtic이라고 부르고, 할슈타트 문화 이후에 이르러 비로소 고고학과 역사, 언어학이 연결되면서 명확하게 Celtic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 집단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뭔가 변화했는지, 하나의 계통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것은 아니다.
물론 주류 견해는 기원전 1000년경 중부 유럽의 언필드(우른필드) 문화[8]에서 기원해 유럽 곳곳으로 뻗어나갔다는 주장이다. 켈트인들은 이 언필드(우른필드) 문화로부터 수백년간 서부, 남부 유럽으로 진출해나갔는데, 이게 철기의 도입과 함께 할슈타트 문화의 전래와 겹치면서 완전한 켈트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다.[9] 이 할슈타트 문화는 기원전 450년 나타난 '라텐 문화'[10]로 발전하며 알프스 이북에서 켈트족으로서의 발전을 계속해나간다. 이 것이 바로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으로 20세기 내내 정론으로 여겨졌고 현재까지도 큰 틀에서 여전히 받아들여지는 이론이다.
이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이 등장한 가장 큰 원인은 헤로도토스의 기록 때문이다. 1846년 요한 게오르그 람자우어가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할슈타트에서 독특한 부장품들이 묻힌 고대 묘지를 발굴했다. 헤로도토스는 '다뉴브강 근처에 '켈토이'가 살고 있다'라고 언급했는데, 마침 이 묘지의 연대가 딱 헤로도토스의 시기와 겹쳤던 것이다. 람자우어는 이 묘지가 켈트족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그 근처에서 비슷한 형태의 유물과 무덤들이 속속 발굴됐고, 이 문화권은 처음 묘지가 발견된 마을의 이름을 따 '할슈타트 문화'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1857년에는 스위스에서 '라텐 고고학 유적지'가 발견됐다. 이 곳 역시 초기 켈트족들이 많이 모여살았던 곳이었기에 라텐 유적지 역시 켈트인들의 유산이라고 여겨졌고 19세기, 20세기까지만 해도 이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의 권위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이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에 따르면 켈트족은 알프스산맥 이북에서만 주로 거주하는 민족이었는데, 북이탈리아와 이베리아반도에서 켈트어 비문들이 발견되며 알프스산맥 이남까지도 남하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기 때문. 게다가 이 비문들은 모두 기존의 할슈타트 문화나 라텐 문화에 속하지조차 않았다. 게다가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은 부정확하기로 유명한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만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켈트족'을 특정 민족이나 혈통군으로 보던 기존의 시각 대신 '켈트어군 언어를 쓰는 민족들 전부'로 개념을 확장시켰다. 이 개념을 고수하는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켈트족은 중부 유럽이 아닌 대서양 연안에서 유래했다. 유래 연도도 기존보다 훨씬 빠른 기원전 3000년대로 앞당겨잡았고, 켈트인들이 대서양 연안에 퍼져 살다가 점점 서쪽으로 이주하면서 확산됐다고 주장했다.[11] 대서양 연안이 아닌 프랑스 어딘가에서 처음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대략 기원전 2000년 경에 처음 발생해 기원전 1000년부터 점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주장인데, 이 역시 확실하지는 않다.
집단유전학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켈트인 유전적 배경은 절반이 얌나야계(Steppe) 유목민, 나머지 절반은 EEF(Early European Farmers, 초기 유럽 농경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체코 지역의 우네티체 문화까지는 스텝 문화의 직계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이후 집단의 문화적-인종적 주류 집단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적 근연성과 연속성을 기반으로 우네티체-투물루스-우른필드를 일련의 연속된 동일 계통 집단으로 보는 학설이 주류이기는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잇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고고학적으로는, 그 이전 우른필드 문화까지는 명확한 역사/언어 증거가 없는 집단이었기에 Proto-Celtic이라고 부르고, 할슈타트 문화 이후에 이르러 비로소 고고학과 역사, 언어학이 연결되면서 명확하게 Celtic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 집단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뭔가 변화했는지, 하나의 계통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것은 아니다.
물론 주류 견해는 기원전 1000년경 중부 유럽의 언필드(우른필드) 문화[8]에서 기원해 유럽 곳곳으로 뻗어나갔다는 주장이다. 켈트인들은 이 언필드(우른필드) 문화로부터 수백년간 서부, 남부 유럽으로 진출해나갔는데, 이게 철기의 도입과 함께 할슈타트 문화의 전래와 겹치면서 완전한 켈트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된다.[9] 이 할슈타트 문화는 기원전 450년 나타난 '라텐 문화'[10]로 발전하며 알프스 이북에서 켈트족으로서의 발전을 계속해나간다. 이 것이 바로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으로 20세기 내내 정론으로 여겨졌고 현재까지도 큰 틀에서 여전히 받아들여지는 이론이다.
