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근 수정 시각:

프랑스 공화국
République française
French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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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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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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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국호

프랑스 공화국
République française

수도

파리

상징

국가

라 마르세예즈

국화

아이리스

국조

수탉

국가 코드

FR

표어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자유, 평등, 박애)[1]

자연환경

면적(영토)

551,695km²(프랑스 본토), 643,801km²
(국외령 포함, CIA 조사 기준)

인문환경

인구

66,991,000명(2017년 통계)[2]

공용 언어

프랑스어

종교

없음[3], 또는 세속주의[4]

정치

정치체제

이원집정부제, 단일국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총리

에두아르 필리프

경제

명목 GDP

(전체 GDP) $

GDP (구매력 기준)

2조 7,363억 달러(10위, 2016년 IMF 기준)

GDP (명목 기준)

2조 5,700억 달러(6위, 2017년 IMF 기준)

공식 화폐

유로

ccTLD

.fr

단위

시간대

UTC+01:00

여행경보

여행유의

황색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

여행자제

파리 및 수도권(일드프랑스), 알프마리팀(니스)[5]

대한수교현황

조선국 최초수교 1886년[6]
대한민국 단독수교 1949년

국제연합(UN) 가입

1945년


언어별 명칭

한국어

프랑스 공화국

프랑스어

France (정식 명칭은 République française)

라틴어

Francia (정식 명칭은 Respublica Francica)

영어

France

일본어

フランス

중국어

法国(Fǎguó), 法兰西(Fǎlánxī)

한자 음차

불란서(佛蘭西), 법란서(法蘭西)

러시아어

Франция

스페인어

Francia

독일어

Frankreich

이탈리아어

Francia

네덜란드어

Frankrijk

에스페란토

Francio

그리스어

Γαλλία(갈리아), Γαλλική Δημοκρατία(갈리아 공화국)[7]


1. 개요2. 역사3. 지리
3.1. 행정 구역3.2. 프랑스의 국외 영토3.3. 프랑스의 주요 도시와 명승지
4. 정치
4.1. 선거 제도4.2. 군사
5. 경제6. 사회7. 발전된 학문
7.1. 과학 기술7.2. 인문학7.3. 미술
8. 문화9. 외교
9.1. 미국과의 관계9.2. 영국과의 관계9.3. 독일과의 관계9.4. 러시아와의 관계9.5. 스페인과의 관계9.6. 캐나다와의 관계9.7. 옛 식민지와의 관계9.8. 한국과의 관계9.9. 일본과의 관계9.10. 인도와의 관계
10. 상징
10.1. 국기10.2. 국가
11. 기타
11.1. 기후
12. 창작물 속의 프랑스13. 같이 보기


파일:external/kr.best-wallpaper.net/City-of-Paris-France-Eiffel-Tower_2560x16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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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서양지중해에 맞닿은 서유럽의 본토와 해양에 산재한 여러 국외 영토로 구성된 국가. 국가가 많은 유럽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거대한 나라다. 국가별 국토 면적 순위 문서 참조. 서유럽 국가 중 최대의 면적을 자랑한다. 10개국이 걸쳐 있는 동유럽에 위치한 발칸 반도의 전체 면적보다 더 크며, 남한 영토 5.5배의 크기다.

영국, 독일과 함께 서유럽 3대 강대국 중 하나이며, 유럽 제2~3의 경제 대국이다.[8] 왕정 시절에는 비옥하고 광활한 영토에서 비롯된 생산력과 인구를 바탕으로 프랑크 왕국 때는 동로마 제국과 더불어 유럽 투톱 취급 받았고, 분열 이후 프랑스 왕국 시절에는 신성 로마 제국과 더불어 서유럽 투톱 취급을 받았고, 영국이 18세기부터 대두한 후에는 영국과 세계 각지에서 겨루며 투톱 취급을 받았다. 아닌 게 아니라 프랑스의 인구는 중세 시대부터 1,600만으로 서유럽에서 가장 많았고[9] 17~18세기에는 2,000만을 넘어 2,400만에 육박했으며, 프랑스 제1공화국 때는 2,800만, 프랑스의 최전정기인 프랑스 제1제국 때는 3,000만에 달하여 유럽의 인구대국이었다. 이를 뛰어넘은 유럽 나라는 오로지 제정 러시아 뿐이었다. 그러나 남들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겪을 저출산 문제를 19세기부터 경험한 탓에(...), 오늘날에는 인구에서 독일에 밀린다.

동시기 프랑스와 더불어 18세기 당시 유럽 국가들을 비교하면,

  • 영국은 당시 인구가 1천만을 겨우 넘기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본토의 농업 생산력도 별로였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상업과 공업이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였고, 해외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7년 전쟁 이후에는 완전히 프랑스를 앞서게 된다.

  •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모든 영토와 인구를 끌어모으면 프랑스 이상의 강대국이었지만, 워낙에 넓은 영토 탓에 길어진 국경선을 방어하는 문제, 각 속령별로 통치 조직이 달랐기 때문[10]에 지역별로 이해관계가 상충[11]되는 때가 많아 국력의 효율적 운용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1648년의 베스트팔랜 조약으로 신성로마제국 영방국가들이 "주권"을 인정받고 사실상의 독립국가화 되었기 때문에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로 신성로마제국 전체와 프랑스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애당초 프랑스 왕들도 오랬동안 신성로마제국 황위를 노렸던 상황이고 그것이 프랑스가 30년 전쟁에 개입한 이유중 하나이기도 했다. 신성로마제국도 프랑스를 항상 위협으로 생각했다.

  • 프로이센은 이제 겨우 신성로마제국 내 일개 제후국에서 왕국으로 격상됐고, 인구도 500만 안팎이었다. 참고로 18세기 중반 초에 프리드리히 2세슐레지엔 지역을 먹으면서 인구가 50% 늘었다는데, 그렇게 만들어 준 슐레지엔의 인구는 겨우 100만(...). 물론, 폴란드 분할 등으로 영토와 인구를 끊임없이 늘렸지만 그래도 프랑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후 1세기가 지난 19세기에서야 프로이센이 독일 전역을 통일하고 독일 제국을 세우면서 18세기 프랑스의 인구를 따라잡고, 넘어서게 된다. 프랑스가 보불전쟁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지는 굴욕을 맛본 것은 물론 여러 다른 원인도 있지만 이 시기 프랑스의 인구가 독일에 밀린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 레콘키스타와 신항로 개척으로 강대국에 진입했던 스페인 제국[12] 펠리페 2세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거 로비자금 살포나 레판토 해전, 영국 침공으로 아르마다를 거하게 말아먹었다던가 등등 가지가지 삽질로 1억 두카트[13]에 달하는 부채[14]를 지고, 알람브라 칙령 이래로 제조업과 금융업 기반이 무너진 것+청년층 인구의 신대륙 이민과 대규모 인구 부양에 부적합한 토양[15]등으로 인해 가격 혁명과 상업 혁명의 파도를 넘지 못하면서 1부 리그 최하위로 추락. 루이 14세 즈음에는 프랑스 2중대로 추락했다.그래도 국가 자체가 3등분되서 없어진 동시대의 모 국가보단 낫다. 나폴레옹 전쟁과 아메리카 식민지 상실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열강의 대열에서 이탈했고, 19세기 말 쿠바필리핀을 상실했던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확인 사살까지 당했다.

  • 제정 러시아는 양적인 면에서 프랑스를 능가한 유일한 유럽 국가로 18세기 무렵 인구는 4,000만을 넘었고 이 막대한 인구에서 나오는 거대한 군사력+표트르 대제의 개혁에 힘입어 정치적, 외교적으로 점점 더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인구 대부분이 빈농층에다가, 그나마도 (상대적으로 좁지만 풍요로운 땅에 조밀하게 모여 있던 프랑스에 비해) 엄청나게 넓은 땅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는 것이 함정. 게다가 풍요로운 국토를 가진 프랑스에 비해 러시아는 국토가 척박했고 경제적인 면에서도 심각하게 후진 농업국이라 비교가 불가능했다.

