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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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우 유럽연합 탈퇴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였으며 이에 따라 2017년 3월 29일 탈퇴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했다.
* 부속 규정에 의거하여 영국은 유럽연합과의 탈퇴 협상을 시작하며, 2년이 경과한 2019년 3월 29일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럽연합에 가입한 27개 회원국들 중 단 하나의 회원국이라도 협상의 시한 연장을 거부할 경우, 협상의 진행 상황과 타결 여부와 무관하게 2019년 3월 29일부로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 지위는 자동으로 상실된다.
* 탈퇴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은 영국의 유럽연합 회원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다만 영국 정부가 희망하면 유예기간 내에도 탈퇴는 가능하다.

파일:external/media.web.britannica.com/62381-004-B4928181.jpg

외스터라이히 공화국
Republik Österreich[1]

파일:오스트리아 국기.png
[2]

국기

파일:오스트리아 국장.png

국장

면적

83,871㎢[3]

인구

8,744,435명(2018년)

수도

(비엔나)

GDP

3740억 5587만 달러(2015년, 세계은행)

공용어

독일어

지역어

슬로베니아어, 세르보크로아트어, 헝가리어

종교 분포

기독교 67.3%
(가톨릭 57.9%, 정교회 6%, 개신교 3.4%)
, 이슬람 8%(2017)

정부 형태

연방제, 의원 내각제

대통령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Alexander Van der Bellen)

총리

제바스티안 쿠르츠(Sebastian Kurz)[4]

임기

2017년 12월 18일 ~

국제연합(UN) 가입

1955년

화폐단위

유로 (€)[5]


1. 개요2. 언어3. 역사4. 행정 구역5. 사회6. 정치7. 경제8. 군사9. 문화10. 외교 관계
10.1. 독일과의 관계10.2. 터키와의 관계10.3. 러시아와의 관계10.4. 헝가리와의 관계10.5. 이탈리아와의 관계10.6. 미국과의 관계10.7. 한국과의 관계
11. 오스트리아 국적, 출신의 캐릭터

1. 개요[편집]

Fotopedia에서 오스트리아 사진 감상하기

중앙유럽 독일의 남동쪽, 정확하게는 독일 바이에른 주의 동남쪽에 위치한 나라. 수도는 영어 명칭 비엔나(Vienna)로 알려진 (Wien). 국토면적 약 84,000㎢, 인구는 약 859만 명(2017).

오스트리아에서는 자국을 독일어로 '동쪽의 나라'를 뜻하는 외스터하이히(Österreich)라 부른다.[6] 동국(東國) 조선? 오스트리아(Austria)는 이를 라틴어화한 명칭이다. 한자로는 음차하여 오지리(墺地利)라 쓰는데, 현재의 한국에서는 이런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7] 그러나 첫글자 墺(물가 오)자는 지금도 꽤 많이 사용된다. 윗 동네에선 여전히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국가는 1946년에 지정된 산의 나라, 강의 나라다.

나라는 다르지만 민족언어에서 독일과 동질적이며,[8] 역사적으로 독일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고, 스페인,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심지어 폴란드이탈리아 등의 웬만한 유럽 국가들의 역사에 모두 한 다리 걸치고 있어 엄청나게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이를테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현재도 8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서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과 이웃하고 있다.

나라가 작아서 낙농업과 관광업으로 먹고 산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실은 철강과 기계공업이 기반 산업이고,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오스트리아 산업의 10% 이내로 작다[9]. 농업과 임산 비율은 2%.