이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이 등장한 가장 큰 원인은 헤로도토스의 기록 때문이다. 1846년 요한 게오르그 람자우어가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할슈타트에서 독특한 부장품들이 묻힌 고대 묘지를 발굴했다. 헤로도토스는 '다뉴브강 근처에 '켈토이'가 살고 있다'라고 언급했는데, 마침 이 묘지의 연대가 딱 헤로도토스의 시기와 겹쳤던 것이다. 람자우어는 이 묘지가 켈트족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그 근처에서 비슷한 형태의 유물과 무덤들이 속속 발굴됐고, 이 문화권은 처음 묘지가 발견된 마을의 이름을 따 '할슈타트 문화'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1857년에는 스위스에서 '라텐 고고학 유적지'가 발견됐다. 이 곳 역시 초기 켈트족들이 많이 모여살았던 곳이었기에 라텐 유적지 역시 켈트인들의 유산이라고 여겨졌고 19세기, 20세기까지만 해도 이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의 권위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이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에 따르면 켈트족은 알프스산맥 이북에서만 주로 거주하는 민족이었는데, 북이탈리아와 이베리아반도에서 켈트어 비문들이 발견되며 알프스산맥 이남까지도 남하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기 때문. 게다가 이 비문들은 모두 기존의 할슈타트 문화나 라텐 문화에 속하지조차 않았다. 게다가 언필드-할슈타트 이론은 부정확하기로 유명한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만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켈트족'을 특정 민족이나 혈통군으로 보던 기존의 시각 대신 '켈트어군 언어를 쓰는 민족들 전부'로 개념을 확장시켰다. 이 개념을 고수하는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켈트족은 중부 유럽이 아닌 대서양 연안에서 유래했다. 유래 연도도 기존보다 훨씬 빠른 기원전 3000년대로 앞당겨잡았고, 켈트인들이 대서양 연안에 퍼져 살다가 점점 서쪽으로 이주하면서 확산됐다고 주장했다.[11] 대서양 연안이 아닌 프랑스 어딘가에서 처음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대략 기원전 2000년 경에 처음 발생해 기원전 1000년부터 점차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는 주장인데, 이 역시 확실하지는 않다.
유럽 최초의 철기 문화, 엘리트 귀족 사회, 거대한 소금 광산과 광활한 교역 네트워크를 가지고, 언덕 요새를 짓고 전쟁과 방어를 하였다.
할슈타트 소금 광산이 아주 유명하다.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Hallstatt) 지역에 대규모 소금 광산 및 유적이 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채굴을 시작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보존된, 가장 큰 규모의 소금 광산이다. 애초에 할슈타트 문화라는 이름 자체가 이 소금 광산 유적을 따서 지어졌으며, 이 지역의 풍부한 암염 자원을 기반으로 한 소금 생산과 교역이 문화의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Hallstatt) 지역에 대규모 소금 광산 및 유적이 있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채굴을 시작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보존된, 가장 큰 규모의 소금 광산이다. 애초에 할슈타트 문화라는 이름 자체가 이 소금 광산 유적을 따서 지어졌으며, 이 지역의 풍부한 암염 자원을 기반으로 한 소금 생산과 교역이 문화의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사회 구조는 뚜렷한 계층화를 보이며, 특히 엘리트(귀족 또는 족장) 계층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무기, 금 장신구, 수입된 사치품, 그리고 마차 등이 포함된 대형 봉토분(고분)에 매장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 봉토분은 투물루스 문화(기원전 1800~1300), 언필드(우른필드)문화(기원전 1300~1800)으로부터 이어져오는 연속적인 특징이다.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지역은 이미 투물루스 문화(BC 1600~1200)시기에 계층 분화가 일어난 것[12]하고 있으며, 이렇게 발달한 사회 체계가 우른필드 문화 시기에 전유럽으로 이미 정착되어 있던 상태였다.
이러한 엘리트 중심 구조는 이후 켈트 사회의 정치적 기반으로 이어진다. 경제적으로는 소금, 금속, 농산물 등을 매개로 한 장거리 교역 네트워크가 발달하였으며, 그리스 및 에트루리아 등 지중해 세계와의 교류 흔적이 확인된다.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지역은 이미 투물루스 문화(BC 1600~1200)시기에 계층 분화가 일어난 것[12]하고 있으며, 이렇게 발달한 사회 체계가 우른필드 문화 시기에 전유럽으로 이미 정착되어 있던 상태였다.
이러한 엘리트 중심 구조는 이후 켈트 사회의 정치적 기반으로 이어진다. 경제적으로는 소금, 금속, 농산물 등을 매개로 한 장거리 교역 네트워크가 발달하였으며, 그리스 및 에트루리아 등 지중해 세계와의 교류 흔적이 확인된다.
정착 형태는 언덕 위 요새화된 취락(hillfort)이 일반적이다. 전쟁 혹은 방어가 일상적이었던 시대상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유럽 최초의 체계적인 철기 문화라는 점을 꼽는다. 물론 초기 철기 시대인 만큼, 철제 무기와 도구가 점차 확산되지만 청동 또한 병행 사용되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인다.