  • 오스만 제국이 당시 인구가 3,000만 정도로 프랑스와 인구 면에서 거의 필적하기는 했는데... 나라가 워낙 쇠퇴일로를 걷다 보니 국가의 역량은 확실한 열세였다는 것이 통설. 프랑스뿐만이 아니라 오스트리아나 러시아를 막기도 버거워한 것이 이 시기의 오스만 제국이다.

  •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영토도 프랑스랑 비슷했고 인구도 1,000만명대를 찍었지만 18세기 이후로 오스만,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나라가 쇠퇴일로를 걷다 보니 국가의 역량은 열세다. 이쪽은 아예 18세기 후반에 나라가 3등분 되어서 멸망한다.

  • 그 외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포르투갈, 교황령, 베네치아 공화국, 나폴리 왕국 등등은 인구가 각각 수 백만 정도에 불과했다.

유럽-대서양-북해-지중해의 중심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고, 인접한 주변 나라들이 영국,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서유럽 네임드 국가들이 많다 보니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한편 전파도 하는 등 문화적 영향력이 크다. 아예 프랑스가 제국주의 정책을 취했던 19세기에는 프랑스 문화가 전세계로 뻗어나갔기 때문에 20세기 이전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라 할 수 있었다.

영국, 미국과 함께 시민 혁명의 발상지이자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프랑스의 국명은 게르만족의 나라인 프랑크 왕국에서 기원했다. 후에 바이킹 지파인 노르만족노르망디에 정착하면서 모국어를 잃어버리고 프랑스인이 되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프랑스인 자체가 고대부터 원래 자리 잡고 있던 갈리아족(켈트족), 카이사르를 필두로 하여 로마 제국에서 올라온 라틴족, 고대 말기에 대규모로 이주해 온 게르만족이 섞여서 이뤄진 민족이며, 이후에도 여러 이민족들이 계속 영역으로 들어왔고, 19세기부터는 남유럽을 비롯하여 동유럽이나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로부터 이민도 엄청나게 받았기 때문에 다민족 국가다.[16]

UN 상임이사국이고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다.

경제적으로 GDP 7위 네이버 GDP IMF 순위 다음 GDP IMF 순위 (다만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6위고 # 네이버,다음 GDP 순위는 2017년 예측 자료인 걸로 보인다. 이는 인도 공화국한테 역전당한 순위인 것이다.), PPP 10위, 특별인출권 유로화, 국제통화기금 투표권 6위 영어위키백과 IMF Voting power, 1인당 GDP 25위 , 보유고 5위 영어위키백과 Officially reported holdings

군사적으로 GFP 평가 5위, 국방비 7위 # (다만 연합뉴스 기사에서는 8위라고한다 #) , 핵무기 ICBM 기술 SLBM 보유국 #, # , # , 무기 수출은 4위를 하고 있다 매일경제 , 경향신문

2. 역사[편집]


고대 프랑스는 갈리아의 일부였으며, 로마 제국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정복당한 후 로마의 일부로서 충실히 기능하였다. 근대에는 프랑스 혁명으로 유명한 나라이며,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영국과 함께 근대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유럽사의 중심 국가이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프랑스는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와 총리와 권력을 같이 공유하는 이원집정부제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데이것이 바로 진정한 듀얼코어 이는 대통령에게 기껏 강력한 권한을 주니 뒷통수 제대로 얻어맞은 제2공화정과 독재자를 막으려고 의원 내각제로 했더니 맨날 지지고 볶고 싸우며 깽판친 제3, 4공화정의 교훈을 얻어 혼합 짬뽕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3. 지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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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행정 구역[편집]

  • 본토

지방

중심 도시

알자스

스트라스부르

바랭

오랭

아키텐

보르도

도르도뉴

지롱드

랑드

로트에가론

피레네아틀란티크

오베르뉴

클레르몽페랑

알리에

오트루아르

캉탈

퓌드돔

바스노르망디

망슈

오른

칼바도스

부르고뉴

디종

니에브르

손에루아르

코트도르

브르타뉴

모르비앙

일에빌렌

코트다르모르

피니스테르

상트르

오를레앙

루아레

루아르에셰르

셰르

앵드르

앵드르에루아르

외르에루아르

샹파뉴아르덴

샬롱앙샹파뉴

마른

아르덴

오브

오트마른

코르스

아작시오

오트코르스

코르스뒤쉬드

프랑슈콩테

브장송

오트손

쥐라

테리투아르드벨포르

오트노르망디

루앙

센마리팀

외르

일드프랑스

파리

발두아즈

발드마른

센생드니

센에마른

에손

오드센

이블린

파리

랑그도크루시용

몽펠리에

가르

로제르

에로

오드

피레네조리앙탈

리무쟁

리모주

오트비엔

코레즈

크뢰즈

로렌

메스

모젤

뫼르트에모젤

뫼즈

보주

미디피레네

툴루즈

로트

아리에주

아베롱

오트가론

오트피레네

제르

타른

타른에가론

노르파드칼레

노르

파드칼레

페이드라루아르

낭트

루아르아틀랑티크

마옌

멘에루아르

뱅데

사르트

피카르디

아미앵

우아즈

푸아투샤랑트

푸아티에

되세브르

비엔

샤랑트

샤랑트마리팀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마르세유

바르

보클뤼즈

부슈뒤론

알프드오트프로방스

알프마리팀

오트잘프

론알프

리옹

드롬

루아르

사부아

아르데슈

오트사부아

이제르

  • 해외령


프랑스 본토는 22개의 레지옹(région, 지방)[17]으로 나뉘며, 레지옹은 다시 데파르트망(départements, 주),[18] 아롱디스망(arrondissements), 캉통(canton), 코뮌(commune) 등으로 나뉜다. 해외 영토로는 과들루프, 레위니옹, 마르티니크, 프랑스령 기아나, 마요트 등 5개의 국외 레지옹, 5개의 국외 공동체(생피에르 미클롱 등), 누벨칼레도니 특별공동체, 프랑스령 남부와 남극 지역, 그리고 프랑스령의 무인도인 클리퍼턴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3.2. 프랑스의 국외 영토[편집]

프랑스의 영토는 프랑스 본토가 대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세계 지도를 둘러보면 여기저기서 '프랑스령', '(프)'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래는 이러한 프랑스의 국외 영토의 목록이다.

  • 국외 레지옹 : 이 5개 레지옹(지방)은 그 자체로 데파르트망(주)도 된다. 프랑스의 모든 데파르트망은 2개의 아라비아 숫자로 된 번호를 부여받는데, 예외가 7개 있다. 코르시카의 2개의 데파르트망이 2A와 2B의 번호를 가지고 있고, 아래 5개는 3자리 수로 된 번호(아래 나온 순서대로 각각 971, 972, 973, 974, 976)를 부여받는다. 975가 왜 없냐 하면 생피에르미클롱이 번호 975를 부여받다가 더 이상 데파르트망이 아니게 되어서다.

  • 해외 공동체

  • 특별 공동체 및 기타 : 국외 레지옹, 국외 공동체, 특별 공동체의 법적인 명칭'은' 서로 다르다.


위와 같이 전 세계 여기저기에 있는 프랑스 영토 덕분에, 프랑스는 우크라이나보다 큰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영토가 유럽에만 있는 나라 중 가장 큰 나라이므로,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는 러시아이고, 그 다음이 프랑스가 되는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프랑스의 배타적 경제수역(EEZ)(1,169.1만km2)의 면적은 세계1위[20]로 영토가 프랑스보다 25배 이상 큰 러시아(756.6만km2)의 1.45배에 달한다. 프랑스의 면적은 전 세계 육지 면적의 1/230 정도인데 EEZ 면적은 전 세계 EEZ 면적의 1/12 정도다. 제국주의 시대에 여기저기 찜해 놓은 국외영토 덕분.

3.3. 프랑스의 주요 도시와 명승지[편집]

4. 정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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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71점

2012년, 세계 22위 #

언론자유지수

20.60

2013년, 세계 37위 #




영국, 미국 등과 더불어 서방 민주주의의 본진국이다.