알프스 산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숲의 나라이자[10] 영세중립국.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요제프 하이든, 프란츠 슈베르트를 비롯한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고전음악가들의 주활동무대였던 음악의 나라이자, 현대언어철학의 이정표를 세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현대물리학의 격전장이었던 비엔나 써클과 논술에도 출제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아르누보의 주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근대 건축의 선구자 오토 바그너, 미술사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에른스트 곰브리치, 심리학의 시작을 알린 지그문트 프로이트,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경제학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고향이다. 또, 흔히 독일인으로 생각하는 아돌프 히틀러의 고향인 곳이다. 물론 히틀러는 자기 조국을 나치 독일에 강제 합병(안슐루스)해 버린 원흉이다(...) .대한민국의 초대 퍼스트 레이디 프란치스카 도너 리도 오스트리아인이다. 오질댁[11]

서양사에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던 시기에 문명사적으로 가장 활기찬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제1차 세계대전 패배를 시작으로 제국에서 소국으로[12] 몰락의 쓴맛을 본 후, 베를린과 함께 냉전의 최전방이었다가 지금은 유럽연합이 동구권으로 확대되면서 동유럽과 만나는 중유럽의 관문으로 경제특수를 누리고 있다. 유럽의 제왕들을 벌벌 떨게 만들던 옛 영광을 생각한다면 현대의 오스트리아는 여러 모로 초라해보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최상위권의 높은 국민소득(48000불, 세계 11위)과 스위스 다음으로 높은 복지 예산(세계 6위)을 갖춘 살기 좋은 나라이다. 다만 형제들(?)이 따로 살림을 차린 현 독일연방공화국에 비해 턱없이 적은 인구수[13]가 존재감을 낮추고 국가 방침도 이웃 스위스처럼 영세중립국이라 이름을 드날릴 일은 없을 듯.

한국 뉴스에서도 낯설지 않은 국제원자력기구 IAEA, 국제노동기구 ILO 등이 빈 유엔 본부에 있다[14] 인구 대비 노벨상 수상자가 세계에서 6번째로 많다. 독일어권 전체에서 가장 큰 대학인 빈 대학교는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오프로드 바이크로 유명한 메이커 KTM이 이 나라 거다.

오스트레일리아와는 다른 나라이니 헷갈리면 안 된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오세아니아영어권의 나라이고 이 나라는 엄연히 유럽 중부의 독일어권 나라이다. 그러나 두 나라는 서로 아주 중요한 공통점을 하나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두 나라 모두 전세계 최상위권 수준의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선진국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나라의 주한 대사관이 모두 한 건물에 있다. 바로 종로구 교보빌딩[15]에 있는데 주한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이 19층,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관이 21층에 있다.

그리고 “우리한텐 캥거루가 없어요”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까지 팔 정도로 열심이다. 즉, 우리만 말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헷갈려한다.
오스트리아 연방경찰청 항목 참조

2. 언어[편집]

공용어는 독일어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용되는 독일어는 문어체에서 기본적으로 독일 본토의 독일어와 차이가 없지만, 구어는 억양과 어휘에서 일부 차이를 보인다.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의 말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16][17] 헝가리어, 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는 지역 공식어로 지정되어 있고, 주요 외국어는 영어가 널리 쓰인다. EF 영어능력지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높은 교육 수준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와 함께 비영어권 국가 중에 영어를 제일 잘하는(매우 높음) 것으로 나타났다.[18][19] 그리고 프랑스어를 배우는 비율도 10%이다.

3. 역사[편집]

4. 행정 구역[편집]

독일과 마찬가지로 연방제 국가라서 주 의원 선거와 의회/정부 구성도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주별 자치권이 강한 편이다. 주의 공식 명칭은 연방주(Bundesland)이며 주 밑으로는 광역시급 지자체인 헌장 도시(Statutarstadt)와 구(Bezirk)가, 또 그 밑으로는 게마인데(Gemeinde)이 있다. 이웃 체코와 마찬가지로 주도는 연방주 당 하나 씩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주도와 별개로 헌장 도시가 두 군데 이상 있는 연방주도 있다.

빈은 1986년 이전까지는 수도와 동시에 니더외스터라이히의 주도였지만, 이후 독자적인 특별시격 연방주 겸 주도로 분리되었다.

Fucking이라는 마을이 오스트리아에 있다.(...)

