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고슬라비아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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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육군 Jugoslovenska vojska / Југословенска војска Yugoslav Arm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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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가 제1차 세계 대전 승리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남슬라브족 영토를 합병하고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건국하여 창설되었다. 공식적으로는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슬로베니아가 이탈리아의 위협에 세르비아에게 연합을 요청한 것이었지만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이나 세르비아 왕실이나 진주한 세르비아군을 점령군으로 간주했다. 세르비아에 비해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상대적으로 부유했기에 무력에서 앞서는 세르비아를 먹여살리기 위해 쥐어짜내지는 처지나 다름없다는 불만이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아드리아해 패권을 욕심냈는지라 크로아티아 분리독립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등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 전역과 폴란드 전역이 추축군의 승리로 마무리되자 무솔리니는 동맹자 아돌프 히틀러에게 유고슬라비아의 침공을 제안하나 히틀러는 1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군마저 고전시킨 세르비아의 용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또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추축국 편으로 끌어들이길 원했기에 이를 거부한다. 무솔리니는 타겟을 바꿔 그리스 왕국을 공격하기로 결정, 알바니아를 통해 이를 실행하지만 역으로 참패하는 등 체면을 구긴다. 그리스에 대한 영국의 지원이 본격화되는 등 그리스 침공이 추축국 전체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질 기미가 보이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도 그동안의 중립노선에도 불구하고 친영 장교단의 쿠데타가 벌어지자 히틀러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쿠데타가 벌어졌다고 해서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국을 이탈하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히틀러는 전격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침공을 감행한다.
유고슬라비아 육군이 추축군에 단기간도 못 버티고 참패한 이후로는 일부 병력은 국외로 탈출해 유고슬라비아 망명군을 구성하고 일부는 체트니크 등의 반독 저항조직을 결성했다.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파르티잔이 세력을 넒히자 교전을 벌이거나 일부 조직은 추축군과 암묵적 동맹을 맺는 등 유고슬라비아의 저항운동은 혼란에 빠져든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공작으로 영국과 미국 등의 서방 연합국들도 결국은 숫자와 조직력에서 더 우세한 파르티잔을 파트너로 선택하게 됐고 유고슬라비아 왕국 잔당은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추축국 축출 이후 파르티잔과의 내전 패배에 의해 해체된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아드리아해 패권을 욕심냈는지라 크로아티아 분리독립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등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 전역과 폴란드 전역이 추축군의 승리로 마무리되자 무솔리니는 동맹자 아돌프 히틀러에게 유고슬라비아의 침공을 제안하나 히틀러는 1차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군마저 고전시킨 세르비아의 용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또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추축국 편으로 끌어들이길 원했기에 이를 거부한다. 무솔리니는 타겟을 바꿔 그리스 왕국을 공격하기로 결정, 알바니아를 통해 이를 실행하지만 역으로 참패하는 등 체면을 구긴다. 그리스에 대한 영국의 지원이 본격화되는 등 그리스 침공이 추축국 전체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질 기미가 보이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도 그동안의 중립노선에도 불구하고 친영 장교단의 쿠데타가 벌어지자 히틀러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쿠데타가 벌어졌다고 해서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국을 이탈하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히틀러는 전격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침공을 감행한다.
유고슬라비아 육군이 추축군에 단기간도 못 버티고 참패한 이후로는 일부 병력은 국외로 탈출해 유고슬라비아 망명군을 구성하고 일부는 체트니크 등의 반독 저항조직을 결성했다.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파르티잔이 세력을 넒히자 교전을 벌이거나 일부 조직은 추축군과 암묵적 동맹을 맺는 등 유고슬라비아의 저항운동은 혼란에 빠져든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공작으로 영국과 미국 등의 서방 연합국들도 결국은 숫자와 조직력에서 더 우세한 파르티잔을 파트너로 선택하게 됐고 유고슬라비아 왕국 잔당은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추축국 축출 이후 파르티잔과의 내전 패배에 의해 해체된다.
유고슬라비아 전역이 개전한 시점에서 왕립군의 전체 병력은 33개 사단 35개 독립연대에 예비군까지 포함해서 147만명이 넘었다. 체트닉은 원래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통치에 항거하던 세르비아계 게릴라를 칭하는 단어였지만, 유고슬라비아 왕국 시절에는 1940년부터 경보병 침투부대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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