세계 최초로 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에서 민주정으로 이행한 근대 국가답게, 자유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그리고 정치적 망명객들은 대부분 빠리로 망명한다. 그 탓에 7~80년대 내내 파리는 아수라장 폭탄 테러와 총기난사 등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당시는 이란 혁명 등 꽤 뒤숭숭한 나라들이 많았고, 파리로 도망간 망명자들을 없앤답시고 새 정부들이 파리 한복판에서 암살전을 벌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실전으로 다져진 프랑스의 특수부대인 GIGN의 테러 진압 실력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프랑스는 대표적인 이원집정부제국가인데[22]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과 의회가 추천한 총리가 정부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구조다. 만약 여소야대일 경우 총리가 대부분의 권한을 다 가져가고 대통령은 내정에 대한 실권을 잃어버린다.[23]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흔치 않은 사례이고 대부분은 대통령이 다 해 먹는다. 이는 사실 선거제도를 통해 인위적으로 유도되는 측면이 있는데 대선 후 불과 1달 남짓 후에 총선을 치르기 때문에 총선은 소위 허니문 선거가 되어 대선을 승리한 당이 총선에서도 매우 유리할 수밖에 없다.

여기도 대한민국처럼 대통령의 권력이 매우 강한 편이다. 일단 법에서 보장된 권한은 총리 임명권[24], 각료 임명권, 법률안 재심의권, 법률 공포권, 하원해산권[25], 국군통수권, 사면권, 긴급조치권, 국민투표 부의권 등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프랑스 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프랑스 상원과 프랑스 국민 의회가 있다. 상원은 간접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6년으로 3년마다 반수를 새로 선출한다.[26] 국민의회는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투표시 소선거구제와 결선투표제가 적용된다. 우선권은 국회에 있으며, 상원은 자문기관에 가깝다.

2017년 5월 신생 정당인 앙 마르슈!에마뉘엘 마크롱이 2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헌법재판소와 같은 위치로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있다. 또, 여성권익부라는 부서도 있다.#

4.1. 선거 제도[편집]

프랑스는 각각 대한민국처럼 대통령 선거, 총선거(국회의원), 지방 선거가 존재한다. 이들 선거들은 모두 보통, 비밀, 자유선거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에는 결선투표제라는 투표제도 있다. 이는 샤를 드 골이 4공화국을 무너뜨리면서 도입했다. 일반적으로 1차 선거에서 한 후보의 득표율이 과반을 넘기지 못 하면 상위 2명의 후보로 압축되어 다시 한 번 2차 결선 투표에서 승패를 가리는 제도이다. 이는 어느 한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된다거나 항상 거대양당만 표를 가져가는 것을 막고, 유권자들의 표가 사표가 되는 걸 방지하면서, 원치 않는 후보가 당선되는 걸 막아주는 등,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선거 제도로 평가 받고 있다.

그와는 별개로 선거를 한 번 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린다. UTC -3인 생피에르 미클롱프랑스령 기아나가 오전 8시에 투표를 시작 하고, UTC 0인 런던 대사관에서 그 다음 날 오후 7시가 될 때 투표가 종료된다. 이렇게 했을 때 투표에 걸리는 시간만 근 32시간(...) 역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4.2. 군사[편집]


프랑스의 핵개발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자세한 사항은 핵무기 문서를 참조.

무기 규격에서는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데, NATO 통합군에서 탈퇴[27]한 이래로 NATO 규격이 아닌 프랑스 독자 규격을 이어오고 있으며, 자주국방, 자체생산 비율이 매우 높다.

한국전쟁에도 UN군으로 참전했으며, 한국전쟁 참전 외국군 중 사상률 1위를 기록했다. 지지대 고개 전투가 유명하다. 그래서 프랑스 UN군 참전 기념비는 현재 경기도 수원시의 지지대 고개 고갯마루 부근에 위치해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나, 현재는 담을 쌓고 문을 달아 프랑스 전몰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만 개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신형 전투기 도입 사업인 FX사업 입찰 때 다쏘사의 라팔을 팔기 위해 프랑스가 정부 차원에서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미국 보잉F-15K에 좌절되었다.

그래도 찾아보면 한국에서 쓰고 있는 프랑스 무기가 제법 많은데, 주로 미국에서 어떤 무기를 사려고 했는데 미국이 이를 거부하면 프랑스가 비슷한 무기 체계를 판매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엑조세 미사일이나 미스트랄 미사일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이유로 제3세계권이나 이스라엘, 대만 등이 적지 않은 프랑스 무기를 사갔다.

5. 경제[편집]

6. 사회[편집]

6.1. 프랑스인[편집]

6.2. 교육제도[편집]

6.3. 종교[편집]

프랑스는 1905년 정교 분리 이래로 프랑스는 ‘의식의 자유’를 의미하는 ‘라이시테(Laïcité)’의 가치를 사상적, 정치적 이념으로 숭상하게 되면서 국교가 없으며, 철저한 수준을 넘어 강경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정교분리를 추구하는 세속국가이다. 이를테면 독일이나 미국 등 일반적인 서방국가의 정교분리는 국가가 특정 교단을 편들어주지 않는 개념인데 프랑스의 정교분리는 공적인 장에서 종교를 철저하게 배제하자는 개념이다. 독일에서는 기민련 등 종교정당이 원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는 ‘교회의 맏딸’이라고 불릴 만큼 가톨릭의 전통이 깊어, 지금도 약 58% 인구가 가톨릭 신자이다.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가 된 기원은 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 1세가 496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성직자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지를 받아 프랑크 왕국을 탄생시킨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클로비스의 개종은 로마 가톨릭에 기초한 유럽 탄생의 단초가 됐다.

프랑스에서 가톨릭은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종교 뿐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이뤄왔다. 특히 교육과 행정은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러한 상황 등으로 인하여 프랑스가 '교회의 맏딸'이라 불리는 것은, 바로 프랑스가 로마 제국에 이어 공식적으로 가톨릭 국가가 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프랑스 가톨릭교회와 인연이 깊은데,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흘린 피 위에 세워졌으며 파리 외방전교회의 한국 선교 역사는 곧 한국 가톨릭의 역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파리외방전교회는 교황청 포교성성(現 인류복음화성) 선교 지침에 따라 아시아 선교를 목적으로 교구 사제들로 결성된 프랑스 최초의 외방전교회다.

한국 가톨릭교회와 파리 외방전교회의 인연은 미사성사를 집전할 사제가 필요했던 조선의 신자들이 1811년과 1827년 2차례에 걸쳐 교황청에 편지를 보낸 것으로 시작된다. 프랑스 남서부의 가톨릭 성지 루르드의 '무염시태[28] 성당'에는 선교사들이 서해의 거친 풍랑을 헤치고 무사히 조선 땅에 도착한 것을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하는 감사비(碑)가 새겨져 있다. 이 감사비는 1876년 무염시태 성당 축성식 때 성당 벽돌판에 새긴 것으로, 성모 마리아한국 가톨릭주보성인(主保聖人.수호성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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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성(聖) 모방 나 베드로 신부, 성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29] 주교, 성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 푸르티에 신 요한 신부, 프티니콜라 박 미카엘 신부, 성 오매트르 오 베드로 신부, 성 도리 김 헨리코 신부, 성 베르뇌 장 시메온[30] 주교, 성 다블뤼 안 안토니오[31] 주교, 성 위앵 민 루카 신부, 성 볼리외 서 루도비코 신부, 성 브르트니에르 백 유스토 신부.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고, 나머지 주교들과 신부들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서울 새남터와 충남 보령시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1831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을 북경교구에서 분리하여 조선대목구를 설정한 이래, 파리 외방전교회가 조선 천주교회의 사목을 맡았다.[32] 파리 외방전교회는 지금까지 한국에 173명의 선교사를 파견했고, 그 중 14명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파리 외방전교회는 170여 명의 순교자를 배출했는데 이들 중 12명이 한국에서 순교했고, 그 가운데 앵베르 주교를 비롯한 10명의 순교자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때 시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 103위 순교성인 항목 참조.