연방주 이름

주도

헌장 도시

주요 지역

부어겐란트
(Burgenland)

아이젠슈타트
(Eisenstadt)

아이젠슈타트
루스트(Rust)

마테어스부르크(Mattersburg)
루스트(Rust)

케언텐
(Kärnten)

클라겐푸르트
(Klagenfurt)

클라겐푸르트
필라흐(Villach)

슈피탈 안 데 드라우(spittal an der drau)

니더외스터라이히
(Niederösterreich)

장크트푈텐
(Sankt Pölten)

크렘스(Krems)
장크트푈텐
바이트호펜안데어입스(Waidhofen an der Ybbs)
비너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

호른(Horn)
멜크(Melk)

오버외스터라이히
(Oberösterreich)[20]

린츠
(Linz)

린츠
슈타이어(Steyr)
벨스(Wels)

바트 이슐(bad ischl)
클라우스(Klaus)
프라이슈타트(freistadt)

잘츠부르크
(Salzburg)

잘츠부르크
(Salzburg)[21]

잘츠부르크

슈타이어마르크
(Steiermark)

그라츠
(Graz)

그라츠

슈타이나흐-이르드닝(stainach-irdning)
젤츠탈(Selzthal)
레오벤(leoben)
유덴부르크(Judenburg)
마리아첼(Mariazell)
리첸(Liezen)
슈라트밍(Schladming)
r]라이프니츠(Leibnitz)

티롤
(Tirol)

인스브루크
(Innsbruck)

인스브루크

상트 안톤 암 아를베르크(St.anton am Arlberg)
키츠뷜(kitzbuhel)
리엔츠(Lienz)
마이어호펜(Mayrhofen)
옌바흐(Jenbach)

포어아를베르크
(Vorarlberg)

브레겐츠
(Bregenz)

(없음)

블루덴츠(Bludenz)
도언비언(Dornbirn)
펠트키어히(Feldkirch)
루스테나우(Lustenau)


(Wien)

5. 사회[편집]

뉴스를 통해 1998년부터 44세 남성 볼프강 프리클로필에게 유괴되어 8년간 감금되어 있었던 나타샤 캄푸쉬 감금사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세 자매가 생모로부터 감금당한 사건, 1984년부터 아버지가 딸을 감금하고 성폭행하여 아이를 7명이나 낳게 한 요제프 프리츨 친딸 감금 강간 사건 등이 발생한 사실이 알려져 감금국가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은근히 비리 사건이 자주 있으며, 정치인들이 뇌물먹고 그리펜 대신 유로파이터를 사왔는데 그나마도 피아식별장치조차 안 달린 깡통 수준의 기체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1985년에는 일부 와인 생산업자들이 와인에 부동액을 집어넣은 대륙의 기상이 엿보이는 사건까지 있었다.

돈세탁 및 조세피난처로도 유명한데, 원래 이웃나라로 비슷한 구조인 스위스가 돈세탁으로 유명했으나 최근 유로폴의 단속으로 이 나라와 리히텐슈타인 등으로 옮겨 왔다.