철기 문화 자체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히타이트(BC 1600~1200)에서 시작된 것으로, 발칸반도의 트라키아인과 일리리아인 집단을 거쳐 할슈타트 지역에까지 도달하는 데 800~400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발칸 반도의 초기 철기 문화(BC1200~900)의 경우에는 철 사용은 있었으나 제한적이고, 지역별로 들쑥날쑥했던 데 반해 할슈타트 문화는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철기를 중심으로한 문화를 건설한다.
이는 당시 부족중심 사회였던 발칸 문화와 다르게, 할슈타트 문화의 배경인 우른필드 문화는 이미 체계적인 사회 구조와 교역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른필드 문화에 철기가 도입되면서, 우른필드의 가장 동쪽 끄트머리였던 오스트리아 지역인 할슈타트가 그대로 힘을 키워 할슈타트 문화를 이루면서 전체 우른필드 문화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할슈타트는 발칸반도에서 중부 유럽 평야로 건너가는 도나우강 유역에 있었기 때문에, 육로나 강을 통한 물자 이동이나 문화, 기술 이동에 있어서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철기 문화 자체는 아나톨리아 반도의 히타이트(BC 1600~1200)에서 시작된 것으로, 발칸반도의 트라키아인과 일리리아인 집단을 거쳐 할슈타트 지역에까지 도달하는 데 800~400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발칸 반도의 초기 철기 문화(BC1200~900)의 경우에는 철 사용은 있었으나 제한적이고, 지역별로 들쑥날쑥했던 데 반해 할슈타트 문화는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철기를 중심으로한 문화를 건설한다.
이는 당시 부족중심 사회였던 발칸 문화와 다르게, 할슈타트 문화의 배경인 우른필드 문화는 이미 체계적인 사회 구조와 교역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른필드 문화에 철기가 도입되면서, 우른필드의 가장 동쪽 끄트머리였던 오스트리아 지역인 할슈타트가 그대로 힘을 키워 할슈타트 문화를 이루면서 전체 우른필드 문화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할슈타트는 발칸반도에서 중부 유럽 평야로 건너가는 도나우강 유역에 있었기 때문에, 육로나 강을 통한 물자 이동이나 문화, 기술 이동에 있어서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1] 원시 인도유럽인의 얌나야 문화에서 기원전 3000년경 전후로 갈라져나온 주요 5개 계통은 현대의 게르만어파, 켈트어파, 이탈리아어파, 발트슬라브어파, 인도이란어파로, 그 직전에 분리되었던 그리스인과의 계통적 거리는 모두 비슷하다. 당연히 5개가 전부는 아니고 수많은 분파가 있었지만, 현대에까지 큰 영향력을 미친 주요 집단을 꼽은 것이다.[2] 전자는 게르만 및 발트슬라브, 인도이란인의 선조 집단이며 후자는 켈트인과 라틴인의 선조 집단이다.[3] 신타슈타 문화는 현재의 카자흐스탄 북부지역에서 동서 전체적으로 퍼진 문화로. 최초로 전차를 발명한 민족이며, 아리아인 및 스키타이인의 직계 조상이 된다. 이들의 후예는 알타이산맥을 만나 천산산맥을 따라 남쪽으로 퍼지면서 천년 뒤에는 인도 북서부까지 진입하게 된다.[4] 이탈리아 북부 포 강 평원, 중서부 라치오 지역, 남부서부 해안 지역 등이다.[5] 그 이전 우른필드 문화까지는 명확한 역사/언어 증거가 없는 집단이었기에 Proto-Celtic이라고 부르고, 할슈타트 문화에 이르러 비로소 고고학과 역사, 언어학이 연결되면서 명확한 Celtic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던 것이지, 집단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뭔가 변화한 것은 아니다.[6] 이 시기 이베리아반도 또한 EEF비중이 더더욱 높아, Steppe 비중은 20~40%에 불과하다.[7] 켈트족이라는 집단이 스텝지역에서 형성된 이후에 넘어왔는가 아닌가, 아니면 일부 스텝 집단이 할슈타트 지역에 넘어온 이후 형성됐는가 차이일 뿐이다.[8] 언필드 문화는 후기 청동기 유럽의 주요 문화들 중 하나로 대략 기원전 1300년부터 기원전 700년까지 번성했다.[9] 발트족과 슬라브족 같은 다른 인도유럽어족 계통 민족들이 중앙아시아나 러시아 남부에서 이주해 온 것과 달리, 켈트족은 유럽의 할슈타트 문화로부터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물론 할슈타트 문화도 결국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이주민들로부터 형성된 문화이므로, 이들 역시 흑해 너머의 러시아 남부나 중앙아시아에서 왔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다만 켈트족이라는 정체성이 형성된 이후에 넘어왔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다.[10] 'La Tène' 문화. 라틴 문화와는 다른 별개의 문화권이다.[11] 켈트인의 절반을 이루는 초기 유럽 농경민민 EEF를 중심으로 한 주장이다.[12] 청동기 시대 봉분과 부장품을 통해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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