파리 외방전교회 프랑스인 선교사들은 초대 조선대목구장부터 1942년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가 제10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되기까지 약 110년 간 9대에 걸쳐 조선대목구장직을 승계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와 제2대 교구장 무세 주교, 천주교 대전교구 초대 교구장 아드리앙 조셉 라리보 주교, 천주교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도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또한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된 프랑스인 신부들은 예수성심시녀회, 성가소비녀회 등의 수녀회도 창설했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방인(邦人) 사제, 즉 한국인 가톨릭 사제 양성에도 힘썼다. 성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 성 모방 나 베드로 신부 등은 3명의 조선 소년을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이 세 소년이 바로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2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 그리고 최방제[33] 프란치스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프랑스의 많은 교구수도회에는 성소자(聖召者)[34]가 급격히 감소했다. 프랑스의 수도자 수는 40% 이상 줄었다. 같은 기간 프랑스의 사제와 신학생도 3분의 1이 줄었다. 짧은 기간에 엄청난 수가 감소한 것이다.

이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일부 수도회는 다른 대륙, 특히 아프리카아시아로 눈길을 돌려 콩고, 필리핀, 한국, 베트남, 인도 공화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성소자를 대거 계발했다. 현재 45세 미만의 수도자 가운데 절반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왔다. 2012년을 기준으로 양성 중인 여성 수도자(수녀) 490명 가운데 310명이, 남성 수도자(수사) 392명 가운데 140명이 외국인이다.

다만 프랑스가 가톨릭 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가톨릭에서 시성까지 된 루이 9세 성왕(聖王) 등도 있지만, 프랑스의 통치자들은 대체로 자국 교회를 '교황에게 충성하는 조직'이 아니라 '프랑스에게 충성하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물론 안 그런 서유럽 국가가 어디 있겠냐만은, 일찍부터 강력한 중앙정부를 갖춘 프랑스는 이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졌다.

아비뇽 유수중세 가톨릭 세계를 흔들어본 사례가 있고, 30년 전쟁 때는 합스부르크를 엿먹이기 위해서 개신교 편에서 싸우는 등 (가톨릭 입장에서는) 희대의 트롤러로 활약했다. 부르봉 왕조를 개막한 앙리 4세 역시도 정치적 이유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이라 교회와의 관계가 여러 모로 미묘했고, 프랑스 대혁명이 당시에도 앙시앵 레짐의 주요 세력인 성직자들이 '교황 말고 정부에게 충성하라'는 강요를 받으며 쓸려나간 적이 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이 들어서 프랑스에 공화정이 확립된 이후로는 왕당파/반공화파의 주요 세력인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는데, 오늘날 프랑스의 라이시테도 이 때 확립된 것이다.

한때 위그노를 중심으로 개신교 신자도 상당수가 있었으나, 갖은 박해로 지금은 그 수가 많지 않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무슬림 인구 비율(약 8~10%)이 높은 편이다. 프랑스의 무슬림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출신이 70% 이상이다. 출신국별로는 알제리 35%, 모로코 25%, 튀니지 10% 등이며 이들은 주로 파리, 릴, 리옹, 마르세유 등 대도시의 외곽에 집단을 이뤄 살고 있다. 현재 이슬람교가톨릭 다음으로 프랑스 제2의 종교로 부상하였다. 세속주의와 사이가 좋지 못한 이슬람교의 부상은 프랑스의 라이시테 원칙과 큰 충돌을 빚고 있다.

6.4. 교통[편집]

SNCF유럽에서 둘째 가는 큰 철도회사로, 전국에 고속철도망을 싹 깔아서 국내선 항공편과 장거리 버스 교통을 떡실신시킨 곳이며, TGVKTX의 원 모델이다.

프랑스에는 대서양지중해를 연결하는 운하가 있다. 남으로 지중해, 북으로 대서양에 면한 점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지만, 완성되고 보니 그다지 빠르지도 않고 운하의 깊이가 깊지 않아 항해할 수 있는 배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철도 건설 붐을 맞아 화물운송으로서는 망했다. 그러나 풍광이 아름답고 만들어진 지 수 백년이 지나 주변 환경에 녹아든 덕에 레저나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400만원이면 요트를 하루 임대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민간 항공사로는 스카이팀 창립 멤버인 에어 프랑스가 있다. 이외에도 세계 전역(…)에 아직도 남아 있는 프랑스령 섬들을 연결하는 항공사도 많다.

6.5. 이민[편집]

프랑스는 예로부터 상당한 이민대국이였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 내내 지속된 프랑스의 비정상적인 출산율 감소는 필연적으로 노동력의 부족을 불러왔고, 제3공화정은 이를 동유럽남유럽 등지에서의 이민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 노동인구의 10~15% 정도를 이민자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이민을 받기만 했지 가지를 않았다는건 굉장히 영국과 차별화되는 부분.

2000년대 들어와서 자유, 평등, 박애라는 모토가 무색할 정도로 중동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연일 이슈화되고 있다. 라이시테로 인해 종교적인 상징을 외부에 내보이는 것에 굉장히 민감한 나라이며, 2004년에는 공립학교에서의 히잡 착용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는가 하면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고기로만 요리하는 패스트푸드점이 테러범들이 모일 소지가 있다며 단속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며 독일덴마크, 네덜란드아랍이민자의 비율이 높은 유럽 연합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톨레랑스의 대명사라고 하는 프랑스가 이러한 풍조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특유의 완고함과 기존 문화와의 충돌과 동화되지 못하는 현상, 그리고 그들 중 일부(또는 이들을 추종하는) 이슬람 과격파들이 보이는 심각한 인권 침해와 민주주의 부정 문제 때문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문제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일부 무슬림들의 자국 문화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으며,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프랑스가 아예 이슬람을 차별하려는 것은 아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장관 시절 여러 인종차별적 언행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대통령 임기 중에는 차드에서 몇몇 프랑스인들이 저지른 병크[35]에 차드 대통령에게 먼저 연락하여 사과한 다음에 관련자들을 처벌하기도 하고, 프랑스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외치는 일부 꼴통들을 추방한 것도 고작 몇 백 명 수준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슬람권이 가진 막대한 자원과 시장성, 인구 때문이다.

허나 이슬람교에 대한 반감과 높은 출산율로 인한 무슬림 증가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민전선 같은 인종차별적인 집단이 서서히 등장하면서 지방의회 당선자를 내는 등 힘을 키워가고, 비록 좌파의 분열이 크게 작용했지만 인종차별주의자인 장 마리 르 펜이 2004년 대통령 선거 2위에 올라 결선투표를 치르는 등 결코 좌시하기 힘든 상황이다. 참고로 프랑스 종교의 구성비를 보면, 가톨릭이 국민의 48%로 절반 정도이며, 이슬람교가 6%이 뒤를 잇는다. 개신교는 2%로 미비.

6.6. 복지[편집]

위쪽의 북유럽 국가들과 비교 하면 조금 묻히긴 하지만 프랑스 역시 세계적인 복지국가 중 하나이다. 물론 복지 제도가 매우 잘 되어 있는 만큼, 엄청나게 세금을 걷고 있다.

일단 프랑스가 자랑하는 복지 제도의 정수이자 세계 복지 제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알로카시옹'이 있다. 그 종류와 수혜 대상이 다양하며 크게 가족수당, 주거 보조금, 장애인 보조금, 실업수당으로 나눌 수 있다. 외국인도 차별받지 않고 지원받을 수 있으니, 프랑스에 장기간 체류할 예정이라면 자신이 혜택 받을 수 있는 알로카시옹에 대해서 알아보고 가는 것도 좋다. #
그리고 받는 만큼 세금으로 다 걷어간다[36]

7. 발전된 학문[편집]

7.1. 과학 기술[편집]

주사기, 자전거, 네온사인, 열기구, 공기압 타이어, 증기 자동차, 질량보존의 법칙 등 인류사에 굵직한 발명발견이 많았던 나라인만큼 지금도 명실상부한 과학대국이다.

FX 사업 당시 프랑스를 악의적으로 묘사한 엉터리 낚시글인 "프랑스의 역대 사기 행각 전설"의 영향으로 프랑스의 과학 기술에 대해 대단히 저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의 과학 기술을 까는 아래와 같은 유머도 있을 정도.