전반적으로 길거리나 카페, 대중교통 등에서 보이는 사람들 표정이나 인상이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북독일보다는 좀 더 따뜻하고, 표현도 활발하게 하는 편이다. 문화도 과거 다민족 거대 제국의 유산을 이어받아 개방적이고 자유주의적이지만, 반대로 이민 같이 민족이나 사회 내부 결속 같은 문제에 관해서는 68혁명의 사회적 변화가 비껴갔고, 제국 해체 이후 알프스 산자락에서 오랜 시간을 영구 중립국으로 지내면서 과거에 비하면 훨씬 더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되었던 만큼 옆동네처럼 폐쇄적인 마인드도 강하다. 그래서인지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에 (정치적인 의미로) 긍정적인 서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민족적 분위기를 찾아보기 좀 어렵다. 이미 인종의 전시장처럼 되어가는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은 관광객이나 일부 대학생들을 제외하면 비유럽권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이 극히 적어보인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선 목도리나 스카프로 얼굴을 다 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럽의 테러 위험 때문에 최근 통과된 법으로, 신원확인을 위해 얼굴을 반 이상 가리지 않도록 했는데 특히 무슬림에게 히잡은 허용했지만 니캅, 부르카 착용은 금지했다. 그래도 사실 법이 통과된 뒤에도 무슬림, 비무슬림 상관없이 얼굴 가리는 사람들이 많다. 겨울이 다가오는 10월달에 통과된데다, 법 자체에 논란이 많은 게 이유였다. 얼굴을 가리는 사람들은 법에 대한 반발이라기 보다는 진짜 춥거나 운동해서같은 이유가 대부분이고, 시민들은 법에 대해 조롱하면서도 최대한 얼굴을 보이게 목도리를 맨다. 법이 시행됐지만 시 중심에서도 간간히 부르카를 입은 사람을 볼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은 담당처에다가 '오늘 날씨가 추운데 머플러로 얼굴을 가려도 되나요?' 라고 전화로 물어보기도 한다고[22]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괜한 제재를 받지 말도록 하자. 또 60~70년대에 넘어온 터키 출신 노동자 후손들과 보스니아 내전 때 넘어온 무슬림 후손들이 증가하면서, 그들이 현지인 아이들에게 폭력를 행사하거나 이슬람 국가에 가입하는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문제는 인구 5%를 약간 넘는 무슬림들이 오스트리아 신생아10%~15%를 차지한다는 사실이다.[23] 그리고 2018년 새해 첫 아기의 부모님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페이스북에 인종차별적인 댓글이 무차별적으로 도배된 사건까지 터졌다. # 거기에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난민들이 중급 독일어 시험, 상급 영어 시험에 합격해야 최저생계소득을 얻을 수 있는 법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우파 정부와 여당은 라마단 금식까지 비판하면서 이슬람 단체들은 반발했다.#

6. 정치[편집]


의원내각제 국가로, 독일처럼 대통령은 명목상의 국가원수에 머물며 총리가 행정수반으로서 실권을 갖는다. 연방대통령(Bundespräsident), 연방총리(Bundeskanzler)의 명칭은 독일과 같다. 독일과 다른 점은 대통령은 국민 직접투표로 선출되며, 독일에 비해 대통령에게 약간의 권한이 더 부여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원집정부제 국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공화국 성립 이래 정권은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구 사회당)과 중도우파 성향의 국민당이 번갈아가며 맡고 있다. 2016년까지는 2007년 이래 두 당이 대연정을 통해 연립 정권을 이루고 있었으며 사회민주당 소속의 총리가 나오고 있었다.

언론자유지수는 국경없는 기자회 기준으로 세계 11위#로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프리덤하우스 기준으로도 자유로운 국가에 속한다.

진짜 사서 고생한다 싶을 정도로 나치 숙청에 열을 올리는 옆나라 독일에 비해 오스트리아는 나치를 그저 터부로만 생각하며 덮기에 급급한 편이다. 처음에는 잘 한게 없는지라 조용히 지내고 자유주의가 득세했지만, 유럽 국가들이 시간만 나면 나치 얘기를 하는지라 그에 대한 반발로 지난 수십년 동안 우경화가 진행되었다.

쿠르트 발트하임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호평을 받은 적이 있으나, 후에 나치 활동 경력 논란이 있는데도 대통령에 선출되면서 계속 말이 많았던 흑역사가 있다. 이후 외르크 하이더[25]가 이끄는 극우 성향의 자유당(FPÖ)[26] 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자유당은 1999년 총선에서 공동2위의 의석을 확보하였는데, 이는 당시까지 선진 민주국가에서 극우 정당이 거둔 최대의 승리였다. 자유당은 국민당이 주도하는 연립정권에서 참여한 적도 있으며, 나치와 반유대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자유당이 연정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과는 외교적으로 사실상 단절상태가 되고, 유럽 연합의 정치적 제재를 받기도 했다. 자유당은 최근 다른 유럽국가의 극우정당과 마찬가지로 반이민, 반난민 정책을 주장하며, 2013년 총선에서도 3위를 하며 선전했으며, 2016년 대선에서는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2016년 대선에서는 전통적인 양당인 사회민주당과 국민당 후보가 모두 광탈하고 극우 성향의 자유당 후보와 진보 성향의 녹색당의 지지를 받은 무소속 후보가 1, 2위를 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는 반 난민 분위기에 힘입어 예선투표에서 35% 이상의 득표율로 타 후보를 압도하는 1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사회민주당과 국민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친 것보다 높은 것이었다. 호퍼는 반이민을 주장하고 독특한 행동을 일삼아 오스트리아판 트럼프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웃나라ZDF의 호이테 쇼에서는 이에 대해 하켄크로이츠 모양 슈니첼풍자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는 듯. 그리고 결선 투표에서도 호퍼 후보가 현장투표에서 1위를 기록해서 다시 파란이 일어났으나, 부재자 투표가 개표되면서 결과가 뒤집혔다. 결과는 자유당의 호퍼 후보 49.7% vs 녹색당의 판 더 벨렌 후보 50.3%.