세계 초강대국의 3대 필수요소미국 기술, 영국 문화, 프랑스 요리, 스위스 의료 이다. 그러나 캐나다는 다른 3대 필수요소를 받아들여 초강대국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미국 의료, 영국 요리, 스위스 문화, 그리고 프랑스 기술이다.


국민성 유머 문서 中


하지만 정작 프랑스는 세계 순위권에 들어갈 정도과학기술이 발전한 나라이다.

프랑스는 전투기를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전투기의 엔진부터 동체, 레이더, 항공 무장까지 모든 부품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프랑스를 제외하면 이러한 기술력을 가진 국가는 미국, 러시아 정도가 있다.[37] 이 덕분에 프랑스는 전투기 해외 수출 시 정치적인 태클[38]에서 자유로웠고, 냉전당시 미국에는 F시리즈, 소련에는 MiG & 수호이가 있었다면 제3세계에는 미라지가 있다고 할 정도로 비단 내수뿐만 아니라 수출시장에서도 성공했다. 다쏘, 스네크마등의 기업을 보유한 나라이다.

보잉의 유일한 적수인 에어버스도 본사와 R&D, 최종 조립 라인이 프랑스에 있으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안정성을 자랑하는 상업용 발사체인 아리안 로켓, KTX의 근간이 되는 TGV 역시도 프랑스 제품이다.

자국어에 대한 긍지가 높아 한때 과학 기술 용어까지 프랑스어로 따로 만들어 사용한 흑역사가 있다. 아직도 그 영향이 남아 있어 자기 동네에서만 노는 경향이 강하다. 수학 같은 경우는 아예 프랑스어로만 논문을 발표하여 다른 나라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울며 겨자 먹기로 공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건축이나 토목공학은 세계 최고를 다툰다.

다만 미국의 애플,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소니, 한국의 삼성 같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없다보니, 명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은 라이벌인 영국,독일에 밀리지만, 대신 수학의 경우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이고, 기타 학문 분야 역시도 고루 발전되어 있다. 물리학, 화학 등단 단독 연구가 많은데에서도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었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천재의 개인플레이가 아닌 수많은 과학자들이 동원된 프로젝트에서 노벨상을 시상하고 있어서 노벨 물리학상노벨 화학상 등의 수상 소식이 상당히 뜸해진 편이라고 한다. 현 그랑제콜 제도로는 대규모 인력 배출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가 과학 기술 교육 전반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을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참고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그랑제콜 출신이 아닌 일반대학 출신 대통령이다.

7.2. 인문학[편집]

인문학으로 따지면 세계최고 국가 중의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바로 옆에 본좌 독일이 있고, 영국이탈리아도 만만치 않다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 알베르 카뮈 등 대문호들과 데카르트, 몽테스키외, 장 자크 루소, 볼테르, 오귀스트 콩트, 앙리 베르그송, 장 폴 사르트르, 질 들뢰즈,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철학자, 사회학자들이 프랑스 출신이다. 또한 자크 데리다 같이 구 프랑스 식민지의 저명한 지식인들이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아직도 인문학에서는 프랑스어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기초과학의 경우에도 어떤 기준으로 봐도 세계 5강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나라이다.

인문학, 철학 같은 분야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널리퍼진 이론이 한참 지나서야 프랑스 국내에서 재조명된다든지 하는 일이 흔하다.학문적 갈라파고스화 또한프랑스만의 독창적인 철학적 사조가 자주 형성된다. 특히 프랑스 철학자들은 유난히 자기만의 독창적 철학용어(물론 프랑스어)를 만들어내길 좋아한다.

실제로 많은 논문들, 특히 인문학프랑스어로 된 원본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대부분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원본을 봐야 하는 상황에는 프랑스어를 전공해야 한다. 어찌 보면 세계적으로 프랑스어 학습률을 꾸준하게 해준다

7.3. 미술[편집]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인상주의 이전까진 유럽 강대국을 주축으로 미술의 흐름이 흘러갔다. 그 중 프랑스가 집중을 받았던 시기는 르네상스, 바로크 이후 추상미술의 시조라 볼 수 있는 인상주의시기부터였으며, 당대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미술을 하기 위해 파리로 향하던 사람이 많은 걸 알 수 있다.

인상주의의 르누아르, 모네, 까미유 피사로, 마네, 폴 고갱[39] 뿐만 아니라 이후 피카소[40], 마르셀 뒤샹 등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되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오르세 박물관은 파리 관광의 필수적인 코스로 여겨지고 위 유명작가들의 그림은 언제나 사람이 북적하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고 인류역사 이래 최고 강대국인 어느 나라로 미술의 중심이 옮겨진 현 상황을 보면..

8. 문화[편집]


프랑스는 소프트파워에 있어서도 전통적으로도 가장 강대한 국가 중 하나였다. 사실상 우리가 유럽 문화라고 지칭하는 것의 많은 부분은 프랑스의 문화였거나 그에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 많다. 프랑스 문화는 근세 이래 세계 각국의 지식인들의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영국의 국력이 정점에 이르렀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도 프랑스에 문화 컴플렉스가 있을 정도였다.

2번의 세계 대전을 겪고 난 후에는 과거의 명성에 비해서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지만 아직도 캐나다나 과거 프랑스 식민지국에서 과거 프랑스 문화의 자취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프랑스인들도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도 미국에서도 최고의 고급문화의 이미지는 프랑스 문화다.

9. 외교[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French_heritage.png

영미권에서는 프랑스인들을 가리키며 'Frog-eating surrendering monkeys'라고 했는데 프랑스가 이라크 전쟁 참전을 거부한 이후 주로 보수주의 언론들에 의해 프랑스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자주 쓰였다[41]

9.1. 미국과의 관계[편집]

파일:external/www.oldmagazinearticles.com/French-American_Relations_588.jpg

서방세계의 핵심에 속하는 국가로서 미국의 최우방국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이념/경제/정치적 이유로 유럽 국가들 중 미국과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프랑스와 미국 간 갈등의 근원은 양국의 '보편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42] 프랑스-미국 양국은 모두 보편주의적 원칙 수호자이며 동시에 전파자라는 일종의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다.

당대 최강의 제국이었던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통해 독립을 이룬 미국은 이후 멕시코 팽창 전쟁, 일본중국과의 무역 개시 그리고 쿠바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분으로 치러진 1898년 전쟁은 모두 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혹은 미개한 지역을 문명화시킨다는 당위의식에서 비롯된다. 선교사, 무역업자 그리고 정치인 이들 모두는 어디서든 평등과 자유라는 기치를 높이 세우고 위대한 미국인의 사명에 동참해야 한다는 신념을 굳게 믿고 있었다.

미국이 해방자인민해방군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은 미국 대통령의 연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해밀턴(Hamilton)이자는 대통령 한 적 없다부터 시작해서 제퍼슨(Jefferson), 트루먼(Truman), 케네디(Kennedy), 클린턴(Clinton) 그리고 부시(Bush)(...)에 이르기까지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일궈낸 가치가 자국에만 국한된 가치일 수 없는 보편적인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혁명정신 파급의 선두에 선 프랑스는 미국과 유사한 보편주의적 원칙 수호자이면서 전파자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 국민의회가 1790년 5월 모든 침략전쟁 포기를 선언했으나 2년 후인 1792년부터는 구체제하의 보수적인 왕정 체제의 유럽을 대상으로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벨기에(Belgium), 싸부아(Savoy), 니스(Nice), 스피어(Spier), 보름스(Worms), 마인츠(Mainz). 그리고 마침내 프랑크푸르트(Frankfurt)가 프랑스 혁명군에 승복하게 되었다. 새로운 정치체제의 선구자임을 자처하면서 프랑스는 구체제로부터 억압받고 있던 국가들을 해방시키는 사명을 완수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가들은 주권이 절대 군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원칙이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적용 가능해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보편주의를 지향하였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프랑스와 미국의 보편주의는 자유라는 핵심적인 기치를 공유할지언정, 세부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보편주의의 해석의 차이가 프랑스-미국 갈등의 본원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경제 영역에서도 양국은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일단 경제의 기본을 이루는 사상의 차이가 크다. 작은 정부, 연방주의로 대표되는 지방 자치, 시장의 자유, 경쟁을 중시하는 영미권 모델의 대표격인 미국과 관대한 사회 보장, 파리 중심의 강력한 행정부로 상징되는 중앙 집권주의, 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개입, 사회주의 우호 성향의 프랑스의 차이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프랑스는 미국 중심의 경제 패권에도 불만이 많고 소위 '경제 애국주의'로 불리는 사상과 가장 빈번하게 충돌하는 것도 미국이다. 단적인 예시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에너지 종합 기업인 알스톰을 미국의 GE가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일반 국민부터 정치권까지 가릴 것 없이 극렬 반발했다. 심지어 여론조사 결과 외국 기업에 팔아넘기느니 일시적으로 국유화하자는 여론이 대세였을 지경. 또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거대 은행인 BNP 파리바가 미국 당국이 금지한 수단 공화국, 이란 등과 거래했다는 혐의로 8조의 크고 아름다운 벌금을 물게 되자, 또 프랑스 정치권에서 극렬 반발하며 아예 달러 중심의 경제 패권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 농업계의 요구를 받아 농산물 시장 개방을 압박하는 미국 때문에 농업 분야에서 통상 분쟁도 상당한 편이다.

여기에 문화의 영역에서도 프랑스와 미국은 자주 다툰다. 주지하다시피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패권은 쇠퇴하고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된다.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영어가 세계공용어가 되기 이전에 그 자리는 프랑스어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후 미국이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에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수많은 문화를 수출하며 세계적인 문화 패권을 공고히 하자 여기에 가장 크게 반발한 것도 프랑스였다. 우루과이 협상이 진행되던 1986-1993년, ‘문화예외성(exception culturelle)’ 또는 프랑스적 예외성(exception française)을 내세워 미국식 문화 세계화에 저항하여 자유무역체제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한 저항의 선두에 섰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프랑스는 여전히 스크린 쿼터제를 꿋꿋이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국이 스크린 쿼터제 철폐 반대 운동 당시 이를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지도자의 외교정책 방향성을 논할 때 "골리스트(드골주의자)냐 대서양주의자냐"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구분은 프랑스의 외교 정책 설정에 있어서 미국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랑스와 미국의 대결 양상은 미국이 프랑스를 균등한 동반자로 인식하지 않고 미국(이익)만을 위한 동반자 구축으로 보여 질 때 두드러진다. 하지만 미국과 프랑스의 대결 양상은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프랑스와 미국, 양국 모두 국제무대에서 그 어떤 나라도 대신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자신이 수행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대결양상이 초래된 것이다.

9.2. 영국과의 관계[편집]

영국과는 예전부터 라이벌 관계였다. 식민지 진출할 때도 영국의 종단 정책과 프랑스의 횡단 정책이 충돌했던 때도 있고,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때도 반프랑스 연합군을 이끌었던 국가 중 하나기도 했다.

9.3. 독일과의 관계[편집]

영불관계만큼 부각은 안되지만, 사실 역사상으로만 따지고보면 영국보다도 더 치열하게 치고박은 원수 지간. 공군도 없던 시절, 바다 건너 영국보다는 바로 옆의 독일과 더 치고 박았을 것은 당연지사. 1871년부터 1945년까지 70여년 동안만 무려 싸웠다. 아예 보불전쟁 이후로 1세기 넘게 프랑스의 외교 목표가 독일 발목잡기였을 정도. 하지만 2차대전 후로는 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되어서 오늘날에는 EU를 이끄는 쌍두마차이다.

9.4. 러시아와의 관계[편집]

러시아와는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한 관계이고 적대적인 관계였다. 19세기에 나폴레옹은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군했지만, 맹렬한 추위로 인해 결국 러시아에 졌다.[43] 그리고 유로마이단이후,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합병하자 러시아 제재를 했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은 러시아 제재는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대적인 관계와는 별개로 러시아도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프랑스어가 러시아에서 중요하게 쓰이기도 했다. 특히 표트르 대제가 유럽식 제도를 받아들이는 등의 개혁을 할때부터 러시아의 귀족들은 외국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자주 썼다.[44]

대선에서 마크롱과 대결했던 마린 르 펜친러성향이고 프랑수와 피용도 친러성향이다.

2017년 5월 29일에 마크롱과 푸틴은 정상회담을 가졌고 북한 핵문제에 대해선 공조를 같이 한다고 합의했지만, 시리아 문제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는 이견을 나타냈다.#

9.5. 스페인과의 관계[편집]

스페인과는 역사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지금도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자 교류도 활발하다.

9.6. 캐나다와의 관계[편집]

캐나다와는 의외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프랑코포니에도 가입되어 있다. 그리고 프랑스는 예전에 캐나다의 동부지역을 식민지배한 적이 있었지만, 이후 영국과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잃어버렸다. 하지만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고 프랑스어는 영어와 함께 캐나다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일부 프랑스인들도 캐나다에 이주하는 경우도 있다.

9.7. 옛 식민지와의 관계[편집]

프랑스의 옛 식민지들은 프랑스어를 계속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 중 대다수가 프랑코포니(Francophonie)라는 프랑스어권 국가들의 모임에 가입해있다. 다만 알제리에서는 프랑스어가 상당히 쓰이는데도 정치적인 이유로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반대로 베트남에서 이제 프랑스어는 사실상 사장된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가입했다.

2000년 초반에는 코트디부아르아프리카의 여러 프랑스어권 나라들에서 반프랑스 시위가 벌어지고, 성조기를 흔들어대며 "프랑스의 무능력에 질렸으니 차라리 미군이 오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프랑스어권 국가들에서는 프랑스인들이 경제적, 외교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가졌기에 반프랑스 경향은 프랑스의 고민거리이다.

비교적 평화적으로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주고 떳떳하게 식민지 제국을 해체한 영국과 달리[45][46]프랑스는 식민지 지역에서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전쟁 등 식민지 전쟁까지 벌여가며 전쟁으로 다 죽어나가고 나서야 식민지였던 나라들을 독립시켰다. 베트남에서의 병크도 있고 알제리에서도 끝까지 있으려고 온갖 기를 다 썼다. 이 때문에 2차대전이후로 가장 끔찍한 전쟁이 벌어져 100만명의 알제리인이 프랑스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하는 엄청난 비극이 벌어지기도하였다. 자세한건 구글에 algeria france war 를 검색해보자. 프랑스군에 의해 벌어진 각종 전쟁범죄의 충격적인 사진들이 널려 있다.[47]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에는 자치권과 프랑스와 동등한 지위를 요구하는 알제리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15,000명~45,000명이 사망했다(세티프 대학살). 국제사회의 비난이 날아오자 "예? 알제리는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일부라니까요"라고 주장하여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는지, 세네갈, 시리아, 튀니지, 지부티, 모로코, 베냉, 기니, 콩고 공화국, 가봉 등 나머지 옛 프랑스령 식민지 국가들은 무력 투쟁 없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마요트, 레위니옹, 프랑스령 기아나, 카리브 해의 몇몇 프랑스 영토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생피에르 미클롱 등 여전히 다른 나라에 제법 많은 식민지를 두고 있다. 영어 위키백과의 관련설명 참조. 식민지(정식 명칭은 국외령) 전체 인구는 대략 200만 명. 프랑스가 현재 보유한 국외 영토의 위치는 이 지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식민지에서는 독립운동이 약간씩이나마 존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예 프랑스에 동화되어 이제는 독립 의지가 별로 없는 상태다. 남태평양의 식민지인 프랑스령 폴리네시아(=타히티)에 가면,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원주민 밖에 없는 이국의 섬에서 전통음악을 연주하며 춤추는 여인들이 꽃목걸이를 걸어주면서 "Bienvenue~"라고 하는 인사말을 듣는 괴상한 체험도 가능하다. 저 섬에는 까르푸도 있다. 다른 데서는 적어도 공항에서 인사말은 원주민어로 해준다.