그러나 대선 결과에 불복한 자유당이 소송을 하였는데 헌재에서 받아들이면서 다시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이유는 부재자 투표에서 부정이 있어서 표가 대규모로 녹색당으로 갔기 때문이다. 증인만 해도 수십명이니 녹색당이 부정선거가 아니라고 할 방법이 없다. 부정개표된 표 수만 70만 표에 달한다.

결국 재선거를 10월 2일에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부재자 투표용지 봉투 불량이 발견되어 10월 2일로 예정된 선거가 다시 연기되어 12월 4일 치러지게 된다. 개표부정으로 인해 재선거를 치르게 했는데, 그 재선거마저 준비과정에서 병크를 저질러 연기되는,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보기드문 부실한 선거관리로 물의를 빚고 있다.

기존 대통령이던 하인츠 피셔가 2016년 7월 8일 자로 퇴임 함에 따라 새 대통령이 선출되지 못한 상태이므로 현재 대통령 자리는 공석이며, 2017년 2월 17일부터. 그리고 재선거 결과는 녹색당 판더 벨렌 53.8% vs. 자유당 호퍼 46.2%였다.#어째 녹색당이 부정선거했다는 저번 선거보다 퍼센티지 차가 더 난다(...). 그래서 녹색당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세계 최초로 녹색당 출신의 대통령이 배출된 셈이다.#

2017년 10월 15일 총선에서 우파 국민당과 급진 우파 자유당의 약진이 확실시 되며, 외무장관으로서의 성과로 국민당 당수에 오른 소년청년 정치인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차기 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당시 쿠르츠의 나이가 31세!!(1986년 생으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보다 훨씬 젊으며 김정은 보다 젊은 나이) 로 총리 선출시 세계에서 가장 젊은 정부수반이 될 것이다. 사민당은 현직 케론 총리가 막판 스퍼트를 올리려는 와중에 해당 참모들이 상대당의 네거티브 가짜 뉴스 공작을 페이스북을 통해 모의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지지율이 이후 나락으로 떨어져 1911년 전후 최저 득표율 및 성적이 예상되는 형국이다. 극우-우익 연정이 중부유럽의 종주국에 출범할 시, 이후 유럽의 정치지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지 주목된다. 극우정당의 정부참여가 확실시 되는 나라가 EU, 친서방 주요국이라는 점이 특이할 만한 사항.

당초 예상됐던대로 국민당이 득표율 31.5%로 1위, 그 다음으로 사민당 26.9% 자유당 26.0%,로 각각 뒤를 이었다.

사민당은 여론조사보다는 괜찮은 결과를 보여줬지만, 대신 녹색당이 3.3%로 창당 이후 역대 최악의 결과를 내면서 한 석도 건지지 못해, 공중분해되버렸다.

결국 2017년 12월 18일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신임 총리가 되었다. 31살로 유럽 최연소라고 한다.

현재 오스트리아 국민당(원내 1당), 오스트리아 자유당(원내 3당)이 연립 여당을 조각했고,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원내 2당), NEOS-신오스트리아 자유포럼 (원내 4당), 페터 필츠당 (원내 5당)이 야당을 구성하며 원외에 녹색-녹색대안 등이 포진해있다.

오스트리아인들 5명 중 2명은 히틀러 치하의 오스트리아가 모든 것이 나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통계결과도 있다. 다만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응답은 아니므로 주의.