9.8. 한국과의 관계[편집]

프랑스는 한국이 최초로 접촉한 서구 열강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 후기 프랑스군이 침공해 병인양요가 일어나기도 했다. 과거에는 독일과 더불어 주요 유학 국가이기도 했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프랑스 문화는 한국에서 인기가 높으며, 프랑스에서도 한류가 조금씩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은 아직 부족하지만, 마냥 후진국 취급만 받던 과거보다는 확실히 나아지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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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8일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에펠탑에 특별 장식을 한 모습. 또 강남스타일을 비롯한 한국 노래 공연도 했다. # 참고로 해당 영상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프랑스인이 올렸으며, 댓글들도 훈훈함 그 자체다.

프랑스는 북한을 승인하지 않는 나라로 미국, 일본, 대만과 더불어 북한을 공식적으로 적국으로 규정하여 외교 관계도 없다. 북한의 각종 도발 만행 시 프랑스의 비난 성명이 빠르게 튀어나올 정도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의 가격권에는 프랑스령 누벨칼레도니가 들어가기도 한다.

9.9. 일본과의 관계[편집]

불일관계 참조.

9.10. 인도와의 관계[편집]

프랑스도 19세기에 인도지배를 놓고 영국과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패하고 푸두체리만 차지하게 되었다. 푸두체리는 프랑스의 영향으로 프랑스어가 쓰이고 게다가 문맹률은 낮은 편이다. 그리고 프랑스에도 일부 인도계가 거주하고 있고 의외로 관계가 좋은 편이기도 한다.

10. 상징[편집]

프랑스의 상징은 갈리아(Coq gaulois)[48]으로 불리는 국조(國鳥)인 수탉과 마리안느(Marianne)이다. 그래서 프랑스 축구협회의 상징이 수탉이고 정부의 비공식 마스코트는 마리안느.

마리안느는 자유, 평등, 박애, 그러니까 프랑스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인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그 여신, 프랑스 유로화 동전의 그 여자, 프랑스 우표의 그 여자가 바로 마리안느이다.

프랑스 정부 홈페이지에도 마리안느가 들어가 있다.

10.1. 국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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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기(Le drapeau tricolore)라고도 불리며 기본적으로 파랑, 하양, 빨강의 3색으로 이루어졌다. 3색이 각각 자유, 평등, 연대[49]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후에 덧붙인 설정이고, 삼색기가 고안된 이유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파리의 상징색은 파랑과 빨강이었고, 하양은 부르봉 왕조를 상징하는 색이었다. 즉 파리 시민에 의해 포위된 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삼색기의 기원이며, 자유, 평등, 연대와는 무관하다.

1794년에 처음 해군 깃발(pavillon)로 채택되었다. 그 당시에는 파랑과 빨강이 반대로 위치했으나 선박의 꼭대기에 달았을 시 파란색이 바깥쪽에 있기에 멀리서 보면 파란색이 하늘이나 바다색과 비슷하여 잘 인식되지 않고 빨간색과 하얀색만 보이기에 어느 국가인지 알 수 없어서 현재의 상태로 바뀌었다. 이후 1810년에 국기(drapeau)로 지정되었다.

이 삼색 형태의 국기는 이탈리아, 아일랜드 공화국유럽과 일부 아프리카 국가[50]에도 영향을 주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자유 프랑스와 비시 정부의 프랑스가 각각 하얀색 중앙에 국토를 수복하는 로렌 십자와 전통적인 십자가와 7개의 노란 오각별 무늬를 집어넣기도 하였다. 프랑스 영화인 '삼색'은 프랑스 국기의 3색을 본 따 자유, 평등, 연대라는 색깔별 시리즈를 내놓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도 프랑스풍에 관련된 것은 대부분 이 삼색기가 들어가기도 한다.

10.2. 국가[편집]

라 마르세예즈국가이자 군가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의용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만들어진 까닭에 매우 호전적인 곧 달려들 것만 같은 가사가 특징이다.

11. 기타[편집]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예다가 프랑스에 망명을 허가받아 난민으로 거주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예다 항목이나 양심적 병역거부 항목 참조.

11.1. 기후[편집]

온대 기후 지역으로 해양성·대륙성·지중해성 기후가 모두 나타난다. 대부분 지역이 해양성 기후이나 최남부 지방은 지중해성 기후이다.

12. 창작물 속의 프랑스[편집]

(문서 추가 바람)

13. 같이 보기[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Flag_of_Europe.svg.png
유럽연합의 회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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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프랑스

핀란드

헝가리

*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부속 규정에 의거하여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을 시작하며, 2년이 경과한 2019년 3월 29일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27개 회원국들 중 단 하나의 회원국이라도 협상의 시한 연장을 거부할 경우, 협상의 진행 상황과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는 자동으로 상실된다.
*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다만 영국 정부가 희망하면 유예기간 내에도 탈퇴는 가능하다.




[1] 프랑스발음으로 '리베흐떼' , '에갈리떼' , '프하떼흐니떼' 라고 부른다. 이표어를 형제애로 번역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이 아닌 혁명 동지들에 대한 우애의 표현이었다는 것이 근거.[2] 본토 인구가 6,485만 명이고 국외 영토 인구가 210만이다.[3] (정교분리 국가) 가톨릭 약 50%(개신교는 5% 미만), 이슬람교 10% 가량[4] 공공기관에서 종교 행위가 제한되는 등 세속주의가 강제된다는 의견도 있다.[5] http://www.0404.go.kr/dev/country_view.mofa?idx=248 [6] 이때부터 한국에서 가톨릭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자세한 건 한불관계, 가톨릭/대한민국 등 참조.[7] 그리스어로는 프랑스어도 Γαλλική γλώσσα(갈리키 글로싸), 즉 갈리아어다.[8] 독일이 사실상 인구빨로 1등먹고 영국과 프랑스는 엎치락 뒤치락 한다.[9] 프랑크 제국 시절에도 인구가 525만으로 제국 내에서 가장 많아 1300만이었던 프랑크 제국 인구의 50% 가까이를 차지했다.[10] 각 지역마다 의회를 두고 수도 빈의 거리 차이에 따라 황제의 사자 내지 총독을 파견해 다스리는 방식이었다. 그 중에서도 황제에 대한 반항이 가장 심했던 건 보헤미아헝가리였다. 골치 아프게도 역설적으로 국력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지역도, 후술된 이유로 보헤미아와 헝가리였다.[11] 특히, 전술된 각주대로 헝가리와 보헤미아가 가장 반항이 심했는데,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왕조오스트리아 지역을 장악한 시절보다 먼저 중앙-동유럽 남부에서 맹위를 떨쳤던 강대국이었다. 게다가 중세 이후로 현대 크로아티아,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일대에서 피지배 민족 취급하며 다스리던 귀족주의적 프라이드도 강했다. 따라서, 자긍심과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던 헝가리 귀족들은 결혼+운빨로 영토를 늘린 합스부르크 왕조를 고깝게 여겨 크던 작던 건수마다 반항적이었다. 한편, 보헤미아는 상공업과 학술의 중심지인지라 급진적인 성향이 강해 반골기질이 심했는데, 후스 전쟁의 원인이었던 얀 후스가 당시 프라하 대학 교수였고, 30년 전쟁의 원인인 프라하 창문 투척 사건 모두 이 지역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터졌다. 이것만 봐도 보헤미안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고, 열강 중에서는 비교적 산업화가 늦었던 오헝제국 중에서 그나마 체코 지방이 스코다를 비롯한 공업화의 선두였으며, 먼 훗날 냉전 당시에 프라하의 봄이 터진 것도 아무런 바탕 없이 터진 게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다.[12] 하지만 이때의 스페인은 인구가 700만~800만으로 프랑스보다 열세였다.[13] 1두카트=3.5g짜리 순금 화폐. 현재 금 시세로 따지면 대략 16조원 정도의 부채액이다.[14] 당시 스페인 GNP의 170%였다고 한다.[15] 스페인 인구는 17~18세기까지도 2,000만을 훨씬 밑돌았으며, 그나마 이것도 현대 벨기에의 모태인 스페인령 저지대, 이탈리아 반도 내 스페인 왕실 속령까지 합친거였고, 이베리아 반도 자체로 보면 1770년대에 돼서야 천만 선을 넘었다.[16] 프랑스 헌법에 인종 구분을 엄금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하지만 2015년 현재 전임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나 2015년 현재 프랑스 대통령프랑수아 올랑드가 각각 헝가리, 네덜란드 이민자 출신인 것만 봐도, 프랑스의 인종적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17]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급의 분류[18] 한국의 1개 도에 해당[19] 케르겔렌 제도, 크로제 제도, 아델리 랜드 등을 포함한다. 거주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으나 이 곳에서 영원히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이 세종과학기지처럼 파견나가 거주하는 구조라 공식적으로는 무인도 취급이다.[20] 2위는 미국으로 EEZ 면적은 1,135.1만km2[21] 보드게임 카르카손의 모티브가 된 명승지[22] 97대선 이전 김종필DJP연합당시에 내건 조건으로 이러한 형태의 정치 체제 개편을 요구했으나 뒷통수 맞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대선전으로 결국 흐지부지 되었다.[23] 1980년대 까지는 항상 여당이 총리를 배출해 이러한 문제가 없었으나 1986년에 진보 성향의 여당이었던 사회당이 야당한테 털리고 1997년엔 자크 시라크가 분위기 반전용으로 의회를 해산해 조기 총선을 치뤘다가 반대로 보수 성향의 여당이 털리고... 결국 2000년도에 여야의 합의에 의해 본래 임기였던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원의원의 임기도 똑같이 5년), 국민투표에서도 통과된 이후 이러한 경우는 다시 나오지 않고 있다.[24] 다만 의회가 거부하거나 의회가 씹고 다른 사람으로 추천하면 그냥 그 사람으로 임명해야 한다.[25] 다만 상원은 해산시킬수 없다.[26] 원래는 9년이었는데 2004년도에 6년으로 낮췄다.[27] 1966년 통합군에서는 탈퇴하였지만 NATO 준회원국 지위는 유지했다. 프랑스의 핵개발로 인해 미국과 마찰이 일어난 게 원인. 1990년대에 정회원국으로 재가입했고, 1995년 NATO 군사위원회에 재가입했으며, 2009년 4월에 NATO 통합군에 재가입했다.[28]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라는 뜻[29]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2대 교구장[30]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4대 교구장[31]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5대 교구장[32] 이전까지는 북경교구의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와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가 조선 천주교회의 사목을 맡았다. 주 신부는 1801년 신유박해순교했고, 유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가 조선을 맡게 됨에 따라 중국으로 돌아갔다.[33] 마카오 유학 도중 병으로 죽었다. 친형인 최형 베드로는 한국 103위 순교성인 중 하나.[34] 사제수도자를 지망하는 사람. 성소(聖召)란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뜻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성소는 사제, 수도자, 결혼생활, 독신생활, 기타 삶의 양식과 직업 모두를 가리킨다.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성소'란, 사제나 수도자로서의 부르심을 의미한다.[35] 차드로 선교봉사가서 깽판치거나, 차드 아이들을 납치 수준으로 데려와 입양시키려다가 걸려서 추방당하고 차드에서 반프랑스 시위가 벌어지며 난리가 난 바 있다.[36] 소득세도 소득세지만, 주민세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주민세는 소득 여부와는 관계가 없어서(물론 소득과 비례하긴 한다) 무소득자인 학생들도 납부해야 한다. 즉, 알로 받아봤자 주민세로 다 나갈 수도 있다(...)[37] 일본이나 독일의 경우 기초기술력은 우수하지만 레이더라던지 엔진을 독자개발하기에는 노하우가 부족하다. 물론 상업성이 확실치 않아서 투자를 안하는 것이지만. 영국은 항공기용 레이더나 엔진제조 기술 자체는 탁월난 편이나 독자적으로 개발&생산하자니 상황이 따라주지 못해서 공동개발을 하고 있다. 중국은 자체 생산을 계속 해 오고는 있으나, 레이더나 엔진은 저열한 기술력 때문에 국산의 신뢰도가 낮아서 다른 나라에서 불법복제수입하고 있다.[38] '너님들 엔진 만들 기술 없어서 우리 엔진 사다 쓰면서, 그 엔진 단 전투기로 우리 전투기를 꺾고 수출 따내겠다는 거임?' or '우린 그 나라랑 사이 안 좋음. 한국 부품 들어간 전투기를 그 나라에 팔아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셔'. 이스라엘의 크피르 전투기가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다. 크피르는 미국제 엔진을 사용했기에, 미국의 엔진 수출 허가가 나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었다.[39] 이후 타히티로 옮겨, 작품 출품 시만 파리 방문[40] 프랑스 출신은 아니나 프랑스에서 작품활동을 함[41] "항복이나 하는 개구리 먹는 원숭이들"이라 불리우는 이유는 이라크 전쟁뿐만이 아니다. 1870년대 초의 보불전쟁으로 부터 시작하여 2차 세계 대전에서 1달 만에 독일에 항복하고 미국의 원조가 있었음에도 후진국이자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에게 패하는 등의 추태를 보임에 따라... 다만 1차 세계 대전의 경우는 조금 다른데, 1차 대전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의 가장 큰 공헌자는 피해로 보나 전과로 보나 프랑스였다. 영국도 많이 죽어나가긴 했지만 프랑스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었고, 미국은 너무 늦은 시점에 참전했다. 괜히 포슈 원수가 연합군의 첫 총사령관이 된 게 아니다.[42] 이하 서술은 대부분 프랑스-미국 관계 : 대결 양상 연구, 박선희, 한국프랑스학논집 제86집을 참고하였음.[43] 사실 이 말도 어폐가 있는 게 알다시피 추위는 국적을 차별하지 않는다. 게다가 당연히 나폴레옹도 러시아의 겨울을 피해 쳐들어갔다. 실제로 서유럽권에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할 경우, 자주 추위 탓을 하는데 이는 자존심 문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는 프랑스가 점령한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광대한 영토를 보유한 나라이다. 이에 따르는 지나치게 긴 보급선, 예상보다 강한 러시아군의 저항에 부딪혀 그냥 전쟁에서 진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군은 개전 초기 모스크바만 점령하면 러시아가 항복할 거라는 장밋빛 환상을 품었으나, 누구와 비슷한 착각근데 이 때 수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인데....러시아가 이를 거부하고 결사항전 의지를 보이자 재빨리 철군을 결정했다. 추위는 퇴각 과정에서 사상자를 늘리는 역할 정도만 했다.[44] 예카테리나 2세때 러시아 궁정의 공식언어가 프랑스어였을 정도였다.[45] 물론 영국이 착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애초에 착했으면 타국을 식민지로 삼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제1,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국력이 예전만 못해지고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식민지 유지가 어려워지자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독립을 인정해준 것 뿐이었다.[46] 그렇다고 영국도 학살이 없던 건 아니다.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였던 나라들에서도 프랑스 이상으로 악랄하게 착취하고 식민지에서 일어나던 독립운동들을 억압하여 많은 식민지 사람들이 죽어갔다.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부활절 봉기,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같은 독립운동들이 일어나며 독립운동 세력들에 대한 영국군의 토벌로 잔악한 학살이 벌어졌고, 인도만 해도 1919년 암리차르 시에서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완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인도 시민들에게 영국군이 소총과 기관총을 발포해 수많은 인도 시민들이 사망하기도 했었고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 말기에 벌어진 벵골 대기근으로 수백여만명이 죽은 책임도 영국에 있다. 케냐 역시 1950년대 마우마우 봉기등 케냐에서 일어나던 식민지 독립운동을 영국 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해 민간인, 식민지 독립운동군들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데로 살상하거나 고문하기까지 했었다.[47] 예를 들면 프랑스군이 알제리 여성을 성폭행하고 죽이고 웃는 사진이나 알제리 사람들을 무참히 참수하고 사체를 토막내는 잔혹한 사진도 있다.[48] 라틴어로 Gallus는 수탉, Galus는 갈리아를 의미해서 갈리아를 통치했던 로마 지배층이 갈리아를 닭으로 지칭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49] 많은 사람들이 박애라고 알고있으나 사실 이는 오역이고 연대가 더 적절한 번역이다. 자세한 것은 박애 항목을 참조[50] 차드, 코트디부아르, 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