7. 경제[편집]

8. 군사[편집]

9. 문화[편집]

10. 외교 관계[편집]

10.1. 독일과의 관계[편집]

민족적으로 보자면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동일하다. 물론 방언의 차이 등은 있지만, 그 정도 격차는 독일연방공화국 안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프로이센이 북부의 독일계 개신교 국가들을 대표하고, 오스트리아가 남부의 독일계 가톨릭 국가들을 대표하였다. 특히 독일 남부(바이에른)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점에서 오스트리아와 매우 유사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쓰이는 독일어 방언도 독일 남부에서 쓰이는 독일어 방언과 매우 유사한 편이다.(오스트로바이에른어) 때문에 민족적 의미에서 '독일인'이라 하면 오스트리아인 역시도 엄연히 포함된다. 하지만 훗날의 독일 제국을 주도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역사적으로 적대적인 편이였다. 게다가 아돌프 히틀러때문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의해 합병된 적도 있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등장을 계기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패하여 중부유럽의 주도권이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독일제국 및 그 후계국가들로 넘어가버렸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한 동포이며, 따라서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은 결코 진정한 '통일 독일'이라 할 수 없다는 떡밥은 19세기말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독일의 통일이라고 하면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가문을 제외한 통일이라는 의미에서 소독일주의가 있으며,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모든 독일 국가의 통일이라는 의미에서 대독일주의가 있다. 실제로 이러한 움직임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모두에 존재해 안슐루스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걸 주도한 이들이 양국의 나치 세력이고 그 결과물이 제 2차 세계대전... 그래서 대독일주의는 21세기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 언급이 거의 금기시된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너 독일인이지?"라고 물으면 화를 낸다. 바이에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독일인 보다 바바리안이라고 일컫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통일이 늦게 이루어진 나라이므로, 지역색이 강하다.

2018년 6월 18일에 독일이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국제기구, 기업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스파이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10.2. 터키와의 관계[편집]

터키와는 오스만 제국시절부터 숙적인 관계이다. 1차 빈 포위때에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합스부르크 제국이 멸망당할뻔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만 제국과 함께 헝가리를 지배하기도 했지만, 이후 오스만 제국이 약해지면서 헝가리 전역을 지배한 뒤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발칸 반도도 진출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빼앗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에는 지금도 터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의 개헌 투표가 통과되고 오스트리아측은 터키의 유럽 연합가입도 반대했고 게다가 이미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2018년 6월 8일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터키 출신의 이슬람 성직자 60여명을 추방하겠다고 밝히자 터키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그리고 극우 자유당 대표는 에르도안을 찍은 터키인들은 터키로 돌아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터키어 운전면허시험을 폐지시켰다.#

10.3. 러시아와의 관계[편집]

러시아와는 이전부터 숙적이었다. 러시아가 발칸 반도로 진출할려고 하면 오스트리아측은 견제를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러시아 제국은 19세기에 외교갈등은 물론 몇차례의 전쟁도 겪었다(예컨대, 크림 전쟁 등). 거기에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자 러시아 제국은 세르비아를 지지하면서 전쟁을 선포했고 서로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후 나치 독일오스트리아를 합병한 것 때문에 잠시 독일처럼 분단되기도 했었다.

오스트리아의 국민당과 연립정부를 꾸린 극우 자유당은 친러성향을 보이고 있고 EU의 러시아 제재를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2018년에 영국에서 일어난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미수 사건을 계기로 EU회원국들과 미국, 호주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정책의 일환으로 서방국가들도 영국의 정책에 동참해서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한 것과는 반대로 오스트리아는 외교관추방에 참여하지 않았고, 러시아와 대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거기에다 오스트리아의 현총리는 러시아는 매우 중요한 협력관계라고 밝혔다.#(러시아어 원문)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러시아와 가까워지자 6월 5일에 푸틴 대통령은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그리고 7월 6일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은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러시아어 원문) 8월 18일에는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의 결혼식에 푸틴 대통령이 참가했다.# 하지만 결혼식장에서 푸틴과 같이 춤을 춘것에 대해서 야당측은 비판했다.#

10.4. 헝가리와의 관계[편집]

헝가리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헝가리어는 오스트리아에서 지역공식어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그만큼 라이벌 관계도 있다.

10.5. 이탈리아와의 관계[편집]

이탈리아와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점에서 종교적으로는 같지만,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못한 관계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통일도 오스트리아가 방해를 했다는 점에서도 사이가 좋지 못하다. 이탈리아의 쥐트티롤 지역에서는 오스트리아에 복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도 같은 파시즘 정권이 들어섰던 1934년부터 4년간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려는 나치 독일에 대해 이탈리아가 견제하기도 했다.

2017년에 오스트리아 정부가 쥐트티롤의 주민들에게 시민권을 줄 수 있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이탈리아측에서 반발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2018년 4월 19일에 쥐트티롤주민들이 해외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오스트리아 영사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발언하자 이탈리아는 반발했다.#

10.6. 미국과의 관계[편집]

미국과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그리고 미국에도 오스트리아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27]

10.7. 한국과의 관계[편집]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절인 1892년조선과 외교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단교했다가 대한민국과는 1963년에 가서야 외교관계를 복구했다.[28] 그 이전에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의 고향이 이 나라였던지라 이미 간접적인 외교를 맺었다. 영세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1974년에는 북한과도 수교했다. 소록도 수녀님으로 유명한 마리안느 수녀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축구선수 황희찬이진현이 이 나라 리그에서 뛰고 있고, 과거에는 현 수원 삼성 감독인 서정원도 활약했던 바 있다.

11. 오스트리아 국적, 출신의 캐릭터[편집]

[1] /ʀepuˈbliːk ˈøːstəʀaɪ̯ç/[2] 국기의 유래는 1191년 레오폴드 헬덴툼이 십자군 전쟁 당시 프톨레마이스 전투에서 적군의 피를 뒤집어써, 갑옷 위에 걸친 흰 겉옷이 벨트 부분을 남기고 빨갛게 물들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한다. 1230년 프리드리히 2세가 처음으로 이 기를 채택했고 이후 오스트리아의 지배 가문인 바벤베르크 가문의 문양이 되었다. 바벤베르크 가문이 단절된 후에도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이 문양을 종종 사용했고, 특히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들이 이 문양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상징으로 굳어지게 되었다.[3] 남한에서 강원도를 뺀 정도의 크기다.[4] 1986년 8월 27일생으로 2018년 현재 전세계 행정수반 중 최연소인물이다. 뉴질랜드 총리는 물론이고 김정은보다도 어리다.[5] 2002년 이전 오스트리아 실링. 은행에서 무기한으로 유로 교환이 가능하다.[6] 헝가리(마저로르삭), 크로아티아(흐르바츠카), 그리스(엘라스), 스웨덴(스베리예), 핀란드(수오미), 아일랜드(에이레) 등과 함께 국가명의 현지발음이 한국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유럽국가다.[7] 한국외대 독일어과에서 운영중인 독일 원서 도서관 이름이 오지리 도서관이다. 독일어로는 Österreich Bibliothek[8] 그래서 통일을 한 번 실제로 하기도 했는데(안슐루스) 뻘짓으로 다시 갈라졌고 그 뒤로는 다시 합칠 수 없는 상태가 됐다.[9] 그래도 관광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세계 7위 정도로 큰 편이며, 사실 관광업 비중이 10% 이내이면 결코 작은 게 아니다. 1% 이내에 있는 나라들도 많다. 흔히 관광에만 매달리다 망했다고 언급되는 그리스의 경제가 그래도 괜찮던 2008년 기준으로 보면, 당시 그리스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한 비율이 18.2%였다.[10] 사운드 오브 뮤직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11] 정작 당사자는 ‘호주댁’이라 불리고, 호주 공군기가 뜨면 ‘사위 나라 구해주러 왔나보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시 오스트리아는 전범국 출신으로 네 등분되어 있어서(영미프소) 군인을 보낼 여건이 아니었다.[12] 1차 대전 직전에 면적 681,727 km2로 유럽 제 2, 인구 5280만으로 유럽 제 3의 대국이었으나, 패전 후 오스트리아는 1923년 기준으로 오늘날과 같은 83,879 km2 면적에 인구 653만 명으로 1/8토막났다(...)[13] 8000만 명 VS 800만 명[14] 그러다보니 대한민국 외교부 안에서도 주 오스트리아 대사는 고위직에 속한다. 반기문유엔 사무총장도 오스트리아 대사로 근무.[15] 교보문고 종로점이 있는 건물이다.[16] 실제로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는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까운 편이라, 바이에른사람과 오스트리아 사람은 일반적으로 본인이 어디 사람인지 말하기 전에는 겉모습이나 말투로 자기들끼리도 구별을 잘 못 한다. 참고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쭉 살았던 히틀러는 프랑스로 가서 몇년 살다가 독일로 이민 가기로 했을때 바이에른으로 이민을 갔고 거기서 군대도 가고 정치도 하며 자기 정치인생의 기반으로 삼았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사투리때문에 평생 놀림을 받아 그것이 콤플렉스가 되어버렸다.[17] 표준 독일어 인사: Guten Tag(구텐 탁), 바이에른/오스트리아 독일어 인사 :Grüß Gott (그뤼스 고트)[18] #[19] 그런데 막상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을 때 영어가 의외로 잘 통하지 않아 헤맸다는 증언도 더러 존재한다.[20] 이 주에 유명한 마을로 할슈타트가 있다.[21] 주와 도시가 같은 빈과는 달리, 주 잘츠부르크 안에 도시 잘츠부르크가 있다.[22] 이것만으로도 말이 많았다. 춥고 더운 건 주관적인 건데 그걸 담당자가 머플러를 둘러도 됩니다, 안됩니다 하는 것 자체가 논란을 불러올 만한 일이다.[23] 2015년 신생아 8만4321명 중 1만760명이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2016년 신생아 8만7675명 중 1만2794명이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다.[24]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0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http://en.rsf.org/press-freedom-index-2013,1054.html [25] 뻑하면 반유대주의적 발언에 친나치적 발언을 터뜨리는 탓에 1991년 케른텐 주지사에서 짤린 적도 있을 정도. 그러나 그 이후로도 국회에서 무장친위대는 존경받아야 하며, 나치 수용소는 단순히 훈육 캠프였을 뿐이다.# 같은 주옥같은 망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9년 주지사직에 복귀한 이후로는 새로 당까지 만드는 등 승승장구 했지만, 2008년 10월 갑작스럽게 사망. 사인이 참 기괴한 것이, 어머니 생신날을 맞이하야 게이바에서 애인이랑 왕창 퍼마시고는 술에 잔뜩 취한 채 관용 폴크스바겐 페이톤의 운전대를 잡고 어머니 집을 향해 과속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참고로 그 애인은 하이더 사후 하이더의 당 총재가 됐다. 이 양반의 정치 스펙트럼을 생각한다면 심히 흠좀무. 초기 나치에 에른스트 룀이라는 동성애자가 있었긴 하지만 넘어가자[26] 자유당의 전신인 독립연합(VdU)은 동유럽에서 추방된 독일인과 옛 나치 인사들의 권익을 대표하는 정당이었고, 55년 자유당이라는 군소 정당과 합당하면서 현재의 오스트리아 자유당이 되었다. 이 당의 첫 지도자였던 안톤 라이트할러는 나치 장관 겸 SS 장교 출신이었고, 2번째 리더인 프리드리히 페터 역시 성향은 온건한 편이었지만 SS 장교 출신이었다.[27]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미국으로 귀화했다.[28] 주 오스트리아 한국 대사관에서는 공식적인 수교연도를 1892년으로 명시하고 있고, 2012년에는 수교 120주년 행사도 열었다.[29] 이와츠치(과거 오스트리아) 소속 멤버들이다.[30] 토마와 리리나의 아버지.[31] 프란츠의 딸이자 토마의 이복여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